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07화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LeidenFrost Effect).
어떤 액체가 끓는점보다 훨씬 뜨거운 물체와 접촉할 경우 액체가 끓으면서 증기로 이루어진 단열층이 만들어지는 현상.
흔히 제철소에서 1,000℃가 넘는 쇳물에 손을 넣어도 잠시간은 안전한 이유가 이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 덕이었다.
‘지금 내가 안전한 이유도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 덕이지. 뭐, 엄연히 따지자면 역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 덕이지만 말이야.’
내가 지금 물을 뿌리는 이유.
그건 바로 이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솔직히 숨을 들이마셔서 냉기가 나올 때부터 의심하긴 했지만, 진짜일 줄이야.’
일전에도 언급했던 끓는점이 극히 낮은 액체질소와 산소.
이 둘의 공통점은 공기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
그렇기에 나는 빙빙이가 숨을 들이마셔서 냉기를 뿜어낸다고 할 때부터 이 두 개를 힘껏 퍼뜨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촤아악!
다시금 물을 뿌리자, 몰려오다가 말고 증발하듯 퍼져 약해지는 냉기.
이는 내 예상대로 빙빙이가 내뿜는 게 액체질소와 액체산소를 흩뿌리는 거라는 걸 의미했다.
끓는점이 –196℃와 –183℃인 액체질소와 액체산소가 아니고서야 0℃가 넘는 뜨거운(?) 물에 닿아 증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증기로 변한다고 안 차가운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
어차피 숨을 데도 없던 상황.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빙빙이에게 달려들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예상이 적중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샤샤사아아아아!
회심의 공격이 안 통하는 건 물론.
아예 냉기를 뚫고 전진하자,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숨을 뱉는 빙빙이.
‘뱀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봤자지. 애초에 젖을 안 먹는 종인데 끌어낼 힘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애쓴다고 해서 과학 법칙이 변할 리가 있겠는가.
그저 한기가 강해질 뿐, 냉기는 물로 만든 벽을 넘지 못하고 틀어막혔다.
……물론, 아예 영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드럽게 춥네.’
나름 추위에 내성이 강해졌다고 생각하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추위를 느끼게 한단 말인가.
아까보다 양이 많아진 탓에 물을 이용해 절연층을 만든다고 해도 몸에 닿는 냉기가 많았고, 그 탓에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부분이 많아졌다.
‘빨리 처리해야겠어.’
지금은 기를 운용하며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계속 노출되면 움직임이 둔해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맘 같아선 아까와 같이 권강을 맺어 예절을 주입해 주고 싶었지만, 기를 운용하느라 동시에 하기는 어려운 상황.
머리를 굴려 다른 방안을 모색해 보자, 곧장 좋은 수가 하나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까 신체 대부분도 얼음인 것 같던데, 그러면 쉽잖아?’
얼음의 경도는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0℃의 얼음은 모스 굳기계 1.5정도로 단단하기는커녕 약하기 짝에 없지만, -40℃만 되어도 모스 굳기계가 7로 웬만한 광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단단해지긴 했다.
……뭐, 엄연히 따지면 얼음도 광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빙빙이를 보면 석영은커녕, 금강석에 비견될 정도로 단단해 보였는데, 얼음의 약점을 떠올리니 그렇게 썩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얼음은 인장강도가 낮으니 때려 부술 게 아니라 잡아 뜯어야겠어.’
인장강도.
물질의 세기를 나타내는 힘으로, 물질을 절단되게끔 끌어당겼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나타내는 정도다.
그런데 얼음은 이 인장강도가 다른 힘들에 비해 훨씬 낮았다.
즉, 때려 부술 게 아니라 찢어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소리.
“간다!”
물주머니에 든 물을 한순간에 털어버리며 빙빙이에게로 돌격했다.
그러고는 단숨에 머리의 뿔을 잡아챈 뒤…….
“으랏챠차아아아!”
힘찬 기합과 함께 그대로 뽑아서 날려 버렸다.
-쨍!
저 멀리 바닥에 떨어지자 깨져 버리는 뿔.
뽑기 전에는 분명 단단하기 짝에 없었는데 매가리 없이 부서지는 걸 보면 몸에서 떨어지면 냉기를 잃는 그런 구조인 듯했다.
-쉬이이익! 샤아아아!
내가 고생한 노력을 알아주는 걸까.
빙빙이가 매우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입에서 방언을 쏟아냈다.
“내가 하나 더 뽑아줄 테니까 가만있어!”
사실 살면서 뿔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내가 예전에 내성 발톱이 생겨봐서 아는데 몸에 가시 같은 게 박혀 있으면 진짜 아프고 불편했다.
자기 몸에 비하면 손톱의 1할도 안 되는 크기라고 해도 가시는 가시.
고작 그런 게 박혀 있었다고 큰 고통을 느꼈어야 했는데, 빙빙이는 그런 걸 머리에 6개나 달고 다녔으니 많이 힘들었을 거다.
“자, 두 개째!”
-쉬이이익! 쉬이이익!
그렇기에 내가 손수 뽑아주려고 하자, 제발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빙빙이.
“원래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야! 나도 그랬고!”
허나, 언제나 치료는 고통을 동반하는 법이기에 말을 마침과 동시에 두 번째 뿔을 뽑아냈다.
-샤아아아아아!
-쿵! 쿵! 쿵! 쿵!
가시가 뽑혀 나간 시원함에 상하좌우 가릴 것 없이 동굴을 때려 박는 빙빙이.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간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뿔이 떨어져 나간 게 여간 감탄스러워 인생에 절반을 손해 본 게 억울하다는 것일 거다.
‘뭐, 아님 말고.’
아니면 어쩌겠는가.
그렇게 될 때까지 다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추가 수술 들어간다! 읏차!”
곧장 다른 뿔에 달라붙어 힘차게 뿔을 빼버리자, 다시금 동굴 안에 뱀의 행복에 찬 비명이 가득했다.
-샤아아아…….
뿔을 하나씩 뽑아갈 때마다 행복하다는 듯 몸부림치던 빙빙이.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결국 체력이 다했는지 미약한 신음을 내며 쓰러졌다.
-쿵!
빙빙이의 거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동굴 안을 메우는 굉음.
빙빙이는 완전히 쓰러진 듯 주먹으로 때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흠…….”
아까 언급했듯이 독물학을 익히다 보면 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빙빙이의 상태를 보고 확신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었다.
‘죽은 척이네.’
바로 빙빙이가 죽은 척을 하는 중이라는 점.
왜, 옛말에 뱀을 죽이면 머리를 완전히 부숴서 묻으라는 말이 있잖는가.
뱀은 신진대사가 느려서 머리가 잘려도 꽤 오래 살 수 있는데, 영특하기 짝에 없어서 죽은 척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축 늘어진 정도 죽었다고 판단한다?
이건 ‘나 잡아줍소’라고 하는 거랑 다를 바 없었다.
“해치웠나.”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아예 죽은 사람도 살리는 필생의 문장을 꺼내며 뒤를 돌아섰다.
-스스스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덮쳐오는 빙빙이.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날카롭기 짝에 없는 기세가 잘 훈련된 암살자를 보는 듯 튀어 오르는 게 다른 이들이라면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이었겠지만…….
“다 알고 있었어. 임마!”
내겐 해당 사항 없는 일이었다.
“흡!”
이번에야말로 일격에 보낸다는 생각으로 권에 강기를 두른 채 빙빙이의 콧구멍 근처를 있는 힘껏 가격했다.
-쩡!
-퍽!
얼음 깨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북 터지는 소리.
안쪽에 가죽이 없던 아닌 건지 아예 가죽까지 터져 나간 듯했다.
-쉬이익!
이제는 진짜 아픈지 울부짖는 빙빙이.
‘뭐야, 피트 기관이 있었어?’
원래 뱀의 약점 피트 기관이 콧구멍 주변에 있긴 했다.
하지만 아까 전 성문과 달리 그건 감각기관이었기에 영물인 빙빙이에게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피트 기관이 존재하다니…….
‘아싸, 거기만 패야지.’
-쉬쉬쉭.
집요하게 피트 기관만 노리자, 빙빙이는 제발 좀 살려달라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도망쳤다.
“미안하다. 네 원수는 빙고를 대머리로 만들어주는 걸로 꼭 갚을게.”
하지만 나는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다짐하며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쿵!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빙빙이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유언조차 못 남긴 채 쓰러졌다.
“후…….”
이제는 완전히 정리된 듯한 상황.
‘아직!’
하지만 방심하긴 이르다.
아까 말했듯이 뱀은 교활한 생물.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었기에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빙빙이에게 다가가 연격을 퍼부었다.
“아직!”
이렇게 마음껏 주먹을 휘둘러본 적이 언제였던가.
할아버지께 배운 현무권의 묘리를 있는 대로 사용해 빙빙이를 짓이기면서 아예 머리가 걸레짝이 될 때까지 빙빙이를 후려쳤다.
“휴우. 잘 썼다.”
그렇게 연습을 얼마나 했을까.
빙빙이의 머리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숨이 아예 끊어진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게 답이었어.”
예전엔 수련할 때만 해도 온갖 근심 걱정이 휘몰아치듯 몰려왔는데, 지금은 반대로 권법을 펼치면 펼치는 만큼 근심 걱정이 날아갔다.
“자, 그럼…….”
스트레스도 풀 만큼 풀었겠다.
이제는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품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단도를 하나 들고서 빙빙이에게 다가갔다.
“빙빙아, 내가 네 복수는 꼭 해줄게.”
이제는 싸늘하게 변해 버린 빙빙이.
아니, 뱀은 변온동물이니까 원래 싸늘했던가?
어쨌든, 죽어버린 빙빙의 몸을 가르기 위해 단검에 기를 불어넣은 뒤 조심스레 살을 갈랐다.
“일단 목표는 독샘부터.”
자고로 영물은 내단이라는 걸 가진 법.
세상의 모든 뱀이 독사는 아닌 만큼 모두 독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뭔가 얼굴 쪽에 냉기가 좔좔 흐르는 게 내단이 머리 쪽에 존재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오른쪽 볼을 열어봤다.
“오…….”
아니나 다를까.
독샘 대신 자리한 하얀 결정체.
십년빙정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주먹만 한 얼음이 말도 안 되게 큰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내단이 맞는 듯했다.
“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인가.
행여나 잃어버릴까 싶어 빠르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내단을 채취한 뒤 반대편의 내단도 챙겨서 품에 고이 보관했다.
“내단은 챙겼고, 나머지는…….”
내단을 채취하고 나니까 그제야 눈에 보이는 빙빙이의 상태.
뿔은 이미 진작에 다 뽑혀서 없었고, 비늘과 가죽은 내가 봐도 못 쓰겠다 싶을 정도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필요 없을 것 같네.”
나중에 채취할 때 생각해서 좀 손속에 사정을 둘걸…… 이라면서 후회해 봤자, 늦은 일.
어차피 내 주먹에 망가질 정도면 별 쓸모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폐광으로 돌아가자.”
빙빙이랑 놀아주느라 꽤 시간을 많이 소모했고, 큰 진동도 몇 번 있었다.
당연히 폐광에 영향이 갔을 거란 생각에 조심스레 동굴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어?”
폐광으로 가는 입구가 막혀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지나갈 틈이라도 있는지 바위 더미가 무너져 내려 앉은 곳을 자세히 둘러봤지만, 개구멍은커녕, 작은 쥐구멍만 한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인생 망했네…….”
뒷일을 좀 생각하면서 싸웠어야 했는데, 하필 어중간하게 상대하면 힘든 놈이 튀어 나와서 신경도 제대로 못 썼다.
“어떡하냐, 이거.”
그나마 이곳까지 무너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잘못하면 일염이가 와도 못 찾을 가능성이 생겼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
일염이가 사람들을 부르는 데 성공했는지 저 멀리서 뭔가 뚝딱뚝딱대는 소리가 들렸고, 이쪽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염아! 여기!”
일염이를 애타게 부르자,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내 눈앞에 바위가 조금씩 치워지며 애타게 찾던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공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