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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89화 (89/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89화

이제 생각해 보니 이 암기의 재료가 녹주석이 아니던가?

그럼 자연히 공중에 흩뿌려지는 가루는 베릴륨.

즉, 독이라는 소리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재빨리 암기가 부서진 곳에 다가가 바닥에 쌓인 가루를 맛봤더니 아주 익숙한 맛이 났다.

‘이건 산화베릴륨이잖아?!’

단순히 베릴륨이라고 생각했건만, 아마 제련하는 과정에서 가열이 됐고, 또 이렇게 만들기 위해 모종의 방법을 이용했는지 내가 주로 쓰는 산화베릴륨이 되어 있었다.

“난 네가 독을 가져왔길래 당연히 이렇게 던졌을 때, 뭔가에 부딪히면 비산하는 그런 암기를 만들어 달라는 줄 알았지. 그래서 일반적인 암기처럼 피하면 그만이 아닌 쳐내지 않으면 끝까지 쫓아가는 추혼비접으로 만든 건데…… 이게 아니야?”

“와…….”

피하지 않으면 무조건 따라가고, 쳐내면 그 즉시 독으로 변해 버리는 암기.

적을 향해 날아가던 운동량이 있으니 비산한 독 가루는 독무가 되어 적을 덮칠 것이고, 그 가루가 산화베릴륨인 만큼 내기로 태울 수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될 거다.

‘심지어 극독도 같이 날아가.’

무엇보다 추혼비접은 그냥 단독으로 쓰는 암기가 아니다.

손가락만 한 암기의 파괴력이 되어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상대를 무한정으로 따라간다고 한들,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서 주로 극독을 발라서 썼다.

즉, 추혼비접이 가루가 되어버리면 극독도 같이 날아간다는 의미였다.

“저는 단순히 철보다 나은 암기를 생각했는데, 삼촌이 이런 대단한 걸 만드실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충격에 쉽게 깨지는 물건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유리가 있고, 금속 중에서도 철 중의 하나인 주철(鑄鐵, 무쇠)만 해도 쉽게 깨지는 터라, 대포 포신 같은 곳에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지 않은가.

거기다. 충격을 받을 때, 유리처럼 깨지는 것이 아닌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그렇고, 그걸 녹주석으로 구현하는 것 둘 다 현대의 기술력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고 해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정말, 정말 대단하시네요!”

“뭐야? 알고서 준 게 아니었단 말이야?”

“예, 저는 삼촌만큼 광물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녹주석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 그렇게 띄워줘도 뭐 나오는 거 없는데 말이야…… 근데, 이걸 몰랐다니 조금 예상외네. 난 분명 알고 줬을 거라 생각했거든.”

“솔직히 아는 게 이상하죠. 삼촌 정도의 뛰어난 실력이 없으면 애초에 만들지도 못하는 물건인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아나요. 하다못해 당가의 대장장이들도 모르는 일인데요.”

아직 당가의 대장장이들에게 녹주석을 쥐여줘 본 적이 없기에 그들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랐으나, 삼촌의 스승조차도 어이없다는 얼굴로 보고 있는 걸 보면 예사 재능이 아닌 듯했다.

“그래?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구나. 당가의 대장장이들도 모를 정도라니…… 사실 삼촌이 말이야. 대장장이 일을 좀 늦게 시작한 편이거든? 근데 이 재능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잖니. 우리 스승님이 맨날 그러시거든. ‘나는 너 같은 놈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에 매일 하늘을 저주한단다’라고 말이야. 우리 스승님이 말은 험하게 하셔도 마음은 참 따뜻한 분이신데…… 어쨌든, 이 삼촌이 그 정도로 유능하단 말이거든.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점이 없는 건 아니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어떻게 단점이 없는 사람이 있겠니. 잘 찾아보면 누구든지 하나씩은 나온단다. 그래서 삼촌의 단점은 말이야…….”

대충 자기가 특출난 재능을 가진 대신 작업 속도가 느리단 걸 굉장히 장황하고, 빠른 속도로 늘어놓는 삼촌.

일염이가 차마 말릴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귀에 때려 박자, 옆에서 듣고 있던 노인이 삼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네놈의 주둥아리 놀리는 속도 반의반만이라도 작업 속도가 빨랐으면 이미 빙궁의 일거리는 네가 다 했을 거다. 이 모자란 놈아.”

“……손이 조금 느린 게 단점이야. 하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뭐 맡기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도 돼. 삼촌이 다 해줄게.”

“다 해주긴 얼어 죽을 뭘 다 해줘. 어제 하루 꼬빡해서 만든 게 총 10개잖아.”

다시금 삼촌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작은 상자 하나를 내미는 노인.

“어제 시험해 보느라 한 개, 방금 보여주느라 쓴 게 한 개. 그래서 총 8개다.”

조심히 받아서 열어보니 노인의 말대로 삼촌이 만든 파사삭 부서지는 추혼비접이 8개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건 네가 부탁했던 평범한 암기들이다.”

그에 더해, 연이어 건네는 묵직한 주머니.

열어보니 한눈에 봐도 제련이 잘된, 질이 좋아 보이는 암기들이 들어 있었다.

이거면 수련을 마칠 때까지 쓸 수 있을 듯 보였다.

“감사합니다.”

“재밌는 걸 만들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이 밀렸다. 앞으로 일을 부탁하고 싶으면 궁주님을 통해서 정식으로 의뢰해라.”

삼촌뿐만 아니라 노인도 시간을 꽤 뺏겼는지 앞으로 의뢰는 빙궁주를 통해서만 받겠다며 가보라는 듯 노인이 손을 휘저었다.

“스승님! 그걸 왜 스승님 마음대로…….”

“네놈이 내 몫까지 끝낼 거 아니면 조용히 하고 있어라. 뭐, 그전에 밀린 네 일부터 마무리해야겠다만 말이다.”

노인이 다시금 삼촌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삼촌은 울상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빙궁주를 통해서 의뢰해라라…….’

그냥 들었다면 다소 난감했을 말.

허나, 마침 어제 빙궁에 도움이 될 방안을 마련했기에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암기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히 될지 안 될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뭐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새로운 방안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삼촌이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대장장이임을 확인했고, 상상도 못 했던 암기를 얻었으니 그저 기쁜 마음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금방 올 테니 기대하고 계시죠.”

“뭐?”

예상과 전혀 다른 답변이 나왔는지 인상을 쓰며 되묻는 노인.

난 그런 노인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며 대장간을 나올 뿐이었다.

* * *

대장간에서 암기를 수령하고 기거하던 전각으로 돌아와 빙궁주를 기다리던 시각.

“캬.”

탁자 위에 올려놓은 8마리의 나비들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럼 안 좋겠어? 이렇게 끝내주는 물건이 생겼는데 말이야.”

비록, 아직 추혼비접을 다룰 능력은 없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뿐.

할아버지께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우기로 했으니 지금의 벽은 금방 부술 테고, 그때가 되면 이 암기는 니티놀과 함께 충분히 다루지 않겠는가.

‘팔랑팔랑 날아가 하얀 독무를 뿌리는 나비라…… 크, 진짜 이걸 생각해 낸 삼촌이 대단하다.’

마치 꽃을 찾듯 적에게 팔랑팔랑 날아가던 나비가 하얀 독으로 변해 비산하는 암기.

이거야말로 백독멸악이라는 거창한 별호에 어울리는 성명절기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만들어진 별호라 성명절기라고 부를 게 딱히 없었는데 말이야.’

원래 절정고수쯤 되어야 붙는 별호.

당연히 그쯤 되면 다들 성명절기라고 자신의 이름을 대변할 만한 절초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류도 안 되던 시점에서 강제로 떠안은 별호였기에 거창한 별호와 달리, 주력기는 그냥 하얀 독무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이런 성명절기라고 부를 만한 게 생겼는데 어찌 안 좋아하고 배기겠는가.

‘역시 장인은 달라도 뭔가 달라.’

삼촌의 신묘한 능력에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고 있자, 문득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오셨나 봅니다.”

둔중하기 짝에 없는 덩치를 과시하듯, 집 안을 울리는 무거운 발걸음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문 앞에서 멎었다.

“들어가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냉큼 문을 여는 한 사람.

그 정체는 따로 볼 것도 없이 빙궁주였다.

“오셨습니까.”

“그래, 잘 지냈느냐?”

“예, 여러모로 신경 써주신 덕에 잘 지냈습니다.”

“신경 써주긴…… 며칠도 안 됐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효과가 좋았나 보구나.”

“예?”

“별거 아니다. 민감한 주제는 제쳐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고는 혼자서 웃던 빙궁주는 품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될 법한 하늘색 구슬을 하나 꺼냈다.

“이건 뭡니까?”

빙궁주가 탁자에 구슬을 내려놓자마자, 곧장 몰려오는 시원함.

마치 무풍 에어컨이라도 되는 듯 내부의 기온이 바람 없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빙옥이다.”

“빙옥이라면 냉기를 뿜는 구슬인 겁니까?”

“맞다. 평범한 구슬이 설산에 오래 묻혀 있다 보면 변해서 만들어지는 물건이지.”

“그런데 이건 왜 보여주시는 겁니까?”

아직 영약을 먹을 단계는 아닌 것 같으니 영약은 아닐 게 분명했다.

허나, 그게 아니면 이걸 어디다 쓰려고 가져왔는지 짐작이 전혀 안 됐다.

“너는 음기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갑자기 선문답이라도 하자는 듯 음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묻는 빙궁주.

조금 뜬금없긴 했지만, 필시 묻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 차근차근 답변을 내놨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무언가를 시원하게 만들 수도 있겠고, 단단하게 얼려서 강도를 높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든 암기를 변형할 때 쓰일 겁니다.”

어차피 니티놀을 만드려면 빙궁주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나중이 되면 알게 될 일이기에 미리 말하자, 조금 당황하는 빙궁주.

“암기를 변형해서 쓴다는 건 금시초문이다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마.”

크흠.

잠시 목을 가다듬은 빙궁주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말한 대로 음기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새로운 심공을 익히고, 독기와 얽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느냐?”

“전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면 포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빙궁주에 물음에 튀어나오는 즉답.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게, 내 무기는 독 그 자체다.

음기는 아무리 잘 쳐줘봤자 보조 수단에 불과하기에 그걸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건 본말전도다.

‘예상했던 것처럼 냉기를 계속 뿜어내는 빙옥 같은 것도 있으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필요한 성질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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