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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99화 (99/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99화

왜 강해져야 하냐고?

“독은 강합니다. 그 무엇도 무로 돌리는 게 가능한 만큼 그만한 힘이 없다면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위험한 독만 안 들고 다니면 충분히 통제 가능한 거 아니냐?”

“저만 쓴다면 그럴 겁니다. 허나, 독은 강한데도 그 어떤 무인보다 대량 살상에 능합니다. 그러니 악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보다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제가 힘을 가져야 합니다.”

무림에서 힘이 없다는 건 죄다.

애초에 만들면 안 되는 물건은 만들지 않겠지만, 이미 있는 물건들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목표를 세운 거다.

“그래서 빨리 깨달음을 얻어 벽을 넘고, 상승무학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아까부터 계속 심각한 표정이던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듣고 나자,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너의 사성이었구나.”

“사성? 그게 뭡니까?”

“알 거 없다.”

알 거 없으면 말하지나 말든가.

할아버지는 단번에 질문을 일축하고는 혼잣말을 몇 번 하더니 내게 물었다.

“지금 네가 쓸 수 있는 독들은 전부 다 들고 있느냐?”

“예, 그렇습니다만…… 그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후우.”

대답을 듣자, 한숨을 푹 쉬는 할아버지.

“난 네게 감정을 다스리는 법과 무공 지도를 통해 벽을 부술 실마리를 쥐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 너 또한 그렇다고 하였지. 그리하여 내키진 않지만 극약 처방을 하기로 하였다.”

“극약 처방 말입니까?”

“그래.”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듯, 다시금 한숨을 쉬는 할아버지.

그래도 하긴 하려는지 근엄한 얼굴로 돌아왔다.

“저번에 일절이에게 특이한 암기를 받았다고 들었다. 이름이 추혼비독파접이라고 했던가?”

“예. 작은 충격들은 무시하면서 큰 충격을 받으면 부서지며 가루를 뿌리는 추혼비접입니다.”

“어차피 지금 실력으론 못 다루는 물건일 테니 그건 일염이에게 맡기거라.”

갑자기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순순히 추혼비독파접이 담긴 주머니를 일염이에게 건네고 왔다.

그러자, 연무장 뒤로 물러나며 말하는 일염이.

“공자님. 최선을 다하시죠.”

“그게 무슨 소리야?”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칫하다간 어디 한군데 불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요즘 말수가 부쩍 줄긴 했어도 항상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뭔 영문 모를 말을 남기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래? 할아버지가 뭘 하실지 아는 건가?’

설마.

일염이가 뭔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손주를 불구로 만들겠는가.

요즘 부쩍 장난이 줄긴 했지만, 장난을 많이 치는 일염이니 이번에도 장난일 거다.

“준비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할아버지 앞에 마주 서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말하셨다.

“지금부터 할 일은 간단하다. 너는 나와 전력으로 비무를 한다.”

“대련은 어제도 했잖습니까?”

“어제완 다르다. 왜냐면 오늘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비무에 임할 것이니 말이다.”

“예?!”

아니, 수준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손속에 사정을 안 둔다는 말인가?

“스승님.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습니까!”

“갈!”

이건 좀 아니다 싶어 항의하자, 할아버지는 단번에 일축하고는 통보했다.

“분명 고결한 무공도,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조차도 한순간에 무로 돌리는 게 독이라고. 네가 네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손목에 예쁘게 매듭지어져 있는 붕대를 단번에 물어뜯으시더니 한순간 기도가 변했다.

“어디 한번 그 잘난 독으로 날 쓰러뜨려 보거라.”

* * *

천고천이 한순간에 거리를 좁히자,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는 당지천.

허나,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약조한 만큼 천고천은 자비 없이 다가가 그대로 당지천을 후려쳤다.

“큭…….”

급작스럽게 시작한 탓에 제대로 반항도 못 해보고 날아가는 당지천.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팔을 들어 주먹을 막은 것만큼은 천고천도 대단하게 생각했다.

‘짧은 시간에 판단해 팔을 내준 건 괜찮은 판단이었다. 허나, 팔 하나를 잃은 건 굉장히 뼈 아플 게다.’

-타닥.

근 2장 넘게 날아간 당지천이 공중에서 제비 돌듯 몸을 돌려 바닥에 착지했고, 연격을 대비해 곧장 뒤로 거리를 벌렸다.

“헉, 헉…….”

아까까지 수련한 탓에 얼마 안 움직였는데도 숨을 몰아쉬는 당지천.

주먹을 막은 왼팔은 축 늘어진 게 예상대로 못 쓰게 된 듯했고, 빠르게 흔들리는 두 눈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막무가내가 아닙니까!”

“말이 많구나.”

천고천이 다시 한번 당지천이 인식하지 못할 속도로 이동하며 주먹을 들어 올리자, 당지천은 막기는커녕 오히려 오른손으로 독을 뿌렸다.

‘호오, 이걸 노리고?’

당황한 탓에 차마 대처를 전혀 하지 못한 모습.

누구라도 기습을 당한다면 그럴 거고, 천고천 또한 당지천이 당황했다고 생각했으나 당지천은 그런 심리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독을 뿌려왔다.

‘어차피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 승부수를 띄울 거라면 몸이 성할 때 띄우는 게 제일이긴 하지. 머리를 정말 잘 썼어.’

방어를 도외시한 채 독을 뿌리는 깡도 깡이지만, 날아가던 그 짧은 순간에.

그것도 갑작스레 맞아서 날아가는 상황에 여기까지 계획을 세웠다.

이는 당지천이 머리를 잘 쓴 것도 있지만, 그 전에 머리 회전 속도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속도임을 의미했기에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딱히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큭…….”

다시금 천고천의 권에 맞고 저 멀리 날아가는 당지천.

팔을 맞은 아까와 달리, 명치를 맞은 탓인지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안타깝구나.’

사실 당지천이 처음부터 잘 대응했다고 하더라도.

아니, 아예 준비하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왜냐면 천고천이 제대로 마음먹은 이상 당지천을 찍어누르는 건 그야말로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일과 같았으니 말이다.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미안하구나.’

비록, 바로 어제 잠시 훈육이 땡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의에 어긋났을 때의 이야기.

천고천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손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선택을 한 건 빙설린한테 연신 맞아대면서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던, 빙궁주의 조언 때문이다.

-뭬야?! 이놈 육시랄 놈이 어쩌고 저째! 누구 맘대로 우리 손주를 패라 마라 하는 거야!

-악! 누님! 그게 아니라! 매, 매형! 지금 지천이의 상태는 매형도 잘 아시잖아요!

-알지. 독 만능주의.

-맞아요! 지천이는 너무 유능한 탓에 실패한 적이 없죠! 아마 제 딴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체감하진 못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서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직접 패서 알려주는 수밖에…… 악! 잠깐! 뼈 맞았다고! 뼈 맞았다고!

-이런 후레자식 놈을 봤나. 아주 그냥 못하는 말이 없지! 아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네 꼴을 보면 주화입마 말리시겠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게 맞다니까?! 지천이도 이걸 바랄 거야! 뭣하면 내가 할까?

-이 그지발싸개 같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아아아아아악!!! 머리카락! 머리카락만큼 안 돼!!!

무시무시한 빙설린의 손에 제일 소중한 것이 잡혔음에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던 빙궁주.

빙궁에 남은 신녀가 빙설린뿐인 만큼 항상 빙설린에게 져주던 빙궁주였는데, 이번만큼은 이게 맞는 방법이라고 주장을 절대 철회하지 않았다.

즉,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지천의 성장은 요원하단 소리.

그렇기에 천고천은 눈물을 머금고 직접 손을 쓰기로 한 거다.

‘그래도 깨달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내 친히 선물을 챙겨줄 테니 부디 섭섭해하지 말아다오.’

천고천이 연신 속으로 사과를 하며 당지천을 쳐다보고 있자, 땅바닥을 박차고 일어나는 당지천.

“켁, 켁…….”

아까 명치를 맞은 탓인지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힘겹게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암기를 꺼내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다행이구나.’

성난 눈으로 암기를 던지는 당지천의 모습과 달리,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채 날아오는 암기.

이는 당지천이 화가 났을지언정,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천고천은 안도했다.

‘확실히 빙혈을 다루게 된 덕에 쉽게 흥분하지는 않는구나.’

그간 당지천이 작은 일에도 쉽게 눈이 뒤집히던 이유.

그건 몸에 통제되지 않는 음기가 날뛰어서 그걸 잠재우기 위해 양기도 같이 날뛰었기 때문.

당연히 빙혈을 다루게 된 시점에서 원래 성격을 되찾는 것이다.

‘허나,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성을 통제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급격한 감정의 변화로 인해 한꺼번에 기를 끌어올리면 곧장 뒤집힐 게 분명했기에 오늘 아예 끝을 보는 게 맞았다.

-챙! 챙!

천고천이 날아오는 암기를 하나 잡아채 나머지 암기를 쳐내고는 그대로 당지천에게 던졌다.

“허윽…….”

그러자, 당지천은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나려타곤으로 암기를 피했다.

“어지간히도 힘에 부치나 보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나려타곤이라니.”

“…….”

말할 힘도 없는지 대꾸도 않는 당지천.

본디 나려타곤이란 무인의 수치로 여겨지는 만큼 뭐라 할 법도 하건만, 실리를 추구하는 당가의 사람인 만큼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단지, 하는 거라곤 산화베릴륨으로 만든 하얀 독무를 뿌리는 일이었다.

“이게 네 성명독이더냐?”

무려 절정 고수마저도 숨을 참지 않는 이상 중독될 수밖에 없는 산화베릴륨.

비록, 지붕이 없는 공간에서 사용했기에 위력 자체가 반감되긴 했지만, 그 무시무시한 위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실망이구나.”

허나, 천고천에게 통할 리가 만무.

단순히 이리저리 치워 버리는 게 아닌, 아예 삼매진화로 태워 버리며 천천히 당지천에게 다가갔다.

“겨우 이런 것을 믿고 의지했다니, 내가 볼 땐 넌 무공을 익힐 자격이 없다.”

통하지는 않아도 시간 벌이는 될 거란 생각과 달리, 산화베릴륨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타버리자 당지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니…….”

천고천은 그런 당지천의 얼굴을 보고 약간의 죄책감과 희열(?)을 같이 느꼈지만, 일이 모두 처음 의도했던 대로 흘러간다는 방증이었기에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예 단전 자체를 부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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