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36화 (3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36화

당지천과 뇌의가 곡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당군성과 당소예.

그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로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분명 방해가 들어오지 못하게 가문엔 정보를 완전히 차단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다른 이의 개입도 모자라 하필이면 뇌의가 왔잖느냐. 거기다, 당지천까지 왔으니…….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당소예.

뇌의가 누구던가.

의선문의 대장로이자 신의의 제자로, 젊은 시절을 당가에서 보내며 독에 대한 지식을 상상 이상의 습득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지금 계획을 망치기엔 신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었다.

거기다. 뇌의 한 명이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같이 온 게 당지천이다.

단순히 보면 고작 12살짜리 애송이.

전혀 문제 될 것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실상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 일들을 보고도 당지천을 과소평가한다면 필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겠지.’

폐품으로 불리던 녀석이 독학관을 시작으로, 만독연에서의 연구 증명에서 활개 치기 시작하더니 총회에선 아예 녹주석 가공법을 발표하면서 명실상부 당가 최고의 기재로 떠올랐다.

당지천의 발언을 원로들이 풀이해 주자, 굽이치듯 퍼져 나간 깨달음의 파도는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줬을 정도였으니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

-어제 청성 쪽에서 일을 그르쳤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의 연으로 신화문주가 곡노에 대한 정보를 넘겨준 듯싶습니다.

-벽곡단 이 얼간이 같은 것이…….

일을 그르쳤다는 소식에 절로 찌푸려지는 당소예의 얼굴.

비밀 조직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단체가 정보 단체다.

그런데 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고 무림 3대 정보 단체인 신화문과 일을 만들었다는 소문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벽곡단도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리 행동했겠지만, 원래 잘 움직이지 않기로 소문난 신화문주가 당지천과 접촉할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일을 그르쳤는지 감도 안 올 지경이었다.

-염려하실 만한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죠. 일 처리가 심하게 엉망이긴 했으나, 적어도 꼬리를 물리진 않았다고 합니다.

당군성이 벽곡단의 일을 두둔했음에도 당소예의 미간을 풀릴 줄을 몰랐다.

-조직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중요한 건 잘못하다간 곡노를 포섭하지 못하게 생겼다는 거잖느냐. 만에 하나라도 당지천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당소예가 인상을 더 찌푸리며 전음을 보냈다.

-곡노를 제거해야 하지 않느냐.

한창 당지천의 발표로 인해 녹주석 광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당가.

지금 당소예와 당군성이 곡노를 찾아온 건 녹주석 광산과 관련이 없지 않았다.

당가의 인물들이 광물독을 원한 이유가 뭔가.

가장 이른 시간 내에 많은 극독을 얻어 전력을 강화하길 원해서가 아닌가.

지금 당장은 평화로워 보여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가문의 존폐 위기를 겪었던 당가.

당가에서는 녹주석의 가공법을 알자마자, 최우선 목표를 녹주석의 확보로 설정하고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채굴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지금 사천에 나타난 곡노.

본신의 무력은 강하지 않으나, 곡괭이질 한 번에 산을 가르고, 광산을 채굴한다는 그 곡노다.

당가에서는 당연히 눈이 돌아가는 상황.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하루라도 더 빨리 녹주석 채굴을 해달라고 요구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당가의 전력이 이른 시일 내에 급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가를 전복시키고 집어삼키려는 그들에겐 전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제거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자칫하면 흔적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며칠 동안 여유를 두고 회유하는 방향으로…….

-아니, 제거해야 한다.

굳은 눈으로 당군성을 보며 고개를 젓는 당소예.

-곡노는 은혜든 원한이든 모두 돌에 새기는 사람이다. 만약 당지천 쪽에 붙는다 온건하게 회유할 방법은 없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허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건은 당지천이나 뇌의라도 별수 없을 터이니.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정보원들이 이르길, 이번 일에 사용된 물건은 독성이 알기 힘들 정도로 미약하고, 여태까지 본 적 없던 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한들,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할 능력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것이 사람을 고치는 일이라면 신중히 판단해야 하기에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당지천을 얕보지 않는 당군성이라도 이번 일만큼 당지천과 뇌의가 먼저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했다.

독성이 있는 걸 아는 건 쉽다.

굳이 당가인이거나 의원이 아니더라도 독기가 몸에 머물고 있으면 필시 알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해독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왜 의원이 있음에도 독에 중독되면 당가를 찾겠는가.

그건 독이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당가가 더 잘 알기 때문 아니겠는가.

당지천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아직 견문이 좁기에 본 적 없는 독은 대처할 수 없을 거다.

남궁공자 또한, 당가에 오래 있었다고 해도 용독술은 자신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였으니 치료를 하려면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당지천과 뇌의가 곡노를 포섭하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을 거다.

‘사실 설령 만에 하나가 일어나도 문제가 없긴 하지.’

거기다, 설령 당지천과 뇌의가 독을 알아내더라도 즉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이쪽이 유리했다.

왜냐면 그들과 반대로 이쪽은…….

-그렇다면 걱정될 것 없겠구나. 우린 독성만 확인하면 곧바로 치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독성을 명확히 인지하기만 하면 치료할 수 있는.

주술에 가까운 물건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 * *

곡노의 뒤를 따라 장원 안으로 들어가는 길.

남궁공자를 데려온 덕분인지 조금 친절하게 대해주는 곡노에게서 사천에 온 자초지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지금 손녀분께서 임신 중이고, 어느 날 갑자기 이름 모를 독에 중독되어 요양하는 중이라는 말씀입니까?”

“정확히는 중독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아픈 곳이 없고, 내가 맥을 짚어봐도 전혀 독성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일세.”

“독성이 바로 돌지 않는 독도 있으니 전자는 그럴 수 있으나, 직접 진맥을 했음에도 모르겠다고 하시다니…… 혹 의원에게 가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왜 없겠나. 사천까지 오면서 있던 의원이란 의원은 죄다 만나봤는데도 별 이상 없다고 하더군.”

도통 모르겠다는 듯 곡노가 고개를 젓자, 생각에 잠기는 남궁공자.

“중독된 듯하나 아픈 곳은 없다…… 혹시 손녀분께서 무인이십니까?”

“어디 가서 자랑할 솜씨는 못 되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끼칠 정도의 실력은 아니네.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곡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남궁공자를 보자, 남궁공자는 옅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의원은 결코 환자를 보기 전에 섣불리 입을 놀리지 않습니다.”

“그런가…….”

아쉬운 얼굴을 하면서도 수긍하는 곡노.

날카로워진 신경 탓인지 나한테는 막 대했어도, 남궁공자에게는 거는 기대가 큰지 격식을 차려 대했다.

“이쪽일세.”

곡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한 여인.

곡노의 손녀로 보이는 이 여인은 만삭은 아니지만, 조금은 부푼 배에 손을 얹은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중독된 것 같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말 뿐이었는데, 한 달 전쯤부턴 배 속의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며 하루를 대부분 잠으로 보내고 있네.”

손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곡노.

그 눈에 든 애틋함을 보면 얼마나 손녀를 아끼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하셨겠지만, 먹는 것들이나 하인들은 검사하셨습니까?”

“했는데 별 이상 없더군. 하다못해 예령이와 매일 식사를 함께하고 같은 음식을 먹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네.”

말로만 들으면 그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는 상황.

의학에 연이 깊지 않은 나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문제였다.

“일단 진맥부터 해보겠습니다.”

근데 그건 남궁공자도 마찬가지였는지, 도통 감이 안 온다는 얼굴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흠…….”

진맥하는 중임에도 전혀 풀리지 않는 남궁공자의 얼굴.

여전히 감을 못 잡았는지 몇 분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뭐 좀 알겠나?”

진맥을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곡노의 기대에도 남궁공자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는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간과 태반 쪽에 이상이 조금 있고 기혈이 조금 뒤틀린 듯하나 둘 다 아주 미약한 정도입니다. 그리고 독성은 전혀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런가…….”

“곧장 알아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닐세. 아직 시간은 많지 않은가.”

기대했던 남궁공자가 전혀 모르겠다고 하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곡노.

그런 곡노를 보는 남궁공자도 맘이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나 또한 맘이 불편했다.

‘간과 태반에 이상이 있고, 기혈이 뒤틀렸다라…… 종류가 너무 많은데.’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는 상황.

기혈이 뒤틀린 것 자체나 태반에 작은 이상이 생기는 건 어떤 독이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거기다, 간을 표적으로 삼는 독은 차고 넘치고. 이럴 땐 서로 다른 증상이나 독성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찾을 수 없으니 나조차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즉, 지금의 내가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

‘뇌의 님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니 고깝지만 당군성 쪽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나.’

당군성이 고깝고 안 좋은 인상을 줬다고 해서 치료를 방해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귀하다고 한들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저희가 한번 진맥해 보겠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자신에 찬 얼굴로 앞으로 나서는 당소예.

호기롭게 손목을 짚는 모습이 당장에라도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잠시 뒤…….

“뭐 좀 알겠나?”

당소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똑같이 달려드는 곡노.

그런 곡노의 물음에 당소예도 남궁공자와 똑같이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여러 번 진맥했습니다만, 도무지 독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당소예의 얼굴이 남궁공자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딱딱해졌다는 점.

“그런가…….”

남궁공자에 이어, 당소예도 전혀 모르겠다고 하자 곡노는 완전히 앞이 깜깜해진 듯 얼굴을 부여잡았다.

그런 곡노를 본 뇌의는 아직 실망하기 이르다는 듯 물었다.

“혹시 손녀분께서 꾸준히 드시는 약재가 있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령이의 친우가 보내온 약재가 있긴 하네. 북방보다 더 먼 곳에서 잡은 백곰의 간을 통째로 갈아서 만든 약재라고 하는데, 나도 같이 먹었음에도 아무 이상 없었다네.”

“그렇습니까…….”

당연히 문제가 없다는 듯 이야기하는 곡노와 수긍하는 남궁공자.

그러나 나는 순간 두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뭐?! 곰의 간? 설마…….’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이름에 반쯤 확신이 들었지만, 일단은 부정했다.

흥분한 채로 확신을 한다면 놓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자.’

하지만 이어지는 몇 번의 검증에도 문제가 없었고, 무엇보다 문득 떠오른 오늘 아침의 일.

-모든 독은 작용기전이라는 걸 가지고 있어.

장하에게 설명해 준 덕에 곧바로 떠오른 독의 작용기전을 생각해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았다.

확신이 들자, 입가에 절로 떠오르는 미소.

이렇게 또 건방진 당군성에게 엿을 선사해 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뇌의 님. 잠깐 저 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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