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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53화 (53/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3화

세간에 상식이 있다고 듣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 있다.

바로 ‘화약은 불에 닿으면 터진다’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불덩이가 화약에 떨어졌으니 누구라도 화약이 폭발할 거란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거다.

-푸쉬쉬쉬.

허나, 터지기는커녕 맥 빠지는 소리를 내며 조금 타들어 가다 금방 꺼지는 화약.

사람들의 상식을 배반한 듯, 폭발하긴커녕 그나마 있던 불길조차 점점 사그라들었다.

“뭐, 뭐야?”

화약이 폭발하지 않자, 당황스러운 듯 눈을 비비는 반란군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망한 눈으로 불덩이가 앉았던 위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왜 연기만 나고 끝이야?”

한결 수월하게 기습할 수 있었다.

-슈숙, 슉.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파공음.

당연히 당황해서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던 반란군들이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크헉…….”

“배, 백인대장님!”

“엄폐물을 찾아! 기가 실려 있지 않으니 살 수 있어!”

손쓸 틈도 없이 갈려 나가는 반란군들.

어정쩡한 상황에 지휘관 먼저 처리하니 갈팡질팡하며 아비규환에 빠진 모습이었다.

“정신 차려라! 상대는 고작 하나다! 그것도 어린애에 불과해!”

그래도 지휘관을 죽였다고 한들 그게 끝은 아니었기에 선임병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자, 반란군들은 곧장 엄폐하고 응사를 할 준비를 해왔다.

“화약이 분리되었을 터이니 뒤섞어서 사용해라! 그리고 너희도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

그러고는 옆의 무인들에게 도와줄 것을 종용했지만, 무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상대는 고작 하나라매, 너희가 알아서 해결해 봐.”

반란군들이야 대의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고, 일이 틀어졌을 경우 죽는 게 확실시되기에 동귀어진을 노렸다.

허나, 어떤 연유로 저쪽에 가담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인들이 반란군이 아닌 이상에야 자신들도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을 거다.

“그리고 저 녀석, 냄새를 맡은 건지 우리한테는 암기 안 던지고 있거든? 우리는 이만 가볼 테니까 잘들 해보셔.”

반란군에 가담할 생각은 전혀 없는지 하나둘 몸을 돌리는 무인들.

“콜록, 콜록, 연기가 더럽게 많이 찼네.”

“그래도 도망칠 때 도움 될 테니까 나쁘지 않아.”

무슨 대가를 약조받았든 이제는 다들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반란군을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뭐, 사실 무인들이 도왔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지만 말이다.

“켈록, 켈록, 연기가 너무 심해.”

왜냐면 반란군 주변은 물론, 무인들 주변에까지 가득 찬 이 하얀 연기.

이 연기의 정체는…….

“독이다! 모두 숨을 참아라!”

다름 아닌 산화베릴륨으로 만든 독무였으니까.

“컥…….”

누군가가 숨을 참으라고 했건만, 이미 중독되어 목을 잡고 쓰러지는 반란군.

베릴륨이 호흡기에 들어간 탓에 폐렴에 걸린 듯 연신 기침을 해대다가 결국 숨이 다했다.

“해, 해독제를 줘! 우리는 해독제만 있으면 조용히 갈게!”

“마, 맞네. 소협이 제아무리 당차다고 한들,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없을 터, 해독제만 준다면 우리는 순순히 가보겠네.”

남은 암기를 털어내듯,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반란군들을 정리하며 다가가자 해독제를 달라는 인원들.

“해독제 말입니까?”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 보여주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드리면 진짜로 떠나간다고 약조하신 겁니다.”

“아, 알겠네. 그러니 빨리…….”

멀리서 병을 집어 던지자, 서로 병을 차치하려 애쓰는 무인들.

해독제가 든 병이 공중에서 몇 번이나 튕기며 주인을 정하지 못하자, 하나둘 칼부림을 부리며 해독제를 차지하려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칼부림이 일어났을까.

반란군들을 완전히 정리할 때쯤이 되자, 한 무인이 다른 이들을 모두 쳐내고 해독제를 차지했다.

“사, 살았다!”

감격에 벅찬 눈물을 흘리며 해독제를 단숨에 들이켜는 무인.

“난 살았다고.”

생사의 기로에 섰음에도 살아남은 것에 가슴이 벅차오는지 극도의 성취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하아, 하아…… 숨이 왜…….”

허나, 그런 기쁨도 잠시.

연이어진 싸움 때문에 숨을 몰아쉬는 듯 잠시 숨을 고르다가, 이내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해, 해독제가…….”

그러나 그 무인은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숨이 다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조심히 다가가 아까 건넸던 병을 회수했다.

‘위험하니까 수거는 해야지.’

지금 아까 무인에게 해독제라고 던져줬던 병.

사실 이건 내가 음독식 때 먹었던 협죽도를 담은 병이었다.

즉, 처음부터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는 이야기.

“해독제라…….”

해독제가 없어서 협죽도를 담은 병을 준 건 아니다.

나야, 베릴륨증을 치료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해독제를 만들 수 없었지만, 당기룡이 나서니 해독제를 단숨에 만들어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 같은 거에게 순순히 주겠냐고.”

불쌍해 보여도 이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흑백쌍괴와 손을 잡은 이들이다.

언제 악인이 될지 모르는…… 아니, 이미 악인인 녀석들을 풀어줄 만큼 나는 자비롭지 못했다.

* * *

단번의 습격으로 반란군 세력을 정리하고 오자, 풀어달라는 듯 몸부림치는 인질들.

-읍! 읍읍!

-으으읍!

반란군 세력을 와해시키는 와중에 들려온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니면 싸우는 소리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전해진 것 같으니 풀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아직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니 여러분들은 진정하고 계십시오. 그리고 지천아. 참으로 고생했다.”

내가 돌아오자, 인질들을 달래며 공로를 치하하는 팽구용.

아까 뛰쳐나갈 때 언뜻 보니까, 건물째로 흔드느라 내공도 얼마 안 남았을 건데, 그 잠깐 사이에 주변에 있는 인질들을 몸으로 감싼 걸 보면 참으로 대단한 위인이었다.

“화약이 터지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헌데, 지금 화약이 터지지 않은 것이 네가 말하는 대로 건물을 흔들어서 그런 것이냐?”

“예, 맞습니다.”

브라질 땅콩 효과.

다양한 크기의 고체 물질로 된 혼합물을 흔들면 입자 크기에 따라 층이 나뉘는 현상.

일전에 한 번 언급했던 적 있던 현상으로 장소산을 도와줬을 때, 해결해 줬던 문제가 화약에 브라질 땅콩 효과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거였다.

그런데 여태껏 백화상단이 모아온 화약은 개량되지 않은 상태.

당연하게도 방금 건물을 흔들 때, 초석과 숯과 황이 층층이 잘 나뉘어서 당장 쓸 수 없게 되었을 거다.

‘아무리 한 손이 열 손 막을 수 없다지만, 화약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면 상관없는 일이지.’

지금쯤 반란군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하려 하겠지만, 이미 화약은 뒤섞인 상황.

어떻게 소량이라면 잘 섞어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큰 규모의 폭발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필시 화약이 터졌다면 건물째로 날아갔을 터, 정말 대단하구나…….”

등을 두드려 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팽구용.

세간에서 인정받는 의인인 팽구용에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고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조용히 칭찬받고 있기엔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칭찬은 감사하나, 일단 일염이를 도우러 가주셨으면 합니다. 이 주변은 제가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백괴를 상대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일염이.

버티는 게 호위의 일이고, 백괴가 팽구용의 상대를 하느라 지쳤다고 한들, 무인의 싸움이란 그렇게 쉬이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기에 빠르게 합류해 줘야 했다.

“알았다. 빨리 가보마.”

일염이를 돕기 위해 먼저 떠나는 팽구용.

마음 같아서는 나 또한 곧장 입구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만큼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서야 뒤늦게 합류하러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공자님?”

막상 도착하고 나니 싸우고 있기는커녕, 아주 멀쩡하게 서 있는 일염이.

싸움의 흔적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왜 이렇게 멀쩡해?”

아무리 눈 씻고 쳐다봐도 먼지 한 톨조차 묻지 않은 일염이의 옷.

그 탓에 나는 일염이가 백괴 정도는 단칼에 썰어버릴 수 있는 고수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이게 다 제가 뛰어난 탓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일염이.

도대체 뭔 상황인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고 있자,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인영이 하나 떨어졌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말,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네요.”

“어후씨, 깜짝이야…… 신화문주님?”

“네네, 신화문주랍니다.”

무정검이라는 별호와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경박스러운 신화문주.

그를 보자마자 작금의 일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백괴를 상대한다고 하더니만, 그럴 틈도 없이 신화문주가 와서 단칼에 썰어줬구나…….’

시선을 돌려 백괴의 시체를 보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격 한 방에 사망한 게 내 생각이 맞는 듯했다.

“자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는 쉬셔도 됩니다. 저희 인원들도 도착했고, 무엇보다 당가도 도착한 것 같으니까요.”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지하실 입구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녹의를 입은 무인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더는 내가 낄 구석이 없을 것 같았다.

팽구용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대협.”

이 양반은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제는 내 머리가 신줏단지도 아닌데 자꾸 쓰다듬는다.

“아, 맞다. 피리는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쓸모를 다한 피리를 되돌려 주려 하자, 고개를 젓는 팽구용.

“피리는 주지 않아도 된다. 잘 간수하고 있거라.”

솔직히 팽구용의 인품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줄지는 몰랐다.

‘좋아, 적어도 위험해졌을 때, 기댈 곳이 하나 더 생긴 건가?’

여분의 목숨이라고 생각하자 내색하진 않았지만, 절로 나오는 웃음.

허나, 뒤이어지는 팽구용의 말에 자연스레 얼굴이 굳어졌다.

“언젠가 너의 의협심이 너의 무를 뛰어넘었을 때, 다시금 힘껏 나를 불러보거라. 곧장 달려가겠다고 약조할 순 없지만, 네가 행하려던 일. 그 마무리 정도는 꼭 해주겠다고 약조하마.”

할 말을 마쳤는지 홀연히 자리를 떠나는 팽구용.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무리 정도는 해준다라…….”

어떤 이라면 강호의 명성이 자자한 고수의 인정을 받았다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고 좋아할지 모르겠다.

“옘병.”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수치심을 느꼈다.

무림에선 강자가 곧 법.

오직 강한 이만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팽구용이 나에게 한 말은 ‘너는 그럴 능력이 안 되니 나라도 불러라’라는 뜻 아닌가.

‘강해져야 한다.’

나는 약하다.

그것도 더럽게 약하다.

오늘의 일도 내가 강했다면 다른 이가 날 만류하지 않았을 테고, 다른 이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었을 거다.

‘5년. 소가주가 되어야 하니까 폐관에 들 순 없지만, 5년 내로 절정고수가 되어주마.’

그러니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이를테면, 최소한 기의 수발이 자유로운 절정고수 정도로 말이다.

‘천하제일인이 되어, 내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언젠가 잊었던 다짐.

몰려오는 안일함을 단번에 털어낸 나는 다시금 자신을 세뇌하듯 읊조렸다.

“강해져야 한다.”

다시 한번.

뇌리에 박아넣듯 끊임없이 되새기며 반복했다.

“강해져야 한다.”

* * *

그렇게 5년.

5년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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