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81화
“이런…….”
당지천의 별자리를 보자마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빙설린.
천일절의 별자리를 띄웠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별의 숫자에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겠구나.”
이전의 살성이 사람 하나의 살생을 의미한다면, 이 별들은 하나의 분기점을 의미했다.
즉,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의 굴곡이 많아진다는 것.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당지천의 별자리는 가히 은하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별이 많았다.
“일일이 볼 순 없으니 제일 큰 거 몇 개만 보자.”
중요도에 따라 그 크기가 변하는 별들인 만큼 몇 개를 추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빙설린은 현재의 가장 앞쪽에 있는 별을 확대해 보았다.
“고난 끝에 벽을 넘고 좋은 성과를 얻는구나. 참으로 다행이야.”
가장 처음으로 마주한 별이 희소식이자, 안심하고 다음 별로 넘기는 빙설린.
처음에 본 것보다 조금 더 큰 크기임에 긴장한 얼굴로 별을 들여다봤는데 다행히 이쪽도 희소식이었다.
“삼촌과의 불화가 있지만, 다행히 뒤틀린 관계는 회복하고, 오히려 좋아지는구나. 암, 가족이면 그래야지.”
긴장하고 봤던 게 좋은 일이었기에 곧장 다음으로 넘겼는데, 웬걸 자세히 보니 녹색과 자색 빛이 섞인 이상한 형태의 별이었다.
“당가에 위험이 닥치긴 하나, 지천이에겐 오히려 좋은 일이라…….”
그 뜻을 단박에 이해한 빙설린은 당장 당가에 전언을 보낼까 했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빌어먹을 사위 놈이 알아서 하겠지.”
점으로 본 미래에 개입하면 그 미래는 쉽게 변하긴 하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
그로 인해 변할 미래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괜히 미래를 바꿨다가 당지천에게 위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곱게 마음을 접고 다른 별을 살폈다.
“일이 있고 얼마 안 가서 믿음직한 새 친구도 얻는구나.”
빠르게 뒤이어지는 별들을 계속 확인함에도 하나같이 희소식.
다사다난하다고는 하나, 손주에게 기쁜 일만 있다고 하니 빙설린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띄워졌다.
그런데…….
“아, 아니!”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빙설린의 외침.
마치 봐선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냐면 빙설린이 다음 별을 살펴보려던 와중, 이전에 봐왔던 별들의 몇 배는 커 보이면서도, 모든 걸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색 공간을 보게 되었기에.
“어째서 사성(死星)이 여기에?!”
다른 별들보다 몇 배는 커 보임에도 멀리서는 볼 수 없던 커다란 공간.
빙설린이 이걸 보고 놀란 이유는 이게 다름 아닌 죽은 별.
사성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게 여기에…….”
시한부 환자를 둔 의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빙설린의 머리와 눈.
사실 빙설린에게는 사성이 나타난 것만으로 당지천은 시한부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왜냐면 사성이 나타나는 조건은 과거에 입었던 심리적 손상.
그게 깊이 관여되어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는 징조였기에.
“아니지, 지금 당장 확인해 보면 될 문제야.”
확인한다는 말과는 달리, 사성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별자리를 띄우는 빙설린.
이는 사성이 모든 걸 빨아들여 관측되지 않는 별이기에 다른 방법을 쓰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미리 가져오길 잘했구나.”
빙설린이 다소 굳은 얼굴로 품에서 조심히 꺼내 드는 얇은 실 같은 물건.
그건 다름 아닌, 처음에 포옹할 때 당지천에게서 자연스레 가져온 머리카락이었다.
“아무리 우려했다고 한들, 이렇게 곧장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큰 사성이 생겼단 말이냐.”
빙설린이 조심스레 수정구에 당지천의 머리카락을 가져가자, 아까처럼 타들어 가는 머리카락.
이내 머리카락 전부 타들어 가자, 수많은 별 사이에서 붉은빛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여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허튼 동정은 하지 않았구나.”
과거에 해당하는 부분에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살성들.
그 숫자가 꽤 상당했으나, 손속의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숫자였기에 빙설린은 사성이 있던 곳 너머로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왜 멈추지 않지?’
어느 정도 숫자를 채웠음에도 별들이 늘어가는 속도가 줄어들기는커녕, 빈틈을 차츰 메워가며 방안을 점점 붉게 물들여 갔다.
‘십만, 백만, 천만…… 아니, 그 이상?’
그림자 하나 만들지 않겠다는 듯 사방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붉은 빛.
현재를 제외한 과거와 미래를 마치 붉게 칠하려는 듯 계속해서 떠오르는.
도무지 셀 엄두가 나지 않는 그 숫자를 보고 있자니 빙설린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아…….”
갈라진 채로 떨리는 빙설린의 목소리.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지금 눈앞의 살성의 숫자는 천살성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아득히 많은.
가히 중원의 인구수보다 몇 배는 더 많다고 할 수 있었기에.
“이, 이게…….”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심연 또한 그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던가.
이젠 별 따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 사방이 빨갛게 물들어가자, 빙설린은 누군가 자신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듯한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빙설린은 그럼에도 그저 호랑이 앞에 쥐처럼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빙설린에게는 이 붉은 빛들 하나하나가 저항할 수조차 없는 운명.
그 자체로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아…….”
공포에 질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주저앉은 빙설린이 핏기가 가신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길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암전되는 수정구.
“…….”
유일한 광원인 수정구가 꺼짐에 따라,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였고. 그렇게 어둠 속에서 기다리길 잠시.
이내 수정구가 다시금 빛내자, 아까완 전혀 다른 풍경이 비쳤다.
“……없……어?”
헤아릴 수조차 없던 붉은 빛들이 모두 증발한 듯 사라져 고작 수천 개만 남은 지극히 정상적인 광경을 말이다.
“…….”
그걸 말없이 보던 빙설린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수정구를 한참 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구를 힘껏 후려쳤다.
“하여간! 제갈 놈들 일 대충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짐짓 화난 모습과 달리, 수정구를 치는 그 순간도 덜덜 떨리는 빙설린의 손.
한순간에 몰려드는 수많은 감정과 소름 탓에 도저히 떨리는 손을 제어할 수 없었다.
“에이씨!”
하지만, 그런 복잡한 마음도 잠시.
난해한 진법을 이용한 만큼 더럽기 비싸기 짝에 없는 수정구.
이걸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생기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후……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하지만 화가 나면 날수록 이성적이게 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빙궁 사람의 특징.
순식간에 불같던 화는 얼어붙었고, 냉정해진 빙설린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로 했다.
-깡!
어차피 보증기간이 반년 정도 남았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부숴 버리기로 말이다.
“니미럴 제갈 놈들 확 그냥 대가리를 뽑아서 거시기랑 위치를 바꿔 버릴까 보다. 이딴 걸 돈 받고 팔아! 보증기간이 3년이 아니었으면 니들은 다 죽은 목숨이었어!”
* * *
망성루에서 나와 임시 거처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께서 첫 대면만큼은 맨정신에 하고 싶다 하셨으니 오늘은 돌아가면 될 거야. 그럼 난 가볼게.
-삼촌께서는 같이 안 가십니까?
-나도 같이 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자리를 오래 비우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스승님께서 주신 숙제도 있고.
어른분들께 인사하고 나서는 삼촌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며 재료 수집을 할 계획이었는데 삼촌은 일하러 가버리고, 할아버지는 나중에 뵙기로 했기에 갑자기 시간이 붕 떠버렸다.
‘작은할아버지도 내일 오신다고 하셔서 수련도 못 할 거 같은데.’
원래 이렇게 시간이 비면 곧장 무공 수련을 했고, 품에 아직 까보지 못한 천열운무보가 있었기에 열어보고 싶었다.
허나, 몸을 움직여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뭐, 내가 잘 모르겠다면 물어보면 되지 않겠어?’
“일염아, 내가 지금 무공을 익혀도 될까?”
“천열운무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를 운용하지 않으면 딱히 상관없을 겁니다만, 그래도 환자인 만큼 몸을 움직이는 건 지양하시죠.”
기를 운용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최대한 몸을 사리라는 일염이.
그래도 조심만 하면 상관없다고 했기에 나는 곧장 천열운무보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면 가서 뭔 내용인지 읽어만 봐야지. 어차피 한 번 보고 익힐 만한 수준의 무공은 아니잖아.”
“그럼 뒤뜰에 있는 개인 연무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염이의 뒤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하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드디어 천열운무보를 익히는구나.’
얻은 지 꽤 됐지만, 왠지 모르게 익히려고 할 때마다 방해가 들어오고 급한 일이 생겨서 익히지 못했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림의 떡처럼 생각하기만 했는데, 이제야 익히니 설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여깁니다.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 힘든 구조니 마음 놓고 쓰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저녁 찬거리를 준비해야 하니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안내를 마치자마자 곧장 자리를 뜨는 일염이.
하인을 부려도 될 일임에도 어차피 안전한 빙궁 안이기도 하고, 내가 비급을 열어본다니 신경 쓰일까 봐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듯했다.
“자, 그럼…….”
비급을 꺼내 들자, 두근거리는 가슴.
그걸 애써 진정시키며 주저앉아 첫 장을 여는 순간, 갑자기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직 안 갔…… 뭐야?”
기척조차 느끼지 못해 일염이인 줄 알고 돌아봤건만, 웬 팔짱을 낀 노인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먹으로 칠한 듯한 새까만 흑의를 입은 채 양팔에 붕대를 감은 노인.
자세히 보면 왼팔의 붕대는 조금 풀려 있었는데, 그 안에 딱히 상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개인 연무장입니다.”
노인을 관찰하는 것도 잠시.
재빨리 비급을 닫으며 거리를 벌리자, 노인은 퍽이나 귀엽다는 듯 실소를 흘리며 되물었다.
“본좌 말이더냐?”
말본새부터 표정까지.
오만하기 짝에 없는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예사롭지 않은 게 이름 없는 고수이기보다는 단순히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악인이었다면 빙궁 사람들이 진작에 내쫓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미치광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들 그 뒤에 올 말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본좌는…….”
말을 멈춘 노인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정말 상상도 못 한 답변을 내놓았다.
“천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