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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97화 (97/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97화

‘순순히 맞아주실 거라곤 기대도 안 했어.’

예상했던 결과.

평범한 눈덩이를 순순히 맞을 정도였다면 진작에 액체 형태의 독을 얼려서 집어 던졌으면 해결될 문제를 어렵게 풀려고 했던 거니 적어도 뻘짓은 안 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하나 더 갑니다.”

이번에도 예고한 뒤 할아버지께 돌로 만든 눈덩이를 아까완 달리 힘껏.

마치 쇠구슬 던지듯 강하게 던졌다.

그러자, 아까와 달리 받아내는 할아버지.

“음?”

돌멩이에서 냉기가 느껴졌어도 독기가 안 느껴져서 그런지 이전까지 암기를 받아내던 것처럼 돌멩이를 쥐는 모습을 보자마자 내 입가엔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냐면…….

‘됐다.’

처음 눈덩이를 던질 때 떠올랐던 방법.

그게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 * *

당지천의 돌로 만든 눈덩이를 받고 나서 충격에 빠진 천고천.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을 했지만, 속으로는 다소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왜냐면…….

‘처음으로 생긴 제자가 스승에게 돌을 던져?’

가히 천고천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

자고로 스승은 하늘.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뭐?

하늘 같은 스승님께 돌을 던져?

‘이걸 과연 참아야 하는가.’

물론, 당지천이 생각이 없어서 눈덩이에 돌을 담아 던진 건 아닐 거다.

필시 뭔가 이유가 있을 테지.

하지만…….

‘갈! 기분이 나쁘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독과 암기가 날아오는 건 용납할 수 있어도, 돌 섞인 눈덩이가 날아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사제 관계는 이런 게 아니란 말이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스승이 존재했고, 그중 돌을 던져도 마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제자를 부려먹으며 지내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의 대다수가 그런 경우가 많았다.

참으로 야만적인 이들.

무릇 스승이 제자의 아비라면, 반대로 제자도 스승의 아들인 법.

서로가 가족인 만큼 일방적인 폭력이 아닌, 따뜻한 사랑과 조금은 엄한 다그침으로 제자를 훈육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런 이들이 이해가 가는군.’

자신도 그들과 같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제자이자, 손주가 안하무인한 녀석인 건 스승으로서.

그리고 할아버지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꼭 필요한 일이여야 했을 거다.’

스승이 심기를 어지럽히는 제자는 맞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일이었다면 충분히 정상참작을 해줄 수 있었다.

‘하긴, 지천이가 생각 없는 아이도 아니고, 필요했겠지.’

뭔가가 생각이 있어서 했겠지.

경험이 부족한 건 지금 순간에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지천이 이러는 거도 성장 중이라 그런 거다 등.

천고천은 당지천이 돌을 던질 만한 합당한 이유를 생각해 화를 식히자,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설화 없이 당 사위 밑에서만 자라니 예의를 모르고 자랐구나. 이 꼴을 설화가 보면 필시 눈물을 흘릴 터, 내가 눈물을 머금고라도 엄하게 훈육해야겠구나.’

때론 매질도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어쭙잖은 생각이라면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천고천의 생각을 알기나 할까.

준비를 마친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당지천.

대련한 지 꽤 시간이 지났고 당지천이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봤기에 천고천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 공격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당지천에게 감각을 집중하던 순간, 날아오는 물체 하나.

‘이건 설마…….’

보이지는 않지만, 냉기가 가득 느껴지면서 아까와 비슷한 궤적으로 오는 동그란 물체.

‘돌? 아니, 쇠구슬이구나.’

아까보다 조금 묵직하고 더 한기가 느껴지는 게 잠시 돌이 아닌가 싶었지만, 코끝에서 느껴지는 쇠 냄새에 쇠구슬임을 깨닫고 좀 더 집중해서 확인했다.

‘독은 안 묻어 있나.’

독기가 일절 느껴지지 않는 쇠구슬.

독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 걸 보면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거라 판단한 천고천이 쇠구슬을 받아 땅바닥에 던져놓으려는 그때.

‘뭣?’

막을 새도 없이 안으로 파고드는 독기.

그걸 느낀 천고천은 어이없다는 듯한마디 내뱉었다.

“독?”

* * *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쇠구슬을 잡자마자,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는 할아버지.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서 전부 다 보이진 않았지만, 꽤 충격받으신 듯했다.

“휴.”

혹시나 이것도 안 통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노림수가 먹혀들어 갔다.

“허…….”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허탈한 한숨과 함께 눈을 가린 천을 푸는 할아버지.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는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쇠구슬을 먼저 쳐다봤다.

“어떻게 한 것이냐? 분명 별거 없는 쇠구슬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장치라도 되어 있느냐?”

“쇠구슬은 평범한 쇠구슬입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노림수가 통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쇠구슬에 할아버지가 알아차리지 못할 독을 발랐기 때문이다.

“쇠구슬 겉면에 독을 얕게 발라서 얼렸습니다. 바로 수은이라는 독을 말이죠.”

액체 금속인 수은.

모두가 알다시피 피부로 흡수되는 수은은 실온에서 액체인 만큼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녹는점이 낮다는 점.

‘솔직히 수은이 아니라 다른 거였으면 힘들었겠지.’

-38.8℃라는 극히 낮은 녹는점.

여기보다 아래로 떨어지면 수은이 금속으로 변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이 든 눈덩이를 받는 걸 보고 나니 인간의 체온으로 녹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내 음기로 수은을 쇠구슬 위에 얼려서 던진 거다.

“수은?”

“이겁니다.”

수은을 손에 조금 붓고 냉기를 뿜어내자, 액체에서 금속이 되는 걸 보고서 할아버지는 감탄을 터뜨리셨다.

“허어. 이 상태가 되니 독기가 완벽히 감춰지는구나.”

얼린 수은을 건네받자, 수은이 녹아서 사라지는 게 신기한 듯 계속 꾹꾹 눌러보던 할아버지.

이내 감탄하던 것과 달리 전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 인정하마. 소싯적 강호를 오래 돌아다녔고, 당 사위하고도 비무를 해봤지만, 이런 식으로 독을 활용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면…….”

“그래, 처음 약조했던 대로 개량한 천열운무보를 알려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왜인지 말하다 말고 뜸을 들이는 할아버지.

혹시 뭔가 추가로 보상을 준다고 할까 봐 귀를 기울이고 있자, 할아버지는 내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했다.

“이걸로 네가 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지 명확히 이해했다.”

“예?!”

아니, 오늘 분명 할아버지 상상 이상으로 잘한 것 같은데 왜 이유를 알았다는 거지?

설마…… 내가 너무 뛰어나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거나?

‘에이,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독 하나는 끝내주게 잘 다루는데 무재까지 있으면 가히 다른 이들에게 재앙 수준 아니겠는가.

저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나의 무재가 뛰어나진 않았기에 대체 어떤 연유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지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네가 너무 뛰어나서다.”

“예?!”

내가 뛰어나서?

정말로 나한테 무재까지 있던 거야?

“대체 어디가, 어떻게 뛰어나서 깨달음을 못 얻는 겁니까?!”

“그건 차차 알게 될 거다. 오늘은 고생 많았다. 내일 보자꾸나.”

“자, 잠깐…….”

채 잡을 새도 없이 자리를 피하는 할아버지.

이유를 알았으면 내게도 좀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지 혼자만 알고서 저 멀리 떠나 버리셨다.

* * *

빙궁주가 기거하는 궁전 안에 있는 집무실.

특별한 일거리가 많지 않은 빙궁인 만큼 업무를 보는 날보다 노는 날이 많아서 빙궁주는 집무실을 방치하다시피 했기에 집무실을 관리하는 시종은 하루 일과가 대부분 잠일 정도로 직무 유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뭔 바람이 불었는지 집무실에 나온 빙궁주.

빙궁주가 나올 거라 전혀 예상치 못한 시종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부랴부랴 뛰쳐나와 빙궁주를 맞이했지만, 빙궁주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주변의 시종은 죄다 물린 채 집무실에 틀어박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흠, 역시 한꺼번에 먹기는 힘들군.”

당지천이 알려준 액체질소 정제법에 꽂혀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왔기에.

“허어, 어찌 이런 인재가 빙궁이 아니라 당가에 갔는지…….”

중원에 다른 문파들은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양산형 영약.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개량을 거쳐 내공 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빙궁에도 하나 있었으면 했고, 역대 빙궁주들의 숙원이었으나 아무도 좋은 영약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그런데 대뜸 찾아온.

아니, 정확히는 실려 온 당지천이 뚝딱 영약을 만들어 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

자리에선 체통을 지키기 위해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이성을 잃었다면 뼈가 으스러져 하반신 마비가 올 때까지 껴안아줬을 거다.

“이건 궁주로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군.”

대장간을 빌려달라는 당돌한 말에 그걸로 퉁칠려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모른 척하고 꿀꺽하기엔 받은 게 너무 컸다.

왜냐면…….

‘괜히 함구하고 있다가 누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아니, 누님이 점을 보다가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빙설린에게 걸리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으으…….’

빙설린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상상해 보자, 몰려오는 공포감에 몸서리치기를 잠시.

빙궁주는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처남.”

“아니, 매형. 어쩐 일로 이리 급하게 들어오셨습니까?”

“지천이가…….”

“지천이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울적한 얼굴의 천고천이 들어와서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당지천의 이름을 언급하자, 놀라서 일어서는 빙궁주.

행여나 가서 따로 사례하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그리고 그러다가 변명도 못 하고 빙설린의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급하게 물어보자, 잠시 한숨을 쉰 천고천이 말했다.

“지천이가 너무 유능하다.”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은 빙궁주.

“지천이가 너무 유능하다.”

“…….”

다시 물었음에도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벙찐 얼굴이 되었다.

아니, 대뜸 남의 집무실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자기 손주가 유능하다니.

물론, 빙궁주도 거기에 동의하긴 했지만,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지천이가 좀 많이 유능하긴 하죠.”

“그래.”

“…….”

지천이가 유능한 점에 동의해 주자,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천고천.

빙궁주는 그걸 보고 대체 뭐가 하고 싶어서 자신을 찾아왔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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