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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91화 (91/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91화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고함을 치는 빙궁주.

“어우씨, 깜짝이야…… 대체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미친놈아!”

반응할 틈도 없이 날듯이 옆에 앉는 동시에 도망가지 못하게 내 손을 붙잡더니 곧장 진맥했다.

“혈도를 얼린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단순히 점하는 거면 몰라도 얼리는 건 필연적으로 몸에 손상을…… 왜 멀쩡한 게냐?”

뭔가 화를 내다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내게 되묻는 빙궁주.

그러나 나는 빙궁주가 왜 화를 내는지조차 잘 몰랐기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멀쩡하니까요?”

“‘멀쩡하니까요’는 얼어 죽을. 정녕 설산 꼭대기에 파묻혀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애초에 왜 손상이 생긴다고 하시는 줄 잘 모르겠습니다.”

“정녕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냐? 무인이라는 놈이 혈도가 어떤 곳인지도 몰라?”

“잘 압니다. 제가 뇌의 님 밑에서 의술을 잠깐 배우면서 혈도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빠삭하게 익혔는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럼 그걸 아는 놈이 그래?”

“아.”

계속해서 묻는 빙궁주를 상대하고 있다 보니 이제야 깨달았다.

뭔가 말을 오해하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혈도를 얼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음기를 끌어다 쓸 때, 얼려서 막았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뭐?”

“설마 제가 진짜로 혈도를 얼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가 미쳤다고 진짜로 혈도를 얼렸겠는가.

급속 냉동이 아닌 이상에야 혈도는 물론이고, 신체에 손상이 가는 게 뻔한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단순히 얼렸다고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막을 상상해 독기를 제어했을 뿐이다.

“그저 얼렸다고 생각하며 독기를 제어했을 뿐입니다.”

“그럼 그렇지. 에휴, 간 떨어질 뻔했네.”

순전히 심상을 이용해 통제했을 뿐이라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빙궁주.

내심 속으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를 생각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듯했다.

“겨우 그거 골려줬다고 이런 수를 쓰다니 괘씸한 놈. 하는 짓이 네 할머니와 똑같은 게 심성이 고약하기 짝에 없구나.”

“그 말씀은 할머니께서 심상이 고약하시다는 이야기인가요? 이거 당장 할머니를 뵈러 가야 할 중대사안인 것 같습니다만…….”

“같잖은 소리는 거기까지 하고.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사람 오해하게 만드냐?”

“저는 궁주님이라면 당연히 알아들으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무슨 부처도 아니고, 네 머릿속을 어떻게 보겠느냐.”

대화가 안 통한다는 듯 한숨을 푹 쉰 빙궁주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분명 아까 암기를 변형해서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그것도 뭐 숨기는 거라든가 오해할 만한 요소가 있느냐?”

“딱히 숨기는 건 없습니다. 제가 만들 암기는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들 평범한 암기니까 말입니다.”

“형상기억합금(形狀記憶合金)? 그건 또 뭐 하는 물건이냐?”

“말 그대로 형상을 기억하는 금속입니다. 냉기와 화기를 통해 변형과 복원을 하는 금속으로 암기 만들 때 굉장히 유용한 금속입니다.”

“…….”

설명이 영 맘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빙궁주.

잘 설명했으니 알아먹을 법도 하건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말만 들어서는 도통 잘 모르겠구나. 추상적인 설명 말고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어…… 예를 들자면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검을 찬물에 넣고 구부리면 쉽게 구부러지고, 이걸 끓는 물에 넣으면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오는 겁니다.”

“흐음.”

자세한 설명을 듣자, 빙궁주는 갑자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딘가 쓸 만한 곳이 있을지 몰라 골똘히 생각해 봤건만, 빙궁에서 쓸 만한 물건이었으면 네놈이 설명해 주긴커녕, 숨기기 급급했겠구나. 분명 빙궁에선 못 쓰는 물건이니 이리 자세히 설명하는 거겠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빙궁에서 생산해 내다 팔 수도 있는데 그런 계산을 했다면 말 자체를 안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빙궁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형상기억합금은 온도 차를 이용해서 다루는 물건.

니티놀이 변형되는 기온과 복원되는 기온은 어디까지나 합금을 만들 때 조절 가능한 만큼 잘 만들면 영하에서도 복원되는 니티놀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니티놀의 기억 과정을 2번 거침으로서 2번 변하는 암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데 그 정도도 불가능하겠는가.

……다만,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입에 발린 소리는 그거면 됐다.”

그런 속내를 대충 간파한 듯 인상을 찌푸리던 빙궁주는 이내 빙옥을 굴리면서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이거에 대해선 내가 묻긴 했지만,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 걸 보면 내게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숨기면 숨길수록 그 위력을 더해가는 당가의 무기들.

당연히 니티놀의 특성 또한 숨기는 게 이로운데 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했겠는가.

그건 바로 공과 사의 구분이 철저한 빙궁주에게 위험한 물건은 아니라고 미리 말해놓기 위해서다.

‘가족으로서의 호의가 궁주로서의 책임보다 크지 않은 사람이니 말이지.’

대장간을 빌려준다고 한들, 위험한 물건에 허락을 내려주겠는가.

나중 가서 설명한다고 해도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에 미리 까고 가는 거였다.

“대장간에 의뢰를 넣고 싶습니다.”

“대장간이라…….”

대장간을 언급하자, 얼굴을 굳힌 채 빙옥을 두어 번 굴리던 빙궁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맨입에 대장간을 빌려줄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너라면 분명 마땅한 대가를 준비했을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보기나 하자꾸나.”

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칼에 거절하진 않은 상황.

나름 빙궁주가 거절을 할까 봐 이것저것 설득할 방법을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쉽게 물어봐 주니 행여나 거절할세라 부랴부랴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시간이 남아 빙궁을 돌아다니며 봤는데, 아이들이 내공을 늘리기 위해 빙과를 계속 물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이후에 여기저기에 수소문해 본 결과 빙궁에는 영약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공을 익힌 사람들이 내공을 늘리기 위해 독을 먹듯이 내공을 늘리기 위해 냉기가 가득한 걸 먹는 빙궁 사람들.

빙공의 고수들은 인위적으로 낮은 온도의 물건을 만들 수 있기에 서로서로 영약을 만들어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작은 물건에 과한 기를 불어넣으면 물건이 깨지면서 기가 흩어져 버리기에 제대로 된 영약을 만들기 힘들다고 했다.

‘잘 버티는 소재들은 하나같이 금속이었는데, 그마저도 면적이 넓어야 했고, 사람이 먹을 수는 없는 물건이라 기각됐다고 했지.’

현대의 과학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상황.

온도는 사실 단순히 차갑고 뜨겁고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과학에서 온도란 열역학적 평형상태에 있는 기체에 대해 정의되는 물리량을 의미했다.

그런데 순전히 온도를 낮췄다고 터져 나가는 게 말이나 되는가.

‘뭐, 사실 기가 얽힌 순간부터 현대 과학을 들이대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하지만 무림엔 무림의 과학이 존재하는 법.

기를 불어넣는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건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음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몇 없어서 영약이 없다는 거지.’

즉, 정리하자면 눈앞의 빙옥 같은 물건이 아니라면 영약으로 쓸 만큼 낮은 온도의 물건을 만들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들 물건이 다량의 액체라면?

굳이 한곳에 기를 몰아넣을 필요 없이 공기 중의 기를 정제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아직 시험해 보진 않았지만, 무림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빙궁주에게 단언하듯 말할 수 있었다.

“빙궁에 영약을 만드는 법을 선물해 드리자고 말입니다.”

당지천이 호기롭게 빙궁에 영약을 선물하겠다고 이야기하자, 턱을 부여잡는 빙궁주.

“흐음.”

빙궁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영약을 만들려는 노력을 안 했겠는가.

당연히 해봤고, 실제로 거의 근접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접했었을 뿐, 결과적으로는 수준 낮은 영약밖에 만들 수 없었기에 수준이 조금만 높아져도 자연에서 채취한 영약밖에 쓸 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빙궁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영약을 만들어내기 위해 예산을 쏟고 있었다.

‘영약을 만들 수 있다라…….’

그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시도를 해봤음에도 불가능했던 일.

그걸 당지천이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만약 생각이 짧은 사람이 들었다면 어이없고 화가 날 소리였지만, 당지천의 성향을 대충 파악한 빙궁주에게 다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생각 없이 내뱉는 녀석은 아니니 어느 정도 확신이 있는 것일 텐데, 대체 어떻게 방법을 찾았을까?’

실제로 본 건 단 이틀뿐이었지만, 빙궁주가 본 당지천은 대책 없이 지르고 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을 과하게 하면서 상대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하고 설명을 건너뛰는 녀석 아니던가.

그런 당지천이 영약을 만들 수 있다고 했으니, 당연히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단지, 걸리는 점은 그 방법이 짐작도 가지 않다는 점.

‘빙궁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군.’

아직은 제대로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만약 제대로 된 영약이 나온다면 빙궁은 몇백 년 동안 헛짓거리를 했다는 의미가 됐기에 당지천이 그저 헛소리하는 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차피 보고서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아직 확실시된 게 아니었기에 일단 확인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말했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감사합니다. 준비물이 필요하니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한번 해보라는 소리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당지천은 천일염을 대동하고 잠시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철판으로 된 세숫대야 2개와 이상한 액체가 든 물주머니를 여러 개 가져왔다.

“이건 무엇이냐?”

“어제 빙궁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빙과를 먹는 걸 봤습니다만,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걸 대체할 물품입니다.”

주머니를 하나씩 열어 상태를 보고는 이상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당지천.

지금 당장 쓸 물건은 아닌지 탁자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고는 세숫대야를 빙궁주 앞에 갖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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