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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0화 (11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0화

“예? 300냥이요?”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귀를 긁적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소궁주를 보니 다행히 귀는 멀쩡한 듯했다.

그래서 어이가 없었다.

“에이, 겨우 300냥은 용납 못 하죠. 더 주세요.”

“근래 빙빙육각사의 내단이 많이 들어온 터라, 원래라면 값을 낮게 부르는 게 맞지만, 이것도 올려 부른 거다. 허나, 네가 원한다면 갑절인 금 600냥을 주마.”

“에이, 금 600냥은 별로다. 더 주세요.”

“흠…… 그렇다면 금 1,000냥은 어떻겠느냐? 당가라면 몰라도 빙궁에서는 금 1,000냥을 쓰는 건 심각한 출혈이다.”

뭐?

금 1,000냥이 심각한 출혈?

‘아니, 내가 당가에서 용돈으로 타 먹은 돈이 얼만데 그런 구라를 친단 말이야?’

애초에 뭐든 들어준다고 한 게 소궁주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내단이라도 큰돈을 내어줄 줄 알았는데, 겨우 용돈으로 주는 돈밖에 안 줘?

‘이거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더니, 역시 공짜 좋아하는 사람은 말만 이렇게 하고, 날로 먹을 생각을 하는구나.’

소궁주의 대답이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걸 보면 뻔하지 않은가.

분명 처음에 금 300냥을 부른 것도 흥정할 걸 알기에 금 1,000냥을 목표로 잡고 부른 것일 거다.

즉, 내게 미안한 정도가 내단을 포함해 그 정도라는 소리.

“당숙께서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이야기하시네요. 그럼 저도 합리적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원래라면 봐주려고 했지만, 이런 취급을 받고도 참으면 내가 호구고, 등신이었다.

그렇기에 소궁주의 차를 가져와 탈륨과 속밀독봉의 독밀을 들이붓고는 다시금 소궁주 앞에 내려놨다.

“드십시오.”

“이, 이걸?”

아주 대놓고 독을 탔기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되묻는 빙고.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 버린 나는 냉정하게 답했다.

“분명 뭐든 하시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위험한 독은커녕, 극독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물건이니 안심하고 음독해 주시면 됩니다.”

“대체 이게 무슨 약이길래?”

“드셔보면 압니다.”

미리 말해주면 안 먹으려고 발광할 게 뻔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자,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걸 알았는지 단숨에 들이켜는 소궁주.

-꿀꺽, 꿀꺽.

자기 머리에 닥칠 미래는 상상도 못 한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차를 삼킬 뿐이었다.

-탁.

마시기로 한 이상 망설이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는지 소궁주는 단숨에 차를 비우고는 재차 독에 대해 물어왔다.

“됐지? 그래서 이게 뭔데?”

“당숙,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독의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다른 소리만 하자, 인상을 찌푸리던 소궁주.

이내 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설마, 이건…….”

소궁주가 뒤늦게라도 독기를 태워보려 정신을 집중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

속밀독봉의 독을 넣은 게 주효했는지 머리카락이 중력에 이끌려 몇 가닥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 이건 당숙께서 예상하신 대로 탈모가 생기는 독약입니다.”

“아, 안 돼!”

소궁주가 어떻게든 막으려고 머리를 부여잡자, 그에 따라 우수수 떨어지는 고운 머리카락들.

나는 그 머리카락 몇 개를 집어 들어 보여주며 소궁주를 칭찬하듯 말해줬다.

“당숙에겐 대머리가 어울리네요.”

“마, 말도 안 된다! 그런 독이 있을 리가 없잖느냐!”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는 소궁주.

평소와 같이 비단결같이 곱고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들이 자신의 손을 반겨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허나, 독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 법.

“아아…….”

-쿵.

윤기가 흘러 저항 없이 쓰다듬어지는 고운 머리카락이 아닌, 그보다 더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그냥 저항이 없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자, 도무지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이런 잔악무도한…….”

-쿵.

그리고 왠지 모르게 옆에서 보던 빙궁주 또한 같이 쓰러졌다.

* * *

당지천이 소궁주에게 복수를 한 다음 날.

천일염과 함께 빙궁을 떠나려 정문에 도착하자, 오직 빙설린 혼자만 배웅을 나왔다.

“나온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미안하구나. 영감은 치매지, 일절이는 기력이 쇠해서 못 일어나고 있고, 그리고 동생 놈은…….”

“이해해요. 머리가 벗겨진 게 그렇게까지 충격 먹을 일인 줄 몰랐거든요.”

머리가 벗겨지자마자, 뒷목을 잡고 쓰러진 빙고.

이어서 빙궁주마저 그걸 보고 쓰러지자, 당지천은 생각보다 크나큰 복수를 한 것 같아 아주 흡족했다.

그런데 큰 부작용이 있었으니…….

‘내가 무슨 탈모빔을 쏘는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시선만으로 머리를 벗기냐고.’

그건 바로 당지천이 빙궁에서 하루아침 사이에 손만 닿아도 머리를 벗겨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버렸다는 점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린데, 오늘은 정문에 올 때까지 사람 코빼기도 보지 못한 걸 보면 빙궁에선 좀 예민한 문제인가 보지 뭐.’

하지만, 어차피 당지천은 복수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빙궁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오늘 뭐 맡기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참, 내 정신 좀 봐.”

빙설린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데 급급하느라 정작 중요한 걸 까먹은 걸 민망해하며 뒤에 놔두었던 작은 나무통을 가져왔다.

“당 사위에게 전할 편지다. 중요한 내용이니 열어보지 말고, 꼭 좀 전달해 주렴.”

“예, 책임지고 가져다 드릴게요.”

“그래, 갈 길도 먼데 오래 잡고 있어서 미안하다. 부디 조심히 돌아가거라.”

“네, 다음에도 꼭 찾아뵐게요.”

빙설린에게 공손히 인사한 당지천이 천일염과 함께 떠나자, 빙설린은 그 뒤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다음에도 꼭. 둘이 오너라.”

* * *

당지천이 빙궁을 떠난 지 무려 일주일째.

강행군의 강행군을 거듭하며 남하하는 동안 뭔 일도 있을 법하건만, 당지천이 복귀하는 길은 순탄하기 짝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천일염이 안전을 생각해서 일부러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경로로 당지천을 안내했다.

그러니 위험할 게 뭐 있겠는가.

사람 흔적은커녕, 그 흔한 역참 하나 보이지 않았기에 당지천은 그냥 주구장창 경신법을 펼치며 훈련한 게 전부였다.

“이제 곧 있으면 하북에 들어서는 만큼 사람 좀 만날 때가 된 거 같은데, 안 그러냐 일염아?”

“…….”

당지천이 동의를 구함에도 묵묵히 앞에서 나아가기만 하는 천일염.

빙궁을 나왔던 시점만 해도 어느 정도 당지천의 말을 받아주는 편이었다.

허나, 가면 갈수록 말수가 없어지는 천일염.

원래부터 무표정이었지만, 평소보다도 훨씬 감정이 없는 듯한 얼굴이었고, 무엇보다 이젠 당지천의 물음이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면 제대로 대꾸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쓰읍, 또 이러네. 너 자꾸 그러면 퇴직금 안 준다?”

하지만 당지천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천일염에게 농을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걸 듣던 천일염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스릉.

난데없이 검을 꺼내 들었다.

“에헤이, 알았어. 퇴직금은 안 건드릴 테니까, 검은 도로 집어넣고 우리 평화롭게 이야기하자.”

천일염이 갑자기 검을 뽑자, 화들짝 놀란 당지천이 천일염의 앞을 막아서려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천일염은 그런 당지천을 뒤로 밀치며 말했다.

“뒤로 물러나시죠. 적입니다.”

“뭐?”

당지천이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모습을 드러내는 암영복을 입은 스무 명의 살수.

다들 하나같이 기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당지천은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대, 대체 언제?”

분명 눈에 보이는 데 기감을 집중하지 않으면 흐릿하게 보이는 이들.

지역에서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강자들이 무려 스물이나 있는 모습에 당지천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특급 살수들이라 당연한 겁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갑급 살수들이라면 모를까, 고수들을 사냥하는 데 도가 튼 특급 살수들이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도 당지천보다 오래됐고, 경험 또한 당지천보다 훨씬 많으니, 이제 막 절정의 경지에 오른 당지천의 기감을 속이는 건 숨 쉬듯 쉬운 일이었다.

“근데 왜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원래 슥삭 하고 가지 않아?”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닌, 무언가 목적이 있으니 그러는 걸 겁니다.”

천일염이 답하자, 아니나 다를까.

살수 중의 한 명이 앞으로 나서더니 천일염에게 물었다.

“천점불패 천일염 맞나?”

명백히 천일염을 알고 온 상황.

천일염은 고작 당지천 하나 잡자고, 특급 살수가 20명이나 왔을 리는 생각했기에 경계를 심히 끌어 올리며 되물었다.

“목표는 나인가?”

“맞나 보군. 우리 목표는 당지천뿐이다.”

허나, 천일염의 물음을 부정한 살수는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 하나를 천일염 앞에 던졌다.

“어차피 네 수준에선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겠지. 그러니 당지천을 놓고 가라.”

“!!!”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놀라는 둘.

당지천은 안 그래도 약소한 전력에 지금 당장 살수들이 달려들어도 가볍게 이길 것만 같은 상황임에도 살수들이 천일염을 회유하는 걸 보고 놀랐고.

천일염은 20명이나 되는 특급 살수들이 고작 당지천 하나 잡기 위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가를 노리던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건가? 그렇기에 날 노리고?’

가히 당지천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있는 법.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당지천은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 살아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찾았다!’

빠른 속도로 전력을 비교하며 가능한 수를 계산한 결과.

조금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틸 방법이 보였다.

‘다만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일염이가 위험한데……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보내주자.’

원래라면 둘이 있는 게 낫겠지만, 어차피 둘 다 대응할 수 없는 상황.

혼자 있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당지천은 천일염을 살리기 위해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일염아, 이거 받아.”

“이게 뭡니까?”

당지천이 대뜸 내단을 팔고 받은 전표를 내밀자, 의외의 눈으로 쳐다보는 천일염.

“퇴직금.”

“그 의미로 물은 게 아니라는 건 공자님도 아시잖습니까.”

“…….”

천일염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당지천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계획에는 천일염이 방해된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일염아, 알잖아. 나는 뭐든지 해낼 방법이 있는 거. 너만 없으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성도에 먼저 가 있어. 아, 참고로 퇴직금을 제외한 목숨값은 반반으로 나누는 거다? 내 몫 먹고 튀지 마라? 알았지?”

이어서 천일염의 손에 전표를 쥐여준 당지천은 얼른 가라는 듯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천일염이 가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다시금 돌아서서 살수들을 보는 당지천.

그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천일염은 고민에 빠졌다.

당지천을 지켜주겠다고.

당가까진 책임지고 몸 성히 돌려 보내주겠다고 약조했다.

헌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본 실력을 내비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여기서 본 실력을 보이면 20명의 특급 살수에게서도 당지천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었다.

이전에 한 약속들도 전부 지킬 수 있었다.

그만둔다고 말했긴 했으나, 아직 당지천의 호위인 만큼 그게 맞고, 당연한 일.

사실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알겠습니다.”

고심하던 천일염은 끝내.

당지천을 남겨둔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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