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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37화 (37/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37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소는 많고 많지만, 그중 5대 영양소로 불리는 필수 영양소가 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그리고 비타민과 무기염류.

이것들은 굳이 의사나 약사가 아니더라도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아주 유명하고 몸에 유익한 물질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 또한 독이 아니진 않았다.

“어떻게, 뭐 좀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방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 뇌의.

내 입가에 머물던 미소를 봤는지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예. 한 가지만 확인해 보면 확언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기엔 듣지 않으실 듯해서 말입니다.”

천일염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내가 남궁공자랑 있을 거니까 자기는 영혼을 건 죽음의 장송곡을 피워 올리러 간다며 쏜살같이 탈주해 버렸다.

뭐,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장한 얼굴을 보아하니 대충 신화문주와 노름하러 가는 듯했다.

어쨌든 그래서 일염에게 부탁할 순 없으니 남궁공자에게 직접 부탁하려 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화를 엿듣고 있을 곡노에게 말하는 거지만 말이다.

“그래, 내가 무슨 일을 도와주면 되겠느냐.”

“곰의 간으로 만든 약재를 줬다는 친우분과 불화가 있었는지 물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뭐?”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되묻는 남궁공자.

분명 내 생각 정도는 어느 정도 읽을 줄 알았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니, 한 가지 확인해 보면 알겠다는 것이 어떤 독인지 짐작 간다는 소리 아니었느냐?”

“예?”

아니, 똑똑하신 뇌의 님께서 갑자기 왜 이러실까?

“무슨 독인지는 이미 알았습니다. 단지, 고의로 독을 먹인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도와달라고 말씀드린 겁니다만?”

“허허허…….”

남궁공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웃음을 지우고 물었다.

“치료 행위보다 그걸 먼저 확인하는 건 위험한 독은 아니라서 그런 것이냐?”

“음……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할 수 있긴 한데, 만약 그런 낌새가 보였다면 뇌의 님이 이미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우리가 흔히 독기라고 부르는 것들은 독성 물질로 작용할 때야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궁공자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 독성이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제가 치료 방법에 대해선 잘 모르기도 하고, 더 먹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회복할 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화학자지, 의사는 아니라 치료 방법은 몰랐다.

그리하여 굳이 손대지 않기로 한 건데…… 갑자기 부서질 듯이 열리는 문.

문 너머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곡노가 끼어들었다.

“이젠 어린아이라 무시하지 않을 테니 시위는 거기까지만 하고 들어오거라.”

나는 순전히 한두 가지만 협조해 주길 바라고 행동한 건데, 곡노가 보기에는 일종의 시위로 보였나 보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좋은 게 좋은 거였다.

그렇게 곡노의 부름에 다시금 방으로 들어가자, 바로 운을 떼는 곡노.

“속 시원하게 말해보아라. 예령이가 도대체 뭐에 중독된 것이더냐?”

지금의 상황이 어지간히도 갑갑한 것인지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참 안쓰러웠다.

그래서 질질 끌지 않고, 궁금증 먼저 해결해 줬다.

“곰의 간입니다.”

“곰의 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곡노.

“곰의 간이라면 나 또한 같이 먹었다. 미약하게 독성이 있는 것도 확인했지만, 그건 모든 약재가 그러지 않느냐?”

“맞습니다. 이 곰의 간이 가진 독성은 무인에게는 효용이 없습니다.”

내가 곧장 수긍하자 곡노의 눈에는 한순간 노기가 깃들었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진정하고 물었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군. 통하지 않는 독을 어찌 독이라 부를 수 있지?”

중원의 사회 통념상 통하지 않는 물질을 독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곰의 간같이 약재로 쓰이는 물질 또한 독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중원에서 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독성으로 누군가를 중독시켜 목숨이 위태롭게 하는 물질들뿐이었으니까.

허나, 그런 중원의 사회 통념상으로도 이건 엄연히 독이라 부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독이 중독시키려는 목표는 산모가 아닌, 어디까지나 배 속의 아이이니까 말입니다.”

이 독은 산모는 살린 채, 오직 아이만 죽이려 하는 독이었으니까.

“뭬, 뭬야?”

아까 친우가 보내줬다던 북방보다 더 먼 곳에서 잡은 백곰의 간.

이것이 의미하는 건 다름 아닌 북극곰의 간이었다.

북극곰.

말 그대로 북극 지방에 서식하는 흰색 곰으로 시베리아 북단 쪽에도 서식하는 멸종 위기 동물이었다.

그런데 생태학자도 아닌 내가 북극곰의 서식지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그건 바로 북극곰의 간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필수 영양소 중 하나인 비타민 A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먹으면 이승을 하직할 만큼 가득 말이다.

‘뭐, 엄연히 따지자면 비타민 A의 기본 분자인 레티놀 때문이지만 그건 넘어가자고.’

“배 속의 아이를 노리다니, 그게 무슨 소리더냐? 그럴 거였다면 그냥 평범한 독을 쓰면 되지 않겠느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되묻는 뇌의.

원래 중원에서는 산모는 살려두고 아이만 죽이고 싶다면 산모가 해독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죽지도 않을 독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산모가 독기를 제대로 중화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죽는 건 배 속의 아이니까 말이다.

“뇌의 님 오늘 아침에 장하에게 설명해 주신 내용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지만 비타민 A는 그런 흔한 독들과 작용기전이 달랐다.

실상 많은 과정이 있지만, 독의 작용기전을 축약한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독에 노출.

표적 부위로의 전달.

그리고 독의 작용.

이를 우리에게 친숙한 청산가리로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독에 노출은 청산가리를 먹는 것.

표적 부위로의 전달은 청산가리가 몸에 흡수되어 각 세포로 이동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의 작용은 청산가리(사이안화 칼륨)가 분해되며 생긴 사이안화이온이 미토콘드리아를 죽이며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이라…… 설마, 이 독의 작용기전이 아이에게만 치명적이라는 소리더냐?”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언급했듯이 비타민 A는 작용기전이 달랐다.

현대든 중원이든 대다수 독은 직접적으로 그 물질 자체가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독에 노출되자마자 독성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독이 표적 부위로 이동하는 동안 독성을 흩뿌리든지 배출하든지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독의 작용을 막아 독에 저항했다.

허나, 비타민 A는 필수 영양소인 만큼 들어올 때는 그 독성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건 표적 부위로 이동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였으며, 무엇보다 비타민 A의 무서운 점은…….

“이 독은 체내에서 독성화되며 태아의 심각한 기형을 유발하는 독입니다.”

청산가리와 달리 체내에서 독성화되는 독이라는 점.

그리고 태아의 심각한 기형을 유발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왜, 흔히들 들어봤잖는가.

독성이 발휘되기 전까지 중독된 줄도 모르는 독들의 존재를.

고결한 무공을 가진 고수들이 독기를 잔뜩 머금은 독이 몸에 들어오는데 그걸 모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게 말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가능한 건, 받아들일 땐 멀쩡하다가 몸 안에서 갑자기 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건 필수 영양소인 비타민 A.

산모가 비타민 A를 과잉 섭취할 경우 태아의 얼굴, 사지, 심장, 중추신경계, 뼈대 등의 기형을 유발하며 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막는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간 유산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독성을 가졌다.

사실 원래라면 산모에게 먼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비타민 A를 과량 섭취하면 간에서 독성화되어 오심, 두통, 현기증 같은 것들이 찾아오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게 무인들은 경지가 오를수록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는 법.

산모가 과잉 섭취한 비타민 A가 간에서 독성화되지 못했을 거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산모가 독성을 명확히 인지한 건 아니었기에 그 영향이 사라지진 않고, 모두 태아에게 갈 예정이었는데…….

“그럼 아이가 위험한 것 아닌가?”

“아닙니다. 손녀분께서 대처를 잘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

산모가 아이에게 필수 영양소를 공급하는 곳이 아까 뇌의가 언급했던 태반.

그곳에서 아이에게 가는 영양소의 양을 조절하는데, 아마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과한 양이란 걸 알아차리고 비타민 A를 막아내느라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것일 거다.

‘자신의 활동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기를 모두 태반에 집중시키다니…….’

제대로 이해하지도, 그렇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을 텐데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걸 보면 모성애란 건 참으로 대단했다.

“……잠깐만 기다려 보아라.”

설명을 마치자, 곡노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말린 곰의 간을 가져와 뇌의에게 가져다주자, 곧바로 확인하는 남궁공자.

“네 말이 사실이구나.”

곰의 간을 직접 먹어보더니 이내 시간이 지나자 독성화되는 걸 느끼고는 내 의견을 지지해 줬다.

그리고 이후 곡노에게도 추가적인 설명을 해줬다.

또한, 여태껏 병풍처럼 서 있던 당소예와 당군성도 그걸 확인하더니 감탄했다.

“대단하시군요. 삼 공자님.”

“제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알 수 있었는데 단번에 알아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늘 처음 보는 당소예 장로는 그렇다 해도, 당군성은 이 자식은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렇게 질척대?

‘끙, 이 자식 뭔가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불온하다. 불온해.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 당소예와 당군성은 깨끗이 항복 선언을 하고는 곧장 물러갔다.

‘하, 이게 뭐야…….’

대놓고 면박을 주려 했건만 너무도 깔끔하게 물러나는 당군성.

‘이번엔 연구 증명 때와 달리, 물고 늘어질 건수가 몇 가지 되는 것 같은데 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로 뭔가 수상한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아니면 순전히 나의 착각이든가.

“아휴, 모르겠다. 나는 할 거나 하고 집에 가자고.”

* * *

곡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한가로이 전각으로 돌아오는 길.

“이걸로 광산 문제도 해결이네.”

혹시 모르니 오늘만은 환자를 살피고 가겠다는 남궁공자의 말에 나는 눈치껏 곡노에게 광산을 채굴해 달라 부탁하고 홀로 곡노의 장원에서 빠져나왔다.

“후, 드디어 한숨 좀 돌리겠구나…….”

총회에서 녹주석 가공법을 발표하고 나서부터 정말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던 나날들.

이제는 얼추 모두 정리가 되었고, 제일 문제였던 녹주석 광산의 건도 잘 해결됐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 인생 쉬엄쉬엄 살아야지. 천하제일인이고, 소가주고, 모두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

자고로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인 법.

중간중간 휴식을 취해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각에 도착하자마자.

“하…….”

뭔가 불길한 기세를 뿜으며 퀭한 얼굴로 전각 앞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니,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남의 집 앞에…… 만독연주님? 왜 여기 계십니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만독연주.

평소의 단정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꾀죄죄하기 짝에 없는 옷들과 도대체 얼마나 밤을 새웠는지 가늠도 안 갈 정도로 어둠이 드리운 얼굴 때문에 한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거기다. 손에는 웬 이상한 포대 자루를 들고 있었으니…… 눈썰미가 좋은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못 알아봤을 거다.

“하하하, 웬 포대 자루입니까? 이러다가 눈 깜짝할 새 납치되는 거 아닌가 두렵습니다.”

인사를 건네면 반응을 할 법도 하건만, 여전히 반응이 없는 만독연주에게 농을 건네자, 이번엔 나를 인식한 건지 만독연주가 퀭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예?”

“어떻게 아셨냐는 말입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아니, 농담했는데 어떻게 알았냐니?

설마 진짜로 납치해 가려는 거야?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요즘 쉬지 않고 일을 했더니 망상이 지나쳤다.

그리 생각하며 애써 상황을 부정했지만, 왠지 모르게 피부에는 섬뜩함이 송골송골 맺혔다.

“뭐, 어떻게 아셨는지는 상관없습니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만독연주.

“뭐, 뭡니까!”

나와 만독연주와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점점 섬뜩하게 변해갔고, 동시에 포대 자루의 입구도 서서히 열렸다.

“저와 함께 가시죠. 공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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