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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60화 (6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0화

폭풍 전야와도 같던 장보도 발굴 지역.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다.

“청성파가 갑자기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아미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알기에 경거망동하지 않던 대문파들.

부딪히면 필시 큰 싸움이 일어날 게 분명한데도 이젠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움직이는 청성파와 아미파를 보자, 발굴 지역은 난리가 났다.

“빨리 상황부터 파악해!”

“우리는 청성파 뒤를 따른다! 모두 움직여!”

상황 파악을 하든, 아니면 그럴 겨를도 없이 그들의 뒤를 쫓든, 저마다의 이유로 급히 움직여 아수라장이 된 각 진영.

물론, 그 속에서 한가로이 움직이는 단체가 없지는 않았다.

“방주님. 청성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할 시간인가.”

청성파가 움직였다는 소리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한 남자.

그는 바로 쇠도 씹어 먹는다는 금서방(金噬幇)의 방주인 광랑(狂狼) 홍유종이었다.

“오오, 드디어 광랑 대협의 무공을 배견할 기회가 오는 겁니까?”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만큼 사천에 그 명성이 자자한 홍유종.

거기다. 사도련에 가입된 금서방이라는 문파를 이끄는 만큼, 꽤 많은 낭인이 홍유종에게 같이 움직이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히 거절할 일.

본디 장보도는 예민한 주제인 만큼 금서방 소속이 아니라면 내치는 게 맞음에도 홍유종은 이들을 받아들였다.

마치 어디 쓸 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쎄. 자네들을 보면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군.”

“하하하, 명성이 자자한 광랑 대협께서 그리 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소 의미심장한 홍유종의 말.

허나, 순전히 입에 발린 말로 생각한 낭인들은 그저 예를 차리고는 홍유종의 뒤를 따랐다.

“문은?”

“이미 열었습니다. 또한, 이야기하셨던 대로 인원 몇을 먼저 들여보냈습니다.”

“잘했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낭인들과 조금 더 뒤에서 따라오는 방파원들.

그들을 한 번 돌아본 홍유종은 딱 생각했던 상황이었기에 미소를 지으며 동굴로 들어섰다.

‘이런, 몸이 달아오르는군.’

밖에서는 여유롭게 기다렸던 것과 달리, 막상 동굴에 들어서니 홍유종의 마음은 급해졌다.

왜냐면…….

‘당지천만 죽이면 나도 더는 숙이고 있을 필요가 없어.’

누군가에게 받은 정체불명의 의뢰.

그걸 완수하면 자신의 입지가 더 단단해질 것이 분명했기에.

[당지천을 죽여라.]

장보도가 발견되기 한참 전에 날아온 영문 모를 쪽지 하나.

처음에는 장난으로 여겼지만,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튀어나오는 쪽지에 단순한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두려워진 홍유종은 허공에 대고 미친 듯이 ‘그러겠소’라고 외쳤다.

[사천에 장보도가 나타날 거다. 지도를 같이 보낼 터이니 예정된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당지천을 죽여라.]

그러자, 새로운 쪽지와 함께 나타난 환단 하나.

정체 모를 환단이 독일 수도 있기에 망설일 법도 하건만, 어차피 쪽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주는 시점에서 죽이려면 진작에 죽였다는 생각에 단숨에 복용했다.

‘무려 10년짜리였지.’

그런데 웬걸.

그 환단은 무려 10년에 달하는 공력을 얻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영약이 아니던가?

[일이 끝나면 네게 어울리는 상승 무공과 영약을 주마.]

거기다, 방금의 영약은 단순한 선금이었다는 의문의 쪽지.

그걸 본 홍유종은 무공을 준다는 소리에 눈이 돌아가 당지천을 죽이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다.

“오셨습니까. 방주님.”

“왜 다들 들어가지 않지?”

“앞에 기관진식이 다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체하는 중입니다.”

비동 입구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방파원들.

비동 안쪽에서 기관진식을 해체하는 업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꽤 솜씨가 좋은 인원이라 일각이면 3개를 해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백, 어쩌면 수천이 넘을지도 모르는 무림의 기관진식을 일각에 3개씩이나 해체하는 건 참으로 놀라운 속도였지만, 홍유종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느려.”

“인원들을 쥐어짜서 좀 더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작업 속도를 올리겠다고 하자, 고개를 젓는 홍유종.

마음이 급하기에 여유롭게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체가들을 핍박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쓸모없는 것들을 써야 할 때가 조금 빨리 왔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열리는 길이라면…….”

잠시 말끝을 흘린 홍유종이 흉흉한 기세를 뿜기 시작하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먹이면 금방 열리지 않겠어?”

“서, 설마?!”

“생각은 나중에! 일단 도망칩시다!”

“어디로 가란 말이오?! 이미 포위당했잖소!”

낌새를 눈치챈 낭인들이 재빨리 산개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움직이기 무섭게 방파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리고…….

“으악!”

홍유종의 손에 잡혀 통로 안으로 집어 던져지는 낭인 하나.

-피슝! 피슝! 피슝!

순식간에 쏟아지는 독화살 세례에 짧은 비명도 남기지 못한 채 그대로 벌집이 되어 사망했다.

“세,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횡포요!”

“어차피 너희도 좀 괜찮은 거 나왔다 싶으면 먹고 튀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선수를 쓰는 거다.”

항의하는 낭인들의 말을 묵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홍유종.

그러면서 해체가들에게 지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에 기관진식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위치 선정해라. 만약, 제대로 못 하면 네놈들부터 집어 던져주마.”

“아, 알겠습니다.”

침을 꿀떡 삼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해체가들.

해체가들을 앞세운 홍유종은 파죽지세로 비동을 공략해 나갔고, 그동안 반항하는 낭인들은 가장 먼저 제압당해 함정의 밥이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 역할에 충실하기만 했던 해체가들이 핼쑥한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갑자기 왜 멈추지?”

“저, 방주님. 이 앞은 독무가 나오는 함정입니다.”

“독무라…… 확실히 독무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렵겠구나.”

해체가들은 행여나 무능하다며 해코지당할까 봐 무서웠지만, 다행히 홍유종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건, 홍유종에 손에 잡혀 있던 낭인 또한 같았다.

“왜 안도하지? 독무라고 내가 안 집어 던질 거 같아?”

“아, 알잖소. 독무는 우리를 던져 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오!”

“그래?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어김없이 손에 들고 있던 낭인을 집어 던지는 홍유종.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명만 집어 던졌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는 점이었다.

“독무도 결국 독이잖아. 사람이 숨 쉬어서 다 빨아들이면 해결되지 않을까?”

“끄아아아악!”

낭인들은 무어라 반박도 하기 전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연신 비명을 질러댔고, 홍유종은 그 비명을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독무는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간단하지. 어차피 독이라는 건 소모품이니까 말이야.’

상대가 백독멸악이든, 독왕이든 간에 어차피 독은 소모품.

방파원들을 갈아 넣으면 손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홍유종이었다.

“목 씻고 기다려라. 당지천. 아무래도 네놈의 목은 조금 오래 씹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 * *

“에취!”

수상할 정도로 기관진식에 대해서 잘 아는 일염이와 비동을 얼마나 탐험했을까.

갑작스럽게 드는 오한에 재채기가 절로 났다.

“으으으,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갑자기 오한이 드네.”

“관심도 없는데 공자님 이야기를 누가 합니까. 비동은 위험한 곳이니 긴장하시죠.”

누가 내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까 대뜸 면박을 주는 일염이.

웃자고 한 농담이었는데, 맞는 말이긴 해서 반박하진 못했다.

“이번 함정은 독무가 나오는 함정입니다.”

“오, 이번 거도?”

일행들이 잠시 물러난 걸 확인한 일염이가 기관진식을 작동시키자,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독무.

오면서 몇 번이나 겪었던 함정인 만큼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일단 독은 위험하진 않은 거네.”

독무의 바깥에서 피독수를 낀 채로 독성을 가늠하자, 별로 위험한 독은 아니었기에 나는 대뜸 독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흡하, 흡하.”

“무슨 독인지 아시겠습니까?”

“흠, 이 감미로운 달달함과 향기로운 꽃내음 속에서 감출 수 없는 텁텁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이건 꿀과 독을 같이 모은다는 속밀독봉의 독밀이야.”

꿀벌임에도 독에 면역을 가진 독봉.

실제로 본 건 만독연에서뿐인데, 꿀벌임에도 속도가 전서구보다 빠르고, 독초에서 나는 독을 꿀과 함께 모으는 성질을 가진 벌이었다.

“…….”

무슨 독인지 알려줬음에도 가만히 있는 남궁공자.

나는 그런 남궁공자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번엔 왜 가만히 계십니까?”

“속밀독봉의 독밀은 대체재가 많아서 쓸모가 없다.”

“그러십니까…….”

귀한 독은 아니라서 필요 없다는 남궁공자.

나 또한 구하기 어렵진 않았으나 간만에 독식하는 독이라 기쁜 마음으로 독무를 들이마셨다.

“흡하, 흡하.”

마음껏 독무를 들이마시자,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보는 남궁공자.

필시 수거할 만한 독무가 나오지 않아서 심술이 났을 거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처음에 벽화를 긁어낼 때만 해도 어떤 독이든 남궁공자랑 나눠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나도 의선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니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허나, 막상 나누려고 보니 약재에 한해선 남궁공자의 욕심이 밑도 끝도 없는지, 값비싼 약재를 보면 눈이 돌아가서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 나온 견혈봉후도 반이나 가져가고 말이지.’

예를 들자면, 처음 비동에 발을 들여놨던 때.

독화살에 묻은 게 견혈봉후란 걸 알게 되자, 남궁공자가 냉큼 독화살을 전부 가져가는 게 아니던가?

-지천아,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뇌의 님. 벽화에 있는 주사는 뇌의 님이 더 많이 가져가셨잖습니까. 이건 제가 요긴하게 쓸 테니 내놓으시지요.

-어허, 나랑 의절하고 싶지 않으면 손대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전부 다 뺏길 만한 상황.

남궁공자랑 둘이서 아등바등하던 상황에서 남궁예화의 중재가 없었다면 아마도 다 내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숙부님…… 그래도 저희 어딘지 모를 곳에 위험한 곳에 들어왔는데, 조금만 긴장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약재를 챙기는 것도 좋지만, 당 소협의 도움이 없었으면 찾지도 못했을 곳이니 너무 욕심내시지 말아주시고요.

-예화야, 그렇지만 벽화 뒤의 글자는 네가 풀었잖느냐. 그리고 문을 연 것은 나다.

-예, 그렇지요. 그런데 그게 숙부님이 더 많이 가지실 이유는 아니잖아요.

남 보기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남궁공자를 압박하는 남궁예화.

그런 남궁예화의 시선을 받던 남궁공자는 결국 포기 선언을 했다.

-예화 네가 그런다면 선심 써서 반은 양보하마.

물론, 욕심쟁이라 반은 챙겨갔지만 말이다.

‘뇌의 님이야 가까운 사이기도 하고, 직업병이니 이해하긴 한다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남궁공자.

솔직히 남궁공자가 없었다면 이 금광에 들어올 생각도 안 했을 거고, 어지간히도 희귀한 게 아니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어서 웬만하면 내주려고 했건만, 너무 다 가지려고 하니 빈정상할 뻔했다.

그때마다 남궁예화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참으로 선녀 같은 여인이야.’

다시금 보게 되는 남궁예화의 모습.

밖에선 단순히 남자를 홀려 이용하려는 여인인 줄 알았건만, 막상 비동에 들어와 보니 개념 차고, 참 마음씨 고운 여인이었다.

“공자님. 저기에 문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회상을 하며 독무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앞을 가렸던 독무가 점차 사라지자, 여러 장식이 가미된 문이 하나 나타났다.

“저기가 끝인가 보구나.”

딱 보아도 뭔가가 있을 법한 웅장한 문.

문 앞쪽에 갈림길이 있어서 좌우를 살펴봤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일행들은 문 앞에 모여서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별도의 장치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로 엽니까?”

“어, 들어가 보자고.”

망설일 것 없이 일염이를 앞세운 채 문을 열자, 나타난 건 커다란 공동이었다.

그것도…….

“와…….”

가부좌를 틀은 채로 죽었는지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백골과.

한눈에 봐도 귀한 게 들어 있을 법한 상자가 있는 거대한 공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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