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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84화 (84/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84화

요약하자면 내 혈통에는 음기가 가득한 내단이 있고, 그게 터져 나와서 독기와 충돌하는 게 현 상황이란 뜻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진맥 받을 때나, 스스로 속을 관조하는데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뭐, 그러니까 터지긴 했겠지.’

뇌의와 가깝게 지내면서 진맥을 몇 번이나 받았는데, 뇌의가 별말 안 한 걸 보면 진짜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모를 수밖에 없는 건가 보다.

“진작에 알았다면 미리 찾아오는 건데…….”

“미안하구나. 이건 우리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빙궁에서는 다들 빙공을 익히니 문제가 없었고 외부인과 결혼했다고 한들, 성장하는 과정에서 빙혈이 저절로 사라져서 전혀 예상치 못했구나.”

“제가 특이한 경우입니까?”

“특이하지. 엄청나게.”

전례 없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빙궁주.

“빙혈을 각성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부분 약관 이후다. 우리 빙궁 사람들은 그 전까지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빙공을 익힘으로 빙혈을 받아들일 준비를 제대로 한단다. 아마 그 전후로 빙혈이 사라지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너의 경우는 성취가 너무 빨라서 빙혈이 날아가기 전에 각성한 것 같구나.”

놔두면 스스로 사라지는 게 빙혈인데 성취가 월등히 빠른 탓에 강제로 깨워 버렸다는 소리.

그걸 듣고 있자니 억울할 지경이었다.

‘아니, 그러면 여태껏 몸에 시한폭탄을 달고 살았단 말이야?’

기와 기의 충돌은 내상을 입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몸에 독기가 아닌, 다른 걸 들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겠는가.

“네 입장에서는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각성한 이상 네가 선택 가능한 수는 2가지다.”

“2가지 말입니까?”

그냥 몸에서 음기를 빼내고 재활을 할 거란 생각과 달리, 선택지가 있다는 빙궁주.

“하나는 음기를 통째로 날려 버려 없애는 방법. 이러면 음기가 없는 원래 몸 상태로 돌아가게 될 거다.”

“그럼 다른 하나는 뭡니까?”

“다른 하나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는 빙궁주는 뭔가를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상상도 못 했던 말을 꺼냈다.

“음기를 몸에 남기는 방법. 이러면 비록, 아주 조금뿐이지만 음기를 다룰 수 있게 될 거다.”

바로 음기와 독기.

그 2개를 둘 다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말을 말이다.

* * *

“음기를 말입니까?”

독기와 음기가 충돌하는 걸 치료해 준다고 해서 왔는데, 갑자기 음기를 다룰 수 있게 해준다는 빙궁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몸 안에 2가지 기운이 공존하는 게 말이 돼? 양의심공를 익힌 것도 아니고?’

마음을 두 개로 나눠서 각기 다른 무공을 익힌다는 무당의 비전, 양의심공.

흔히 여러 기운을 합쳐서 익히는 무공은 음양합일심공같이 꽤 존재하긴 했지만, 엄연히 연관이 있는 것들을 엮어서 익히는 거라 양의심공을 익히지 않고서야, 독기와 음기가 공존하는 건 상상이 안 됐기에 의구심을 담아 물었다.

“양의심공을 배운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합니까?”

“네가 다른 무공을 익혔다면 모를까, 독공을 익혔고 빙궁의 혈통을 이었으니 가능할 거다. 물론, 아까 말했듯이 아주 조금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대체 어떤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가능하다는 빙궁주.

독기에 대해 알리는 없으니 심공을 가르쳐 주는 건 아닐 것 같지만, 뭔가 방법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말하지만, 양의심공은 만능이 아니다.”

“만능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도 당가의 직계인 만큼 아마 1번 서고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양의심공을 본 적 있지 않느냐?”

“아니, 그걸 어떻게…….”

1번 서고의 존재나 직계가 들어가는 건 꽤 유명한 이야기였기에 빙궁주가 알 수도 있었다.

허나, 거기에 뭐가 있는지까지 아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빙궁주는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더 말이 되는 말을 해줬다.

“그야, 양의심공은 문파마다 하나씩 있을 만큼 흔해서 그렇다.”

“예?”

아니, 그 귀한 무당의 비전이 문파마다 하나씩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옛날 옛적에 당시 무당제일검이 양의심공을 익히고 천하제일인…… 아니, 그 당시 고금제일인으로 군림한 적이 있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천하십대고수가 전부 달려들어야 겨우 비등한 싸움이 될 정도였다고 하지.”

“아니, 사람이 그렇게 강한 게 말이 됩니까?”

“그렇지. 말이 안 되지. 그런데 문헌에 따르면 아무래도 그 당시 무당제일검은 그걸 해낸 듯하더구나.”

“허…….”

“그걸 보고 배가 아팠던 대문파들은 무당파 몰래 한 가지 조약을 맺기로 했지. 무당제일검이 사라지기 전까진 무조건적인 협력을 하자고 말이야.”

“그래서 나중에 무당제일검이 사라지고 나서 대문파들이 무당파를 습격해 양의심공을 탈취했다. 이 이야기입니까?”

“맞다.”

아이고, 치졸하다 무림인들.

아무리 무공에 눈을 뒤집힌다고 한들, 다구리를 까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양의심공이야말로 무림 제일의 무공인 것 같은데, 어째서 만능이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유는 단순해. 그저 양의심공이 어지간한 재능으론 택도 없는 무공이라 그렇다.”

어지간한 재능으로 택도 없는 무공이라.

확실히 마음을 두 개로 나누고 두 개의 무공을 익혀야 하기에 다소 난해해 보이기는 했다.

나만 해도 그럴 자신이 없어서 내려놓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의 대문파에 그렇게 인재가 없나?

적어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인재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천 년에 한 번 나올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익히는 게 손해인 무공이니 말이다.”

“허…….”

백 년도 아니고, 천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여야 익힐 무공이라니.

대체 양의심공을 만든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나저나, 1번 서고에서 보고서 아무 생각 없이 골랐으면 큰일 날 뻔했네.’

현대에서는 몸 쓰는 일을 거의 안 해서 그런지, 무재가 별로 없는 나.

그런 내가 만약 1번 서고에서 호기롭게 양의심공을 익혔었다면 아마 광랑을 마주했던 시점에서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을 거다.

“잠시 이야기가 딴 데로 샜구나. 어쨌든,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은 양의심공은 만능이 아니라는 말이었고, 굳이 그게 없더라도 충분히 음기를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굳이 양의심공을 익히는 게 아니라도 독기와 음기를 같이 다룰 수 있다는 빙궁주의 말에 내 얼굴엔 화색이 돋았다.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음기를 다룰 수 있다면 쓸 곳이 많아.’

빙궁에서 여러 가지를 얻어갈 예정이라고 한들, 몸 안의 음기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남들보다 뒤처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른 기술을 얻어갈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도가 약하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로 약합니까?”

“가진 내공을 전부 쓴다면 딱 이 정도다.”

빙궁주가 옆에 있던 찻잔을 잡자,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차.

살얼음이 낀 수준이 아니라, 냉동실에 오랫동안 보관한 것처럼 꽁꽁 얼어버리는 것이 약하다고 한 것치고 꽤 강해 보였다.

“와…….”

그리고 그걸 본 내 입에선 자동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왜냐면…….

‘이 정도면 니티놀을 다루는 데 손색이 없겠는데?’

빙궁주가 말한 약한 정도.

그 정도면 빙궁에서 얻어 가려 했던 니티놀을 다루는 데 부족함이 없었기에.

니티놀.

옛날부터 내가 만들려 했던 형상기억합금의 이름으로 막상 지금 수준에서는 별 쓸모가 없긴 하지만, 암기술에 통달하게 되면 될수록 그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해지는 물건이었다.

‘예를 들어 나비 모양의 추혼비접을 힘으로 눌러 단도처럼 만들어 던지면 처음엔 곧게 직선으로 나가다가, 이내 형태가 복원되며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변화무쌍한 투로를 보이는 거지.’

형상을 복원하는 시기에 따라, 투로를 언제 변하게 할지 정할 수 있었고, 혹은 다른 암기 여러 개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던져서 대체 무슨 암기인지 가늠조차 못 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것뿐이면 다행이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지.’

무엇보다 니티놀 암기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허초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붙어서 싸울 때라면 모를까, 멀리서 암기를 던질 때 실력이 차이 난다면 곧장 허초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적이 던진 단도가 추혼비접이 되고, 추혼비접이 단순한 표창이 되고, 자모환이 표창으로 변한다면?

심지어 종장에 이르러선 단순한 쇠구슬마저 당가의 구대 금용암기 중 하나인 유성연환표로 변해 버린다면?

나중에 간다면 결국 상대는 단순한 단도나 쇠구슬을 던져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를 위해선 니티놀을 구부릴 수 있어야 하지만 말이야.’

형상기억합금의 원리 자체는 복잡하기 짝에 없지만, 그 특성 자체는 간단했다.

차갑게 만들면 구부릴 수 있고, 열을 가하면 원상 복귀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니티놀이 변형되는 온도와 원상 복귀되는 온도는 가공을 통해서 정할 수 있었다.

즉, 요약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니티놀은 손에서 변형한 뒤, 대기 중의 온도로 원상복귀되는 구조를 가진다는 의미였다.

‘찬물에 넣어도 구부러질 수 있게끔 만들 수 있고, 독기를 뿜어내는 야명주처럼 냉기를 뿜어내는 물질도 있어서 그걸 따로 구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거에 가져다 대지 않고 아예 손에서 직접 구부릴 수 있으면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잖아!’

원래 내 예상대로라면 손으로 집고 차가운 물체에 가져다 댄 뒤, 변형하는 과정을 거치고 암기를 사출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음기를 다루게 된다면 그런 번잡한 과정 없이 암기를 집자마자 구부리면서 사출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쩐다.’

아다리가 맞아도 이렇게 잘 맞다니.

몸에 빙혈이 있던 게 시한폭탄이 설치됐던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타이머가 부착된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꽁꽁 언 찻잔을 보는 눈길이 점점 감격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솔직히 다른 문파의 사람이라면 가끔 날 더울 때 시원하게 하는 정도라 말도 안 꺼냈겠다만, 네가 아무래도 독을 다루는 당가의 사람이다 보니 어디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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