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40화
“공자님!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갑니다!”
“야이 멍청한 자식아! 독학관 다니는 애들도 그 정돈 이해하겠다! 공자님 귀찮게 하지 말고 나와!”
“뭐 이 자식아?”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비키거라! 다음은 내 차례다!”
“호기심을 채우는 데 그딴 게 어딨습니까!”
도떼기시장…… 아니,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난장판.
녹주석 가공법에 대한 해설을 시작으로 연구원들에게 질문을 받아 설명한 지 두 시진이 넘었음에도 연구원들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허허허…….”
뭐, 사실 4시간 가지고는 제대로 된 해답을 줄 수 없기에 택도 없는 건 이해했다.
학문이란 원래 의견 좀 나누다 보면 하루 이틀쯤이야 금방 가는 거니까.
그러나 아무리 과열된다고 한들 선이 있던 전생과 달리, 이곳은 무림.
“좋다! 그럼 공평하게 비무로 순서를 정하자꾸나!”
“바라던 바입니다!”
강당 곳곳에서 주먹다짐을 시작하는 연구원들의 모습에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전혀 통제되지 않는 이들.
정말 연구 윤리를 제외한 것은 집에 놔두고 왔는지 상식이란 게 결여된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거기다. 분명 저게 다 끝나고 나면 또 시달리기 시작하겠지. 그렇다고 학자로서 지식을 탐구하겠다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연구도 좋고, 호기심을 채우는 것도 다 좋다 이거다.
나도 한 명의 과학자로서 연구의 실마리를 얻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게 얼마나 기분 좋고 값진 일인지 알기에 딱히 말리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최소한 쉬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안 그래도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지금 모습을 보아하니 1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을 통제해야 할 만독연주와 다섯 장로는 옆에서 뭔가를 웅얼웅얼거리며 저들끼리 논의할 뿐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만.”
“뭐가 아니라는 것이냐. 가주가 쥐뿔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 연구를 듣자마자 단번에 이해하신 게 우리 공자님이다. 그런 공자님이라면 우리가 연구비를 달라 하면 오히려 웃는 얼굴로 돈을 내주실 거다.”
“네놈도 만독연주라는 자리에 앉아서 그 돈 귀신에게 물든 것이냐?”
“외람됩니다만 공자님도 돈 밝히신다는 소리 많이 들으시는데…….”
“그건 다 쓸데가 있어서 그런 거다! 공자님이 만독연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분명 장로님들의 연구를 듣고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 공자님이 돈을 밝히신다는 오명을 쓰신 건 어디까지나 연구를 위해, 당가에 이바지하기 위해 스스로 오명을 쓰신 거란 말이다!”
“하지만 그건 가주님도…… 뭐, 됐습니다. 그건 대충 넘어가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장로님들이 연구비를 달라 하시면 공자님이 지출을 부담하시기 힘드실 겁니다.”
그냥 뒷배가 필요했을 뿐인데, 어느샌가 성인군자 취급을 받는 나.
잠깐,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연구 관련된 이야기만 했는데 갑자기 돈 이야기가 왜 튀어나왔지?
“연주님 지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 공자님…….”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얼굴은 굳히며 뒷걸음치는 만독연주.
하지만 이내 장로들 사이에서 떠밀리듯 나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사실은 말씀드리는 걸 까먹었습니다만…….”
송구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는 만독연주.
그러다 멋쩍은 웃음을 한 번 짓고는 입을 열었다.
“원래 세력을 만들면 그 세력의 수입과 지출은 공자님이 담당하시게 됩니다. 아, 물론 만독연같이 큰 조직을 통솔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하부 조직들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연구실이라든가, 무력 부대의 일개 대라든가.”
“예? 전 여태껏 그런 소리 들은 적 없습니다만?”
“보통 세력을 일구기 전까진 숨기니까 당연한 겁니다.”
아니, 그걸 미리 알려줘도 모자랄 판에 대체 왜 숨긴단 말인가.
“당가는 다른 문파와 달리 무인이 곧 돈이기에 그걸 여실히 느낄 수 있게끔 미리 알려 드리지 않는 겁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방법을 씀으로써 굳이 무력 부대 외에는 도외시되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허허허.”
절로 나오는 헛웃음.
음독식을 거치기 전만 해도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았다고 생각했거늘, 어디서 이런 어이없는 말이 나왔을까.
“그래서 제가 장로님 다섯 분의 연구실을 포함한 연구실들의 수입과 지출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행정 업무라면 대신 해드리긴 하겠습니다만…….”
다시금 말끝을 흐리는 만독연주.
자, 정리해 보자.
당가에서 세력을 갖추게 되면 그 세력의 수입과 지출을 내가 관리하게 된다.
즉, 지금 여기 있는 연구원들이 만독연 연구원들의 거의 절반이니 만독연의 연구 비용 절반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
“저들의 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혹시 몰라서 물었지만, 입을 꾹 다무는 만독연주.
현대에서의 연구실이라면 산학 협력이든 특허든 뭐든 간에 돈을 벌 방법이 있었겠지만, 만독연은 연구와 독의 보관만 하는 터라 수입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밑에 있는 연구실들의 수입도 0.
반면에 지출은?
“오, 맙소사…….”
대충 가늠해 보자, 몰려오는 아찔함.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이미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린 숫자에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당가에서 제일 중히 여기는 기관인 만독연.
어떤 이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할 만큼 돈을 처먹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거기의 절반을 내가 담당하라고?
아무리 연구원들이 중립을 중시한다지만, 어째서 당지독이나 당지혁이 만독연에 손을 제대로 뻗지 않았는지 여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만약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휘하의 인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찌 가문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게도 곧바로 소가주 후보에서 배제될 겁니다.”
다시금 뇌리에 흐르는 아찔한 감각.
잠시간 ‘망했다’라는 단어가 머리를 지배했지만, 이내 진정을 되찾고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다면 일단 공식적으로는 제 휘하에 들지 않은 걸로 하죠. 그러면 지출을 제가 부담할 일은 없잖습니까?”
“저 그게…….”
이번에도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는 만독연주.
지금 이런 소리가 나온다는 건 설마?
“제가 전각 앞에서 허락을 받았다고 했잖습니까? 이미 가주님께는 다 보고가 됐습니다.”
“허허허. 그래도 장로님들도 다섯 분이나 계시고, 연주님도 계시니 생각 없이 행동하시진 않았을 터, 돈이 있어서 절 부르신 거 아니겠습니까.”
만독연주와 장로들을 쳐다봤지 절로 돌아가는 고개들.
내 눈빛을 애써 외면하기 바쁘기 그지없었다.
“크흠,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탓에 연구비가 많이 들어서…….”
“객잔에서 10문 하던 소면이 12문 하는 걸 보면 말 다 한 셈 아니겠습니까.”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놨지만, 결론은 딱 하나.
자기네들은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다른 연구원들은?”
좌중을 둘러보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강당 안.
누구 하나 돈이 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조금 모아둔 돈이 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조금이라…….”
그나마 나서는 이가 있다면 오직 만독연주뿐.
나머지는 하나같이 알뜰살뜰하게 연구비로 써버렸는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허허허…….”
옘병.
내가 이놈들을 왜 받는다고 했지?
그냥 무시하고 말걸.
“연구고 뭐고, 돈 구할 때까진 국물도 없을 테니까 다들 그렇게들 아시고, 전 돈 벌 궁리를 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한탄해 봤자, 어쩌겠는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최대한으로 하는 수밖에.
* * *
“하아.”
만독연주를 비롯한 연구원들을 내 세력으로 거둬들인 날 밤.
방안에서 홀로 한숨을 쉬며 돈 상자를 뒤적여 봤지만, 부족하디 부족한 양밖에 안 보였다.
“그래도 장로들이 연구비 운운한 거 보면 나한테 돈 나올 구석은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녹주석 가공법에 대한 포상금이겠지?”
아무리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다고 한들, 장로는 장로.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기에 빈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물론, 경제적인 감각은 떨어지는 것 같으니 금액이 얼추 맞을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겠지만.
“돈이 없네. 돈이 없어. 그렇다고 녹주석 광산의 수익을 끌어다 쓸 순 없으니…….”
돈이 없다고 엄살을 피우고 있긴 했어도 정 구하려면 구할 순 있었다.
녹주석 판매 자금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허나, 그건 엄연히 뒷구멍으로 챙겨야 하는 돈.
소액이라면 몰라도 남들에게 드러내고 쓸 돈은 아니었다.
“정 수틀리면 꺼내 들겠지만, 일단은 버텨봐야지. 그러니 돈. 돈을 벌어야 해…….”
열심히 생각해 봐도 도통 떠오르지 않는 해답.
사실 이렇게 짱구를 굴린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처음에 당지천이 되었을 때, 돈 벌 계획을 왜 안 세워봤겠는가.
아무리 무력이 중요하다고 한들, 금력 또한 중요하기에 바로 계획을 세워봤다.
허나,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
화학적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이 다양하고 유용하긴 했다.
뭐, 굳이 화학적 지식이 아니더라도 비누 같은 간단한 발명품들도 있잖은가?
그러나, 양산이라는 건 결국 산업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
거기다. 유통망도 필요했으니 믿고 맡길 사람이라곤 천일염뿐인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값싸고 양 많이 팔아야 하는 물건들은 전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물량은 적으면서 비싼 물건들뿐.
일단 제일 먼저 생각났던 게 인조 보석이다.
현대에는 값싸게 인조 보석을 만들어 낸 만큼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한번 시세를 알아봤는데, 이것저것 제약 사항이 많았다.
예를 하나 들자면 다이아몬드.
오직 탄소로만 이루어져 있고, 강한 압력과 많은 에너지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서 무인들이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절정고수조차도 다이아몬드를 만들지는 못했다.
‘고압은 몰라도 고온을 유지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지.’
결국 화학기상증착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효율이 극히 낮았고, 화학기상증착 방식은 쓸 수 없어서 못 만드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만드는 것부터 문제이긴 한데, 그걸 둘째치더라도 공청석유나 만년한철같이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귀한 물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보석의 가격이 상상 이상으로 낮았다.
그래서 소액이라면 몰라도 큰 금액을 벌기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다음 생각난 것이 약.
‘모든 약은 독이다. 독성이 없는 약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물건.
허나, 아무리 독과 약이 궤를 같이한다고 한들, 어느 상황에 누구에게 복용해야 하는지부터 부작용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어서 손을 놓았다.
애초에 제형이나 이런 쪽은 아예 지식이 없으니 말 다 한 셈.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기에 놓아줘야 했다.
“방법이 없네.”
결국 그렇게 하나둘 쳐내다 보면 돈 벌 방법이 없었다.
“그냥 아무 땅이나 사서 금광이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혼자서 끙끙대며 돈 벌 계획을 궁리하고 있자, 갑자기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천이 게 있느냐?”
문을 열어보니 찾아온 사람은 남궁공자였다.
“뇌의 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내일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러 왔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내일 우리 문도들이 성도에 들른다는구나. 그리하여 성도에서 진료를 볼 것인데, 나와 같이 진료를 보러 가자꾸나.”
“진료 말입니까? 제가?”
아니, 내가 의원도 아닌데 왜 굳이 나를 데려간단 말인가.
“나도 네 일을 도와줬다. 그럼 너도 날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 그건 맞긴 합니다만…….”
전공이 다르잖습니까.
전공이.
“그럼 내일 보자꾸나.”
그러나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 홀연히 떠나는 남궁공자.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쉴지언정 거절하지 못했다.
내가 받은 게 아예 없다면 모를까, 남궁공자의 도움을 받긴 했기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자고로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도리니까 말이다.
“에휴, 이게 다 내 업보지.”
갑작스럽게 생긴 내일 일정에 한숨을 쉬며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때.
번뜩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잠깐, 내가 약을 만들고 완성은 뇌의 님의 도움을 받으면 되잖아?”
굳이 내가 완성할 필요 없이 남궁공자의 도움을 받으면 약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약은 소모품이라 가격이 떨어질 일도 없고, 남궁공자라면 먹고 튀지도 않을 테니 가히 환상적인 생각이었다.
“이거 잘하면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