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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71화 (71/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71화

당지천과 당지독이 자리를 옮겨 도착한 곳은 당지독의 전각.

당지천은 처음 발을 딛는 공간이기에 다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당지독이 내놓은 차에도 손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당지천을 보던 당지독은 속으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하하.’

뜬금없이 차 한잔하고 했기에 예상했던 상황.

그러나 당지천이 경계하는 걸 이렇게 직접 보니 속이 쓰리긴 쓰렸다.

‘이게 다 내 업보인 것을, 누구 탓을 하겠는가.’

허나, 그것이 결국 자신의 탓인 걸 알기에 쓰린 속을 다스리며 운을 뗐다.

“이렇게 보자고 한 건,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해주고 싶은 말…… 말입니까?”

“그래.”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하자, 감이 안 잡힌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당지천.

아마 당지천이라면 지금쯤 말에 숨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겠지만, 이야기를 마치고 난다면 그 말에 아무 의미도 없단 걸 깨닫게 될 거다.

왜냐면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당지독이 말하는 말은 숨은 뜻 없이 있는 그대로의 말일 테니까.

“물론, 모든 것을 전해줄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모든 말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순 없었다.

“내가 그 녀석을 옥죄듯, 그 녀석도 날 옥죄고 있으니 말이다.”

당지독 또한 제약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알려주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예? 누가 감히 당가의 대공자를 옥죈단 말입니까?”

누군가가 당지독을 옥죈다고 하니 다소 화가 나 보이는 당지천.

지금 당지독이 한 말은 당지천에게 있어서는 영문 모를 말이겠지만, 그간 믿을 사람 하나 없던 당지독에게는 가히 모든 것을 털어내는 것과 같은 한마디였다.

“아니다. 잠시 농을 한 거니 신경 쓰지 말 거라. 그것보다는…….”

그렇기에 그 이후에 말들은 쉼 없이 쏟아져나왔다.

길고 긴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면 막상 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여태껏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당지천과 소원하게 지냈던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이야기.

어쩌면 단순히 한탄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당지천은 관심도 없는 따분하기 짝에 없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두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당지독의 입은 멈출지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너무 내 이야기만 늘어놨구나. 미안하다.”

두 시진이 지나서야,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단 걸 깨달은 당지독이 사과하자, 당지천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계속 이야기하라고 했다.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듣는 재미가 있네요.”

당지독이 그러하듯이 당지천 또한 시간이 귀하기 짝에 없는 사람.

언제나 보고를 받을 때면 뭔가에 몰두한 채 분주히 움직이는 만큼 쉬는 시간도 얼마 없을 터인데 당지천은 중간에 끊지도 그렇다고 따분한 얼굴을 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줬다.

“아니다. 벌써 두 시진이 넘게 이야기해서 할 이야기가 없다.”

세월이 쌓아놓은 이야기를 어찌 이 짧은 시간에 다 하겠는가.

두 시진이나 할애했음에도 할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두서없이 이어진 서론이 너무나도 길었고, 그걸 당지천이 꿋꿋이 들어줬기에 당지독은 늦었긴 해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제 힘든 일을 당했다고 들었다.”

“예, 뭐, 좀 섬뜩하긴 했지만, 몸 성히 돌아왔습니다.”

어제의 일을 언급하자, 떨떠름한 얼굴로 답하는 당지천.

다시 생각하면 아찔할 법도 하건만, 이미 몇 번이나 전투를 복기했기에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너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겠지. 그래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을 거라 생각한다.”

“예…….”

그 이야기는 왜 꺼내냐는 듯 말끝을 흐리는 당지천.

당지독은 그런 당지천에게 희소식을 전해줬다.

“내가 여력이 있으니 잠시라도 네 주변으로 가는 시선을 막아주마. 아까 언뜻 보아하니 밖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이 기회에 처리하고 오너라.”

“예?”

설마 이런 소리가 나올지는 몰랐다는 듯 눈이 키우는 당지천.

당지독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얼굴을 하다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당지독에게 물었다.

“얼마나 가능하실 것 같습니까?”

“못해도 나흘, 길면 일주일.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확신할 수 있는 기간은 그 정도다.”

최소 나흘에서 최대 일주일.

절대 길다고 말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가문에 틀어박히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어느 쪽이 도움이 될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주고 싶지만,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구나.’

만약 운신의 폭이 넓었다면 뭐라도 하나 더 해줬을 텐데, 행동에 제약을 받는 만큼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런 작은 일 정도밖에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 작은 일임에도 기쁘다는 듯 환한 미소를 보이는 당지천.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당지독은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지는 한편,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지천아, 요즘 네가 벽에 가로막힌 것을 안다. 어린 나이에 큰 성취를 이뤘더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다. 어떤 재능을 가졌더라도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다. 네가 그 나이에 그 경지에 있는 것은 엄연히 너의 노력 덕이다. 그걸 폄하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의 제기 따위 받지 않겠다는 듯 단언하던 당지독이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허나, 과욕과 조급함은 언제나 문제를 만든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항상 냉철한 너의 모습을 잊지 말아라.”

“예.”

“너의 영민함이 때로는 너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음을 기억하고 또, 경계해라. 그래야만이…….”

당지천과 눈을 맞추는 당지독.

자신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자신의 어리석음을 조금이라도 반면교사로 삼길 바라며 다음 말을 이었다.

“나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터이니.”

착잡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말.

그렇지만 이 역시 당지천에게는 생뚱맞은 소리에 불과할 걸 당지독은 알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지천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재미없는 이야기 듣느라 고생 많았다. 이만 가보거라.”

전할 이야기는 모두 전했다.

그러니 이제 당지천의 보내주기 위해 애써 시선을 돌리자, 당지천도 분위기를 읽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당지천이 방을 떠나려던 찰나.

당지천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당지독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끔 이렇게 형님과 차 한잔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족의 정이 뚝뚝 묻어나는 당지천의 말 한마디.

가슴에 박히는 말 한마디에 당지독은 몇 번이라도 괜찮으니 그러자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없이 멋쩍은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젠 두 번 다시는 그럴 수 없었기에.

-턱.

당지천이 문을 닫고 나가자, 한참 동안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당지독.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내 한숨을 쉬며 작게 읊조렸다.

“원망스럽구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일찍 두각을 드러냈다면 자신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가주라는 자리를 원했다면 너를 위해 비켜줬을 텐데.

형이라는 자리에 벗어나 오롯이 너의 뒷받침을 해줬을 텐데.

……이렇게 둘이서 오붓하게 차 한잔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이렇게 늦게 나온 거냔 말이다.”

그렇기에 심히 원망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오로지 당지천 때문인 것 같아서.

질투가 났다.

같은 상황임에도 당지천만큼은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애잔했다.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탓에 앞날 창창한 동생의 앞길을 막게 되어서.

“미안하다 지천아. 마지막 순간까지 잔소리만 하다 가는구나.”

원래 계획은 당지천을 불러서 잠시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말만 해주고 보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사과 정도는 해도, 이렇게 한탄을 하거나 잔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보다도 더 빠르게.

자신보다도 더 바르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게 당지천이다.

그런데 잘못과 실패투성이의 길을 걷는 자신이 대체 뭔 자신감으로 훈수를 둔단 말인가.

“그래도 의심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거기다, 당지천은 당지혁과 달리 영민하기 짝에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할수록 당지천의 머리만 어지럽히고 제안 자체를 의심할 수도 있었기에 잘못된 행동이었다.

허나, 당지천은 경계를 할지언정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덥지 못한 형을 믿어줘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한 일.

그러니 당지독도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당지천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스릉.

품에서 고풍스러운 단도를 꺼내 든 당지독이 있는 힘껏 기를 불어넣으며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지천아, 부디 아버지를. 그리고 못난 지혁이를 잘 이끌어주길 바라마.”

망설임 없이 그대로.

자신의 왼팔을 내려쳤다.

* * *

당지독과의 대화를 나눈 이후, 전각으로 돌아오는 길.

“흐음…….”

갑작스러운 당지독과의 면담은 내게 큰 혼란을 주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러지?’

평소에 서로 견제하기보단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경쟁하던 당지독과 나.

당지독이 잘해주는 편이라고 해도 엄연히 경쟁 관계인 만큼 데면데면하게 지냈는데, 오늘 본 당지독의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대놓고 한탄을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당지독이 아예 당기룡처럼 무감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막 분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 전 모습은 대체…….

‘처음엔 속임수인가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그럴 이유가 없지’

처음엔 뭘 원하길래 대체 이러지 싶었다.

허나, 잘 생각해 보면 이게 감정에 기대는 고도의 속임수라고 보기엔 당지독의 성향과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행동으로 얻을 이익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약점만 드러내는 꼴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억측이라는 소리.

‘뭐,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당지독이 날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나에게 좋은 일이지.’

솔직히 당지독이 저러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지독이 절대 빈말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

그러니 움직일 때는 지금뿐이었다.

‘그렇다면 천열운무보는 잠시 미뤄놓고, 피마자부터 찾으러 가야지.’

무공 수련은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수련은 틀어박혀서 하는 게 맞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피마자도 구하고 쌓아둬야 할 물자를 챙겨둔 뒤,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피마자야 뭐, 신화문으로 가면 되겠고…….’

피마자의 자생지는 잘 모르겠지만, 흔한 만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구매 목록을 만들며 전각으로 돌아오던 도중.

“어딜 가셨길래 이제야 오십니까?”

천일염이 대문 앞에서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든 내 맘이야 임마.”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흉흉한데 혼자 다니시지 마시죠.”

장난스럽게 말하니까, 대뜸 정색하는 일염이.

확실히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듯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노름하러 갔다 온 녀석인데 그냥 면박을 주는 건가?

“아까 형님께서 말하길 짧으면 나흘, 길면 일주일 동안 내게 오는 영향을 전부 막아주겠다고 하셨어. 그런 거로 거짓말할 성격은 아니니 믿어도 좋을 거야.”

“짧아도 사흘이라……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겠군요.”

“뭐가?”

“공자님. 신화문주가 이른 시일 내에 공자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시면 내일 바로 가시죠.”

“나를?”

“예. 공자님을.”

“뭐 때문에?”

“자세한 건 가보면 알 겁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니 일단 가보자는 천일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피마자를 구하려면 가야 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일 일어나는 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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