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43화
곡노의 시신이 의선문에 도착한 시각.
사천당가의 가주전 역시 때아닌 비보에 혼란스러웠다.
“가주님. 방금 의선문에서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저희가 찾던 곡노가…….”
“살해당했다고?”
“……알고 계셨습니까?”
백호단주의 반문에도 당기룡은 태연하게 집무를 볼 뿐, 아무 반응도 없자 백호단주는 당황스러워했다.
일이 있어 천금상단에 가 있던 백호단원의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온 것인데, 가주가 그걸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당기룡은 그런 백호단주의 궁금증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명령을 내렸다.
“군유야.”
“예, 가주님.”
“군사부와 협의해 현 시간부로 가문 내의 백화상단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정리해라.”
“전부 말입니까?”
“사업부터 시작해서 전표 한 장까지 전부.”
손실이 클 것이 분명함에도 확고한 어조로 말하는 당기룡을 보고 백호단주는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마치면 되겠습니까?”
백호단주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당기룡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모두 정리하기는 어려울 터이니 우선순위를 정해서 손실이 큰 것부터 처리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백호단주가 곧장 집무실을 나가자 홀로 남은 당기룡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곡노가 살해당하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보고 있던 사이 날아든 전서구 하나.
거기에 적힌 내용은 곡노가 적혈문의 표적이 되어 살해당했다는 내용과 함께, 백화상단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지천이의 광산은 채굴이 끝났다고 하니 다행이군.’
불행 중 다행으로 신화문과 연계한 당지천의 광산만큼은 채굴이 끝났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당기룡은 도통 꺼림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곡노가 적혈문의 표적이 된 것이야 원한을 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백화상단과의 관계를 정리하라는 것은 요즘의 동태를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분명 신화문에서 곡노의 흔적을 지우고 다녔을 텐데 관도에서, 그것도 대낮에 암살을 당했다는 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리추혼향을 썼으면 알아차렸을 터, 그렇다고 신화문이 곡노를 처리했을 리는 없으니 역시 남은 건…….’
“들어와라.”
당기룡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만독연주.
당지천을 납치해 간 어제완 달리 멀쩡한 얼굴이었다.
“이야기는 들었나?”
“오면서 군유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럼 대충 예상이 가겠군.”
당기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만독연주는 곧장 전음으로 답했다.
-예, 아마도 5년 전 그자들이겠지요.
-이번에 대놓고 일을 벌인 이유는 예상이 가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너희가 하려는 일을 알고 있고, 방해할 거라는 일종의 선전포고가 아닐까,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만독연주의 말에 당기룡도 동의한다는 듯 눈을 끔뻑이고는 전음을 보냈다.
-유철아.
당기룡의 부름에 헛숨을 들이켜는 만독연주.
여태껏 공식적으로 가주와 만독연주의 관계가 되고서는 이름으로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작스레 당기룡이 이름으로 부르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6장로님께 어제 있던 일에 대해 전해 들었다.
어제 있던 일이라고 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만독연주.
분명 당지천을 납치한 것까지는 허락을 맡았던 일이었으나, 손수 죽여주겠다는 발언은 떳떳한 건 둘째치고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니, 그게, 저…….”
어쩌면 당기룡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말을 더듬는 만독연주.
그런 만독연주에게 당기룡의 뜻밖의 칭찬을 해줬다.
-장하더구나.
“예?”
만독연주가 당기룡의 영문 모를 칭찬에 그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는 찰나, 당기룡은 이어서 영문 모를 말을 더했다.
-공자와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사천에서 제일 큰 녹주석 광산은 사실 지천이의 것이다.
“예에?”
-오늘 곡노가 적혈문에게 당한 것은 지천이의 녹주석 광산을 채굴하느라 힘을 써서 그런 것도 있을 거다.
“예에에에?”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사천에서 제일 큰 녹주석 광산이 당지천의 것인데, 오늘 곡노가 살수들에게 당하기 전 채굴을 마쳤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니, 돈 없다는 분이 녹주석 광산을 가지고 계셨단 말입니까?!
놀람도 잠시.
만독연주는 차분하게 현 상황을 파악해 봤다.
‘한 번 훼방을 놓았다는 건 앞으로도 훼방을 놓을 수 있다는 의미.’
앞으로의 녹주석 채굴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그런 시점에서 이미 채굴이 완료된 광산의 가치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곡노에게 제자가 있던 거로 압니다만, 그 제자는 어떻습니까?
-늦은 나이에 무공을 배우기 시작해 이제 겨우 이류 수준이다. 제 몸 하나 지키기 힘든 실력이니 불러도 의미는 없을 거다.
곡노의 제자마저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당가가 확보할 수 있는 녹주석은 이미 채굴된 극소수의 녹주석과 오직 당지천의 것뿐이었다.
-그걸 제게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만독연 예산에서 해결하고 은폐하라는 이야기입니까?
-맞다.
-하지만 운송이야 그렇다 쳐도, 녹주석 대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 예산이 맞지 않을…….
전음을 보내던 만독연주는 문득, 당지천이 돈을 벌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게 떠올랐다.
-설마 삼 공자님이 채우게 하실 겁니까?
-그래, 운송은 신화문에서 책임질 것이다. 예산은 지천이가 해결할 터이고.
원래라면 여러 이유를 들어 세력을 유지할 만큼의 돈을 당지천에게 줄 계획이던 당기룡.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지천에게 거는 기대가 커졌다.
-본디 가주는 가문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법도 알아야 하는 법. 어차피 장차 가주가 될 터이니 조금 이르더라도 지금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당지천이 들으면 기겁을 하다못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말을 참으로 태연하게 하는 당기룡.
아무리 철두철미하고 이유를 따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직 당지천과 관련된 일만큼은 근거 없는 믿음만 가득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당연히 만독연주는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 * *
의선문에서 곡노의 시신을 보자마자, 두근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신화문으로 향했다.
사람이 죽은 걸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무림이고, 곡노도 무림인이니 내가 모르는 어떠한 은원에 얽혀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단지, 절망이 가득한 얼굴로 죽어간 곡노를 보고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전생에 너무 많이 봤던 얼굴이라서 말이다.
‘뇌의 님의 말에 따르면 살수들의 솜씨라고 했어. 대체 누가?’
거기다, 몸을 엄습하는 불안감.
누구에게나 살수들이 찾아갈 수 있지만, 곡노가 지금 시기에 당한 것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누가 대체?
설마 2장로가?
‘아니, 그건 아니야.’
당군성과 경쟁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당지혁의 대리로 소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
곡노를 죽여서 좋을 건 아예 없었다.
오히려 들킨다면 당기룡의 진노를 정면으로 받을 테니 확실하게 아니었다.
거기다, 2장로는 후학 양성에 힘쓸 만큼 당가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곡노가 포섭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거한다는 건 모순된 이야기다.
‘그럼 대체 누가?’
속으로 범인에 대해 생각하던 동안 신화문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고는 곧장 신화문주에게로 안내되었다.
“이야, 공자님으로선 참 잘됐네요.”
“아니,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들어가자마자 대뜸 눈웃음을 지으며 일이 잘됐다고 말하는 신화문주.
내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다면 곡노 때문이라는 걸 알 텐데 저런 소리를 하는 게 곡노의 죽음이 잘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곡노가 사망한 게 공자님의 광산을 채굴한 뒤거든요.”
“예?”
아니, 곡노가 죽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천에 제일 큰 녹주석 광산이 공자님의 것인데, 채굴은 공자님의 것밖에 안 됐으니 당연히 가격을 마음대로 후려칠 수 있는 거죠.”
신난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신화문주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괴리감이 느껴졌다.
원수도 아니고, 잠깐이나마 일을 같이한 사이인데 무덤덤하게 넘기기는커녕, 아예 즐거워하다니…….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다만, 그걸 곧이곧대로 내색할 순 없었기에 단순히 화제를 돌릴 뿐이었다.
“혹시 적혈문에 누가 의뢰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라는 듯 눈썹을 들썩이는 신화문주.
“적혈문에 누가 의뢰했는지 캐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도 알기에 그 전에 꼬리를 잘랐겠죠.”
“그렇습니까…….”
“안타깝네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생글생글 눈웃음을 짓는 신화문주는 갑자기 그런 눈과 다르게 진중한 어조로 한마디를 보탰다.
“그런데 공자님. 무림에선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다간 좋은 꼴 못 보실 겁니다. 부디 주의하시길.”
진중한 어조와 대비되는 눈웃음이 섬뜩함을 자아냈지만, 나한테는 별로 와닿지 못했다.
그걸 왜 모르겠는가.
비록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무림에서 일이 벌어지는 제일 큰 원인이 함부로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리 질문한 건 따로 켕기는 게 있어서다.
“뭐, 우리 공자님이 그걸 모르시진 않을 것 같고 노파심에 한번 경고해 봤답니다. 그래도 다소 놀라셨을 수도 있으니 사과의 의미로……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여전히 변함없이 눈웃음을 짓는 신화문주가 옆 방으로 들어가더니 웬 익숙한 곡괭이를 하나 들고나왔다.
“아니, 그건 곡괭이 아닙니까?”
“관도에 쓰러진 곡노를 처음 발견한 게 저희 쪽 인원이거든요. 그래서 손녀분에게 유품이라도 가져다 드렸더니, 돌아가시면 친우분에게 곡괭이를 드리기로 했으니 대신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저희가 표국도 아닌데 말이죠. 뭐, 알 리는 없겠지만요.”
신화문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다시금 눈웃음을 지으며 곡괭이를 내밀었다.
“위치를 확인해 보니 여기서 멀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귀찮은 일도 할 겸, 마음의 짐도 덜 겸 공자님이 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곡괭이가 백련정강으로 만들어졌던데 그냥 가지셔도 상관없습니다.”
“…….”
원래라면 내가 할 필요는 없는 일.
신화문주의 말대로 표국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천에 있는 표국은 아미파와 청성파에게 잠식당한 상황.
당연하게도 현철보다도 귀한 백련정강이 보인다면 표물이 제대로 옮겨질 리가 만무했다.
곡노가 죽은 지금이라면 더더욱.
“제가 하겠습니다.”
고민은 길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산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는가.
내키지는 않지만, 신화문주의 말대로 곡노가 죽음으로써 내게 이득을 줬으니 나 또한 그의 자그마한 부탁 정도는 들어주기로 마음먹고 곡노의 곡괭이를 전해 받았다.
* * *
사천성 면양시.
성도에서 대략 150리 넘게 떨어진 곳으로 관도와 이어져 있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
이곳에서도 유독 인적 드문 산속에 곡노의 친우가 있다는 신화문주의 말에 따라, 일염이를 대동한 채 도착했다.
“정말 여기가 맞아?”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맞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일염이.
위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도착하자마자 온 사방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 때문에 반신반의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주변에서 진동하는 이 익숙한 냄새는…….
“그런데 왜 화약 냄새가 나지?”
다름 아닌 일전에 백화상단에서 맡은 것과 같은 화약의 냄새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