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4화 (114/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4화

“이랴!”

팽구용의 등에 업힌 채 장원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만독연으로 향하는 길.

위풍당당한 등장에 너나 구분할 것 없이 눈이 쏠렸고, 마치 못 볼 걸 본 사람들처럼 피아 구분 없이 입을 떡 벌리는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크게 외쳤다.

“이랴아아아!”

“조용히 좀 해라! 이놈아!”

힘차게 말(?)을 몰며 시선을 끌어대자, 발작하듯 뭐라 하는 팽구용.

그래도 이렇게 소리 지르는 의도를 알아서 떨어뜨릴 생각까지는 없었는지 몸을 흔들면서 이동하지는 않았다.

“팽 대협. 합의된 내용 아니었습니까?”

“내가 이목을 끌어도 된다고 했지, 언제 사람을 말 취급해도 좋다고 했느냐!”

사실 이렇게 이목을 끄는 건 잠시 소강상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나 혼자라면 몰라도 팽구용 위에 있다면 달려들지 못할 거란 계산에 하는 행동.

그러나 팽구용 말대로 굳이 말몰이를 할 필요는 없었기에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쩝…….”

“으익!”

갑자기 발을 헛디디는 팽구용.

재밌던 찰나에 막은 탓에 입맛을 다시자, 어지간히도 어이가 없었는지 발을 헛디뎌서 넘어갈 뻔했다.

“요즘 몸이 허하십니까? 하체가 부실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힘 빠진 상황인데 지치게 하지 마라!”

웃자고 농을 건네자, 주먹을 들어 올려 머리를 쥐어박는 팽구용.

이렇게 멀쩡해 보이긴 했으나, 실상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힘이 빠진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결계가 더럽게 단단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힘이 빠지지 않았을 터인데…….”

당가가 위험하단 말에 팽구용의 등에 타고, 이틀 만에 하북에서 사천까지 날듯이 건너왔다.

당연히 팽구용의 체력 소모가 염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

허나, 팽구용의 경지가 경지인 만큼 그것뿐만이었다면 팽구용이 이런 이야기까지 하진 않았을 거다.

힘들게 당가에 도착하자, 고요하기만 했던 당가.

당가가 위험할 거란 천일염의 말과 달리, 조용하기만 해서 괜히 팽구용을 붙잡은 거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당가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껴 곧장 정문으로 향하자, 웬 투명한 막 같은 게 당가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결계이길래 전력으로 후려쳐야 부서지냐고!”

팽구용과 당지천.

둘 다 진법이나 주술에는 연이 없었기에 팽구용은 주저 없이 자신의 도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웬걸.

팽구용이 천괴도라는 별호에 걸맞은 패도적인 공격을 했음에도 결계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한 팽구용이 여러 번 힘 조절하며 결계를 부수려 해봤지만, 결국 결계는 팽구용이 전력을 다했을 때 겨우 부서졌다.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일 겁니다. 단순히 내분이라고 하여도 결계까지 치지는 않을 거니 말입니다.”

팽구용이 발걸음을 멈추자, 어느샌가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적들.

저들 모두가 당가의 사람이었기에 처음에는 아군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관찰해 보니 만독연 소속 연구원들과 싸움을 벌이는 게 아무래도 내분인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숫자 좀 줄이고 가시죠.”

개개인의 수준 자체는 높지 않았으나 엄연히 나와 동 실력대의 인원이 보였다.

무엇보다 그 수만큼은 많았기에 자칫 잘못하면 눈 깜짝할 새 포위될 수 있었지만, 팽구용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단 생각에 팽구용에게 부탁하자, 팽구용은 손을 휘저었다.

“난 힘들어서 쉴 거다.”

“그냥 발만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너도 발 있잖냐. 네놈 발로 직접 움직여라.”

“섭섭한 소리 마시고, 움직여 주시죠.”

“아니…….”

팽구용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암기가 하나둘 날아오기 시작했고, 그러자 팽구용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에잉, 수가 많으니 몇 개 맞아도 원망하진 말아라!”

욕을 지껄이면서도 바삐 발을 놀리는 팽구용.

틱틱대긴 했어도 애초에 거절할 거였으면 오지도 않았을 게 분명했기에 열심히 발을 놀리는 모습이었다.

“삼 공자다! 삼 공자를 잡아라!”

팽구용이 도망치자, 어느샌가 달라붙는 적들.

암기가 하나둘 날아오던 아까와 달리, 이제는 마치 폭우처럼 암기가 쏟아져 내렸다.

“옘병! 더럽게 많구나!”

포위하듯 전방위에서 쏟아지는 암기들.

저마다의 투로로 빈틈없이 메우듯 달려들었으나, 맞아도 내 탓은 하지 말라던 팽구용은 말과 달리, 아주 완벽하게 암기를 피해내고 있었다.

“오…… 역시 팽 대협은 다르시군요.”

“감탄할 시간에 암기 하나라도 더 던져라!”

“옙.”

뒤에서 넋 놓고 구경하고 있자, 다그치는 팽구용.

안 그래도 숫자도 많은데 만약 상대한테 추혼비접 같은 게 날아온다면 팽구용도 힘들게 분명했기에 나는 초장부터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바로 니티놀 암기를 말이다.

‘아직 제대로 던져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원래 최고의 수련은 실전인 법 아니겠는가.

망설일 것 없이 손에 냉기를 피워 올려 표창을 단도로 변형해 가장 가까운 적에게 던졌다.

“크윽!”

그러자, 터져 나오는 비명.

단도의 투로는 직선이기에 정면에 있던 적이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허나, 암기는 그사이 표창으로 돌아와 그 오른편에 있던 적의 목에 틀어박혔다.

“일단 한 놈!”

이어서 약간 울퉁불퉁한 쇠구슬을 뒤로 던지자, 아까 투로가 변하는 걸 봤던 적은 이번엔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쇠침 여러 개를 뭉쳐서 던져놓은 것이었기에 고작 쇠침 몇 개를 쳐내는 데 그친 적은 그대로 쇠침을 얻어맞았다.

“일타쌍피 좋구요!”

역시 그렇게 얻길 바랐던 니티놀 암기였던 만큼 성능 하나만큼은 참으로 끝내줬다.

‘이 정도면 전부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당가 사람들이 암기를 쉽게 피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암기들이 일정한 투로를 가지고 있어서다.

고수가 아닌 이상에야 투로를 틀 수 없으니 던져지는 암기를 보고 투로를 예상해 피하는 거다.

그런데 형상기억합금 암기는 투로 자체가 변해 버리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다.

“암기가 변한다! 모두 주의해라!”

허나, 적들 역시 당가의 사람.

곧장 암기의 투로가 변함을 알아차리고 대응했다.

‘그렇다면…….’

품에서 비수를 꺼내 왼쪽으로 던지자, 변할 걸 예상하고 피하는 적.

하지만 이번엔 단순한 비수를 던진 것이었기에 왼쪽의 인원 어깨의 비수가 틀어박혔다.

“캬! 이 맛이지!”

자고로, 니티놀 암기는 평범한 암기랑 섞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

솔직히 일반적인 투로와 변하는 투로 모두 대응하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력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면 모를까, 어중간한 실력 차로는 2개.

아니, 어쩌면 3개 이상의 투로를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히 그건 누구나가 알다시피 굉장히 어려웠다.

“자! 이번 암기는 변할까요? 안 변할까요?”

“주둥이 놀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던지라니까!”

시끄럽게 주둥이를 놀리자, 그 시간에 암기 하나라도 더 던지라는 팽구용.

확실히 지금 니티놀 암기를 처음 써봐서 신나긴 했다.

당가의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한 만큼 팽구용의 의견을 수용해 독과 암기를 쉴 새 없이 뿌려댔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소독차가 된 것 같네.’

빠른 속도로 하얀 독무를 뿌리고 다니면 아이들이 몰려오는 기이한 자동차.

옛날엔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을 희석해서 뿌렸으니 독을 뿌린다는 점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소독차가 된 느낌에 기분이 오묘했지만, 그것도 잠시.

“삼 공자님! 이쪽입니다!”

어느샌가 만독연에 다다랐기에 가진 독을 다 털어내듯 던져 버리고, 만독연 안으로 들어섰다.

“휴, 이제야 만독연이네.”

기나긴 과정 끝에 겨우 도착한 만독연.

그 안에 들어서자,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듯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삼 공자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하나같이 몰골이 안 좋은 게 과장 좀 보태면 개방도라 해도 믿을 만한 상황.

그간 치렀던 전투 때문에 다들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이거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심각하다, 심각하다.

속으로 그런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보는 당지무는 방방 뛰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아시고 천괴도 대협을 모셔오신 겁니까! 안 그래도 당가를 이상한 결계가 둘러싸고 있어서 외부에 도움 요청도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저 결계를 한 번 부숴보겠다고 희생한 인원만 몇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아까 났던 굉음도 결계를 부술 때 난 소리였습니까?”

“역시 천괴도 대협!”

초롱초롱한 눈으로 팽구용을 바라보는 인원들.

원래 은원이 확실한 당가인 만큼 절대 쉬이 도움을 요청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주저 없이 팽구용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걸 보면 상황이 안 좋아도 어지간히도 안 좋은 듯했다.

“연주님. 대체 제가 없던 사이 당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 공자님 그게…….”

한결 나아졌던 안색을 다시 굳히며 설명을 이어나가는 만독연주.

그 내용을 자세히 들으니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예? 이상한 주머니에서 독과 암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독을 제독하지 않고 주술로 정화한다고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그걸 듣자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이거 완전 판타지의 그거 아닌가? 만약 적들이 그걸 가지고 있다면…… 아니, 그래도 주술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어.’

하지만, 무협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고,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기에 불안감은 털어낼 수 있었다.

“예, 그래도 다행히 오래 버틴 만큼 상대도 물자가 많이 떨어졌는지 암기를 다시 주워다 쓰는 실정입니다.”

“그럼 쟁쟁한 인물이 없던 이유도 다른 곳을 습격하러 가서입니까?”

“그렇습니다. 첫 이틀간은 만독연을 향한 공세가 심했는데, 어떻게든 버텨내니 저쪽에서 먼저 인원을 빼 다른 곳 먼저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한숨 돌릴 수 있긴 했지만, 안 그래도 독의 소모량이 워낙 많아서 걱정되던 참이었는데…….”

만독연주는 팽구용을 보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천괴도 대협이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천괴도 대협이 도와주신다면 지금이라도 가주님을 도와…….”

“유감스럽지만 팽 대협께서는 하북에서부터 저를 업고 오시고, 당가를 둘러싼 결계를 부수느라 지치신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나서시기엔 어려울 겁니다.”

만독연주가 희망적인 말을 하길래 단번에 잘랐다.

수준 낮은 이들이라면 모를까.

저런 결계를 설치하고, 당기룡을 막고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 있는 곳에 준비 없이 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럼 당장은 방법은 없는 거군요…….”

팽구용을 당장 전력으로 활용할 수 없다고 하자, 다시 시무룩해진 만독연주.

허나, 나는 그런 만독연주에게 다른 희망을 불어 넣어줬다.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팽 대협께서 당가를 둘러싼 결계를 부숴주셨다고 했습니다.”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만독연주.

굳이 팽구용이 가주전을 도우러 가지 않아도 이미 결계를 부순 것만으로 당가에 큰 도움을 줬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연주님. 지금부터 만독연에 있는 모든 인원을 불러들이고, 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대신 되묻는 당지무.

하지만 나는 마치 예언가라도 된 듯 하늘 위로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

“그럼 당가는 구원받을 겁니다.”

“……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