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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3화 (113/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3화

며칠 전, 당가 내부에서 시작된 당지독의 반란.

그동안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동시다발적으로 각 조직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자네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것인가!”

“따라야 할 분을 따르는 것일 뿐. 그 외의 이유가 필요하겠나?”

어제까지 가족이자, 친우이자, 동료였던 이들을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당지독의 세력들.

감정이 있는 인간인 만큼 손속에 사정을 둘 법도 하건만, 이상하리만큼 잔인한 손속으로 자신들의 가족을, 친우를, 동료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원망해도 좋네. 허나, 모실 분을 착각한 자네의 잘못이 크다는 건 알아두게나.”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당지독의 세력이 아닌 이상에야, 다들 미쳤나 보구나 생각했고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뿐.

“뭔지 몰라도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구나.”

냉철하기 짝에 없는 당가의 사람들인 만큼 상황 파악을 마치자마자 곧장 반격에 나섰다.

“순순히 당해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암기가 맞부딪히고 독과 독이 얽히며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

당지독의 세력이 많다고 한들, 당가의 모든 곳을 장악할 순 없었기에 전투가 불리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

뭔가를 소리 없이 외치자, 한순간에 사라지는 독들.

“아니?!”

본디 독이란 제독하기 위해선 다른 독을 써야 하는데, 그러한 낌새도 없이 말 한마디에 제독이 됐다.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리는 게냐!”

사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동시에 한순간에 뒤집힌 상황.

그것만으로도 반란 세력을 진압하는 데 문제가 생겼는데, 심지어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슬슬 독이 떨어졌을 터다! 이젠 항복하거라!”

한참을 이어진 전투.

당연히 가진 암기와 독이 다 떨어졌을 때가 됐기에 항복을 종용했다.

“누구 마음대로 독이 없다는 겐가?”

그런데 독이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넘쳐 나듯 독을 뿌려대는 게 아닌가?

다른 무공도 있다고 하나, 대개 독과 암기를 극성으로 익힌 이들이 대다수였다.

당연히 독과 암기를 잃게 되니 전투력이 급락했고,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밀리기 일쑤였다.

“당가는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가…….”

유불리 가릴 것 없이 점점 집어삼켜지는 당가의 곳곳.

허나,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피해받지 않고,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연주님! 흑룡대가 복귀했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만독연이었다.

“보고해라.”

집무실에 앉은 채 바삐 움직이고 있는 만독연주.

그러면서도 한 귀를 열 채로 흑룡대원들의 보고를 들었다.

“집법원 함락! 집법원 전력의 반 이상이 손실된 걸 확인했습니다!”

“집법원주의 생사는?”

“집법원주님을 모시고 인원들이 오고 있으나, 생사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도착하는 대로 곧장 지하 공동으로 보내라.”

“알겠습니다!”

“원로원은 적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답니다! 세 시진 안으로 지원 오겠다는 원로원장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세 시진. 세 시진만 버티면 원로님들이 오신다고 인원들에게 전부 알리고, 원로님들이 사용하실 극독들을 준비해 놔라.”

“알겠습니다!”

“정찰을 나갔던 흑룡대가 모두 복귀했습니다! 2개 조는 2장로와 마주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몇 조, 몇 조지?”

“4조, 5조입니다.”

“둘 다 가주전과 가까운 곳인 걸 보면 아직 가주님은 건재하신가 보구나.”

원로원도, 가주전도 아직 멀쩡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만독연주.

하지만 짧은 안도도 잠시.

작금의 상황을 돌이켜 보니 다시 한숨만 나왔다.

‘아무리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한들, 이 정도 규모일지는 상상도 못 했거늘…….’

당지독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가주와 만독연주.

이런저런 준비를 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당가 내부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 했다.

‘끔찍하구나.’

이미 당가 내부는 화를 입을 대로 입은 상황.

지금 당장 일이 끝난다고 해도 당가는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를 입는 것인데, 더 끔찍한 사실은 아직 일이 잠잠해지긴커녕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만독연만큼은 지켜내서 다행이다.’

그래도 당가의 근간은 독.

독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만독연 만큼은 피해가 없다시피 했기에 최악은 면했다.

‘삼 공자님이 계셔서 참으로 다행이야.’

다른 곳은 몰라도 만독연만큼은 삼 공자.

당지천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다수가 당지천의 세력이었기에 반란 세력을 쉽게 몰아낼 수 있었다.

거기다…….

“연주님! 서문 수비 인원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습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막아라. 만독연이 뚫리면 끝이다.”

당지독이 원하는 건 당가의 탈취.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당가의 상징이자, 금지가 존재하는 만독연을 필히 얻어야 했기에 만독연만큼은 절대 사수해야 했다.

“하지만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녹주석으로 독무를 만들고 잠시 휴식을 취해라. 사정이 안 좋은 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번엔 꽤 오래 버틸 거다. 그럼 아까 말했듯이 원로님들께서 오실 거니 어떻게든 지켜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지천이 수급해 온 수많은 녹주석.

이것들 덕분에 만독연이 지금껏 큰 피해 없이 농성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과장 좀 보태서 삼 공자가 없었으면 만독연은 이미 무너져도 한참에 무너졌을 거다.

왜냐면 적들은 독의 소모 없이 독을 제독했기에.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독을 너무 쉽게 제독하고 있어. 삼 공자님이 쌓아놓으신 녹주석이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죽었겠지.’

무슨 사이한 주술을 쓰는지 독으로 독을 제독하는 게 아닌, 무언가를 읊어 제독을 해내는 적들.

다행히 단점은 없는 것이 아닌지라, 독성이 강하고 양이 많을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기에 전방위적으로 녹주석을 활용해 농성하자, 상대가 쉬이 밀고 들어오지 못했다.

‘녹주석 수급량을 속여서 몇몇 연구원들을 제외하고는 내성을 쌓지 못하게 만든 것이 천만다행이군.’

물론, 내성이 있든 없든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장로급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허나, 가주전을 공격하기 위해 모두 몰려간 터라, 아직은 안전했다.

그러니 부디 당기룡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원로들이 도착하길 바라던 찰나.

-쾅!!!

무슨 벽력탄이라도 때려 박은 듯 지천에 울려 퍼질 정도로 강한 폭음이 만독연을 강타했다.

“어쩌면 우리도 끝일지도 모르겠군…….”

소리를 듣자마자 절로 나오는 속마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탓에 부정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 냉정하게 생각해도 당가를 도와주러 올 인원보다는 당지독을 도움으로 이득을 얻을 이들이 많았기에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삼 공자님이라도 계셨다면 몰랐을 텐데…….”

문득, 그런 말을 내뱉은 만독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도 가주님을 닮아가는 걸까.”

아직 벽조차 넘지 못하고 빙궁에 실려 간 당지천이다.

그런데 당지천이 와서 해결해 주길 바라다니…….

차라리 적토마를 탄 은거기인이 나타나 당가를 도와준다는 게 더 현실성 있었다.

“스승님! 스승님!”

그때 다급히 뛰어 들어오는 당지무.

안색이 경악에 물든 걸 보면 필시 좋지 못한 소식임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더냐?”

“삼 공자님께서!”

“삼 공자님이 왜?!”

“삼 공자님께서 천괴도 대협을 타고 오십니다!”

“뭐야?!”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아니, 천괴도 대협을 모셔 온 것도 아니고 타고 온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어이가 없어진 만독연주가 대충 손에 집히는 걸 아무거나 당지무에게 던지자, 당지무는 억울하다는 듯 만독연주를 바라봤다.

“지, 진짜입니다! 내려오셔서 보십시오!”

억울하다는 듯 도망치는 당지무.

만독연주는 이 다급한 상황에도 개소리를 지껄이는 제자 놈에게 화가 나 한 대 쥐어박을 심산으로 뒤따라 내려갔다.

“저기 보십시오!”

그런데 웬걸, 당지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한쪽을 가리키는 게 아니던가?

만독연주는 이놈이 대체 무슨 헛것을 보고 이러나 싶어 안력을 돋워 밖을 내다봤고, 이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왜냐면…….

“저게…… 뭐냐……?”

만독연 저 멀리서 적토마를 탄 은거기인이…….

아니, 당지무의 말대로 팽구용 등에 탄 당지천이 만독연으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이랴!”

그것도 힘찬 말(?) 모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 * *

팽구용이 당지천에 등에 업힌 채로 이틀 만에 당가로 복귀한 시각.

신화문주…… 아니, 신화문주 대행을 하던 부문주는 사천 성도에서 천일염을 맞이했다.

“왔어? 먼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선물은 사 왔지? 에이, 빙궁까지 갔는데 아무것도 안 사 온 건 아니지?”

부문주가 말을 조잘조잘 건넴에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천일염.

부문주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는 게 확실함에도 부문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기 할 말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어코 당가에 문제가 생겼어. 더 큰 문제는 이상한 주술로 막았는지 투명한 막에 막혀서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다는 점이야. 근데…….”

당가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무는 부문주.

“…….”

그가 입을 다문 이유는 다름 아닌.

천일염이 짐 속에서 신화문주의 상징인 백암중검과 파혈무갑을 꺼내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십구호.”

파혈무갑을 착용한 천일염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자, 대뜸 무릎부터 꿇는 부문주.

이어서 부문주는 눈가에서 웃음을 지우고 답했다.

“하명하십시오.”

“호위 대상이 위험 지대로 들어갔다.”

“호위 대상 말입니까?”

“그래.”

호위 대상이란 말에 잠시 굳어 있는 부문주.

신화문이 어떤 문파인가.

오직 한 사람을 호위하기 위해 개파조사가 설립한 문파로, 신화문의 모든 활동은 특정한 호위 대상을 위해 이뤄지는 일이었다.

……오직 단 한 명만 존재하는 호위 대상을 위해서 말이다.

“호위 대상은 사천당가의 당지천 공자가 맞습니까?”

“맞다.”

믿기지 않는다는 부문주가 재차 물어보자, 천일염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부문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잠시 멍하니 땅을 바라보다, 이내 품속에서 천일염의 파혈무갑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생긴 장갑을 착용하며 물었다.

“위험 지대 내부의 일로 문도 전원 소집 후 대기 중입니다. 가용한 인원을 전부 추립니까?”

“수호대 전부. 이외엔 각 조장급 이상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하다 말고, 잠시 뜸을 들이는 천일염.

다음 말을 내뱉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듯했지만, 고민은 사천에 오는 동안 충분히 했기에 곧장 다음 말을 이었다.

“암혈대 전원.”

“……암혈대까지 말입니까?”

천일염이 되물을 필요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자, 부문주는 우려를 표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은 이해하나, 암혈대를 보이는 것은 너무 과한 판단 아닙니까?”

암혈대.

고작 다섯 명이지만, 신화문주와 부문주를 제외한다면 가히 최고의 전력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

호위 대상의 눈앞에서 호위하는 수호대와 달리, 위험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일을 하는 만큼 강하고 위험한 무공을 쓰는 이들.

그렇기에 신화문에서 유일하게 마공만을 다루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암혈대를 보인다니 부문주는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오는 길에 특급 살수만 20명을 마주쳤다.”

“예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군요. 소집이 완료되는 대로 이동하겠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부문주는 곧장 납득하고 피리를 하나 꺼내 불었다.

-삐, 삐, 삐.

의미 모를 낮은음이 몇 번 반복되자, 어디선가 하나둘 나타나는 흑풍의를 입은 인원들.

“문주님을 뵙습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천일염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길 잠시.

일반적인 문도들과 달리 약간 핏빛이 감도는 흑풍의를 입은 인원 다섯이 천일염 앞에 나타나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암혈대 오인. 전원 소집 완료했습니다.”

“가자.”

암혈대까지 도열을 완료한 걸 확인한 천일염이 나지막한 한마디와 함께 사라지듯 당가로 발길을 옮겼다.

“존명.”

그리고 그 뒤에는 수십의 그림자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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