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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5화 (11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5화

“……예?”

문을 닫자고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당지무.

조금 장난스럽게 이야기한 탓인지 벙찐 얼굴을 했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당지무가 벙찐 채 가만히 서 있자, 옆에 있던 흑룡대원 하나가 말했다.

“삼 공자님. 지금 인원을 불러들이고 문을 닫으면 결국 전선만 뒤로 미는 꼴입니다. 삼 공자님 말씀대로 문 뒤로 물러나게 되면 막아야 할 길목이 많아져서 수비하기 힘들어집니다.”

“알고 있습니다.”

“헌데 왜…….”

“상황은 이미 경각에 이르렀고, 설명할 시간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설명한다고 해서 믿을 것 같진 않군요.”

지금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게끔 만들겠는가.

‘일염이가 진짜 신화문주였고, 당가주와는 사돈지간이었다니…….’

일염이가 급하다고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긴 했다.

하지만 팽구용에게 실력을 숨기기 위해 뒤따라 온다며 그전에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문주 행세를 한 건 부문주였고, 부문주조차도 화경의 경지에 이른 수준이라니 이게 말이 돼?’

대대로 신화문주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문주가 신화문주를 대행하면서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 말인즉슨, 신화문에는 절대 고수인 무인만 2명이란 소리 아닌가.

‘그런데 그런 신화문에서 지원을 온단 말이지.’

더 놀라운 점은 당가주와는 아는 체도 안 하던 일염이가 선뜻 당가를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한 거다.

그간 어머니의 이야기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의남매인 것도 빙궁 가서 겨우 알았다.

헌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신화문을 이끌고 당가를 도와주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기에 팽구용이 결계를 부숴준 것으로도 제 역할을 다했고, 곧 지원이 들어올 거기에 자신 있게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잖습니까. 인원부터 불러들이죠.”

“…….”

자신 있게 말하자 흑룡대원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별반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만독연주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인원들을 불러들여라.”

“연주님?”

모두가 의뭉스러운 눈으로 만독연주를 보자, 만독연주는 오히려 호통치듯 말했다.

“대공자는 반란의 주축이고, 이 공자님은 5년 넘게 폐관에 들어 아직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가주님 또한 명령을 내리실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지금 삼 공자님이야말로 당가의 유일한 명령권자시다.”

이어서 만독연주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정문 앞에 선 뒤,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삼 공자님이 그렇다고 하시지 않느냐.”

만독연주가 말을 마치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인원들.

아예 소가주라면 모를까.

아무리 직계의 힘이 강한 세가라고 한들, 약관을 넘지 못한 아이에게 미래를 맡기진 않는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여타 장로나 요직에 앉은 이가 명령을 내리는 게 맞았다.

그렇기에 인원들을 불러들이라는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독연주의 끝나기 무섭게 뛰쳐나가는 연구원들.

잠자코 만독연주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갑자기 나서서 인원들의 후퇴를 돕기 시작했다.

“무슨?!”

다른 곳의 인원들도 많이 있었지만, 만독연에 모인 인원 대다수가 연구원들이었다.

그런데 상의도 없이 연구원들이 순식간에 나가 버리자 남겨진 인원들은 당황했다.

그 인원들이 허망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는 걸 본 팽구용은 재밌다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네놈 생각보다 영향력이 상당하구나!”

‘상당하기만 하겠습니까. 만독연에서만큼은 제가 끗발이 아주 그냥 죽여줍니다.’

원래 똥개도 제집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만독연주의 설득에 단박에 뛰쳐나간 연구원들.

다른 이들에게는 황당하게 보여도 나는 연구원들에게는 내 이름값이 어떤지 알고 있기에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허나, 원래 내 자랑은 내 입으로 하기 힘든 법.

내 자랑은 최대한 속으로 삼키며 겸손함을 보였다.

“연주님께서 제 얼굴에 금칠해 주셔서 그런 것이겠죠.”

“글쎄, 머리 굴리는 놈들 중, 제일 머리 굴리기를 좋아하는 놈들이 그러는 걸 보면 단순히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머리 굴리는 놈들 중, 제일 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놈들이라니.

역시 팽구용이라 그런지 연구원들을 참 참신하게 부르기도 한다.

“뭐, 사소한 건 넘어가고. 진짜 지원이 오긴 하는 거냐? 중간에 어디 들른 것도 아니잖느냐.”

어디 들른 것도 없이 하북에서 곧장 날듯이 왔는데, 지원이 오긴 하냐는 팽구용.

“옵니다.”

“그래, 네가 온다면 오겠지. 그럼 뭐 별문제 없겠구나.”

다소 의문스러운 눈치이긴 했으나, 단호하게 온다고 하자, 벽에 기대앉길 잠시.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안 올 때 걱정은 안 하십니까?”

“네가 머리 굴리는 놈들 중 제일 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놈들 중 제일 잘 굴리는 놈이잖냐. 내가 모르는 무슨 확신이 있겠지.”

“믿어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뭡니까, 그 이상하게 긴 미묘한 수식어는.”

“마음에 안 들면 하나 더 붙여줘?”

“필요 없습니다.”

“흐흐흐.”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린 팽구용은 지치긴 지쳤나 본지 품에서 천을 하나 꺼내 얼굴에 덮고는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인원들 전부 복귀했습니다!”

“집법원에서 온 이들도 도착했습니다! 싸울 수 있는 인원 몇을 제외하곤 전부 지하공동으로 보냈습니다!”

때마침 들려오는 연구원들의 보고.

보고 받은 만독연주는 지체할 것 없다는 듯이 곧장 명령을 내렸다.

“문을 닫아라.”

연구원들이 둘씩 붙어서 만독연의 문을 당기자, 굉음을 내기 시작하는 문.

-끼이이익.

평소에 닫을 일이 없던 만큼 연신 듣기 싫은 쇳소리를 냈다.

‘역시 적들은 안 오나.’

문을 닫는 와중에 못 닫게 막을 법도 하건만, 적들은 문 너머에서 정비할 뿐, 굳이 문을 닫는 걸 막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만독연이 당가의 주요시설인 만큼 문짝이 두껍고 강하긴 했으나,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금지로 향하는 문과 달리, 정문의 문은 한 시진 정도면 금방 뚫을 수 있다.

즉, 원하는 만큼 정비하고 편할 때 들이닥치면 된다는 소리.

오히려 안쪽 인원들이 문을 닫지 말자고 했던 만큼 문을 닫으면 유리해지기에 퇴각하는 것도 일부러 놔준 느낌이었다.

‘그게 패착일지도 모르고 그러네.’

-쿵.

별문제 없이 정문이 닫히자, 고요하기 짝에 없어지는 내부.

어둡지는 않았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안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말 괜찮을까?”

“천괴도 대협이 누워 계시는 걸 보면 뭔갈 아시는 것 같은데…….”

“하지만 지원이 대체 어디서 오는데? 빙궁에서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사람을 보냈다고 하기엔 말이 안 되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쪽에 붙은 장로만 셋이야. 그걸 뚫고 들어오는 건 무리야.”

“도대체 만독연주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지? 연구원들은 또 뭐고.”

저마다 속삭이듯 불안감을 내비치는 인원들.

작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게 여간 답답한지 째려보듯 나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흑룡대 3조장, 자풍대 부대주. 너희는 나중에 내가 소가주 자리 앉으면 예산 반의반으로 만들어주마. 집법원 집행부 1부장…… 얘는 오자마자 설명도 없이 문 닫은 거니까 3할 삭감 정도로 봐주자.’

상황을 알았든 몰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감히 구원자인 이 몸에게 불경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어떻게 복수해 줄지 다짐하고 있길 잠시.

-타닥.

갑자기 튀어 오르듯 일어나는 팽구용.

“온다.”

문 너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자, 곧장 경계하는 눈빛으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드디어 왔나 보네.’

일염이가 신화문을 보내준다고 한들, 약간 뒤에 떨어져서 왔던 만큼 시간이 걸렸을 터.

지금 이렇게 누구나 알 수 있게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뿌리고 다닐 사람은 신화문주…… 아니, 부문주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다들 긴장하는 사이.

나만은 마치 어제 주문한 택배를 받는 사람처럼 신나는 발걸음으로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곧장 들려오는 문 두들기는 소리.

-똑, 똑.

평범할 것 없는 문 두들기는 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까까지 전투가 일어났던 곳에서 들려왔다는 점에서 안의 인원들은 저마다 경계심을 높이며 싸울 준비를 했고, 그건 팽구용도 마찬가지였다.

-똑, 똑.

빨리 열어달라는 듯 재차 울리는 문 두들기는 소리.

한 손을 도 손잡이에 올린 팽구용이 어떻게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길래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주십시오.”

열어 달라는 말에 아까처럼 자진해서 문에 달라붙는 연구원들.

팽구용이 문이 열리는 중앙에 서 있는 걸 한 번 확인한 뒤 서로 합을 맞춰 문을 밀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아까와 같이 문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팽구용의 경계심이 극에 달했고, 그와 동시에 인원들 또한 경계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뚜벅, 뚜벅.

문이 열리자, 일부러 크게 발걸음을 내며 들어오는 흑의인.

그를 보자마자 당가의 인원들은 석상이라도 된 듯 입을 떡 벌린 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아, 아니…… 신화문이 어째서 여기에?”

“뭐? 신화문?!”

그는 다름 아닌 신화문주.

아니, 실상 천일염 대신 문주 행세를 해오던 부문주였기에.

“세상에나…….”

신화문은 대외적으로는 정보단체.

피도 눈물도 없는 돈에 미친 집단이지만, 절대로 돈 몇 푼에 매수당하지 않아 정확한 정보만을 주는 곳.

당연하게도 억만금을 준다고 한들 다른 가문의 일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 문파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다른 문도도 아니고, 신화문주가 몸소 발걸음을 옮겼으니…….

가히 사람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팽구용조차도 감탄에 가까운 놀람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어…… 뭔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만, 신화문이랑 연이 있었던 게냐?”

이 정도까지 상상도 못 했는지 대단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는 팽구용.

하지만 놀랄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저기!”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당지무가 깜짝 놀라 밖을 가리키자, 자연히 따라가는 사람들의 시선.

그 끝에 걸린 건…….

“이, 이미 정리되었어?!”

만독연을 압박하던 수십의 적들이 철 부딪히는 소리 하나 없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수십의 흑의인 발아래에서 말이다.

“대, 대체 어떻게?”

충격적인 광경을 봐서인지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인원들.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신화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들, 저 시체들도 결국 당가의 사람이었던 이들.

여태껏 만독연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었던 만큼 실력에 대해 잘 아는데, 그런 이들이 몇 합 겨뤄보지도 못하고 싸늘하게 누워 있었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뚜벅, 뚜벅.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천천히 다가온 부문주는 내 앞에 멈춰 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화문주 외 36명.”

부문주가 잠시 말을 멈추자, 총 30명의 신화문도들이 전원 부복했다.

그리고…….

“호위 대상을 확인.”

부문주가 고개를 숙이더니 마지막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호위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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