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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63화 (63/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3화

호흡.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

‘숨이 멎는다’라는 말이 죽음과 같은 말인 이유는 절대 오랫동안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어서다.

‘내가 독무를 주로 쓰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비단 살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무공을 펼침에 있어서 호흡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나는 독무를 제일 선호하는 편이었다.

왜냐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그런 장점이 있음에도 독무가 당가에서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단점이 명확해서다.

‘원래 독무는 견제용에 불과하니 말이야.’

그건 바로 호흡하지 않으면 치명타를 줄 수 없다는 점.

물론, 호흡하지 않아도 중독시킬 수 있는 독무도 있지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건 정말 극소수의 극독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야, 대외적으로 녹주석 가공법을 알아낸 게 나라서 녹주석을 몰아서 받는 실정이지만…….’

지금 내가 주로 사용하는 독은 극독으로 분류되는 산화베릴륨.

녹주석 광산 개발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습격을 받았기에 공식적으론 비밀이지만, 내가 소유한 녹주석 광산에서 나오는 녹주석 덕에 이렇게 뿌려댈 수 있는 거다.

‘다른 이들은 엄연히 다르지.’

허나, 산화베릴륨이 아닌 일반적인 독들.

당가에선 대게 청산가리같이 반수치사량이 1㎎/㎏ 이하거나 절정 고수들에게 통하는 독을 극독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극독이 아닌 평범한 독들의 경우, 순전히 견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다, 그것마저도 분석이 다 되어 있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일전에 언급했듯이 대문파들은 당가의 독을 쉼 없이 분석했다.

당연히 그런 독무들 또한 연구가 끝난 상태고, 지금에 이르러선 견제조차도 되지 않는 하등 쓸모없는 독이 되었다.

어쨌든, 내가 백독멸악이라는 별호를 받을 만큼 산화베릴륨을 주로 쓸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분석되지도 않았고, 극독임에도 차고 넘쳤기에 막 뿌리고 다닐 수 있던 거고, 그만큼 효용성이 있었기에 여태껏 잘 써온 것인데, 지금처럼 숨을 안 쉬어버리면 산화베릴륨도 쓸모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혹시 당 소협께서도 숨겨놓은 한 수가 있으신 건가요? 예를 들자면, 당 소협만의 특별한 암기라든가?”

방법이 있다고 하자, 뭔가 휘황찬란한 걸 생각하는지 눈을 반짝이는 남궁예화.

뭐, 당가의 사람들이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고 하면 나도 암기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만, 이번엔 틀렸다.

“그런 암기는 없습니다만…….”

뭘 기대했는지 시무룩해지는 남궁예화.

대충 짐작해 본다면 호기심이 많은 만큼 당가의 특이한 암기를 기대했던 듯했다.

“있었어도 큰 효용은 없었을 겁니다.”

설령 그런 암기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효과를 보긴 어려웠을 거다.

기의 수발이 자유로운 것과 자유롭지 못한 것.

그 둘의 차이는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암기를 쓰면 홍유종 상대로는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치명적인 피해를 줄 만큼 대단하진 못했을 거다.

“그럼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광랑을 상대하실 예정인가요?”

“독무입니다.”

“예? 독무요?”

“예. 독무입니다.”

아까 안 통한 걸 또 쓴다고 하자, 내 의도를 살피려는 남궁예화.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만큼 일일이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단지, 짧게 요약해 줄 뿐.

“입과 코로 들이켜지 않으면 피부로 들이켜게 하면 그만입니다.”

나의 한계를 실감한 지난 5년.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했고, 그 범주 안에는 당연히 독에 대한 개량도 있었다.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곳의 독을 화학 독과 상상 독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주력한 것은 바로 화학 독과 상상 독의 융합.

일전에 당기룡이 산화베릴륨을 더욱 치명적이게 개조한 것처럼 화학적 특성을 유지한 채로 독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익혔다.

즉, 지금 나는 독성만 극한으로 끌어올린 화학물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딱히 챙겨 다니진 않았는데, 벽화하고 기관진식에서 나와서 참 다행이야.’

그런데 때마침 비동을 탐사하며 나온 독들.

이것들을 잘 조합하면 홍유종은 충분히 상대하고 남는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피부로 흡수하는 독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독무를 뿌려 피부로 흡수하게 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지 남궁예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됩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물질.

그것이 내 손에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통제가 안 되어 위험할 테니 소저께서는 함정 안에 숨어계셨으면 합니다.”

숨을 쉬지 않아도 중독시키는 극독.

그런 걸 알면서도 평소에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보관 문제도 문제지만, 혼자가 아니면 쓰기 어려운 독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제어 가능한 산화베릴륨과 달리, 이건 제어가 아예 불가능했으니까.

“여기에 함정이 있었나요?”

아까 공동에 들어갔을 때, 주변을 살펴보느라 함정이 있던 건 보지도 못했는지 의문을 표하는 남궁예화.

공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도통 이해 못 할 말만 들었는지 심히 답답해하는 모습이었다.

“일염이가 금방 닫아서 못 보셨겠지만, 여기 떨어지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설명하기보단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비수를 든 채로 떨어지는 함정이 있던 위치로 가자, 당연하다는 듯 좌우로 갈라지는 바닥.

“당 소협?!”

남궁예화의 단말마 비명과 함께 떨어지는 동시에 비수를 벽면에 박아 넣었다.

“후…….”

계획대로긴 해도 밑을 내려다보니 조금 아찔한 상황.

사람 세 명 높이의 함정에 독 발린 창이 가득한 게 잘못 떨어졌다간 그대로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을 거다.

‘다행히 다른 함정은 없었나 보네.’

행여나 떨어지는 동안 화살 같은 게 같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다시 뛰어오를 준비도 했지만, 추가 함정은 없었다.

몇 번 더 확인한 뒤에야, 품에서 비수를 몇 개 더 꺼내 발판을 만들고, 이어서 비수로 밑에 박힌 창들을 부러뜨려 발 디딜 곳을 만든 다음 남궁예화에게 손짓했다.

“괜찮으니 들어오시죠.”

독이 발린 창살이 촘촘히 박힌 바닥으로 뛰어내리란 소리가 좀 섬뜩할 수도 있지만, 조심조심 발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남궁예화.

그래도 남궁세가의 여식인 만큼 무공을 익히긴 했는지, 몸놀림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공동에 이런 함정이 있었다니…….”

“저도 직접 들어온 건 처음입니다.”

일염이가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면 위치나, 닫는 법도 전혀 몰랐을 거다.

“어쨌든, 이번에 제가 만들 독무는 좀 치명적입니다. 피독주가 있다고 하여 결코 안심할 수 없으니 나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벽을 넘었다면 독무를 조종해서 통제했겠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니 남궁예화 보고 함정 안에 있으라고 했다.

“차라리 당 소협도 안에 같이 숨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숙부님께서도 천리미향의 향을 아시니 금방 오실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광랑이 이곳을 찾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허나, 만약 함정에 숨어 있다가 위치를 발각당하게 되면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비명횡사할 게 뻔합니다.”

퇴로는 막히고, 길이라곤 오직 위 하나뿐인 상황.

그 상황에서 내가 이길 방법은 단언컨대 없었다.

“……소저, 듣고 계십니까?”

그런데 막상 안 된다고 설명해 주자, 뭐에 홀린 듯 한쪽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예화.

“욕심에 눈먼 자, 은자를 탐하려 금빛 강을 헤엄쳐 건너…….”

불러도 듣는 둥 마는 둥, 홀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저?”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봐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남궁예화.

뭔가를 알아냈는지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당 소협. 아까 분명 저보고 여기 숨어 있으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이 함정을 조작하실 줄 아시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빨리 해주세요!”

“소저, 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닫으면 다시 여는 법은 몰라서…….”

“괜찮으니까 빨리요!”

뭔지 모르겠지만, 확신이 있어 보이는 남궁예화.

긴박한 상황엔 조용히 있다가,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걸 보니 뭐든 있을 법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일염이와 남궁공자가 잘 볼 수 있게 함정 입구 쪽에 천리미향을 좀 더 발라놓고, 곧장 내려와 비수를 꺼내 들었다.

“후…….”

이전에 일염이가 함정을 닫을 때, 기를 불어 넣은 채로 암기를 던졌었다.

그게 순전히 깊게 박혀 들어가게 하려 했던 건지, 아니면 무슨 장치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는 심호흡하며 암기에 기를 불어 넣고 던졌다.

-쾅!

비수가 박히자마자, 일전과 같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닫히는 천장.

약간의 틈새도 없는지 곧장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쿠쿠쿠궁.

우리의 바로 뒤쪽에서 들려오는 굉음.

“동굴?”

이전의 비동의 문이 열렸듯, 이번엔 벽이 갈라지며 웬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 * *

홍유종의 시야에서 당지천과 남궁예화가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둘이 향한 곳이 막다른 곳임을 앎에도 홍유종의 몸이 달아올랐다.

“얼마나 남았지?”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

누구에게는 찰나 같은 짧은 시간임에도 기다림에 지친 홍유종에게는 가히 영겁과도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해독제라도 구해 오는 건데…….’

백독멸악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통로에 흩뿌려 놓은 하얀 독무.

마음 같아선 숨을 참고 단숨에 돌파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저걸 곧이곧대로 들이마셨다간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기관진식은, 저것들로 해결하지만, 독무는 생각보다 너무 까다롭군.’

처음에는 당지천을 벽을 넘지 못한 애송이라 얕잡아봐서 순전히 숨을 참으면 된다 생각했다.

허나, 예상외로 당지천이 풍기는 기세가 강렬하기 그지없어서 단시간에 끝을 보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홍유종은 일 보 후퇴하기로 했다.

‘너무 조바심 낼 필요 없지. 어차피 궁지에 몰린 건 내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니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

이미 몰아넣은 상황이기에 일단 물러나기로 했고,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판단이었다.

……단지, 조금 진정이 안 될 뿐.

그 모습을 부하 한 명이 봤는지 홍유종에게 말을 걸었다.

“방주님.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실지 정하셨습니까?”

“어.”

일이 끝나면 도망갈 곳.

비급과 영약에 눈이 멀어 의뢰를 받아들였지만, 방주 자리에 앉아 있는 만큼 아무 생각이 없던 건 아니다.

아무리 세가 약해졌다고 한들, 당가는 엄연히 대문파.

이미 독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세운 대문파들과 달리, 일개 중소문파에겐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떻게 한낱 중소문파가 당가를 건드리고도 사천에 있길 바라겠는가.

“우리는 남만으로 간다.”

“남만이라…… 당가에서 쫓아오기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천에서는 그리 멀지 않으니 나쁘지 않군요.”

합당한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

홍유종은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좋은 의견이긴 하지. 그래야 너희가 설득될 테니까 말이야.’

원래 보상은 홍유종에게만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홀몸으로 당지천을 잡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 판단한 홍유종은 부하들에게 개별적인 보상이 있고, 비급과 영약을 나누겠다며 감언이설로 유혹했다.

‘날 위해 당가의 시선을 끌어보라고. 혹시 알아? 진짜로 당가에서 봐줄지 말이야.’

물론, 나눌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해제했습니다!”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는 말에 벌떡 일어서는 홍유종.

부하들을 이끌고 당지천이 들어간 문까지 단번에 뛰어갔다.

“문이 열렸던 흔적이 있습니다.”

“녀석도 멍청이가 아니라면 대비를 해놨을 거다. 조심히 들어가자고.”

기대감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냉정함을 잃지는 않은 홍유종.

그런 홍유종이 문도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문을 열어젖히자, 안쪽에서 보이는 건…….

“왜 아무도 없지?”

예상했던 독무나 당지천의 모습이 아닌 그저 텅 빈 공동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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