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54화 (54/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4화

사천당가의 가주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당기룡은 창밖에서 날아든 전서구를 받아 읽자, 문득 감상에 잠겼다.

‘벌써 5년인가…….’

당지천이 백화상단의 반란을 막아낸 지 어언 5년.

그리고 당가에 방해 공작이 들어오기 시작한 게 5년째였다.

당기룡이 가주가 되고 나서부터 쉼 없이 세를 불리던 당가.

외적 팽창에 맞춰서 내실 또한 꼼꼼히 다졌기에 끊임없이 성장할 거란 생각과 달리, 5년 전부터 시작된 방해 공작에 나날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처음에는 숨기려고 노력이라도 했지. 지금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자잘한 사업부터 크게는 녹주석 광산의 채굴 건까지.

마치 당가에 도움이 되는 일은 빠짐없이 방해하겠다는 듯, 뭐만 하면 수작질을 부렸다.

그래도 5년 전에는 정체가 들통날까 봐 조심스레 움직이기라도 했지, 근래에 이르러선 아예 대놓고 일을 벌이고 있었다.

당기룡으로선 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당기룡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아무리 조사하더라도 명백한 물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도 어떤 수법을 쓰는지 감이 안 잡히는군.’

처음에는 단순히 조사를 나태하게 했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흔적을 못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실력 좋은 인원을 파견하고 흔적을 찾아오길 기다렸는데, 그 인원 또한 똑같이 아무 흔적도 찾지 못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화가 난 당기룡이 장로들을 대동하고 직접 확인을 했는데도 그 어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천이가 아니었다면 난 진작에 평정을 잃었을 터, 이 또한 지천이의 도움이구나.’

체면을 완전히 구기며 치욕스러움을 느낀 나날들.

그나마 당지천이 체면치레를 해주지 않았다면 당기룡조차도 분노에 눈이 멀었을 거다.

‘만독연 예산의 반 이상을 책임지면서 녹주석 공급은 지천이가 다 하니, 실상 지천이는 이미 가주 노릇을 하는 것과 다름없지.’

다시금 말하지만 자잘한 사업부터 녹주석 수급 건까지 하나같이 방해를 받던 당가.

대외적으로는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실상 당지천 덕에 그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일단 돈 관련 문제.

이건 당기룡의 상재가 뛰어난 만큼 대안도 워낙 많았고, 성장세가 꺾였을 뿐이지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거기다. 당지천이 세력을 만들고 나서 만독연 예산의 반을 홀로 해결했으니, 문제가 없다 볼 수 있었다.

그다음 녹주석 공급 문제.

독을 근간으로 이루는 당가인 만큼 다른 피해보다 가장 크게 다가오는 피해로, 정체불명의 집단도 그걸 아는지 집요하게 방해를 해왔다.

그렇기에 대외적으론 5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채굴한 녹주석은 극소수.

그것마저도 연구를 위해 일부 차출했기에 실제로 독을 만든 것은 더더욱 적은 양이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지천이의 광산에서 온 녹주석이 없었다면 조바심이 났을 거야…… 역시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 지천이의 혜안 덕인가? 거기다. 이런 혜안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루도 나태해지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속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지천에 대한 예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니, 세월이 흐른 만큼 더욱이 깊어진 당지천에 대한 당기룡의 사랑은 전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금 어두워지는 당기룡의 얼굴.

잠시 지난 세월을 회상하느라 미뤄놨던 전서구로 눈을 돌리자, 얼굴에 근심 걱정이 깃들었다.

‘원래라면 포기하는 게 맞지만…….’

부쩍 활발해진 청성파와 아미파의 견제.

그 속에서도 정체 모를 집단의 방해까지 받는 상황이었으니 자연스레 인력을 파견하는 데 조심스러워졌다.

“결국, 또 지천인가.”

강한 이를 차출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그렇다고 약한 이를 보내자니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당기룡은 이런 일이 생기면 언제나 당지천에게 일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 낼 거란 근거 없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수많은 가문 내 사람 중에서 믿을 게 너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건 어떤 부모라도 똑같을 거다.

허나, 당기룡은 가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만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전서구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 * *

전각 내 개인 연무장.

그곳에서 야명주를 쥔 채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나는, 운기를 끝내자마자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고작 17살에 절정은 무리였나.’

절정고수가 되겠다고 다짐한 지가 벌써 5년째.

그동안 나태해진 자신을 채찍질하며 하루도 수련을 쉰 적이 없건만, 결국 원하던 경지에 이르진 못했다.

‘뭐, 솔직히 20살에 절정 고수가 돼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니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기대를 너무 안 하기엔 내 성장이 너무 돋보였다.

왜냐면…….

‘아니, 어떻게 내공이 1갑자가 넘는데 깨달음을 못 얻지?’

고작 17살.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힌 지 5년을 조금 넘겼을 뿐인 내가 1갑자의 내공을 모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독을 먹을수록 강해지는 당가.

같은 독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 효율이 떨어지기에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독을 먹어야 했는데, 나는 전생이 화학자였던 만큼 쉽게 내공을 모을 수 있었다.

거기다, 야명주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가히 내공을 모으는 속도만큼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빨랐다.

그렇기에 1갑자의 내공을 모은 순간, 손쉽게 깨달음을 얻고 벽을 넘어설 줄 알았는데…….

‘허망하다. 허망해.’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해 경지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도대체 뭘 해야 심득을 얻을 수 있지?’

마치 사라지지 않는 이명처럼 매일 같이 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

그 답을 찾으려고 매일 같이 애썼지만, 결국 나오는 답은 ‘모르겠다’로 똑같았다.

“에휴, 머리 아플 땐 암기나 던지는 게 최고지.”

머리 아픈 생각은 한쪽으로 밀어놓고서 곧장 암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슈슉, 슉, 슉.

속도가 빨라진 만큼이나 파공음 또한 커진 암기들.

마구잡이로 잡아 뿌린 듯 여러 개를 동시에 던져서 하나라도 빗나갈 법도 했건만, 내 암기술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항상 백발백중이었다.

‘암기술을 대성하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니, 너무 안타까운데…….’

수많은 암기가 존재하는 곳이 당가인 만큼 누군가 생각하기엔 고작 17살에 암기술을 대성한 거면 참으로 대단한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나도 이제 이런 거 말고, 좀 고급스러운 암기 좀 던지고 싶다.”

허나, 이는 엄연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남들 말대로 당가에는 가히 세 자릿수에 달하는 암기가 존재하지만, 기를 다룰 줄 모른다면 쓸 수 있는 암기는 고작 일 할도 안 됐다.

“당가의 암기의 근간은 기를 이용한 조작에서 나오니까 말이지…….”

대표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당가의 고급 암기, 추혼비접.

마치 나비가 날아가듯 살포시 날아가면서도, 살아 있는 거처럼 몇 번이고 목표를 쫓는 암기로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암기술이었다.

그런데 그런 추혼비접조차도 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한순간에 단순한 철 쪼가리로 전락해 버린다.

즉, 내가 대성했다는 암기술은 순전히 기초 암기술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니냐고 묻는다면 맞긴 하다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

“여기 계셨습니까, 공자님.”

속으로 아쉬움을 한탄하고 있자, 어느샌가 연무장으로 들어온 일염이.

들어와서 내 상태를 보고는 곧장 잔소리를 늘어놨다.

“노파심에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전에 이야기 드렸듯이 너무 조바심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열일곱에 내공이 1갑자가 넘다니, 이 정도 성장 속도면 절세의 영약을 먹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수치이니 말입니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자칫하다간 심마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알고 있으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돼.”

그걸 누가 몰라서 이렇게 조바심을 내나.

그게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야?”

“신화문에서 찾아와 달라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급한 것은 아니고, 당가의 요청 사항이었다고 합니다.”

“가문의?”

‘신화문에서 부른 것도 아니고 가문에서 요청한 거라고?’

당기룡이 직접 불러서 설명해 주면 될 걸, 굳이 신화문까지 보내는 이유는 잘 몰랐지만, 거기엔 어떠한 이유가 있을 터.

대충 넘기고 무슨 일일까 추측해 봤지만, 딱히 감이 오는 건 없었다.

“모르겠네. 가보면 알겠지. 급한 건 아니랬으니까 대충 아침 먹고 가자고.”

“영하는 자리를 비웠는데, 어떻게 객잔에서 해결합니까?”

“아, 맞네.”

5년 전 하인으로 들였던 영하와 장하.

이 둘은 내 휘하 시종인 만큼 원래는 자리를 비우는 법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좀 특별했다.

“오늘이었던가? 호현이가 독학관 입관하는 날이.”

백호현…… 아니, 이제 당호현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호현이.

‘반란은 이유를 불문하고 구족을 멸한다’라는 황가의 지침이 있음에도, 약간의 거래를 통해 당가에서 책임진다는 조건을 걸고 거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늘.

당호현이 열다섯이 되는 해로, 장하와 함께 독학관에 입관하는 날이었다.

영하야 데려올 때부터 나이가 찬 상태라 독학관에 입학은 못 했지만, 동생들의 입관식을 참관할 순 있었기에 오늘은 휴가를 줬었다.

“아니면 제가 차려 드려도 됩니다만 공자님이 원치 않으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선뜻 요리를 하겠다는 일염이.

하지만 그건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야, 객잔에서 먹자.”

과거엔 일염이의 요리가 단조롭긴 해도 먹을 만은 했다.

딱히 맛있다고 하기엔 힘들었어도,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러지 못하게 됐기에 객잔에서 먹기로 했다.

“흐음.”

객잔에서 먹자고 하니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는 일염이.

“왜, 싫어?”

“아닙니다. 단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을 이었다.

“공자님하고 객잔만 가면 항상 귀찮은 일이 일어나잖습니까.”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오늘도 그렇겠어.”

누가 보면 일염이가 과민 반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운세에 마라도 낀 듯 요즘따라 귀찮은 일에 많이 엮이긴 했다.

“솔직히 그만큼 당했으면 이제는 좀 평화로울 법하잖아. 안 그래?”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렇게 당했는데, 설마 또 당하겠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일염이.

하지만 그때, 우리 둘 다 대충 느끼고 있긴 했다.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란 걸.

* * *

당지천이 천일염과 함께 성도의 객잔으로 향하는 와중.

그 뒤를 눈으로 뒤쫓고 있는 한 인영이 있었다.

“이런이런, 오늘도 나가는 거니? 역시 사천에 명성이 자자한 협객은 못 막겠구나.”

마치 당지천이랑 대화라도 하는 양 혼잣말을 지껄이는 인영.

허나, 그 혼잣말이 당지천이나 천일염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내색하진 않지만 5년이나 되니까 너도 슬슬 조바심이 나는구나?”

당지천을 보던 그는 드디어 계획대로 좀 흘러간다는 듯 웃음을 몇 번 흘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어. 마침 재밌는 게 튀어나왔거든. 뭐,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까지는 안 했지만, 그건 중요치 않잖아?”

퍽이나 재밌다는 듯 더욱 큰 미소를 지은 그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떠나가는 당지천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부디 네가 입은 백의가 수의가 되지 않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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