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6화
신화문도들이 부복하고 부문주가 고개를 숙이며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문파 전체가 나 하나를 호위하겠다는 상황.
마치 전생의 국뽕튜브를 보는 듯한 상식 밖의 상황에 만독연주의 얼굴엔 경악이 가득 찼다.
“세상에…… 그 신화문주가 호위를 한다고?”
평소에 체통을 지키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만독연주임에도 이것만큼은 놀랄 수밖에 없었는지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건 팽구용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건 신화문과 연이 있는 정도가 아니잖냐! 대, 대체 어떻게 저 인간 입에서 호위한다는 소리가 나와!”
팽구용은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컸는지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만독연 안의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텅.
“신화문이 삼 공자님을 호위한다고?”
“그것도 신화문주가 직접?”
다들 손에 쥔 암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에에?”
놀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분명 일염이가 신화문주인 것은 안다.
내게 당가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호위라니?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소리에 마치 신호를 보내듯 의뭉스러운 눈으로 부문주를 지긋이 쳐다봤다.
그러자, 부문주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전음을 보냈다.
-……혹시 호위에게 전해 들은 것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진짜로? 아무것도?
-진짜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다시금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부문주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신화문도들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라는 행사를 준비해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무리수를 두는 게 확실한 상황.
입을 떡 벌렸던 인원들이 벙찐 얼굴로 부문주를 바라봤다.
허나, 부문주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야, 안 그래도 공자님이 아파서 빙궁에 다녀오신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신화문에서 환영의 의미로 이런 행사를 준비했거든요.”
부문주가 어떻게 수습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이미 손을 떠난 일.
말하면 말할수록 대화는 산으로 가고, 상황만 더욱 악화시켰다.
그렇기에 그냥 단박에 끊어버리기로 했다.
“별로입니다. 하지 마시죠.”
“……예.”
단번에 일축하자 부문주가 자연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어째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이전 건은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당가를 도와주시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도와주실 예정입니까?”
“아무래도 저희는 외부인이다 보니 함부로 당가를 돌아다니긴 좀 그래서요. 우리 공자님 뒤만 졸졸 쫓아다니려고 합니다.”
“제가 위험한 곳에 갈지도 모르는데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시면 됩니다.”
내키는 대로 가면 된다는 말에 만독연주가 부문주를 만류했다.
“아직 당가에는 반란을 일으킨 이들이 많습니다. 삼 공자님의 안위를 생각해서…….”
“아뇨. 위험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허나, 부문주는 서늘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단호하게 일축했다.
“공자님이 가시는 곳이 곧 길이 될 것이며, 동시에 당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겁니다.”
마치 절대불변의 법칙을 말하듯 부문주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받은 의뢰가 그거였으니까요. 그러니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부문주가 다시금 눈웃음을 살살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게 왠지 모르게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는 듯해서 입꼬리가 절로 씰룩씰룩거렸다.
‘나보다 아득히 강한 고수일 텐데 왜 이렇게 귀엽게 보이냐.’
분명 날카로운 기세를 뿌릴 때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해 보였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그냥 영락없는 강아지 같았다.
‘뭐, 일단 그건 둘째치고…….’
부문주가 도와준다면 반란 정도는 쉽게 진압할 수 있을 터.
당장 머리부터 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가주전부터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럼 가주전. 가주전부터 가죠.”
“흠…….”
그러나 부문주는 명령을 기다리던 것과 달리, 가주전이란 단어를 듣자 머리를 긁적였다.
“거긴 굳이 안 가셔도 될 듯합니다만…….”
“아니, 가고 싶은 곳은 마음대로 가도 된다고 하셨잖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만…….”
잠시 말끝을 흐린 부문주가 오른손에 낀 장갑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없는 6명. 그쪽으로 갔거든요.”
* * *
당지천이 이제 막 만독연에 들어섰을 시점.
가주전에서는 당군성의 명령하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1조와 2조는 대기 인원과 교대. 3조는 전위로 나서고, 5조는 4조를 보조해라.”
마치 영물을 잡기 위해 파견된 무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원들.
그에 맞춰서 백호단원들도 분투하고 있었지만, 이미 3일 넘게 이어진 싸움에 지칠 대로 지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기룡은 허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이젠 독도, 암기도 없구나.’
독도.
암기도.
인원조차도.
하나같이 부족해진 상황.
하다못해 상대가 암기라도 썼다면 주워서라도 쓸 텐데, 적들은 기이한 사술을 써댈 뿐 암기는 전혀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당기룡을 지치게 하는 것은…….
‘정말 가망이 없구나.’
백호단원들과 다를 바 없이 지칠 대로 지친.
아니, 단원들보다도 힘들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딜 한눈파시는 겁니까!”
당기룡이 잠시 시선을 돌린 틈을 놓치지 않고 당지독이 단검을 휘둘러 왔다.
허나, 당지독과 당기룡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아무리 지쳤다고 한들, 당지독의 공격을 순순히 허용할 당기룡이 아니었다.
-탁, 따닥. 탁.
-뚜두둑.
당기룡이 찰나의 순간에 단검을 뺏음과 동시에 당지독의 목을 잡고 꺾어버리자, 단숨에 숨통이 끊겨 버리는 당지독.
그 모습을 본 당기룡은 뺏은 단검을 백호단원들이 있는 쪽으로 던지고 재차 당지독을 봤다.
그러자, 이상한 소리와 함께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당지독의 목.
-뚝, 뚝, 뚜둑.
“후…… 이젠 몇 번째인지 세기조차 어렵네요.”
분명 숨통이 끊겼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도무지 범인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허나, 당기룡은 알고 있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째서 죽여도 죽지 않는 것이냐.’
아까 말했듯이 당기룡과 당지독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
당지독이 사술을 쓴다고 해도 좁혀지지 않을 격차였다.
하지만…….
‘머리를 아예 터뜨려도, 사지를 분쇄해도, 하다못해 무형지독마저 통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죽여도 죽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떤 방법을 써도.
당가의 최고의 비기인 무형지독을 쓰더라도 되살아나는 당지독과 계속 싸우다 보니 도무지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처음에 사술이라도 피했다면 다른 이들부터 정리했을 터인데…….’
처음 당지독이 집무실을 찾아왔을 때.
당지독이 뭔가를 꾸미고 있단 걸 알았어도 이런 사술을 구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피하지 못하고 당했다.
그런데 웬걸.
그 사술은 바로 주변 반 장을 못 벗어나게 하는 사술이었다.
그렇기에 당지독을 제외한 다른 적들을 공격하려면 제자리에서 암기를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포기하고 순리를 받아들이시죠. 지금 항복하고 당가를 넘기신다면 식솔들의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포기하고 당가를 넘겨라.
당지독이 부러졌던 목을 매만지며 뻔뻔하게 이야기하자, 당기룡은 체념하듯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당지독은 쐐기를 박는다는 생각으로 한마디 보탰다.
“독은 제 역할을 다할 때야말로 아름다운 물건이잖습니까? 제가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쓰겠습니다.”
독을 자신이 아름답게 써주겠다.
당지독의 그 말을 들은 당기룡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구나.’
조금 힘든 정도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다니.
뻔뻔하게 당가를 넘기라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앞에 두고 고민 같은 걸 하다니.
이래서 어떻게 천하제일독가 사천당가의 가주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독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 거기에는 일말의 타협도 존재할 수 없다.’
당가의 신념을 되새긴 당가주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인한 기세를 뿌리며 물었다.
“당가와 독곡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느냐?”
“알죠. 저도 당가의 사람인데 모르겠습니까?”
당지독은 참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독을 지키는가. 혹은 독을 위해 영혼을 팔 것인가. 그것이 당가와 독곡의 차이잖습니까.”
독을 수단으로 삼는 이들과 독 자체가 삶의 의미인 자들.
독을 연구하고 발전시킬지언정, 그 과정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곳이 당가였다.
반대로 독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생체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생체 실험부터 시작하는 곳이 독곡이었다.
“맞다. 그런데 네 행보를 보아하니 당가의 신념에 위배되게 독으로 사람들을 지배할 생각인 것 같더구나.”
“독으로 사람을 지배한다니요. 저희는 당가조차 이렇게 쉽게 뒤엎을 좋은 수단을 가졌는데 굳이 독을 써야 하겠습니까.”
당지독이 겨우 독 같은 걸 애지중지 하냐는 듯 비웃음을 흘리자, 당기룡은 가소롭다는 똑같이 비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쿵!
점점 강해지던 기세가 한순간 당지독을 찍어누를 듯 변하자, 당지독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큭…….”
“네가 사술로 독을 해독하는 잡기를 가졌기에 당가를 손쉽게 집어삼킬 수 있을지 몰라도 네놈의 사술은 무림을 지배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그러니 네놈이 당가를 집어삼키려는 건 통제 가능한 강력한 수단이 필요해서겠지.”
당기룡이 당지독의 속셈을 완전히 꿰뚫어 보자, 절로 일그러지는 당지독의 얼굴.
그러나 곧 당기룡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다시금 미소가 맺혔다.
“그렇다면 어쩔 겁니까?”
하지만 당지독이 그러든 말든 신경도 안 쓴 당기룡은 천천히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유감스럽게도 네 생각과 달리, 문파란 본디 곧 신념을 잇고, 발전시키는 곳이다. 우리 당가 또한 세가인 동시에 문파이기에 신념을 잇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금 당기룡이 한 발을 내디딘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당가를 넘긴다고 한들.”
그리고 또 한 발.
“설령 내가 무너진다고 한들.”
이제는 주술에 의해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도착하자, 패도적인 기세를 흩뿌리는 당기룡이 있는 내공을 다 때려 박으며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더 나아가 끝내 당가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콰아아앙!
가주전이 통째로 뒤집힐 정도의 위력.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백호단원과 당지독의 수하들은 물론, 백호단주마저 중심을 잃고 쓰러질 정도였다.
허나, 그런 여파가 무색하게 당기룡의 발은 당지독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하하. 겨우 그 수준으로 뭘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걸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흘린 당지독이 웃어젖혔지만, 당기룡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네놈이 아무리 가지려고 발버둥 쳐도! 아무리 빼앗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한 줌의 신념도 가질 수 없을 거다! 왜냐면…….”
패도적인 기세를 잠시 거둔 당기룡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5년 전. 지천이에게 당가의 모든 것을 넘겨줬으니 말이다!”
-우우우웅.
마치 주변의 기가 전부 공명하는 듯한.
아니, 세상이 모든 기가 공명하는 듯한 소리.
그걸 듣던 당지독의 얼굴은 삽시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설마…….”
왜냐면 이 소리는 채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기를 운용할 때만 나는 소리였기에.
3일 밤낮으로 싸운 사람이 이만한 전력을 숨겨놨을 리는 없다.
그러니 이 소리가 난다는 의미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선천진기를? 아니, 대체 그깟 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경악을 넘어서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당지독의 얼굴.
그걸 보던 당기룡은 이제는 미련 없다는 듯.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오른쪽 주먹을 들어 올렸다.
“지천이가 살아 있는 지금. 네놈과 같이 멸한다면 그걸로 우리의 승리다.”
그렇게 선천진기를 끌어낸 당기룡이 동귀어진을 하려던 그때.
“거기까지.”
어느샌가 나타난 삿갓을 쓴 흑의인 한 명이 당기룡을 제지했다.
그것도…….
“파.”
당지독을 포함한 수십의 무인을 단번에 분쇄해 버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