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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47화 (47/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47화

당지천이 처음으로 외박을 하고 돌아온 날.

당기룡은 당지천에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걸 알았지만, 차마 말리지는 못해 집무실에서 오매불망 당지천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초석 광산에 있는 기인을 도와주고 대가로 이만한 돈을 받아왔다는 것이냐? 그것도 황가의 전표로?”

당지천은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전표가 가득한 목함을 내밀었다.

“예, 제 세력을 만들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수중에는 돈이 없었기에 돈을 벌러 다녀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가히 수만 냥은 되어 보이는 전표들.

수백 냥이나 수천 냥이라면 몰라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금액을 들고 오자, 당기룡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며칠 걸린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

당기룡을 포함한 그 누구라도 거짓말이라고 단언할 만큼 허황된 이야기였지만, 당지천이 가져온 것이 황가의 전표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필시 가져온 것이 황가의 전표이기에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거겠지.

일반적으로 상단에서 발행하는 전표와 달리 황가에서 발행하는 전표.

이건 일반적인 거래로는 구할 수 없으며 위조할 시 황실에서 척살령이 내려오고, 전표가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전해졌는지 관아에 모두 신고가 되기 때문에 사용에 제약이 많았다.

물론, 그만큼 신뢰성 하나는 끝내주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수고했다. 이만 가보거라.”

동요한 속내를 내색하지 않으며 무뚝뚝하게 손을 젓는 당기룡.

그런 당기룡을 보던 당지천은 왠지 모르게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염이를 통해 빼돌린 보따리를 떠올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

가보라는 명령에 당지천이 고개를 숙이며 집무실을 나가자, 당기룡은 곧장 백호단주를 찾았다.

“군유야.”

“예. 가주님.”

“봤느냐?”

“예, 봤습니다.”

“아무리 나라고 한들, 이렇게 단기간에 해결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십니까? 전 예상하셨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다. 나는 언제나 상식에 얽매여 지천이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저런. 참 고심이 많으시겠습니다.”

“무릇 가주라는 자는 안목이 중요한 법인데, 나는 여전히 지천이를 볼 때면…….”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 당지천에 대한 칭찬과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자책.

처음에는 같이 들어주던 백호단주도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듣다 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주님. 대공자님은 하루 만에 해결하니까 의심하던데, 삼 공자님은 의심조차 안 하십니까?”

이러고 있다간 업무를 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만 듣겠다는 생각에 백호단주는 자연스레 말머리를 돌리려고 시도했다.

“그래, 말 잘했구나. 의심. 내가 왜 의심을 안 했겠느냐.”

허나, 당기룡은 그 시도가 무색하게 곧장 말머리를 원위치로 돌렸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지천이를 의심했었다. 혹여나 위험한 일에 끼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 하지만 지천이가 들고 온 게 무엇이더냐. 바로 황가의 전표잖느냐. 이것이야말로 지독이와 지천이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다.”

“아, 예…….”

다시금 시작되는 당지천에 대한 칭찬 세례.

백호단주는 그걸 듣고 있자니 대략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기에 다시 한번 당기룡이 관심 가질 만한 화제로 말머리를 돌렸다.

“가주님. 그렇게 대단하신 삼 공자님이 행여 위험한 상황에 처하실까 봐 두렵습니다. 저희 단원 몇을 추려 호위라도 붙입니까?”

당지천을 끔찍이 여기는 당기룡.

그동안은 괜히 이목을 살까 봐 일부러 호위를 붙이지 않았을 뿐, 지금처럼 스스로 이목을 끈다면 호위를 붙이는 게 당연하기에 곧장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허나, 예상과 달리 단칼에 거절하는 당기룡.

“왜입니까?”

당황한 백호단주의 물음에도 당기룡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단언했다.

“지금 단원들의 실력으론 호위는커녕, 단순히 짐 덩어리에 불과할 거다.”

다소 의미심장한 답변.

만약 만독연주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이상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아, 예…….”

하지만 눈앞의 백호단주는 그저 당기룡이 ‘또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 * *

장소산을 만나고 온 다음 날.

“쓰읍, 다 괜찮은 물건인데 어떻게 하나도 안 맞냐?”

연구실에서 장소산이 준 물품들을 하나하나 분류한 결과, 생각보다 쓸 만한 게 없었다.

“물론, 아직 반도 안 했긴 한데…… 계속 이러면 재미없는데.”

실망하긴 아직 이르긴 하나, 하루 종일 분석에 매진했는데도 성과가 없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혹시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아예 대장장이를 불러다가 연구를 해볼까?”

대장장이를 불러 협업을 한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기에 금방 기각했다.

“에휴, 모르겠다. 나중에 하자고.”

날밤을 새운 탓인지, 성과가 없는 탓인지 지끈거리는 머리.

그 탓에 일하기가 귀찮아져서 곧장 침소에 몸을 뉘었다.

“역시 인생은 쉬엄쉬엄 살아야지. 바쁘게 살면 안 된다니까.”

맘 편히 눕자, 점점 멀어지는 정신.

이대로 잠들면 분명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득 드는 생각에 정신이 잠깐 되돌아왔다.

“아, 맞다. 오늘 무공 수련을 빼먹었는데…… 뭐,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어.”

솔직히 요즘 들어 조금 ‘하루쯤이야’ 하면서 많이 넘기는 것 같지만, 워낙 여러 일에 치이다 보니 쉴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리고 나는 남들과 달리 야명주와 함께 내공을 늘려줄 수만 가지의 독을 알고 있다.

수련을 하루 이틀 빼먹는다고 해도 남들에게 뒤처질 리는 없을 테니 틈틈이 쉬어주는 게 맞지 않겠는가.

“아, 좋다.”

본디 휴식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했던가.

침소에 눕고 나니 온갖 잡생각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슬슬 잠이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일염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대뜸 말했다.

“공자님. 백화상단에서 한번 뵙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백화상단에서? 갑자기 왜?”

“일전에 공자님이 백화상단에 들르셨을 때, 백호현 공자님이 자리를 비운 탓에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귀찮은데…….”

이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백화상단과 인맥을 터놓은 상황.

거기다, 지금은 백화상단이 반란을 준비하는 듯 보이는 상황이라 굳이 백호현과 연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딱히 갈 이유도 없으니까 가지 말자.”

“아, 마지막에 약소하지만 소정의 선물도 같이 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뭐?

소정의 선물?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백화상단에서 주는 선물이라면 꽤 좋은 거겠지?

‘백화상단이 뒤가 구리다고 한들, 대충 낌새를 알아챈 듯한 나를 굳이 부를 이유는 없을 거야. 애초에 처리할 거였으면 백화상단을 방문했을 때 했을 거고, 그걸 못했던 건 당가랑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솔직히 뒤가 구린 점이 없지는 않아서 고민을 좀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백화상단에서 날 부를 이유가 없었기에 단순히 백호현의 의도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그 호현이라는 아이가 부디 한 번만 만나달라고 사정하는데 어떻게 외면하겠어. 가겠다고 해.”

“그러실 줄 알고 이미 보내놨습니다.”

“…….”

생각보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일염이.

나는 그런 일염이에게 멋쩍은 웃음을 한번 지어주고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 * *

백호현을 만나러 가는 길.

“하암, 피곤해.”

일염이가 미리 연락을 보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정오에 보자는 연락이 와서 얼마 못 잔 탓에 하품이 계속 나왔다.

“공자님, 저기가 태정관입니다.”

“오, 여기가?”

일염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성도에 평범한 객잔들과 달리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이곳은 백화상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부유한 이들을 위한 객잔 같은 곳으로 현대로 따지면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여기가 식사는 사람 한 명당 은자 2냥을 받고, 숙박은 금자로 받는 무시무시한 객잔이던데, 당연히 소정의 보상도 꽤 가치가 나가는 걸 주겠지?’

일전에 받은 녹주석 광산 같은 물건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특수한 경우였고, 가치를 키울 수 있던 건 전적으로 내 능력 덕이니까.

‘아니, 애초에 일의 규모가 다르니까 말이지.’

은혜를 입힌 저번과 달리, 이번 건은 단순히 식사 대접이나 받는 거니 단순히 금 몇십 냥짜리만 받아도 기분 좋을 일이었다.

‘돈이 어디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몇십 냥짜리면 진짜 감지덕지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태정관의 입구에 도착하자, 언젠가 한 번 봤던 얼굴이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당지천 공자님. 바쁘신 와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인은 아니지만, 마치 무인과 같은 기세를 내는 일전에 백화상단을 방문했을 때도 안내를 맡았던 인물.

분명 이름이 황충이라고 했던가?

“바로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채 이름을 묻기도 전에 황충이 곧장 건물 안으로 안내를 시작하자 뒤이어 나도 따라 들어갔는데,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냐하면…….

‘하, 또 화약이야?’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수십 가지의 향신료 향.

그 사이에서도 미약하지만 선명한 화약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사천요리가 워낙 향이 강하다 보니 손님들께서 불쾌해하시길래 무림인들도 불편하지 않게끔 설계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당가 분들에겐 느껴지시나 봅니다.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황충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태연하게 요리의 향 때문이라고 하며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복잡하지?’

커다랗고 웅장한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오자 어지럽게 꼬여 있는 길들.

마치 미로라도 되는 양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이는 탓에 안내가 없으면 빠져나가기 어려워 보일 정도였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내가 어디 있는지 가늠이 안 갈 때쯤이 되어서야, 백호현이 있다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충이 문을 몇 번 두드리고 손수 문을 열어주자, 일어나서 인사를 해오는 아이.

일전에 한번 본 적 있던 백호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일전에는 도움을 받아 감사했습니다…….”

뭐가 그리도 무서운지 얼굴을 맞대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점점 작아져 가는 백호현의 목소리.

‘얘는 참 여전하네.’

내가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점점 겁에 질리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어, 그래.”

괜히 다가가면 더 무서워할까 봐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혹시 이전에 말했던 소정의 선물이 나와 있진 않을까 싶어 눈으로 방을 훑어보자,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아니, 저게 왜 여기에? 에이, 설마.’

당황한 나머지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레 다가가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자, 나는 곧장 일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허, 이거 큰일 났는데…….’

왜냐면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 물건이 바로…….

‘독살용 찻주전자가 왜 여기 있어?!’

현대에선 과거에나 쓰였던 독살용 찻주전자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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