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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00화 (10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00화

“흐억…….”

배에 몰려오는 통증과 함께 공중에 붕 뜨는 몸.

내가 무슨 새도 아닌데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나서부터 땅에 발을 붙이고 있던 시간보다 공중에 날고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빌어먹을.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야!’

하도 맞은 탓에 성한 곳이 없는 몸.

어디 하나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일염이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이미 왼팔은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오른쪽 발목이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거 치료는 가능하려나?’

상태를 자세히 살펴야 알 수 있음에도 그럴 수 없는 상황.

조금 시간 여유라도 줬으면 좋겠는데, 할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일어나기만 하면 곧장 달려들어 권을 날렸다.

‘하다못해 다른 독이라도 있었으면 시간이라도 벌겠는데…….’

혼합독은 위험성 탓에 분리해서 들고 다녔고, 리신은 만들지도 못한 채 왔기에 산화베릴륨이 막힌 이상 쓸 만한 독이 하나도 없었다.

‘폴로늄이 있었으면 승산이…… 애초에 연구실에서도 정제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그것도 말이 안 되나.’

사실 폴로늄이 있다고 해도 통할지도 미지수고, 통한다고 해도 중독시킬 방법이 없었다.

왜냐면, 폴로늄은 일반인 피부에도 막혀서 신체 내부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전한 독이었기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하나도 안 통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멀쩡해도 그림자를 겨우 밟을 실력 차다.

그런데 이미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내줬으니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거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

“헉!”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할아버지가 어느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어지는 주먹질.

-퍽!

이번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탓에 얼굴을 정면으로 내줬다.

‘아, 옘병…….’

다시 한번 공중에 붕 뜨는 몸.

최소한 얼굴만은 안 맞게 방어를 했었는데, 코뼈가 부러졌는지 날아가는 동안 피가 공중에 흩날렸다.

-타닥.

“끄으으으윽.”

아까와 같이 공중에서 몸을 돌려 착지했는데, 오른발이 돌아간 탓인지 저 밑에서부터 통증이 차올랐다.

하지만 고통도 잠시.

곧장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왼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는데…….

‘안 오네?’

이번엔 무슨 연유인지 할아버지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뜬금없이 질문을 던지셨다.

“독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게냐?”

뭐, 통해야지 쓰지.

지금 내 상태가 이런데 독무를 뿌렸다간 괜히 내가 당하는 수가 있기에 일부러 쓰지 않았다.

“더 쓸 독도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테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야기가 좀 되겠구나.”

할아버지는 이제야 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뜬금없이 가르침을 내리셨다.

“무공이 초식을 가지는 것은 묘리를 이해하기 위한 형이 필요해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형에 얽매인다면 그건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아니, 뭘 가르칠 거였으면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대체 왜 사람을 팰 대로 패고 나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하는 이야기조차도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로, 무협지에서 누누이 나오는 이야기였기에 나도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건 저도 압니다!”

“아니, 넌 모른다.”

안다고 답하자, 기수식을 취하는 할아버지.

‘현무권법?’

그것도 무려 이전의 이름 모를 권법이 아닌, 현무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현무권은 사방신 중 북쪽을 담당하는 현무를 숭상하며 만들어진 권법이다.”

이어서 할아버지는 천천히.

마치 세상이 전부 느려진 것처럼 천천히 현무권법을 펼쳤다.

“현무는 냉기와 맹독을 다루며 항상 온화하고 차분하며 침착했다.”

현무은정호(玄武誾靜湖).

현무는 온화하여 고요한 호수와도 같으니.

“또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힘을 가졌으며 많은 경험과 많은 지혜를 가졌다.”

혜생자회(慧生慈誨).

지혜와 삶과 사랑을 깨우치게끔 인도하였다.

“그렇기에 사신수들 중 최강으로 꼽히는 현명하고 강한 신이 바로 현무다.”

불구현무대노(不拘玄武大怒).

그럼에도 현무를 크게 노하게 만든다면.

“그런데 현무는 맹독으로 자신을 방어하더라도 냉기만큼은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냉기야말로 현무의 최강의 무기였으니 말이다.”

천번지복(天翻地覆).

하늘이 날아가고, 땅이 뒤집히리라.

“헌데, 너는 왜 그저 흉내만 내는 것이냐?”

* * *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하기 짝에 없던 주먹이 점차 느려지더니 내 코앞에서 멈췄다.

-펑.

갑자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돌 조각들.

“큭.”

주위를 뒤덮는 모래바람이 너무 강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충격적인 연무장의 상태가 보였다.

‘따, 땅이…….’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

반지름이 반보도 안 되는 이 작은 땅을 제외하고 내 주변의 땅이 전부 뒤집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이게 현무권법의 위력이 맞아? 할아버지가 그냥 강한 게 아니고?’

고수는 그저 주먹 한 방으로 태산을 무너뜨린다고 했던가.

할아버지가 진정한 고수라면 권법에 구애받지 않고 연무장을 날려 버릴 수 있겠단 생각에 이게 할아버지 실력인지, 아니면 현무권법의 진정한 위력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고민할 필요도 없지.’

할아버지께서 뭐라 했는가.

무공이란 묘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형(形)이 존재하는 것인데, 왜 너는 묘리를 이해하지 않고 흉내만 내냐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말인즉슨, 지금 내가 현무권법의 묘리를 이해하긴커녕, 그저 초식을 따라 하는 데 그쳤다는 의미였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도 현무권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의미였다.

‘순전히 기초를 다지기 위한 무공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강력한 면모가 있었다니…….’

아무리 삼류 무공을 익혀서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다고 하더라도 현무권법이 그럴 줄이야.

차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일단 다시 한번 해보자.’

문제를 파악했으니 해야 할 일은 하나.

그건 바로 문제를 바로잡는 것.

발밑에 공간은 별로 없었지만, 원래 현무권법은 제자리에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이니 상관없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기수식을 취하며 선언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발이 돌아간 상황이고, 왼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눈을 감고 현무권법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최선을 다해 1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반전하는 세계.

‘이건…… 심상인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느샌가 뱀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거북이가 잔잔한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게 보였다.

연이어 2초식을 펼치자, 호수 한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

지혜가 부족한 이는 물음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섰으며 죄를 뉘우치는 자들은 자비를 구하기 위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엔 공격.’

방어 태세를 갖추는 전반부 초식들과 달리, 연격을 퍼부어대는 3초식을 펼치자, 이번엔 저마다 무기를 꼬나쥔 채 현무에게 달려드는 악인들.

현무는 맹독을 뿜으면서 무서운 속도로 악인들을 쳐냄에도 다들 부상만 입을 뿐, 죽는 사람 하나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죄를 뉘우치지 않은 이들이 욕심내어 물음을 구하러 온 이들을 건드렸으니.

-기어이 경을 치는구나!

현무의 포효와 함께 호수는 얼어붙어 갈라졌고, 땅은 뒤집혀 무저갱으로 변했으며 하늘은 산산조각이 나 얼음 파편이 휘날렸다.

오직 악인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만 말이다.

“흡.”

거기까지 보고 모든 걸 쏟아붓듯이 천천히.

정제된 분노를 힘껏 담아 권을 내지르자, 흩뿌려지는 건 순풍에 가까운 힘없는 주먹.

“잘했다.”

허나, 그 권은 확실히 할아버지께 닿았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터져 나갔다.

* * *

당지천이 깨달음을 수습하기 위해 급히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자, 천고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성공했구나.”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온몸에 부상을 안겨준 탓에 오히려 자세는 이전보다 안 좋아졌다.

아니, 실상 제대로 된 권법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만큼 초라한 모습이었다.

“멋진 권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확실히 현무를 닮고자 하는 묘리가 담겨 있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현무권법이었다.

‘역시 독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감시켜 줬던 게 주효했던 거야.’

본디 뛰어난 이라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 재능까지 있진 않은 법.

미숙한 스승인 만큼 행여나 악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음에도 당지천은 훌륭히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맘은 편하지 않다만…….’

가부좌를 틀고 있는 당지천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쓰러웠다.

얼굴에서는 차마 지혈하지 못한 코피가 줄줄 새고 있었고, 왼팔에는 제대로 힘이 안 들어가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진 오른발은 가만히 있어서 티가 안 날 뿐,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못 쓰게 될 만큼 심각하게 뒤틀려 있었다.

‘할멈이 이 꼴을 봤으면 아마 난 죽었겠지.’

잠시 빙설린이 지금의 당지천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본 천고천은 등골이 오싹해져 몸을 부르르 떨고는 빨리 원상 복귀시켜서 증거인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천일염에게 손짓했다.

“빙궁 안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호법이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선심 써줘서 고맙다.”

천고천이 천일염을 보고 잠시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직접 개량한 천열운무보가 적힌 비급을 꺼내 전해줬다.

“이건 지천이가 깨어나면 건네주고…….”

이어서 품을 뒤적이던 천고천이 서책 하나를 더 꺼내더니 천일염의 손에 올려놨다.

“약소하지만 이건 네가 쓰거라.”

천고천이 비급을 건네줄 때 묵묵히 받기만 하던 천일염이 천고천이 내민 서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필요 없습니다.”

“왜?”

“장작을 들고 다니는 취미는 없습니다.”

“아니, 이 귀한 걸 보고 장작이라니? 무려 빙궁주가 집필한 물건이야.”

“장난은 거기까지 하시죠.”

“에잉,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쯧.”

천고천은 혀를 차면서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한 27가지 방법’이라 적힌 서책을 집어넣고는 품에서 다른 서책을 하나 꺼내 일염이에게 건네줬다.

“네 몫이다.”

“…….”

하지만 이번에도 천일염은 서책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쉽게 받지 않았다.

왜냐면 천고천이 무슨 생각으로 이걸 건네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괜찮은 겁니까?”

“뭐가?”

“저는 제자도 아니고, 얼마 안 가서…….”

“연이란 끊고 싶다고 해서 그리 쉽게 끊기는 게 아니다.”

천일염의 말을 단번에 자르고는 울적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천고천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잊고 싶다고 해서 쉽게 잊히는 건 더더욱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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