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9화
당지천이 비동의 입구를 발견한 시각.
“…….”
“…….”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말없이 노려보고 있는 청성파의 장로, 벽곡단과 아피마의 장로.
작게는 청성파와 아미파의 경쟁이어도, 크게는 무림맹과 사도련의 싸움인데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니, 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했다.
-정말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일을 제대로 벌일 거면 제자들끼리 부딪히게 해 분란을 만드는 게 낫지 않겠나?
벽곡단과 기 싸움을 위장하며 전음을 나누고 있는 아미파의 장로.
서로 대치만 한 채로 시간을 죽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라. 이미 손을 다 써놓은 상태다.
허나, 그런 아미파의 장로와 달리 벽곡단은 여유롭기만 했다.
-일전에 조직에서 손을 다 써둔 상태다. 얼굴은 모르지만, 사도련 쪽 인원도 제 역할을 다할 터이니 때만 기다리면 된다.
이미 준비는 다 끝났다는 벽곡단.
그 말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던 아미파의 장로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 계획에서 얻는 게 대체 뭐지?
-너도 알잖느냐. 기존에 찾아냈던 기연을 우리가 이 계기를 통해 양분해 청성과 아미에 힘을 실으며 그와 동시에 우리의 입지를 키워 영향력을 늘리는 계획이다.
-내 말의 뜻이 그게 아닌 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
확실하게 이유를 알려달라는 말.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벽곡단의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조직의 계획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거늘…….’
굳이 몰라서 말을 돌린 게 아니라 한 번 주의를 준 것인데,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니 벽곡단은 살짝 화가 났다.
-원래라면 불경한 일이기에 대답해 주진 않으려 했건만, 그쪽의 의지가 그렇다면 좋다.
그러나, 그걸 상대도 모르진 않았기에 욕먹을 각오를 하고 물어봤다고 생각해 답변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첫째로 강호의 이목을 이쪽으로 쏟는 것.
-그건 알고 있네. 다른 조직원들이 수월하게 움직이게끔 이목을 가리는 것 아닌가.
-맞네. 무림맹과 사도련이 동시에 움직였으니 당연히 그만큼의 공백이 생길 터, 움직이지 않은 가문이나 문파도 몇 있지만, 나머지 지역에는 조직에서 손을 쓰기로 했다.
-알겠네. 그럼 다음은 뭔가?
-둘째, 당지천의 사망. 지도를 받아서 알 테지만, 이곳엔 기관진식이 깔린 비밀 통로가 있다.
-당지천이라…… 기관진식에 당하는 걸 노리는 건가?
-그러길 바라긴 하나, 순전히 목표일 뿐 꼭 죽지 않아도 괜찮다. 이전에 답사했을 때 확인했지만, 함정에 묻어 있던 독들이 하나같이 극독이었다. 아직 벽을 넘지 못한 당지천의 수준으로는 최소한 부상, 잘하면 사망일 터이니 불구로 만들면 성공이다.
당지천을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는 게 목적이라는 벽곡단.
그걸 듣고 있던 상대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런데 아까 봤을 때, 뇌의가 같이 간 것 같던데 그건 무리지 않겠나? 거기다, 그것마저 당지천이 비동을 찾아냈을 때의 이야기잖나.
-비동을 찾는 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께서 안배를 해두신 것 같다. 무조건 찾을 거라 단언하셨으니 말이다.
-그렇군. 그렇다면 뇌의는 어떻게 하는가?
-원래 기연이 있던 자리에 함정을 설치해 놨다. 뇌의가 함께 들어갔으니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고, 함정이 정상적으로 발동되면 뇌의와 당지천은 격리될 것이다.
-그럼 그때, 우리가 덮치는 건가?
-아니, 우리는 계획대로 기연이 마련된 장소로 이동한다. 얽힐 필요도 없고, 얽혀서도 안 되니 기연을 찾고 나선 곧장 자리를 이탈한다.
-왜지? 뇌의만 없다면 당지천쯤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나?
당지천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젓는 벽곡단.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만, 만약 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굳이 이런 일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건 세 번째 이유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라니, 그건 또 뭐지?
-그건…….
벽곡단이 설명을 이어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벽곡단의 머리 위를 배회하는 새 한 마리.
웬만한 비수가 닿지 않을 거리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본 벽곡단은 한가하게 이야기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당지천이 비동에 진입한 듯하군. 우리도 움직이지.
말릴 틈도 없이 자리를 떠나는 벽곡단.
조직의 세가 강성한 청성파와 달리 아미파는 세가 약해서 청성파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기에 바삐 움직였다.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건만…….’
그 모습을 보던 아미파의 장로는 허탈한 듯 벽곡단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도 자신의 할 일을 하러 떠났다.
* * *
인생이란 자고로 의외의 연속인 법.
계획한다고 한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언제나 예상외의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지금.
내게 또 하나의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쿠쿠쿠쿵.
굉음을 내며 원래대로 돌아오는 동굴 벽.
언제 통로가 있었냐는 듯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그 너머에 비동이 있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확인했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이게 왜 여깄냐.”
이미 장보도는 포기하기로 했던 상황.
자연스레 장보도를 찾으려는 생각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긴 것인데, 얼떨결에 비동을 찾아버렸다.
“숙부님. 이거 혹시 닫히면 다시 안 열리는 걸까요?”
“기다려 보아라.”
남궁예화의 말에 따라 다시금 아까의 자리에 손을 넣어보는 남궁공자.
-쿠쿠쿠쿵.
그러자, 비동의 문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열렸다.
“아무래도 계속 사용 가능한가 보구나.”
“…….”
문이 다시 열림을 확인하자, 조용해진 일행들.
자고로 견물생심이라고 했지 않은가.
아무리 장보도를 찾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들, 비동을 발견한 시점에서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문에서 말하길 이번 장보도는 진짜랬어. 거기다 비동도 찾았으니 지금 들어간다면 찾을 확률이…….’
나 또한 사람이기에 욕심이 났고, 내심 꽤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지만, 조금 골똘히 생각해 보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확률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결한다고 해도, 비동 자체도 위험해.’
비동(秘洞).
비밀스러운 동굴을 지칭하는 단어.
무협지에서는 대게 기연을 얻는 장소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단 보이면 선 진입, 후 판단을 하는 곳의 대명사였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비동의 이야기.
‘장보도를 통해 찾은 기연은 언제나 그만한 시련이 있어. 쉬운 거라면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조금만 어려워져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이렇게 찾은 비동의 경우, 비동을 만든 전대 고수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자신의 유산을 받길 원치 않기에 보통 기관진식으로 도배해 놨다.
즉, 판타지로 치자면 던전이라는 소리.
‘거기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모를까 기관진식이 상대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가능성이 커.’
심지어 상대가 무생물이면 독은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면 모를까,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선뜻 안으로 발을 들이밀 순 없었다.
“저…….”
허나, 그런 내 생각과 달리 기대에 찬 어조로 운을 떼는 남궁예화.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뒷말을 듣지 않아도 뻔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안 됩니다. 남궁 소저. 저희가 처음 여기에 온 목적을 상기해 보시죠.”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칼같이 잘라 버리자, 머쓱한 듯 자신의 손을 매만지던 남궁예화가 조심스레 말했다.
“위험한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 번쯤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요? 정말 흔치 않은 기회잖아요.”
안전주의적인 성격으로 보이던 남궁예화가 위험한 걸 알면서도 들어가 보자고 하는 상황.
처음에는 기연에 욕심을 내나 싶어서 눈가를 좁혔는데, 남궁예화가 대화하는 와중에도 벽화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게, 아무래도 이름 모를 문자에 눈이 돌아간 것 같았다.
‘기연에는 욕심이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긴 너무 위험하다.’
불투명한 면사 너머, 한껏 눈을 반짝이고 있는 남궁예화.
평소라면 남궁공자와의 연이 있는 만큼 함께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뇌의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설득해 봤자, 결국 결정권자는 남궁공자였기에 두 번 말하지 않으려 남궁공자에게 말을 돌렸다.
무엇보다 남궁공자가 남궁예화를 아끼는 만큼, 당연히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걸 만류할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흠…….”
헌데, 곧장 남궁예화를 말리지 않고 고민에 빠지는 남궁공자.
남궁세가에는 뭔 이상한 관습이라도 있는지 쌍으로 예상 밖의 행동을 했다.
“지천이 네가 결정하거라.”
말리기는커녕, 내게 결정권을 넘기는 게 아닌가?
고민했으면 비동이 위험한 것도 알 텐데,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내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킬 자신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일염이 또한, 나한테 주의를 주지 않고 그저 묵묵히 서 있었기에 갑자기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뇌의 님을 매일 의원으로 봐서 그렇지, 무인으로서의 위명도 자자하니 과소평가하는 걸 수도 있어.’
아무리 기관진식이 위험하다고 한들, 뇌의보다 위험하겠는가.
남궁공자의 허락이 떨어진 것 같으니 굳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좋습니다.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 보도록 하죠. 단,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오겠습니다.”
“예!”
-쿠쿠쿠쿵.
그렇게 살짝 맛만 보자는 마음으로 비동에 진입하자…….
“뭐가 이렇게 많아?”
보이는 건 도처에 널린 기관진식들.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드러낸 기관진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걸 보면, 숨겨져 있는 건 대체 얼마나 있을지 가늠이 안 갔다.
‘이거 완전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거 아닌가? 나 좀 제발 먹어달라고 말이야.’
가히, 용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집어넣는 상황.
그래서 ‘괜히 들어왔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쯤, 갑자기 일염이가 검을 들고 나섰다.
“공자님 잠시 뒤로 물러나시죠.”
일염이의 말에 따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벽 이곳저곳을 찌르는 일염이.
-피슝!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기관진식이 발동해 코앞에 화살이 박혔다.
“뭐, 뭐야?”
“독화살입니다.”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피슝!
뭐라고 하려고 그러자, 다시금 화살을 쏘아 보내는 일염이.
마치 제 것이라도 되는 양 기관진식을 다루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뭔데 기관진식을 저리 잘 알아?’
뭐, 잘 아는 건 잘 아는 거고, 하는 짓이 너무 얄미워서 화살을 집어 던지려는 그때.
‘독?’
자세히 보니 화살에 끈적한 유백색의 액체가 묻어 있는 게 아닌가?
“공자님, 기관진식에 쓰이는 독들은 하나같이 극독일 때가 많으니 조심히 다루시기 바랍니다.”
기관진식에 쓰이는 독들이 거의 다 극독이니 조심하라는 일염이.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머리는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극독이 튀어나오는 기관진식이 가득한 비동이라면 당연히 도망쳐야겠지만, 만약 기관진식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노다지.
호랑이 굴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실상은 그 동굴이 금광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니 외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유…… 가 아니라 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