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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05화 (10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05화

통제 가능한 위험 요소도 미리 배제했겠다.

나름 폐광이 안전해졌으니 망설임 없이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추워서 그런가, 벌레가 하나도 없네.’

원래 내가 생각하던 폐광은 사방에 거미줄이 가득하고, 박쥐가 튀어나오며 쥐들이 기어 다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 설산 밑의 폐광은 추워서 그런지 사방에 얼음만 가득할 뿐, 뭔가 생명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벽면이 죄다 얼어 있는데 뭔가가 살면 그것도 그것대로 이상하긴 하겠네.’

바깥과 달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불투명한 얼음으로 도배되어 있는 벽면들.

확실히 땅 안쪽 깊은 곳이다 보니까, 조금씩 물이 맺힐 때마다 얼어서 얼음으로 도배된 게 아닌가 싶었다.

“공자님.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끝입니다.”

“그래?”

인간과 비슷한 고성능 네비게이션…… 아니, 길잡이의 안내를 받아 폐광의 끝에 도달하자, 보이는 기포가 차오른 듯 동글동글한 벽면들.

자세히 다가가서 확인해 보자, 내가 구하려고 했던 피치블렌드가 맞았다.

“오, 여기 있었구나. 귀여운 것들.”

“어떠십니까? 정말 쓸모 있지 않습니까? 돌아가실 때도 왔던 길 그대로, 쾌적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목표하던 폐광 끝에 당도하자, 다소 우쭐거리는 투로 말하는 길잡이.

내가 폐광을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려고 하자, 자기가 폐광을 들어와 본 적은 없어도 길잡이 교육을 받았기에 안내할 수 있다며 안내시켜 달라고 사정사정 부탁했다.

‘역시 안내받는 게 정답이었어.’

길잡이에겐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던 상황.

당연히 처음에는 함정인가 싶어서 거절하려 했는데, 계속해서 길잡이를 살펴본 결과.

뭔가를 숨기려고 하지, 내 뒤를 치려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피치블렌드만 채취하면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안내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폐광의 끝까지 막힘없이 단번에 올 수 있었다.

“그래, 쓸모 있긴 하네. 그래서? 풀어달라고?”

“아닙니다. 어차피 이것만 채취하고 나가신다고 하셨습니까. 조금 불편하기만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나가게 될 테니 참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채취 먼저 하시죠.”

팔과 다리가 묶여 있음에도 자신은 어떤 꼴로 있든 간에 상관없으니 빨리 좀 끝내달라는 길잡이.

역시나 나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폐광을 빨리 빠져나갔으면 하는 눈치인 게 폐광에 뭔가를 숨겨놓은 듯했다.

‘이걸 참견할까, 말까…….’

일단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상황.

사람을 해하는 일이라면 내가 망설임 없이 끼어들어 해결할 거였지만, 괜히 확인했더니 소궁주와 길잡이의 개인사가 튀어나온다면 미안한 일이 될 테니 경거망동하진 않았다.

‘만약 빙궁에 큰 피해가 가는 것이었다면 소궁주가 알아서 나서지 않았을까.’

거기다, 소궁주의 성품을 아직 잘 모르기에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 소궁주인 만큼 빙궁에 해가 되는 일이었으면 진작에 나서지 않았을까 싶었다.

‘큰일에 나를 이용하려 했다간, 뒷감당이 안 될 걸 아니까 말이지.’

난 빙궁의 가족이기도 한 동시에 객(客)이다.

당연히 소궁주나 되는 사람이 가족이자, 객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크게 망신을 당하게 될 거다.

아마 그걸 소궁주도 모르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럼 내 역할은 미끼인가?’

분명 소궁주는 빙빙육각사의 특징을 세세히 알려주면서 만약 보이면 십년빙정을 던지고 도망치라고 했다.

새끼가 아닌 이상에야 있으면 먹고 굳이 찾아올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십년빙정을 들고 주변에 다가간다면 이목을 끈다는 것 아닌가.

‘사방이 개활지인 설원에서야 멀리서 보고 피하겠지만, 폐광에서라면…….’

눈 마주치는 순간 이미 영역권일 거다.

‘어쩌면 길잡이가 폐광에 빙빙육각사를 숨겨놓고 기르고 있는데, 찾아내진 못해서 나를 통해 알아보려는 건가?’

증거는 물론, 뭣도 없이 급조했지만, 굉장히 그럴듯한 가설.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문득 드는 생각.

‘잠깐. 막가파로 가기로 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거지?’

막가파로 가겠다고 맹세한 지 반나절도 안 지났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머리부터 팽팽 돌리고 있다니…….

‘일단 피치블렌드부터 캐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판단은 나중에 마음에 드는 쪽으로 하고 일단 피치블렌드부터 채취하기로 했다.

-깡!

비수를 거꾸로 들고 내려치자, 단번에 깨져 나오는 돌덩이.

피치블렌드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을 들어 손 위에 올려놓자, 길잡이가 콩콩 뛰어서 재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다.

“독이라고 하셨는데 피독수도 없이 막 들어도 되는 겁니까?”

“어, 몸 안에 직접 들어가는 것만 아니면 문제없어.”

안전하다고 했음에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보는 길잡이.

내 말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냥 미지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했다.

“진짜 안전해.”

동귀어진용 폴로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들, 이것도 결국 우라늄 광석.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자연에서 나는 우라늄 광석치고 위험한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가 모두 방사선이라는 단어로 퉁칠 뿐, 방사선도 종류가 많았고, 피치블렌드가 뿜는 건 대부분 알파선이었기에.

‘물론, 평범한 사람한테는 위험하겠지만, 무인들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지.’

알파선.

방사능 물질이 알파 붕괴를 할 때 방출되는 방사선.

알파 입자는 전하와 무거운 질량 탓에 어떤 물질에도 쉽게 흡수되고, 그 탓에 공기 중에서도 수 ㎝밖에 못 나아가기에 인체 내로 들어온 게 아니라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물론, 들어온다면 이야기가 아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손에 올리든 얼굴에 비비든 간에 먹지만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

“예, 예…….”

그러나 길잡이는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지 멀리 떨어졌기에 그냥 무시하고 작업을 했다.

“채취할 만큼 채취했다. 돌아가자.”

묵묵히 작업하자 금방 묵직해진 주머니.

빙궁에서 가져갈 짐이 원체 많기도 하고, 어차피 용도가 용도이다 보니까 많이도 필요 없었기에 정말 금방 채울 수 있었다.

“이제 나가면 됩니까?”

“어.”

나간다는 소리에 얼굴이 환해지는 길잡이.

드디어 해방이라는 생각에 그러는 건지, 아니면 폐광의 비밀을 지켰다는 생각에 그러는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 어쨌든 행복해 보였다.

“짐은 제가 들겠습니다.”

피치블렌드가 가득한 주머니를 받아 들고 앞으로 나가는 일염이.

그와 동시에 야명주로 앞을 환하게 밝히고 먼저 앞서 나가자, 길잡이가 콩콩 뛰어가 그 뒤를 따랐다.

“제가 안내를…….”

행여나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기라도 할까, 길잡이가 일염이한테 가려고 하던 그때.

-쿠구구구궁.

갑자기 굉음이 나더니 큰 진동과 먼지와 함께.

“일염아!”

폐광의 천장이 주저앉았다.

쿵! 쿵!

쿠구궁!

쿵! 쿵!

항상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어찌 좀 순탄하게 끝난다고 했더니만, 나가려고 하니 천장이 무너져 버렸다.

“으아아악!”

콩콩 뛰면서 일염이를 따라가던 길잡이는 갑자기 천장이 주저앉자, 있는 힘껏 뒤로 뛰었다.

그와 동시에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들.

“허억, 허억…….”

그 속에서 길잡이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다행히 깔리지는 않은 듯했다.

“콜록, 콜록, 일염아?”

먼지를 뒤로 날려 보내고, 일염이가 있던 자리를 보자, 보이는 건 온통 바위뿐.

“일염아?”

일염이가 고작 이 정도 바위들에 당할 실력은 아니기에 다시금 일염이를 부르자, 바위 너머에서 일염이가 전음을 보내왔다.

-괜찮으십니까?

“어! 난 괜찮아!”

-쿠구구구궁.

괜찮다고 바위 너머로 소리치자마자 다시금 진동을 해대는 폐광.

눈에는 직접 보이지 않지만, 뭔가가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대답은 전음으로 하시죠.

“전음? 나 아직 전음 쓸 줄 모르는데?”

아직 깨달음을 얻어 경지가 오른 지 하루밖에 안 됐다.

그런데 배우지도 않은 전음을 내가 어떻게 구사하겠는가.

‘아무리 절정 고수가 되면 개나 소나 쓰는 기본기라고 해도 배워야 쓰지.’

다행히 그런 상황을 일염이도 알았을까.

내게 전음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전음을 쓰는 방법은 쉽습니다. 상대방 귀를 향해 말을 던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상대방 귀에?”

일염이의 말에 바위로 막힌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바위틈 사이로 아주 적게 보이는 일염이의 모습.

생각보다 바위가 많이 쏟아졌는지 일염이와 나의 거리는 1장(3.33m)은 확실히 넘어 보였다.

“한번 해볼게.”

안력을 돋운 채로 일염이의 귀를 보며 말을 던진다고 생각하자, 뭔가 목소리는 안 나는데도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예, 그겁니다.

“캬.”

첫 시도임에도 단번에 전음이 성공하자 절로 터지는 감탄사.

나도 이제 남들 모르게 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무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뛸 뜻이 기쁘면서도 ‘이렇게 쉬우니 기본기 취급받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전음을 쓰시게 된 건 축하드립니다만, 축하하고 있기엔 지금 상황이 안 좋습니다.

-상황이 안 좋다니? 바위는 그냥 치우면 되는 거 아니야?

-원래라면 그렇겠으나, 지금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뭐? 위험하다고?

바위를 치우는 게 위험하다.

이는 곧 바위를 치우려 했다간 폐광과 함께 매몰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와 같았기에 가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씁, 그럼 어떡해?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잠시 대기하시죠.

‘사람을 불러온다라…….’

평범하게 좋은 생각이긴 했으나, 하필이면 폐광이 있는 곳이 설산.

올라오면서 봤던 광경으로는 내려가기도, 다시 올라오기도 영 여의치 않은 곳이었다.

-괜찮겠어?

-올라오는 것까지는 힘들 것 같지만, 내려가는 정도는 가능할 듯합니다. 어차피 빙궁에 도착하면 새로운 길잡이를 구하면 되기에 딱히 상관없는 문제기도 합니다.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 내려가는 건 가능하다는 일염이.

다른 사람이라면 만류했겠지만, 일전에도 길 찾는 능력이 뛰어났던 일염이였던 만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알겠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녀와.

-그럼 몸조심하고 계십시오.

말을 마치고는 곧장 폐광을 떠나가는 일염이.

요즘 부쩍 말수가 줄었다가, 늘었다가 장난을 치다가, 말다가 해도 역시 안전에 관련된 것만큼은 끔찍이 여겼다.

“뭘 조심하긴 조심해…… 어차피 여기가 끝인데.”

사고가 난 지점은 폐광의 끝.

막다른 길이라 뭔가가 튀어나올 염려도 없고 바위 사이로 환풍구도 나 있어서 질식할 걱정도 없었다.

‘뭐, 사실 조심해야 할 게 아예 없진 않지.’

뭣도 없고, 딱히 위험한 것도 없는 상황.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만약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러다간…….”

공황 상태에 빠진 듯 쓰러진 채로 뭐라고 중얼거리는 길잡이.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 건지, 아니면 진짜 공황에 빠진 건지 한눈에 봐도 이상해 보였는데, 솔직히 별걱정은 안 됐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선 내가 유리하지.’

상대는 손발이 묶인 채로 누워 있는 상황.

이상한 징후를 보인다면 내가 먼저 손을 쓸 수 있었고, 밀폐된 공간인 만큼 독을 10할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려 나는 절정고수니까 말이야.’

내겐 아직 누구라도 이길 것만 같은.

사그라들지 않은 자신감이 넘쳐흘렀기에.

“하필이면…… 제발 여기만 오지 마…… 오면 안 돼…….”

손발이 묶인 채로 뭔가 안된다며 중얼거리는 길잡이.

아까와 완전히 다른 피폐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저걸 보고 있자니 없던 자신감도 차오를 판이었다.

‘애초에 오긴 뭐가 온다고 그래.’

아까 예상대로라면 페광에 빙빙육각수를 숨겨놨을 건데, 무슨 뱀이 지렁이도 아니고, 땅굴을 파서 오겠는가.

여기를 빠져나간다면 모를까, 당연히 여기선 볼 일이 없지 않겠는가.

“야, 궁상 그만 떨고…….”

그렇기에 길잡이를 일으켜 세워, 정신부터 차리게 하려던 순간.

갑자기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

“뭐, 뭐야?!”

당황할 틈도 없이 품에서 암기부터 준비하고 있자, 길잡이가 엎드려 있던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까드득, 까드득.

마치 단단한 얼음을 치아 힘으로 씹어먹는 듯한 섬뜩한 소리.

‘이빨 부서지겠다.’

속으로 농담을 던지면서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소리가 나는 곳을 예의주시하길 잠시.

-쩌적.

얼음으로 된 벽면이 갈라지더니 웬 얼음 덩어리로 만든 듯한 뱀이 튀어나왔고…….

-쉬이이이익.

녀석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옘병.”

그것도…….

“드럽게 크네.”

머리 크기만 해도 내 키만 한 거대한 얼음 뱀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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