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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46화 (4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46화

소설이기에 수많은 종류의 광물이 존재하는 무협지.

나도 꽤 많은 작품을 읽었지만, 결국 종장에 이르러서 쓰는 광물은 정해져 있고 작품마다 나오는 광물도 다를 때가 있었기에 모든 종류의 광물을 안다고 자부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철이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게 티타늄과 비슷한 특성이라고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오철 말입니까?”

“그래, 오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더냐?”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게 제가 찾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혹시 가지고 있으시면 잠시만 볼 수 있겠습니까?”

분명 장소산이라면 조금은 가지고 있을 터, 일부러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오철을 내놓으라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장소산은 가진 게 없는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아쉽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게 없다. 쓸모가 없기도 하고, 소량이라면 몰라도 많은 양을 구하기엔 무리가 있는 물건이라 일부러 연구에서 배제했단다.”

“그럼 어디 가면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말했듯이 적은 양이라면 어느 상단에 가도 있긴 할 거다. 찾는 사람이 적어서 그리 비싸지도 않을 테고.”

일단 소량이라면 아무 상단에서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직 오철이 티타늄인지 확실치 않은 만큼 소량을 구해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만약 오철이 티타늄이라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장소산은 그런 내 속내를 읽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허나, 너는 그것으로 암기를 만들려 하는 것이잖느냐? 상단에서 그만한 양을 모으려다간 소문이 돌아 필시 값을 후려칠 거다.”

“그렇다면 직접 수급하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맞다.”

고개를 끄덕인 장소산이 잡동사니의 산을 뒤지더니 갑자기 지도를 하나 꺼내왔다.

“혹시 북해빙궁이라고 들어본 적 있느냐?”

북해빙궁.

무림의 밖을 의미하는 새외무림의 대표적인 곳 중 하나로 이름 그대로 빙공을 주로 익히는 곳.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충 시베리아 쪽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으로 사천에서 한참이나 먼 곳이다.

그런데 지금 장소산이 잡동사니의 산에서 무림 전도를 꺼내오고 빙궁을 언급한다는 것은 설마…….

“여기, 빙궁이 있는 근처에 오철이 많다고 하더구나.”

“허허허…….”

옘병.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장소산이 가리키는 곳은 예상대로 무림 전도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한참 위쪽이었다.

아니, 거길 대체 언제가!

아무리 암기가 중요해도 그렇지 북해빙궁은 심하지!

‘잠깐, 생각해 보니까 사천에 티타늄 광산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철이 티타늄이면 사천에서 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대인, 생각해 보니 사천에도 오철이 많이 나올 듯한데 찾아보려고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오철이 쓸모없고 현철보다도 가공하기가 힘든 건 둘째치고 양산에 걸맞지 않아 쓰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아직 찾아본 적 없다는 소리.

그렇다면 굳이 빙궁까지 갈 필요 없이 찾아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무슨 생각인지 대충 알 것 같다만, 포기하는 게 좋을 게다. 아까 대량으로 구하기 힘들다고 했잖냐? 이유는 사천에 오철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니, 그렇다면 사천에 오철이 있는데 굳이 빙궁을 추천해 준 이유는 뭐란 말인가?

“사실 사천에는 네가 한평생 캐도 티도 안 날 만큼의 오철이 있다. 그런데도 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옛날 옛적에 어느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돈에 눈이 멀어 오철을 은으로 둔갑시켜 유통했던 일이 있었다.”

“허허허…….”

“그래서 관아에선 오철이 나오는 광산이란 광산은 전부 폐쇄하고 막아버렸다.”

역시나 생각하기 무섭게 무산이 된 계획.

실력이 얼마나 좋으면 백금(플래티넘)도 아니고 티타늄을 은자로 만들어 버릴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알 길이 없었다.

“에휴.”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걸 위안 삼아야 할까.

나중에 무림에 나가게 된다면 빙궁을 들러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애초에 간다고 해도 문제인 게 빙궁에 연이 있는 게 아니니 오철을 내주지 않으려 하면 해답 없는데…….’

“이야기하는 사이에 해가 저물었구나. 이곳이 오지다 보니 나가면 머물 곳도 없는데 하룻밤 자고 가거라.”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 장소산이 자고 갈 것을 종용했고, 마침 다른 방안은 없나 고민하던 때라 감사히 받아들였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동이 트고 떠나려는 당지천을 마중 나온 장소산이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준 탓에 당지천은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인, 정말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되는 겁니까? 일단은 녹봉을 받는 분이라 하셨잖습니까?”

선물을 챙겨주면 좋아할 법도 하건만, 남부터 걱정해 주는 당지천의 모습에 장소산은 미소를 지어주며 답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잖느냐. 적다고 생각한 녹봉도 세월이 흐르니 산처럼 쌓이더구나. 그래서 조금 쓰기로 했다.”

신경 쓸 것 없다며 부담 없이 받으라는 장소산.

그런 장소산의 호의에 괜히 양심이 찔린 당지천은 잠시 고민하더니 품에서 작은 피독주를 하나 꺼내줬다.

“당가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패입니다. 산속에서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나중에 사람 냄새가 그리워질 때면 한번 찾아오시지요. 큰 도움은 못 드려도 말동무 정도는 해드릴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 고맙다.”

장소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패를 건네받자 당지천이 한 번 더 강조했다.

“꼭입니다.”

원래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당가의 사람이거늘, 손수 말동무라도 해주겠다는 당지천.

그런 당지천을 보고 장소산은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내비치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꼭 다시 보게 될 터이니.”

장소산이 다소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지만, 당지천은 그저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따로 되묻지는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인.”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친 당지천이 천일염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일염아, 이것 좀 들어줘.”

“싫습니다.”

“에이, 왜 또 그런담? 요즘 사춘기야?”

“제가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무거운 걸 들면 허리가 아파서 싫습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수련이라고 생각하고 들고 가시죠?”

“야, 어렸을 때 무거운 거 들고 다니면 키 안 큰단 말이야.”

“제가 봤을 때 공자님은 이미 글렀습니다. 순순히 포기하시죠.”

참으로 시끌벅적하게도 떠나가는 당지천과 천일염.

장소산은 한참을 그 뒷모습을 좇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이 돼서야 옅은 미소를 띠며 읊조렸다.

“당 형, 보았소?”

입가에 걸린 미소와 달리 한없이 애잔하기만 한 말투.

그 안에는 차마 숨길 수 없는 짙은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누구에게 내 생각을 말한 것도, 면전에서 부정당한 것도 두 번째였소.”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친 장소산은 품에서 당지천이 준 피독주가 아닌, 조금 낡아 보이는 피독주를 꺼내 들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기우하지 않소? 날고 긴다는 인재가 넘쳐난다고 하여 당가를 찾아갔을 땐 쓸 만한 놈이 없어서 실망했는데, 막상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아이는 친우 덕에 열다섯이 되기도 전에 나를 찾아왔소. 어쩌면 갈 땐 가더라도 할 일은 마치고 가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지.”

그런 그리움을 허탈한 미소 한 번에 털어버린 장소산은 품에서 자그마한 비수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동안은 쓸 만한 놈이 없었고, 내 연구를 한다는 변명에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장소산이 손가락을 튕기자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비수.

만약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봤다면 장소산이 소리도 없이 암기를 사출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저 비수가 투명해졌을 뿐이었다.

무인들에게는 그 형체가 보일 만큼 조금 불투명하게 말이다.

“조금 늦더라도 그 약속, 내 꼭 지키고 가리다.”

* * *

어두컴컴한 방안.

야명주와 같이 은은하게 빛내는 수정구 앞에 당군성과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의문의 인물이 같이 앉아 있었다.

-……해서 치명상을 입는 건 확인했으나, 곡노의 사망을 확인한 건 차후 의선문에 도착하고 나서였습니다.

-보는 눈들이 제거당했다니, 대체 누가 그랬단 말이오?

-누군지는 모릅니다. 현장에선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저희 쪽 인원이 갑작스레 쓰러진 게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쓰러진 인원의 상태는 어떻지?”

-급작스럽게 당했지만, 다행히 몇 달 정양하면 문제없는 정도입니다.

“이야, 그건 진짜 다행이네.”

보고를 받은 사람이 십년감수했다는 듯 말하자, 다른 이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이야기했다.

-흔적이 남을 수도 있기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임무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사천을 샅샅이 뒤져서 누군지 찾아내야 합니다.

“아니야, 다른 것들이라면 몰라도 이번 건은 어차피 무림인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야. 괜히 누군지 캐보려다가 우리라는 확증을 줄 이유는 없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들키지 않는 선에서라도 조사를 하는 게…….

친히 한 번 설명해 줬음에도 말꼬리를 늘이는 인원.

그를 보자 화가 난 당군성은 면박을 줬다.

“벽곡단 장로님. 하시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괜히 말 돌리지 말고 하시지요.”

-……크흠, 당군성. 제아무리 뜻을 같이한다고 한들,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개인적인 사유로 조직의 폐를 끼치는 인원에게 차릴 예 따윈 없습니다.”

-뭬야?

서로 날이 선 채 당장에라도 싸울 것만 같자, 곧바로 중재가 들어왔다.

“자자, 서로들 싸우지 말고. 그래서 벽 장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일전에 당지천이 거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불안 요소가 되는 건 제거해야 하는 법. 지금 미리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안 그래도 요즘 백화상단이 뒤숭숭하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화약으로 우리를 능멸했으니 화약으로 끝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벽 장로가 의견을 제시하자, 잠시 고민을 하다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리 쪽은 손해 볼 게 없을 테니. 벽 장로가 백화상단 쪽 세작을 잘 구슬려서 한번 진행해 봐. 백화상단 쪽에서 당지천을 잡을 리는 없으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벽 장로의 의견도 들어줬으니 회의는 여기까지 할 테니까 다들 푹 쉬어.”

자연스레 뒤처리는 당군성에게 맡기고, 방에서 빠져나온 인영은 복도를 걸으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순전히 벽 장로의 고집 때문에 들어준 것이지만…… 뭐, 좋아. 어디 한번 그 숨기고 있는 실력 좀 보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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