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55화 (5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5화

사천성도의 한 객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붐비고 소란스러운 객잔 안에 고성이 울려 퍼졌다.

“네 이놈! 점소이 주제에 감히 형님을 능멸하려 드는 게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쩔 줄 모른 채 연신 고개를 숙여대는 점소이와 점잖게 앞섶을 털어내는 한 무인.

누가 보면 점소이가 실수로 음식을 쏟아 노발대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고성을 지르는 무인이 점소이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려 음식을 쏟게 만든 거였다.

“우리 형님이 누구신지 아느냐? 사천을 통틀어도 상대할 적수가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하고, 그마저도…….”

“그만하거라, 아우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 우리가 하해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

형님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떠들던 아우를 만류하는 형이라는 작자.

점잖게 이야기하면서 용서해 줘야 한다는 어감으로 말했지만, 이 역시 실상은 돈을 뜯어내기 위한 초석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점소이. 내 이리도 좋은 날,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으니 소정의 보상만 받는다면 없는 일로 치겠네.”

“역시 형님.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보상에 대한 이야기.

본디 객잔이란 게 무림인이 워낙 많이 드나들어서 문파의 보호 없인 운영할 순 없다고 하나, 이런 작은 일에 문파가 나서주진 않았다.

일일이 나섰다간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게 분명했으니까.

아마도 저들도 그 사실을 알고서 이렇게 안하무인 하게 나오는 걸 거다.

그게 아니고서야 하류 잡배 주제에 어떻게 저렇게 활개 치겠는가.

‘역시 오늘도구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해야 하나.

객잔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거에 엮었다.

‘에휴, 심성이 착한 것도 문제라니까.’

뭐,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저런 이들이 나타난 게 왜 귀찮은 일이냐,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허나, 나는 그런 꼴을 두고만 볼 순 없는 사람이라 귀찮아지는 거다.

“이봐.”

지켜볼 만큼 지켜봤다는 생각에 나지막이 부르자, 잠깐 얼타더니 한껏 화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동생이라는 무인.

“감히 어떤 자식이 우리 형님께…….”

자신의 형님을 부른 게 설령 천하제일인인 태천검이라도 용서치 않겠다는 듯 인상을 빡 쓴 채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나랑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왜냐면…….

“아니, 저, 저 사람은? 백독멸악(白毒滅惡) 당지천 공자아닌가?!”

백화상단의 일이 있고서 5년이 지난 지금.

사천에 내 위명을 모르는 사람은 더는 없었기에.

“왜, 왜 부르는 거요?”

의도적으로 기척을 지우고 한쪽 구석에 박혀 있어서 한눈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덜덜 떨기 시작하는 잡배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행히 오늘 걸린 녀석들이 외지인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쉬운 녀석들이라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까 먹었던 만두가 오늘따라 유난히 하얗지 않았나?”

“그,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서, 설마?”

고작 만두가 하얗지 않았냐는 질문에 마치 뱀 앞에 생쥐라도 된 듯 심히 몸을 떨었고,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너희 같은 잡배들한테 일일이 손쓰고 싶지 않아.”

품속을 뒤져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환 두 개를 던져주고는 나가라고 손짓했다.

“가봐. 돈은 내고.”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잡배들.

돈은 내고 가라는 소리는 잊지 않았는지 식탁에 은자를 떨궈놓은 채 줄행랑을 쳤다.

‘설사약값을 생각하면 얼추 맞게 내놨네.’

어차피 내 주머니에 넣을 건 아니었지만, 시시덕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탄.

“오오오…… 역시 백독멸악이야…….”

별거 아닌 말 몇 마디로 잡배들을 물리자, 객잔에 몰리는 시선.

언제나 이런 시선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법도 했건만, 이미 사천에서는 어딜 가나 따라다녔기에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외지인이 아닌 이상에야 날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저기, 백독멸악이라면 이전에 말했던 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겐가? 고작 12살임에도 단신으로 반란군을 진압했다는?”

물론, 그런 외지인이 없진 않았는지 복식이 조금 달라 보이는 상인은 나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맞네.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당가의 사람이거늘, 강호의 도리를 다한다며 단신으로 수백이 넘는 반란군들에게 뛰어들었다지.”

“아니, 그런 미친 짓을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단 말인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지천 공자가 하얀색 독무를 뿌리자 반란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는 것 아닌가.”

“아, 그래서 백독멸악이란 별호가 붙은 것인가?”

“반쯤은 그렇지. 허나, 그것뿐이라면 조금 모자랐을 걸세.”

“허면?”

“자네 간양쌍마에 대해 들어봤는가?”

“쾌검을 구사하는 사파의 고수들 아닌가? 분명 5년 전에 죽었다는 들었는데…… 설마?”

“그 설마가 맞다네. 반란을 일으킨 백화상단에서 반란군 말고도 무인을 여럿 섭외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간양쌍마를 비롯한 무인들이 일초(一招)도 섞지 못한 채 독에 휩쓸려 갔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 일일 수 있겠는가.”

“허어, 고작 12살에 절정고수조차도 손쉽게 처리하다니…… 헌데, 내가 듣자 하니 그 자리에 흑백쌍괴도 같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흑백쌍괴도 당지천 공자가?”

“그건 아닐세. 아무리 당지천 공자가 뛰어나다고 한들, 어찌 무림에 악명이 자자한 흑백쌍괴와 싸워 이기겠는가.”

“허면, 당지천 공자는 어찌 살아남은 건가? 흑백쌍괴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을 터인데.”

“뭘 피하긴 피하나. 당지천 공자는 애초에 목숨을 각오하고 반란을 막으려 나섰다네. 당가의 지원이 올 때까지 한 몸 불살라 흑백쌍괴를 막아섰지.”

“아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네가 말한 대로 당지천 공자가 흑백쌍괴와 싸워 이길 순 없잖는가. 하물며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할 텐데…….”

“뭐, 잘 모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허나, 백독멸악이란 별호가 붙은 건 흑백쌍괴와의 싸움 때문도 있다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채, 이야기하던 이야기꾼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그 당시 당지천 공자의 실력은 잘 쳐봤자, 일류. 대부분 추측하길 이류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흑백쌍괴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겠지. 헌데, 당지천 공자는 그 방심을 이용해 독무를 펼친 게 아닌가? 그것 때문에 흑백쌍괴가 접근을 못 하는 상황이 된 거지.”

“흑백쌍괴가 평범한 무인도 아니고, 독무 정도는 그냥 태우면 되는 게 아닌가?”

“보통은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여기서 당지천 공자의 별호에 백독(白毒)이 들어가는 이유가 나오네.”

“그렇다면…… 흑백쌍괴조차도 그 독무를 뚫지 못하고?”

“맞네. 당지천 공자가 만든 하얀 독무. 천하의 흑백쌍괴조차도 그걸 태우지 못했다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만, 당지천 공자가 용독술만큼은 천 년의 당가의 역사에서도 찾기 어려운,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했으니 가능했을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그런 상황에서 반란군은 이미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기에 흑백쌍괴는 도주하기로 마음을 먹었네. 헌데, 하필이면 당지천 공자가 독무를 펼친 곳이 입구가 아닌가?”

“허어, 태울 수 없는 독이니 중독될 것 각오하고 뚫어야 했겠구만.”

“그래, 흑백쌍괴도 여기서 시간이 끌리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중독될 것을 각오하고 당지천 공자에게 달려들었다네. 거기다, 이러한 독을 쓰는 무인이 나약할 리 없다며 월광조법을 펼치기까지 했지.”

“그, 한번 보고 나서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흑백쌍괴의 절기 말인가? 허어…… 대체 당지천 공자는 어떻게 살아남은 건가?”

“그때는 천하의 그 당지천 공자도 생을 포기했다고 하네. 그와 동시에 자기 한 몸 바쳐서 다른 이 한 명을 구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며, 설령 지더라도 결코 등을 돌리지 않겠다며 떳떳하게 흑백쌍괴와 맞섰다고 하지.”

“어쩜 그런 위인이 당가에…….”

“그렇게 단숨에 흑백쌍괴에게 당할 것 같던 그 순간!”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간을 둘러본 이야기꾼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늘조차 무너뜨린다는 천괴도(天壞刀) 팽구용 대협이 천장을 부수며 나타나 흑백쌍괴를 단칼에 처치했다는 게 아닌가!”

“아니, 거기서 팽구용 대협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게 말일세, 사실 당지천 공자는 팽구용 대협과 매우 긴밀한 사이였다고 하네. 그렇기에 당지천 공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순간, 팽구용 대협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지.”

“의인은 의인을 알아본다는 것인가?”

“그런 것이지. 아, 그거에 대해서 또 뒷이야기가 있는데…….”

객잔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채 길고 긴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야기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낯간지러웠다.

‘백독멸악 당지천이라…….’

백독멸악(白毒滅惡).

하얀 독으로 악을 멸한다는 뜻의 별호.

내게 이 별호가 붙게 된 건 이야기꾼의 이야기처럼 부풀릴 대로 부풀려진 이야기 덕도 있지만, 사실 그 뒷배경이 조금 더 있다.

대게 무림인들이 멋들어지는 별호를 가지는 건 절정고수가 되고 나서다.

보통 절정고수가 되고서야 한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려주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그제야 호사가들에게도 이름이 나돌아서 별호가 붙는 식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호사가들에게 이야기를 퍼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백호현을 눈감아주는 대가로는 나쁘지 않긴 하지.’

백화상단의 반란이 있던 날.

5년 내로 절정고수가 되겠다고 다짐한 나.

허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 아직도 깨달음이 얻지 못해 일류 수준에 불과했다.

당연히 별호를 갖기엔 한참 이른 수준이었으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별호가 붙게 되었다.

바로, 황가의 의지 덕에 말이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금처럼 유용하기도 하니까.’

반란이라면 학을 떼고, 구족을 멸하는 황가.

당연히 반란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난리가 났었다.

나를 관아로 부르고, 또 당가에 직접 찾아오면서 온갖 선물을 주면서도 처음엔 반란 사실을 엎고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나야,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걸 원치 않았기에 그에 동조하기로 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황가에서 갑자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방금처럼 매우 과장되고, 자극적이면서도 멋들어지게 말이다.

‘뭐, 홍보니까 당연하긴 한 거지.’

솔직히 황가에서 반란을 숨기려다가 만 것은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이야기를 부풀리는 건 어디까지나 홍보였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라는 뜻의 홍보.

강호의 무림인들이 가지고픈 것들은 참으로 많고 많았지만, 그중 명성은 단언컨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거다.

무림초출인 무림인들이 명성을 얻으려다가 비명횡사하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다.

그러니 황가에서 이렇게 날 홍보하는 이유도, 공을 세우면 확실하게 밀어주겠다는 황가의 신호였다.

“경황이 없어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소협.”

“감사합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자, 점소이와 함께 객잔주가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한 거라곤 겁만 준 것뿐이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당 소협께서 저희 객잔을 이용해 주신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잡배들이 꼬이지 않을 것이니 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잡배들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와서 골머리를 안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얘기해 주시죠. 저희가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예? 잡배가 하루에 몇 번이나 온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

아무리 잡배가 많다고 한들, 상습적으로 일 벌이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기에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은 이상 하루걸러 행패를 부리는 짓은 안 했다.

“아, 그게 요즘 이상하리만치 사천에는 별 이야기가 안 나왔는데 타지에서 큰 소문이 하나 돌았답니다. 그것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천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문이길래 그럽니까?”

“다름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소문을 내고 싶진 않은지 얼굴을 가까이 대는 객잔주.

내게 귓속말로 소문에 대해 이야기해 주자, 나는 곧장 뒷목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뭐? 장보도?!’

무림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동시에.

가문에서 신화문을 통해 나를 부른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가는 물건의 이름이 언급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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