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93화
가히 정신계 공격이라 부를 만한 빙궁 사람들의 수다.
그걸 하나하나 듣고 있으면 얼마 못 가서 이지를 상실할 것 같으니 대충 들으며 한 귀로 한 귀로 흘리기를 잠시.
“……자고로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비록 검수는 아니지만, 어렸던 나는 빙궁을 나와 설산으로 향했다. 당시 빙궁에는 100년 전쯤에 채굴이 끝난 은광이 하나 존재했는데, 사실상 폐광하고 다름없어서 그곳을 아는 사람이 적어서 남들 모르게 무공 수련하기엔 제격이었거든.”
문득,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어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렇게 폐광에서 홀로 수련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몸에 한계가 오는지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하고, 마른기침이 나며 매번 피가 나오더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단순히 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음식을 의심하기엔 알다시피 빙궁에선 음식이 썩는 일 따윈 없단다. 그래서 뭐가 문제일까 하고 동굴을 뒤져봤는데 무려 얼지 않은 샘이 있는 게 아니냐! 분명 내가 알기로…….”
은광이었던 폐광.
그리고 각혈.
다소 관련 없어 보이는 이 2가지를 연달아 듣게 되자, 머릿속에선 반사적으로 한 광물의 이름이 떠올랐다.
‘피치블렌드!’
학명 우라니나이트(Uraninite).
과거 은광에서 주로 발견되고 다른 명칭으로 역청우라늄석이라고 불리는 이 광석은 일전에 내가 빙궁에서 찾을 수 있다면 꼭 찾고 싶었던 광석이었다.
왜냐면…….
‘아무리 동귀어진용 독을 구하려 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이야.’
일전에 언급했던, 동귀어진용으로 제격인 물건이었기에.
피치블렌드는 방사성을 띤 광물로 우라늄 산화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점은 방사성 물질로 유명한 라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사선.
방사성 물질이 더 안정한 물질로 붕괴될 때 발생하는 입자선 혹은 전자기파를 이르는 말.
대부분 사람이 방사선을 떠올릴 때면 피폭을 먼저 떠올리기에 언제나 인체에 유해할 것 같지만, 실상 우리가 쓰는 전파나 적외선, 자외선도 엄연히 방사선이라 위험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런데도 방사선에 대해 들으면 피폭 먼저 떠올리는 이유가 있었다.
‘방사선은 치료가 안 되는 물건이니까 말이지.’
왜냐면 방사선 피폭은 치료가 불가능해서 자극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인체 조직을 구성하는 원자는 방사선이 통과하면 에너지를 흡수하여 전리현상이란 걸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인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물 분자 일부가 분해되어 산소 유리기(Free radical)가 생성되고 세포에 영향을 주는데, 여기서 방사선에 의한 세포 손상은 두 가지로 나뉘어 작동한다.
바로 직접작용과 간접작용으로 말이다.
직접작용은 방사선이 세포핵의 DNA 분자를 파괴하여 세포핵 자체에 손상을 주는 것이고, 간접작용은 방사선에 의해 물 분자가 전리되어 형성되는 물질(H2O2, HO2)의 화학적인 독성에 의해 이차적으로 세포핵이 손상시키는 것이다.
즉, 모든 부위를.
세포 단위로 직접 파괴하는 동시에.
체내의 물을 독성화까지 하는 데도.
해독제조차 없는.
그야말로 인간을 죽이기 최적화된 독이다.
물론, 내가 가진 야명주처럼 피폭량이 많지 않으면 충분히 회복 가능하고, 거리가 멀어지거나 방해물이 있으면 막히거나 약해지거나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약할 때의 이야기.
동귀어진용의 독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라듐이 있으면 폴로늄을 만들 수 있어.’
내가 피치블렌드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물질은 원소 번호 84번 폴로늄.
무려 섭취 시 반수치사량이 50ng(0.00000005g), 흡입 시 반수치사량이 10ng(0.00000001g)인 그야말로 정신 나간 독성을 가진 원소.
현대에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유명한 방사능 홍차에 들어가는 물질로, 현대적인 독성 물질로 각광 받던 독이다.
‘몸무게대로 나누면 피코그램(pg)으로 떨어질 정도로 말이 안 되게 강력한 독인데, 막상 피부에 닿는 거로 중독되지 않는 독이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지.’
구할 수만 있다면 아주 요긴하게 쓸 폴로늄.
물론, 내 기대완 달리 빙궁주가 말한 폐광에 없을 가능성이 훨씬 크긴 했다.
아무리 다른 광산에 비해 독성이 덜한 은광이라고 해도 광산은 광산.
온갖 분진이 휘날리고 피치블렌드가 아닌 다른 광물이 있어서 호흡기가 망가진 탓에 각혈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게 피치블렌드라면 아주 그냥 끝장나는 거지.’
그래도 여간 구하기 힘든 물건인 만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가보는 게 맞았기에 빙궁주에게 물었다.
“궁주님께서 수련하셨다는 폐광, 거기가 어딥니까?”
“어딘지 알고 싶으면 이야기를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라. 어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자다가도 영약이 떨어지는 법이다. 어쨌든 그래서…….”
간만에 입에 시동 걸어서 신났는지 쉴 틈도 없이 다시 이야기를 귀에 때려 박는 빙궁주.
그걸 듣고 있자니 아까와 같이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지만, 피치블렌드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빙궁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근 세 시진 가까이 귀 기울인 결과.
“……했던 기억이 떠오른 거다. 하아, 오랜만에 실컷 떠들었더니 기분이 참 좋구나.”
어린 빙궁주가 아무도 모르는 폐광에 수련하러 가서 얼음 동굴 안에서도 얼지 않은, 액체질소로 추정되는 걸 들이마시고 돌아와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만, 그래서 결국 폐광의 위치는 어디였습니까?”
“그거?”
폐광의 위치를 묻자, 씨익 웃는 빙궁주.
“나중에 사람을 통해 알려주마.”
“하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야기가 수련했던 시점을 넘어 빙궁으로 장소를 옮겼을 때 이미 짐작했지만, 진짜로 속은 걸 알게 되니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하하하하! 간만에 시원스레 수다도 떨었으니 이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꾸나. 네가 만들라고 했던 빙한…… 혹시 다른 이름이 있느냐?”
“우연찮게 찾은 거라 이름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빙한이라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빙한. 이거 꽤 쓸 만한 물건이구나.”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시금 빙한을 만든 빙궁주는 이번에는 마시는 게 아니라 빙한을 이용해 세수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마셔보니 음기가 가득한 게 자연에서 얻은 영약보단 덜하지만, 양산할 수 있다는 걸 보면 아주 훌륭하고 무엇보다 이것.”
자신의 얼굴에 아직 남아 있던 빙한을 가리킨 빙궁주는 빙한을 손으로 훑어서 보여줬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을 가지면서도 잠깐 사이에 마르더구나.”
끓는점이 낮기에 인체에 닿으면 금방 기화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빙한이 날아간 손을 연신 비벼댔다.
“굳이 영약 아니고도 쓸 데가 참 많을 것 같구나.”
“쓸 만하시다니 참 다행입니다.”
“암, 아주 훌륭해.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는 거냐?”
빙한이 매우 흡족했는지 빙궁주가 여태껏 신경도 안 썼던 물주머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게 빠를 겁니다.”
사실 뭐든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는가.
곧장 품에서 작은 바늘을 하나 꺼내 물주머니에 구멍을 냈다.
그러자 물주머니에서는 하얀 액체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하얀 액체들은 중력에 이끌려 빙한에 닿아 이내 동글동글하면서도 부드러운 얼음 알갱이로 변했다.
“호오.”
빙궁주는 그 광경이 사뭇 신기한 듯 세숫대야에 떨어진 알갱이를 한 움큼 떠서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건 먹는 거냐?”
“예, 저번에 아이들을 만나보니 빙과 먹는 걸 싫어했고, 무엇보다 빙과는 딱딱하기에 아이들 이빨에 안 좋을 거라 생각해서 만들어봤습니다.”
다른 음식이라면 몰라도, 실험실에 아이들이 왔을 때 제일 좋아했던 게 구슬 아이스크림 만들어보는 거였던 만큼 구슬 아이스크림은 많이 만들어봤다.
“그렇다면…….”
먹는 거라고 하자, 아이스크림을 곧장 입안에 털어 넣은 빙궁주는 입안에서 몇 번 오물오물거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예상대로 호평받는 구슬 아이스크림.
빙과보다 꽁꽁 얼었으면서도 자잘한 탓에 부드럽고 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빙궁주 마음에도 쏙 든 듯했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 판단해 빙궁주에게 물었다.
“그럼 대장간은 빌려주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가면서 잘 말해놓으마. 내일 가서 원하는 걸 말하면 해줄 거다.”
실컷 수다도 떨었고, 원하는 것도 얻었는지 편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빙궁주.
이만 가보려는지 손을 흔들고는 떠나기 전에 한마디 읊조렸다.
“역시 근심이 사라지니 좋은 물건들이 샘솟듯이 나오는구나. 이게 다 기적의 약 덕분이야.”
“예?”
“아니다. 그럼 이만 가보마.”
이전과 같이 또 이상한 말을 남기고 떠나는 빙궁주.
그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매우 신나 보였다.
* * *
빙궁주에게 붙들려 하루를 통째로 날린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대장간으로 뛰어가자, 삼촌은 환한 얼굴로 반겨줬고, 반대로 노인은 언짢은 얼굴로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뭔 수를 부린 게냐?”
곧장 온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아니면 곧장 온다는 말조차 허황된 말이라고 치부했는지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제가 금방 온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다 그럴 만한 방법이 있으니 했던 소리입니다.”
“고럼, 고럼. 우리 조카님이 허언을 하겠어?”
“아이고, 저놈의 주둥아리를 확 그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웃으며 답하는데 옆에서 삼촌이 한마디 거들자, 노인이 옆에 있던 망치를 들어 삼촌을 위협하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뭘 부탁하러 온 게냐? 궁주님이 어지간한 건 다 들어주라고 했지만, 터무니없는 부탁을 한다면 내가 직접 가서 따질 거니 선은 지키거라.”
“하지만 내 생각에 괜찮은 거면 내가 스승님께 직접 가서 따질 테니 편히 말해도 돼.”
노인이 으름장을 놓는데, 삼촌이 옆에서 다시금 한마디 거들자, 잠시 벙찐 얼굴로 삼촌을 보던 노인은 이내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삼촌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야이 개자식아! 나가! 나가! 나가!”
“아이고!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스승님이 또 미쳐 날뛰어요!”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냐! 들어와!”
“아이고! 나가랬다가, 들어오랬다가, 아주 그냥 노망이 나서…….”
“아오, 저놈의 후레자식! 신녀님이고 뭐고 간에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망치를 들고 대장간을 뛰쳐나가는 노인과 저 멀리 도망치는 삼촌.
“…….”
‘이게 대체 뭔 상황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