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58화 (5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8화

[미술은 화학에서 태어나 화학을 먹고 사는 예술이다.]

이는 어렸을 때 봤던 책에서 나온 구절로, 모든 미술은 필연적으로 화학과 연관되어 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었다.

“독이라니요? 이 그림이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되묻는 남궁예화.

내가 벽화가 독이라고 하니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예, 독입니다.”

뭐, 어쩔 수 없긴 했다.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기엔 그림이 독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고, 하물며 나조차도 예술에 관심이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었으니까.

허나, 아까 말했듯이 미술은 화학에서 태어나 화학을 먹고 사는 예술이다.

“아주 훌륭한 독이죠.”

지금 눈앞의 벽화.

이 벽화는 유화인데, 유화 같은 경우 색감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물감들이 대부분 독성 물질이다.

하나 예시를 들어보자면, 앞의 벽화에서 제일 많이 사용된 건 배경으로 칠한 하얀색.

이건 우리가 흔히 아는 중금속의 대표 물질.

바로 납의 추출물이었다.

‘자고로 예술인들이란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인 법.’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사소한 색감 차이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화가들은 유화의 색감을 위해 자신의 수명을 깎아먹더라도 위험한 물건을 쓴다고 했다.

즉, 이 유화는 작품성이나 장보도임을 따지기 전에 훌륭한 독덩어리라는 이야기.

“독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요?”

“바깥은 그렇겠지만, 안쪽은 다를 겁니다. 이렇게 살짝 손톱으로 긁어내 보면 독성이 느껴질 테니까요.”

이번엔 하얀색이 아니라 초록색 물감을 손톱으로 긁어내서 보여주자 공기에 진동하는 독성.

남궁예화는 이제야 독성을 느끼는 듯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머, 진짜 독성이 느껴지네요?”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믿는 듯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독인가요? 언뜻 보기엔 물감으로 보이는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에요.”

‘단순한 물감인 것 같은데도 익숙한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남궁예화.

솔직히 남궁세가에서 독을 얼마나 접했을지는 모르지만, 다른 독들은 몰라도 이 초록색 독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규모가 있는 세가나 문파에서는 항상 기초적인 독에 대한 공부를 시켰고, 무엇보다 아까 예시를 들었던 흰색 물감보다는 이 초록색 물감이 압도적으로 유명했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이 독은 어디에서나 자주 쓰이는…….”

원소 번호 33번 비소(Arsenic).

주로 방부제, 살충제, 쥐약 등에 사용되는 물질.

역사상 가장 많이 쓰인 독살 재료 중 하나로, 비소화합물의 경우 무미(無味)이기에 어떤 음식이나 기호품에든 자주 사용됐다.

그래서 독살용으로 자주 쓰이는 삼산화비소의 경우는 아예 ‘상속 가루’라고 불리며 패륜의 대명사일 정도.

하물며 비소는 루이사이트라는 이름의 독가스로 개발되었을 정도니, 비소가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알 수 있을 거다.

“비상(砒霜)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눈앞의 초록색 물감이 그 비소였다.

“비상이요? 비상은 원래 하얀색 아닌가요?”

초록색 물감이 비소라고 하자, 의문을 표하는 남궁예화.

아까 언급했듯 어느 문파나 가문이든 독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를 시키기에 비소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내 말을 듣고 괴리감이 생긴 듯했다.

“독살에 사용되는 비상은 대부분 흰색이지만, 조금의 과정을 거치면 초록색이 됩니다.”

독살에 주로 사용되는 백색 분말체 형태의 삼산화비소.

여기서는 비상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벽화에 쓰인 비소는 삼산화비소는 아니었다.

‘삼산화비소가 들어간 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가며 쓰진 않았겠지.’

패리스 그린(Paris Green).

보통 에메랄드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색깔.

18세기에 처음 만들어져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색깔로 유행을 타고 안 쓰이는 곳이 없던 색깔이었다.

‘정말 끔찍이도 많이 쓰였지.’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유행이라고 해봤자, 단순히 옷이나 물건에 국한됐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위의 언급한 패리스 그린은 그 범위가 무려 그림부터 시작해서 옷감, 하다못해 벽지에까지 쓰일 정도였다.

특유의 독성 덕에 살충제부터 쥐약까지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비소.

사람들은 패리스 그린으로 벽지를 도배하면 벌레나 쥐가 꼬이지 않는다는 걸 보고, 얼씨구나 하고 벽에도 듬뿍 발랐다.

……그게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사인이 비소가 든, 패리스 그린으로 벽지를 도배한 것 때문이니 말 다 했지.’

결국 나중에 와서는 패리스 그린을 사용하는 게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 여파 때문에 독 하면 딱 떠오르는 색이 녹색, 패리스 그린이 된 거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남궁예화에게 설명할 건 해줬으니까, 이제는 독을 채취할 차례였다.

“공자님. 갑자기 벽화는 왜 긁기 시작하십니까?”

“이것들이 전부 독인데, 놓고 갈 순 없잖아.”

자고로 독은 캘 수 있을 때, 캐야 하는 법.

하나같이 성분이 명확한 물질들이니 그 유용성은 말할 필요도 없기에 무조건 전부 채취해야 했다.

‘흰 건 납이요. 초록은 비소, 빨간 건 황화수은이로다.’

독성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이색적인 독만큼 내공을 많이 주는 것은 없었기에 극독이 아니었어도 알뜰살뜰 채취했다.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남궁공자와 남궁예화.

“당 소협. 아무리 그래도 장보도일지도 모르는 벽화를 훼손하는 건 그렇지 않나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는 듯 따가운 눈총을 보내왔다.

“남궁 소저께선 기연을 찾고 싶으십니까?”

허나,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는 법.

“어차피 저희는 관망할 뿐, 끼어들 생각은 없잖습니까. 계륵이라도 할 일이 없다면 챙기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장보도를 보고 뭘 할 것도 아닌데 이걸 순순히 놔둘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누군가 본다 하여도 다른 이들한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

뒷배가 없는 작은 단체나 개인이라면 뇌의 선에서 해결될 테고.

큰 규모의 단체가 온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알 테니까 말이다.

“그거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괜히 저희가 장보도를 훼손했다는 소문이 나면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요.”

“예화 말이 맞다. 네 말대로 우리는 아무 일에도 얽히지 않고, 한 몸 건사하여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굳이 사서 분란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

물론, 그걸 남궁공자나 남궁예화 앞에서 당당히 말하긴 좀 그랬기에 일부러 말을 돌렸다.

“뇌의 님. 말씀드리는 걸 잊었는데, 흰 건 연이고, 푸른 건 비상이며, 빨간 건 주사입니다.”

연, 비상, 주사.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을 거다.

눈앞의 남궁예화가 딱 그러고 있지 않은가.

“당 소협,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건 저희가 하는 이야기와…….”

하지만 남궁공자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들었는지 남궁예화를 만류하며 벽화 앞으로 다가왔다.

“피부병, 매독, 광증.”

왜냐면, 모든 독은 약으로 쓸 수 있는 만큼, 내가 언급한 독들 또한 약재였으니 말이다.

“아이고, 귀한 것. 왼편은 내 것이니 저리 썩 비키거라.”

마침 빨간색으로 색칠된 부분을 긁고 있자, 옆으로 밀어버리는 남궁공자.

아까 언급한 세 가지 독 중 주사가 가장 귀했기에 곧장 주사부터 캐려고 하는 듯했다.

“아니, 뇌의 님. 왼편에 주사가 더 많잖습니까, 저는 연이나 비상만 먹고 떨어지라는 겁니까?”

“이게 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주사는 항상 수비(水飛)해서 쓰는 만큼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아이들을 교육할 만한 양이 없었단 말이다.”

주사가 가장 비싸고 필요하다는 남궁공자.

나 또한 황화수은이 가장 독성이 강했기에 꼭 가져야 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차후 사람들을 살릴 의선문의 인원들을 교육하려 한다니 말릴 수는 없어서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벽화들도 돌면서 몇 개만 터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까 언뜻 들어보니 벽화의 수가 거진 백 개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라면 난 좋다. 그리고 어차피 들키면 다른 인원에게 누명을 씌우면 되잖느냐.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 말이다.”

날 너무나도 잘 아는 남궁공자.

“다만, 뒤집어씌울 땐 이왕이면 뒷배가 없는 쪽으로 하자꾸나.”

그래도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았는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좋습니다. 그럼 계획도 세웠으니 일단 모으고서 나누도록 하시죠.”

“좋다. 얼른 하자꾸나.”

들켰을 때 대처할 방안도 있겠다, 마음 놓고 남궁공자랑 흥겹게 벽화를 긁어내길 잠시.

“잠깐, 잠깐만요.”

조용히 뒤에 빠져 있던 남궁예화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이번엔 또 뭐 때문에 그런 겁니까?”

“잠시 이쪽으로 오셔서 이것 좀 보세요.”

어서 와서 보라는 듯 살짝 물러서는 남궁예화.

조금 귀찮긴 했지만, 독을 채취하는 걸 만류하는 것 같진 않아서 뒤로 물러나 벽화를 보자…….

“지도?”

유화가 긁어진 동굴 벽.

그곳에는 음영으로 새겨진 ‘진짜’ 지도가 있었다.

“진짜구나. 예화야. 분명 유화를 긁어낼 땐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지도가 있구나.”

“지도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과거에 쓰였던 문자가 교묘히 숨겨져 있어요. 직접 긁어내는데도 모르셨던 이유는 층이 나뉘는 게 아주 미묘한 차이여서 그럴 거예요.”

벽화에 다가가 손으로 쓸어보는 남궁예화.

여기서 볼 때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신기한 듯했다.

‘그나저나 문자라…….’

원래는 현대인이었던 내가 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말을 듣지 못할 거란 예상과 달리 말과 글, 둘 다 문제없이 쓸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 이 문자도 읽을 수 있을까 싶어서 유심히 동굴 벽을 봤는데…….

‘끄응, 전혀 모르겠다.’

뜻을 알기는커녕, 그냥 기괴한 문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남궁 소저께서는 이 문자를 읽을 줄 아십니까?”

“많이는 아니고, 조금요. 과거 읽었던 서책에서 언뜻 본 게 전부라서요.”

잘 알지는 못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풀어보려고 하는지 벽화 뒤의 그림을 찬찬히 읽어 내리는 남궁예화.

이내 뭘 알아냈다는 듯 뭔가를 중얼거리면 벽화를 쓸기 시작했다.

“……해석하면 백 개의 눈을 가리는 열 개의 손, 그 머리는 하나임을 의미하니까…….”

그러고는 벽화 여기저기에 손자국을 내고는 뒤로 물러섰다.

“숙부님. 제가 표시해 둔 곳을 뚫어주시겠어요?”

“알았다. 일단 뒤로 물러서거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남궁공자를 제외한 인원들이 조금 뒤로 물러나자, 곧장 손가락을 세워 구멍을 뚫는 남궁공자.

그와 동시에 벽화가 있던 동굴 벽을 바라보며 경계했는데, 잠시 시간이 흐름에도 변화가 없자, 이내 긴장을 풀었다.

“아무 일도 없구나.”

허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진동하기 시작하는 동굴.

-쿠쿠쿠쿵.

기관진식이 작동하는 듯 굉음을 내며 동굴 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역시 입구가 맞았네요.”

어두컴컴하면서도 장보도가 있을 것만 같은.

돌로 이루어진 비동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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