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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66화 (6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6화

“하압!”

힘찬 기합과 함께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는 광랑.

당장에라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기세 자체는 날카로웠으나, 당지천은 손에 적당한 비수를 꼬나쥔 채 막을 준비를 했다.

가히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생각이고, 단칼에 썰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챙!

모두의 예상과 달리 광랑의 검은 당지천의 작은 비수에 막혔다.

“무슨 수를 쓴 거냐?!”

화들짝 놀라서 거리를 벌리는 광랑.

분명 적지 않은 힘을 들여 검을 휘둘렀건만, 당지천이 고작 두세 걸음 물러날 뿐 수월하게 막아내자 심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무슨 수냐고? 그야 당연히…….”

광랑이 볼썽사납게 물러나자, 계획대로라는 듯 당지천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품에서 작은 철통을 꺼내 흔들어 보여주면서 답했다.

“독 아니겠어?”

* * *

“허 참.”

독이라는 소리에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는 홍유종.

이내 능멸당했다고 생각하는지 검을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겨우 한 번 막았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이 주변에 독무가 있었다면 내가…….”

화를 내다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광랑.

신경이 얼마나 둔하든 간에 아마 지금쯤 느꼈을 거다.

공동을 가득 채운 이 독기를.

“…….”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되는지 다소 굳은 얼굴로 조심히 주변을 살피는 광랑.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그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동요가 깃들어 있었다.

“……대체 언제?”

예전에 설명했듯이 몸 안에서 독성화가 이뤄지는 독이 아니라면 무인들은 대부분 사전에 독기를 알아차린다.

당연히 홍유종 또한 독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더군다나 상대가 나였기에 독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했을 거다.

“네가 공동 입구에 들어선 처음부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상대가 나였기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주 작은, 작은 빗줄기지만 한 방울 맞은 순간 이미 끝났다고 볼 수 있지.’

내 독은 독기를 느끼기 어려운 극소량일 때부터 서서히 인지 능력을 부숴 버리는 독이었으니 말이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처음부터 끓는 물 안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 뛰쳐나오겠지만, 만약 개구리를 먼저 넣고 점점 따뜻해져, 종장에는 끓는 물에 들어가게 되면 위험한 줄 모른 채 죽게 되는 걸 말한다.

그리고 지금.

광랑의 상태가 딱,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 다름없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숨은 처음부터 참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공동에 들어올 때부터 숨을 참고 있었다는 광랑.

“그래, 숨은 처음부터 참고 있었겠지.”

허나, 호흡하지 않으면 이길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패착이다.

“근데 어쩌지? 내 독은 숨을 참는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왜냐면…….”

원소 번호 80번 수은(水銀, Mercury).

‘물처럼 흐르는 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

금속과 비금속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류의 원소와 쉽게 결합하는 특징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독은 피부로 흡수되거든.”

바로 수은은 피부에 닿으면 흡수가 된다는 점이었다.

전자온도계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옛날에 자랐던 사람들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온도계가 깨지면 절대 만지지 마라’라고.

지금에야 그 유해성 때문에 금지되어 보기 힘들어졌지만, 수은 온도계가 많던 옛날엔 수은을 만지면 눈 깜짝할 새에 체내에 흡수되기에 다들 조심하라고 하는 거였다.

“뭐라?”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홍유종.

옛날이라면 모를까, 무림의 대문파들이 당가를 낱낱이 분석한 지금엔 사장된 독에 가깝기에 홍유종이 본 적 없는 형태의 독일 거다.

‘쓸 만한 건 죄다 귀하기 짝이 없는 극독이고, 나머진 방비가 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말이지.’

거기다, 내 정보를 미리 캤다고 한들, 나는 통제가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홍유종은 지금 와서 이해하려 노력해 봤자,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때마침 주사와 속밀독봉이 나와서 다행이지. 안 그럼 위험했을 거야.’

주사.

진사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은 다름 아닌 황화수은으로 벽화에서 얻긴 했으나, 원래 주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수은의 추출.

‘참 재밌지. 주사인 상태가 수은의 독성이 가장 약할 때라는 게.’

기체 상태일 때 제일 유해한 수은.

수은은 어떤 물질과도 쉬이 결합 되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잘되는 걸 하나 꼽자면 단언컨대 황이었다.

증기 상태의 수은조차도 고체 황을 뿌리면 빨려 들어가고, 독성이 줄어들 정도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즉, 반대로 말하자면 독성이 강하다고 하는 주사.

황화수은마저도 수은 중엔 최약체라는 소리다.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주사는 조금 강력한 모기향이랄까?’

주사에서 수은을 추출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열.

여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독들과 달리, 순전히 가열만 하면 주사는 수은과 황이 분리된다.

그렇게 하면 공동 전체에 피부로 흡수되는 무색무취의 수은 기체가 가득 차게 되는데, 이 기화한 수은이야말로 지금 내가 원한 독이었다.

‘사실 수은 맹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지만, 지금은 이거면 충분하니까.’

다만, 원하는 것과 별개로 수은의 맹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잘 섞이는 수은은 쉽게 화합물을 만들어내기에 독성이 훨씬 강한 무기수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무기수은조차도 약하게 보이는 강력하고 위험한, 그야말로 ‘치명적인’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유기수은도 될 수 있었다.

뭐, 지금은 만들 방법도 없거니와 만든다 하더라도 나조차도 버틸 재간이 없으니 동귀어진 용도밖에 안 되겠지만 말이다.

“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성이야 몰아내면 그만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는 홍유종.

방법은 어쨌건 독에 중독된 건 확실한 상황이라 판단했는지 재빨리 독기를 몰아내려고 했다.

‘슬슬 맛이 갔군.’

아마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을 거다.

홍유종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대체 어떤 무인이 적을 목전에 두고, 그것도 당장에라도 공격받을 수 있는 무방비한 상황에서 독기를 몰아내려 한단 말인가.

만약, 정말 독기를 몰아내고 싶었다면 부하들을 벽으로 세우기라도 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거기다, 독기를 몰아내도 문제다.

공동 내부에 독기가 가득한 시점에서 독기를 몰아내는 건 어디까지나 응급조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다만, 홍유종이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수은 때문이지.’

수은 증기는 인체에 흡수되면 뇌혈관 장벽을 뚫고 중추신경계로 들어가 손발 마비, 지각, 청력, 언어 장애 등의 신경계통 장애를 일으킨다.

즉, 지금 홍유종이 저러는 건 모두 수은 때문이라는 이야기.

물론, 다른 부위에 아예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신경계통의 작용이 제일 강할 거다.

“대체, 왜? 왜 안 되는 것? 이지?”

봐라.

서서히 자세가 무너지며 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홍유종의 모습을.

공동에 발을 들인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지를 상실한 채 단순한 행동만 반복하기 시작하지 않는가?

‘역시 속밀독봉과 섞는 게 정답이었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현실의 수은이 이렇게 빠르게 작용하진 않는다.

이게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속밀독봉의 독밀(毒蜜) 덕분이었다.

현대에 존재하고 과학적으로 성분이 해명된 화학독.

그리고 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분 모를 상상독.

그 둘의 결합은 결코 과학 법칙을 따르지 않았기에 애로 사항이 많았다.

천재라고 불리던 나조차도 이 부분에 꽤 주력했음에도 큰 성과를 보기 힘들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한 지난 5년이란 시간은 결국 그걸 가능케 했다.

‘물론, 6장로의 도움도 무시 못 하지.’

5년 전, 만독연에서 처음 만난 6장로.

당시에도 독무와 독무를 혼합해서 새로운 독을 만드는 연구를 했던 6장로가 내 세력에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주자, 곧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바로 독과 독의 융합으로 특성을 합치는 성과를 말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은 제대로 볼 수조차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독초에서 독과 꿀을 모으는 속밀독봉.

행동 양식이나 생김새 자체는 꿀벌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독의 위력만큼은 장수말벌조차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 원천은 바로 속도.

단일 개체로 보면 독성 자체는 강하다고 볼 수 없는 속밀독봉의 독.

평범한 사람과 달리 무인들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았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독이 전신에 퍼지는 속도는 무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빠른 독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단 한 마리에게 쏘여도 3분 내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니 말 다 했지.’

그런데 그런 특성을 가진 속밀독봉의 독밀과 수은 증기를 합쳤으니…… 홍유종이 버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거 6장로님께 감사할 일이 생겨 버렸네.’

상상독과 화학독을 합치는 연구는 나도 꾸준히 했고, 실질적으로 속밀독봉의 독밀과 수은 증기를 합쳤던 것도 나였다.

허나, 그 단초를 제공한 건 엄연히 6장로였고,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을 때도 오직 나를 위해서 연구 결과를 가문에 공표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사람이었으니 새삼스레 감사해졌다.

‘가서 연구비나 좀 올려 드려야겠군.’

-태앵.

“독? 독?”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슬슬 제어가 안 되는지 검조차 놓아버리는 광랑.

무인에게 있어서 무기는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물건임을 상기해 본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거다.

“미친…… 놈!”

그런 상황임도 성격이 어디 가진 않는지 주먹을 꽉 쥐며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홍유종.

“죽여! 당지천을…… 죽여…… 버린다!”

마치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 흐느적대면서도 오직 나를 죽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심히 기괴해 보였다.

“죽어라!”

최후의 힘을 끌어낸 것인지 몸을 통째로 던지며 주먹을 뻗는 광랑.

“곱게 가라.”

허나, 그 물먹은 솜처럼 느릿한 주먹이 내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빡!

몸을 내던지는 광랑을 피하며 뺨을 후려치자, 그대로 정신을 잃는 광랑.

처음에 보여줬던 노호와 같던 기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볼품없는 결말이었다.

“해치운 건가요?!”

홍유종이 쓰러지자마자 바로 옆으로 달려오는 남궁예화.

이미 독에 중독될 대로 중독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홍유종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비록 사천에 국한될지언정 실력만큼은 허명이 아니라고 소문난 광랑인데, 이 정도로 쉽게 이겼으니…… 거기다. 광랑은 한 번 물면…….”

작금의 상황이 어지간히도 답답했던 것인지, 광랑에 대한 설명을 쏟아내는 남궁예화.

이는 ‘그렇게 대단한 광랑’을 쉽게 잡아낸 게 나라면서 나를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설명이 끊기지 않는 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남궁 소저는 광랑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아시는 겁니까?”

대부분 무인이 별호가 붙고, 무림에 알려지기 시작하는 단계가 절정의 경지.

따라서 남궁예화가 아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 않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들어봤다는 이야기지 이렇게 줄줄 읊듯 상세히 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좋게 말해서 지역의 패자고, 나쁘게 말하면 순전히 골목대장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사천에 사는 현지인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자세히 아는 건 다소 이상한 일이었다.

“그, 그건…….”

난처하다는 듯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남궁예화.

누가 보면 실상 남궁예화 때문에 광랑에게 쫓겼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뭔가를 들통난 얼굴이었다.

……물론, 홍유종이 나만을 애타게 부르며 남궁예화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굴었으니 그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어…….”

딱히 곤란하게 만들려는 질문은 아니고 순전히 궁금해서 물은 건데,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당황해하는 남궁예화 덕에 공동 안에 미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던 그때.

문득 공동 입구에서 다가오는 인영들이 있었으니…….

“예화야! 다친 곳은 없느냐!”

“숙부님!”

그들은 다름 아닌, 천일염과 뇌의.

그리고 왠지 모르게 손을 흔들고 있는 신화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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