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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69화 (69/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9화

만독연주와 함께 만독연으로 향하는 길.

갑작스러운 당기룡의 칭찬에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어 마음이 불안해졌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평소에 칭찬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않던 당기룡.

잘한 일이 있어도 공로를 치하한다며 돈을 쥐여줄지언정, 면전에서 칭찬하는 경우는 없었다.

‘대체 뭐 때문이지?’

그런데 오늘.

그런 당기룡이 내게 칭찬을 했다.

이상함을 안 느끼려야 안 느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단순히 심경의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당기룡에게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어쨌든 당기룡의 속내가 도통 짐작 가지 않던 상황.

곰곰이 생각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만독연주가 속내를 읽은 것인지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공자님. 가주님이 칭찬하신 일 때문이라면 고민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유 말입니까?”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습니다만, 별다른 뜻은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될 겁니다.”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제 할 말만 하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앞서 나가는 만독연주.

이유를 알면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고는 다시금 앞장섰다.

‘별다른 뜻은 없으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숨겨진 의미 같은 건 없다는 말임은 알겠지만, 있는 그대로가 뭔지 모르겠다.

대충 짐작이라도 가야 유추를 하는데 감조차 못 잡겠으니 답답할 노릇.

뭐, 그래도 숨은 뜻이 없다는 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니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일염이 이 녀석은 또 부리나케 뛰쳐나갔네.’

만독연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히 축지법 쓰듯 사라져 버린 일염이.

이제는 흰색밖에 보지 못하는 주제에 노름만큼은 절대 포기 못 하는지, 내가 안전하다 싶으면 곧장 자리를 비우고 꾸역꾸역 도박장으로 향했다.

‘도박에 색깔이 중요한 건 아닌가? 안 해봐서 모르겠네.’

“이쪽입니다.”

잡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한 만독연.

우리는 지체할 거 없이 곧장 예의 강당으로 향했다.

“아, 공자님. 오셨군요.”

내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연구원들이 자연스레 기립했다.

다들 바닥에 자료를 흩뿌려 놓은 채 연구를 하던 와중임에도 내가 단상에 올라설 때까지는 누구 하나 자료에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다들 하던 일 해라.”

단상에 올라서 장로들과 합류하자, 그제야 하던 일 하라고 하는 만독연주.

연구원들은 그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금 자료를 쳐다볼 수 있었다.

“크흠…….”

꽤 오래전부터 겪었던 일이지만, 상당히 낯간지러운 상황.

솔직히 연구를 위해서라면 막 나가는 사람들이고, 나도 허례허식은 싫어했기에 놔두라고 했다.

허나, 만독연주는 조직에는 규율이 필요한 법이고, 최소한의 행동은 해야 한다면서 연구원들에게 기립을 강요했다.

……나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기립한다면 연구비를 조금씩 추가로 주겠다는 당근과 함께 말이다.

“…….”

연구원들이 다들 제 할 일을 찾는 걸 보고 시선을 돌려 장로들에게 돌리자, 끈적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 장로들.

“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마치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고 있었기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공자님께서 광랑을 잡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광랑을 이기고 기연을 얻었다는 이야기.

이걸 강호에 소문을 퍼뜨린다면 내 이름값이 올라갈 건 세 살짜리 꼬마 아이도 알지만, 그 과정에서 혼합독을 썼기에 일부러 입을 다물기로 했다.

왜냐면 자고로 독이란, 숨기면 숨길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기에.

“6장로님의 연구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독무와 독무를 섞음으로써 새로운 독을 만든다는 연구를 한 6장로.

아까 말했듯이 독은 숨기면 숨길수록 더 강해지기에 엄연히 성과가 있음에도 연구를 완전히 끝마칠 때까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기에 자세한 내용은 만독연의 장로들과 만독연주, 그리고 나와 가주만이 알고 있었는데 광랑과의 전투에서 혼합독을 썼다고 장로들에게는 소식이 들어간 듯했다.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방법을 고안했을 뿐, 주사와 속밀독봉을 섞는 건 공자님이 하셨잖습니까. 그것보다는…… 어땠습니까?”

“주사랑 속밀독봉이면 분명 알아차리기도 전에 중독되었을 터인데 광랑이 알아차리긴 했습니까?”

“비율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속밀독봉과 주사의 혼합이라고 하여도 속밀독봉이 더 많이 들어가면 독성이 약해지는…….”

“아니, 그것보다는 공자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패를 떼어놓은 채로 쓰셨는데 내성이 있는 만큼 수월하게 버티셨습니까? 아니면…….”

감사 따윈 알 바 아니니 빨리 썰이나 풀어보라는 장로들.

이론과 실전이 다른 것은 무공뿐만이 아니었기에 심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은 천열운무보를 익혀보려던 순간 불려 나온 거다.

당연히 장로들의 관심은 귀찮기 짝에 없었으나, 말려야 할 만독연주마저 눈을 반짝일 뿐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빠르게 체념했다.

“하아,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 진정하시죠.”

그렇게 시작된 혼합독을 이용해 광랑을 상대한 이야기.

당가에서도 여러 독을 배합해 사용하는 만큼 혼합독을 사용한 전투가 없지는 않았지만, 독무와 독무의 결합을 이용한 혼합독은 처음이었기에 장로들은 숨도 안 쉰 채 이야기에 집중했다.

“허어.”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감탄을 터뜨리는 6장로.

마치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낸 사람처럼 여운에 잠겨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유익한 답변 감사합니다. 공자님.”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순전히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만약 이어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면 정신이 혼미해졌을 게 분명했기에 이 정도로 만족해 줘서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결국 무슨 문제 때문에 부르신 겁니까?”

“아, 그건…….”

만독연주가 단상 밑의 연구원을 불러서 무어라무어라 지시하자, 연구원이 강당 한구석에 놓여 있던 큰 통에서 빨간색 액체를 가져왔다.

“이건 피 아닙니까?”

“맞습니다. 절강 쪽 앞바다에 서식하는 독만(毒鰻)의 피입니다.”

독만(毒鰻).

독은 독이고, 만(鰻)은 뱀장어를 의미하니 간단히 독이 든 뱀장어라는 의미.

근데 따지고 보면 원래 뱀장어에게는 독이 있기에 아마 독성이 강한 뱀장어를 말하는 듯했다.

“가주전에서 받으셨던 보고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독만의 피는 몸에 직접 주입하면 이류 무인도 능히 죽일 수 있습니다. 허나, 실제로 이류 무인에게 음독시키니 목숨이 경각에 이르긴커녕, 단순히 배탈이 나고는 말았습니다. 처음엔 우연으로 치부했으나 연구를 거듭할수록 반복되다 보니…….”

요약하자면 혈액에 직접 넣으면 이류 무인도 죽이는 독만의 피.

그걸 음독하면 배탈만 나고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뭐, 당연하겠지. 아무리 독성이 강해졌다고 한들, 그 특성마저 변한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이건 뭐 따로 볼 것도 없는 문제.

이미 답을 알고 있어서 설명만 해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음독할 때 독의 독성이 약해지는 건 여태껏 없었던 일입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만독연주도 그렇고, 장로들도 그렇고,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인데 이 문제를 나한테 갖고 왔다는 점이다.

“사실 이전에도 사례가 몇 번 있긴 했지만, 모든 독이 일정한 비율을 가진 건 아니잖습니까. 생물독은 유독 편차가 심한 탓에 단순히 그 차이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독인지라…….”

자연에서 성분을 얻는 독물의 특성상 편차가 크다.

그리고 독성이 약한 독일수록 중요도가 낮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데…… 솔직히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가의 역사가 백 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천 년인데 아무리 보기 힘들고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한들 이걸 모르다니?

“공자님은 뭔지 짐작이 가십니까?”

“예.”

하지만 그래도 과정을 알아내지 못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왜냐면 지금 이 독들이 약해지는 건, 인간의 소화 과정과 성분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독만의 피가 단백독이라 그렇습니다.”

단백독(蛋白毒).

단백질성 독극물을 뜻하는 말로 사실 무림에서는 없는 말이다.

“단백독? 그게 무엇입니까?”

“제가 임의로 만들어낸 단어긴 합니다만, 독만의 피처럼 음독할 때만 독성이 줄어드는 독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독들은 소화 과정에서 독기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탄, 단, 지.

과학에 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필수 영양소들.

당연히 인간의 몸은 이 필수 영양소를 잘 흡수할 수 있게끔 소화를 시킨다.

그리고 뱀장어의 혈청에 있는 독.

이크티오헤모톡신(ichthyohemotoxin)이란 독은 산성 단백질로 이루어진 독으로 음독할 경우 통상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위와 장에서 분해되어 독성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물론, 소화 가능한 양을 넘어서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장어류를 먹을 때는 항상 잘 조리해서 먹어야 했다.

그러면 독에 노출될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소화 과정에서라…… 그렇군요.”

심심하기 짝에 없는 반응.

평소라면 아무리 작더라도 독에 대한 비밀을 풀면 가히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은 심심하다 못해 단출한 반응이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소화 과정의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다른 이라면 몰라도 공자님이 푸시니 당연한 일이잖습니까?”

“저희가 놀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봐왔는데 놀라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그지없는 장로들.

아까 혼합독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체통 따윈 땅바닥에 버린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굉장히 점잖은 장로님들 같아서 어색할 정도였다.

‘뭐, 됐어.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반응이 어쨌든 간에 무슨 상관 있겠는가.

지금 중요한 건 얼른 끝내고 천열운무보를 익히러 가는 것이니 그냥 넘겨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서 천열운무보를 살펴보고 또, 독무로는 무슨 독을 쓸지 고민 좀 해보고…….’

천열운무보는 한 보마다 운무를 뿌리는 보법.

만약, 운무 대신 독무를 쓰게 된다면 기존의 쓰는 양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쓰게 될 거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생산량이 많은 독이 필요할 거다.

‘산화베릴륨은 당연히 쓰겠지만, 아무래도 무색무취의 독도 필요하니까 말이야.’

마음 같아선 이전에 썼던 수은을 쓰고 싶지만, 수은은 내가 들이마시지 않으려 해도 상대에게 가기 전에 내가 다 흡수해 버릴 게 뻔하니 쓸 수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독을 구해야 했다.

‘이왕이면 독성도 강했으면 좋겠는데…… 잠깐.’

급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후보군을 생각하던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독의 이름이 있었으니…….

‘단백독이라고 하면 리신이 제일이잖아?’

그건 바로 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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