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5화
당지천의 뒤를 쫓아 공동에 들어온 광랑 일행.
당지천이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아났는지 사라져 버렸는지 텅 빈 공동을 보고 당황하기도 잠시.
정체불명의 집단에서 건네준 지도가 잘못되어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 곧장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다행히 금방 당지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지?”
“이쪽입니다.”
공동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있는 방파원의 대답에 광랑이 급히 다가가 바닥을 살폈지만, 광랑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이 맞는 건가?”
“예, 공동 내에 발자국이 이리저리 찍혀 있습니다만, 갑자기 여기서 끊어졌습니다.”
여기가 맞다는 방파원의 말에 다시금 바닥을 살피는 광랑.
허나, 무공의 경지와 추적술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기에 추적술에는 문외한인 광랑은 이번에도 아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여기가 맞단 말이지…… 너희가 와서 한번 살펴봐.”
실상 흔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반신반의한 상황.
어차피 다른 방도가 없기에 광랑은 기술자들에게 손짓해 주변을 살펴보게 했다.
그러자,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동시에 서로 의견을 나누던 기술자들이 결론을 냈는지 광랑에게 보고했다.
“바닥이 열리는 함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 밟고 계신 곳이 바닥이 열리는 곳이니 잠시 나와주시면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정?”
보고를 들은 광랑은 뜬금없이 이런 곳에 함정이 왜 있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기술자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열어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광랑이 물러난 걸 확인한 기술자들이 도구를 이용해 이곳저곳에 작업하기를 잠시.
“물러서!”
-텅!
광랑이 올라서도 문제없던 바닥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벽을 때렸다.
“후우…….”
당지천이 숨어 있는 거로 예상되었기에 독무나 암기가 튀어나올 수 있던 상황.
그런데 함정을 작동시켰음에도 아무것도 안 튀어나오자 기술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쓸모가 많구나.”
“가, 감사합니다.”
“자, 그럼…….”
한껏 경계를 끌어올린 광랑이 망설임 없이 함정 안을 들여다봤다.
“쯧, 역시 없나.”
독무를 주무기로 삼는 당지천이라면 함정을 열었을 때 당연히 독무가 쏟아져 나왔을 터,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안을 봤지만 역시나 인기척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벽에 비수를 박아서 내려갔고, 밑의 창들도 부러뜨려놨군. 한 번 빠졌다가 다시 올라온 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적술을 익히지 않은 광랑조차 이곳을 들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너, 이름이 뭐지?”
“황충이라고 합니다.”
“그래, 황충. 여기를 들여다봐라.”
광랑의 명령에 함정 안을 살펴보는 황충.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매서운 눈으로 당지천의 흔적을 쫓았다.
“아무래도 숨겨진 통로가 더 있는 듯합니다.”
“또?”
“아까 이곳을 봤을 때처럼 흔적이 증발하듯 사라졌고, 나간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지천이 허공답보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여기에 또 숨겨진 통로가 있다는 황충의 말.
그 말을 들은 광랑은 곧장 기술자들을 투입했다.
“들었지? 찾아.”
광랑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함정에 발을 들이는 기술자들.
침착한 어조로 말하는 광랑의 목소리에 조금은 안도할 법도 했건만, 그게 어디까지나 잠깐이라는 걸 경험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어디냐…… 어디냐…….’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숨겨진 기관진식의 흔적은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광창신투가 비동 내부에 가득한 함정들을 모두 숨길 수는 없었어도, 자신의 유지를 남긴 이 통로만큼은 찾을 수 없게끔 최대한 공을 들여놨으니 말이다.
“아직이냐?”
얼마나 기다렸다고 슬슬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는 홍유종.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오래 걸릴 것 같아 짜증이 치솟은 상태였다.
“거, 거의 다 찾은 것 같습니다.”
남궁예화처럼 벽화를 찾아내지도, 그렇다고 벽화를 해독할 능력도 없는 기술자들로선 통로를 발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옆의 함정에 그대로 던져질 게 분명하니 얼마 안 남았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하아.”
그 모습을 보던 황충은 한숨을 푹 쉬더니 함정 안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무, 무슨?”
“방주님께선 시간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기술자 한 명을 잡아 벽에 던짐과 동시에 작은 막대기 하나를 꺼내며 그대로 기술자에게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듯 굉음이 울려 퍼지는 함정 안.
-쿠쿠쿠쿵.
그와 동시에 함정 한쪽의 벽이 열리며 요상한 통로의 문이 열렸다.
“이, 이게 무슨?!”
기술자들이 보기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함정으로 설계된 것도 아닌 기관진식이 그저 사람 한 명 던졌다고 열린다는 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예측 못 하게 만드는 기관진식이 존재한다고 한들, 단순히 눌려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못 찾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기술자들이 다른 한 명이 던져졌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기관진식을 못 찾은 이유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광랑은 예고도 없이 좁은 함정 안으로 뛰어들어 황충의 공로를 치하했다.
“단순히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잘했다.”
기술자들이 보기엔 이상하고 이유가 어쨌든 뭔 상관이겠는가.
지금 광랑에게 중요한 건 당지천을 잡는 일이었고, 당지천이 숨어든 통로를 찾아냈단 점이었다.
“여기가 녀석들이 들어간 곳이 맞나?”
“예, 맞습니다.”
“그럼…….”
광랑이 선두에 서보라는 듯 자연스레 황충에게 눈짓하자, 황충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광랑에게 부탁했다.
“방주님. 이 동굴에서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막다른 길임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비록 자그마한 잔재주를 가지고 있다곤 하나, 당지천의 독무 한 줌에도 갈대처럼 쓰러질 만큼 약합니다.”
“그래서? 네놈은 뒤에 빠져 있겠다?”
“방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면 바람처럼 달려가겠습니다. 다만, 가는 길에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 터이니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앞장서다간 비명횡사할 것 같으니 자신은 좀 빼달라는 말.
광랑이 보기엔 다소 건방진 부탁이었지만, 확실히 황충의 수준은 당지천의 독무를 들이켜는 순간 시체로 전락할 게 분명할 정도로 나약했기에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부탁할 대상이 광랑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좋아, 허락하마.”
그러나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광랑.
기관진식을 해체할 수 있는 기술자들은 꽤 숫자가 되기에 험하게 다뤘지만, 제대로 된 추적술을 쓸 수 있는 이는 황충뿐이었으니 잠시 뒤에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왠지 이 녀석의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단 말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황충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게 최선의 수인 것만 같았다.
“…….”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당장 사지를 분질러서 앞장세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단번에 허락하자 광랑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몇몇 방파원들.
몇몇은 말만 그렇게 하고 당장 동굴 안으로 집어 던질 거라고 확신했으나, 뒤이어지는 말에 광랑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거기 너, 같이 뒤에 남아서 이 녀석이 도망치지 않는지 잘 감시해. 만약, 도망치려 한다면…….”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피워 올린 광랑이 황충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팔다리를 분지르고 데려와.”
“알겠습니다.”
도망치면 재미없을 거라는 명백한 경고.
그걸 들은 황충이 약간 겁을 먹은 모습을 보이자, 광랑은 마음에 드는 듯 등을 두드려 주고는 몸을 돌렸다.
물론, 그걸 본 방파원들은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 의아해했지만 말이다.
“앞장서라.”
비동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굴 안에도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기에 기술자들을 앞세운 광랑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방파원들도 차례로 내려와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방파원마저 동굴 안으로 사라지자, 지루하다는 눈으로 곧장 자리에 주저앉는 방파원.
‘대체 뭔 술수를 부렸길래 방주님이 저러지?’
갑작스럽게 여기에 남은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만에 하나 황충이 도망칠 거라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비동을 쉽게 탐사를 했고,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들 비동 주변에 널린 게 무인들이다.
방주인 광랑조차도 운이 없으면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곳이 이곳인데, 수준이 한참이나 낮은 황충이 어떻게 도망칠 생각을 하겠는가.
무엇보다 돌아가는 길에 함정이 단 하나만 남아 있어도 죽을 게 뻔했다.
그런 상황인데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듯한 황충이 도망칠 리가 있겠는가.
“뭐, 당지천을 피하게 됐으니 좋은 게 좋은 거려나? 야, 근데 너 때문에 남은 거니까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봐라…… 그러고 보니 추적술은 어디서 배운 거냐?”
심심한 탓인지 황충에게 말을 거는 방파원.
허나, 황충은 그런 방파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혼잣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었다.
“순전히 가짜로 치부하고 있었건만, 진짜였다니 의외군. 거기다. 진짜는 당지천이 발견한 것 같으니 좋지 않군…… 아니, 그건 딱히 상관없는 일이긴 한가. 어차피 빙궁으로 보낼 터이니.”
방파원이 듣기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어나가는 황충.
한동안 방파원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로 계속 말을 이어나가더니 결론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는 여기 있을 이유는 없겠군.”
“뭐라고 지껄…….”
방파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충이 품에서 막대기를 꺼내 휘두르자, 갑자기 벽 한구석으로 날아가는 방파원.
-쿵!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질 때쯤엔 이미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린 채 절명한 상태였다.
그걸 확인한 황충이 이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찢자 미묘한 진동음과 함께 함정 안이 빛으로 가득 찼고…….
-위이이잉.
그 빛이 사그라질 때쯤엔 함정 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방파원의 시체만이 남겨져 있었다.
* * *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꿈에도 모른 채 당지천의 뒤를 쫓아 동굴 안을 나아가던 광랑.
“저기, 공동이 보입니다.”
“드디어…….”
한참을 따라온 끝에 정체 모를 공동을 목전에 두자, 감격스러움을 내비쳤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쥐새끼 같은 놈.”
“저…… 방주님. 만약 당지천이 여기 숨어 있었다면 공동이 하얀 독무로 가득 차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럴싸한 조언이었다만, 안에서 녀석의 기세가 느껴진다. 하얀 독무가 없는 건 아마 아까 독을 다 썼거나 아끼려 하는 것이겠지.”
백독멸악이라고 불리는 당지천이 하얀 독무를 쓰지 못한다.
이는 당지천이 밑천을 드러냈단 의미와 일맥상통했기에 광랑은 단숨에 검을 빼 들며 공동에 들이닥칠 준비를 했다.
“모두 숨을 참아라.”
물론, 상대가 상대인 만큼 방비는 확실히 한 채로 말이다.
-챙!
공동에 발을 들이밀기 무섭게 날아드는 표창.
마치 가벼운 인사라도 하듯, 힘이 제대로 쏠리지 않은 암기가 날아오자 가볍게 쳐낸 광랑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바보 같은 놈. 보아하니 얼마 남지 않아서 다른 걸 썼나 본데 나였다면 그렇다고 해도 하얀 독무를 깔아놨을 거다. 왜냐면…….”
자신감에 찬 얼굴로 기수식을 취한 광랑이 단번에 날아오르듯 당지천에게로 달려들었다.
“발버둥 칠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니까 말이다!”
광랑의 몸이 공중에 부유하는 찰나의 순간.
사실상 붙는 순간 지는 당지천에겐 마지막 반격의 기회임에도 당지천은 암기를 던지지도, 그렇다고 자리를 피하지도 않은 채 그저 광랑을 보고 있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인데.”
씨익.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