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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80화 (8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80화

‘오…….’

넋을 놓고 보고 있자, 점점 방안은 메우는 별빛들.

그 숫자가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나 가히 우주를 연상시킬 정도가 되자, 별도의 조작이 가능했는지 할머니가 수정구를 조작해서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확대나 축소도 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이곳의 이름이 망성루인가 싶었더니 이것 때문이구나.’

가히 전생의 우주 시뮬레이션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신녀가 하는 일이 점을 보는 일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시각화해서, 또 우주처럼 수많은 별을 보여줄지는 몰랐기에 굉장히 신기했다.

‘근데 무슨 방법으로 점을 보는 거지?’

별로 보는 점은 대충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서 점을 치는 거로 아는데, 이렇게 무수히 많은 별을 보면 대체 뭘 보고 점을 치는지 궁금했다.

사실 할머니는 점쟁이가 아니라 일종의 천문학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민하고 있자, 할머니의 일이 끝났는지 할머니가 수정구에서 손을 뗐다.

“먼 길 오자마자 세워놔서 미안하구나. 맘 같아선 다 치워 버리고 우리 손주 옆에 있으려 했는데, 동생 놈 부탁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안타까운 얼굴을 하시면서도 단어 선택이 과감한 게 성격이 굉장히 화끈하신 분 같았다.

“한번 안아보자꾸나.”

양팔을 벌리면서 안아보자고 하시는 할머니.

전생엔 가족도 없었고, 당가에서도 이런 경험은 없었기에 상당히 낯설었지만, 거절할 이유도 근거도 없었기에 순순히 가서 안겼다.

“아이고, 내 새끼. 오느라 고생 많았다.”

상당히 낯간지러운 상황.

속에서 차오르는 간질간질한 감각을 애써 참으며 잠시 그러고 있자, 그제야 할머니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보고는 한 번도 못 봐서 어색할 텐데 쉬이 품을 내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미리 찾아 뵀어야 하는데 이런 일로 오게 되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쩜 말을 이리 이쁘게 하니. 말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된단다. 말 편하게 하렴.”

말 편하게 하라는 할머니는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기특하면서도 안타깝다는 듯 손을 쓰다듬었다.

“당가에서 이것저것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 들었다. 당 사위에게 신경 좀 쓰라고 일렀건만,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변명만 하더구나. 꼴에 가주라고 아주 염병을 떠는 게 직접 가서…… 어머, 내가 이런 상스러운 말은 원래 안 쓰는데 화가 나서 그만 써버렸구나.”

“하하하…….”

머쓱해하던 할머니가 무안하게 웃으시자, 눈치껏 따라 웃었다.

분명 아까 보기로 그냥 한 성깔 하시는 분인 것 같았는데, 다채로운 단어 선택을 보니 그냥 한 성깔로 치부할 정도가 아닌 듯했다.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주셨는데요.”

“그깟 돈 몇 푼, 독 몇 개를 말하는 거라면 빙궁에서도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단다. 그런데 고작 그것밖에 주지 않았다면 정말 괘씸한 거지.”

영 탐탁지 않다는 듯 말하는 할머니.

괜히 이러다 당가와 싸우기라도 한다면 당기룡에 대한 내 평가가 떨어지진 않을까 싶어 당기룡을 두둔했다.

“정확히 이야기해 드리긴 힘들지만, 아버지께선 이미 5년 전에 제게 귀한 비급을 하나 주셨어요. 비록, 지금은 하나의 시집 같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아서 익히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감을 못 잡는 걸 보면 상당히 고귀한 무공인 걸로 보여요.”

자고로 거짓은 진실 속에 숨기라고 했던가.

5년 전, 당기룡이 줬던 시집 같은 비급.

한 번 읽고 방 어딘가에 던져놨었는데, 그걸 본 일염이가 한숨을 쉬고는 챙겨서 어딨는지도 몰라도 어쨌든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시집을 귀한 비급으로 둔갑시켰다.

“네가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역시 점을 치시는 건가요?”

굳이 점을 치지 않아도 알 방법이 있다는 걸 알지만 화제를 돌리기 위해 수정구를 빤히 쳐다보자, 할머니는 웃으며 수정구에 손을 올리셨다.

“그래, 우리 손주가 이게 궁금했구나?”

그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시자, 마치 어디로 빨려가듯 주변의 풍경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별들이 움직이는 걸 눈 아프게 보길 잠시.

아까와 똑같은 별천지가 보였다.

“보거라. 이게 네 삼촌이다.”

수많은 별 무리 중 한 무리를 확대해주며 말하는 할머니.

솔직히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전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할머니 말대로 이게 삼촌의 별자리인 듯했다.

“이걸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단다.”

“낱낱이 모두 말인가요?”

“당연히 모든 건 아니다. 그리고 가끔은 변하기도 하기에 확신할 순 없단다. 하지만 대부분은 들어맞고 과거의 행적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단다.”

“예를 들면 인성이나 성품 같은 것 말이죠?”

“그렇지. 아이고, 우리 손주가 참 영특하구나. 내가 이야기만 들었지, 이렇게 실제로 보니 참으로 감격스럽구나. 그런 의미에서 남들이 볼 수 없는 조금 특별한 걸 보여주마.”

할머니가 삼촌에게 손을 뻗자, 자연스레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건네주는 삼촌.

머리카락을 건네받은 할머니는 곧장 그걸 수정구 위에 올렸고, 당연하다는 듯 머리카락은 불타서 없어졌다.

그러자, 기존 별들 사이에서 하나둘 빛내기 시작하는 빨간 별들.

“붉게 빛나는 별이 참 많지? 적색 별들.”

“예.”

“이건 여태까지 머리카락의 주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리고 죽일지 나타내는 별로 우리는 살성(殺星)이라 부른단다.”

“그럼 이게 모두 삼촌이……?”

한눈에 봐도 천이 넘어 보이는 숫자.

무림인이라면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숫자이긴 했으나, 대장장이로 오래 지냈단 삼촌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삼촌이 악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로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죽인 것이냐?”

허나, 그런 건 아닌지 태연하게 묻는 할머니.

대충 말하는 의도를 예상해 본다면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로 사람이 죽으면 대장장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보였다.

“대장장이에게도 지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군요.”

“맞다. 아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게다.”

“아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눈앞에 총이 있을 때, 누군가 그걸 들어 사람을 죽였다면 엄연히 그건 총은 쏜 사람의 잘못이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일이고, 사실이 그렇다.

허나, 만약 그걸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결국 살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정말 깊은 원한 때문에 복수하려는 게 아니라면 좋은 무기가 없는 이상 덤벼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좋은 무기가 없는 상태로 복수하려고 하면 목표를 이루기보단 개죽음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말이다.

“도의적인 책임 이전에 전후 관계로 보면 당연한 일이죠.”

그러니 책임을 논하는 것이 아닌 전후 관계를 보는 게 점이라면, 삼촌의 별자리에 살성이 가득한 게 이해가 됐다.

“역시 영특해서 그런지 긴말할 필요 없이 알아듣는구나.”

단번에 이해한 게 마음에 드는지 만면에 미소를 띤 할머니가 수정구를 조작해서 살성 하나를 확대해서 보여줬다.

“참고로 이렇게 멀리서 보니 적색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방식으로 죽였느냐에 따라서 색깔이 변한단다.”

“형태나 빛나는 부분이 다른 걸 보니 그 이외의 정보도 알 수 있겠군요.”

“그럼, 그럼.”

답변 한마디 한마디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설명을 이어가는 할머니.

밑천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이것저것 설명하더니 결국 더는 알려줄 게 없었는지 수정구를 처음에 그 상태로 돌려놓으셨다.

“설명은 여기까지가 끝이란다. 너무 잘 알아들어서 더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게 없구나.”

“아니에요. 할머니께서 알기 좋게 설명해 주셨는데 못 알아듣는 게 이상한 거죠.”

“맘 같아선 지금 당장 가서 밥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 안타깝구나. 아 참, 네 치료는 동생 놈이 내일부터 한다고 하니, 오늘은 가서 푹 쉬거라.”

“감사해요. 할머니.”

마지막으로 할머니와 포옹을 나누고 망성루를 빠져나오자, 갑자기 드는 뭔가 휑한 기분.

마치 망성루에서 뭔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잃어버린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소설을 볼 때면 들어갔다가 나오면 기억을 잃는 건물들이 나오곤 했다.

안에서의 일은 절대 비밀이기에 기억을 지워 버리는 건데, 만약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잠깐, 머리?

“왠지 머리가 휑한 기분이야.”

“…….”

머리가 휑하다고 하자, 그 소리를 들은 삼촌이 한참을 멈춰 서 있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우리 조카님 탈모니?”

“예? 아닙니다. 전 풍성합니다.”

“지천아. 이 삼촌에게만큼은 사실대로 말해도 된단다. 삼촌이 입이 얼마나 무거운데 그런 걱정을 하니.”

“그냥 해본 소리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았다. 언제든 네게 내가 필요하면 주저 없이 와서 말하렴. 이 삼촌은 언제까지고 기다리마.”

제 할 말만 마치고 의미심장한 눈으로 앞서 나가는 삼촌.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보면서 걸었음에도 그때까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삼촌에게 걸린 이상, 온 빙궁에 탈모라고 소문나기까지 정확히 하루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당지천이 떠나고 망성루에 홀로 남은 신녀.

빙설린은 당지천을 생각하며 나지막이 웃음을 지었다.

“당가 사람답게 똑똑하면서도 당가 사람답지 않게 정이 많구나. 하긴, 그러니 협의를 따지는 것이겠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것이 이런 걸까.

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마치 당지천은 어디서 점치는 걸 본 적 있는지 하나를 말하면 나머지를 모두 예측했다.

똑똑하다고 소문난 당가의 혈통임이 실감되는 상황.

그런데도 당지천은 당가 사람답지 않게 정 없는 모습은 안 보였다.

“사위 놈이 개떡같이 가르쳐도 설화의 뒤를 따르는 걸 보면 설화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잘했어.”

거기다, 실리를 추구하고 자기 일이 아닌 이상 관여하지 않는 당가.

그런 당가의 직계임에도 협의를 추구하며 이미 사천에서 이름을 날리는 협객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 봐야겠지.”

허나,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놓기엔 일렀다.

협의를 추구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반복되는 살생에 물들어 악인이 되는 이들도 많았다.

자신의 신념이 어느새 고집으로 변모해 가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결국 악인과 다를 바 없어지는 이들.

그게 당지천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기에 빙설린은 수정구를 조작해 당지천의 별자리를 띄웠다.

그렇게 당지천의 별자리를 띄운 빙설린은…….

“이런…….”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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