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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28화 (2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8화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공간.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이곳에서 당군성과 어둠에 모습이 가려진 인영 하나가 마주 보고 있었다.

“……해서 당지천이 대공자님의 연구를 훔치고 원로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습니다.”

“당지천이? 폐품 주제에 아주 제법인데? 이러다 우리 존재를 들키는 거 아닌지 몰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영민하다고 한들, 저희 존재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군명에겐 계속 안하무인한 태도를 취하라 명해두었습니다. 삼 공자의 심성 상 단순히 속아 넘어갈 겁니다.”

“역시 군성이야. 말 안 해도 다 알아서 하는구나.”

“그런데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당지천의 호위. 천일염이 신화문에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래서 처리했으면 한다고?”

“예. 싹은 미리 뽑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음, 어떻게 할까나…….”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고민하던 인영이 손가락을 두어 번 튕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놔둬.”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난 아직 갇혀 있으니까. 꼬리를 밟는다고 해도 정체를 알아내진 못할 거야. 오히려 파면 팔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겠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맞아. 5년 전의 일. 계획이 어그러졌음에도 일은 성공했잖아. 근데 아무리 약하더라도 호위가 검조차 안 꺼내고 죽게 놔둔다는 게 말이 돼? 분명 그 녀석도 뭔가 숨기고 있을 거야.”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하는 인영.

“그리고 그 호위가 아니라 당지천도.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무엇을 말입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군성이 되묻자 인영은 여전히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당지천에게선 냄새가 나. 냄새가.”

“냄새 말입니까?”

“어, 나랑 아주 비슷한 냄새가 말이야.”

불쾌한 웃음을 지은 인영이 손가락 튕기기를 멈추고 당군성에게 명령했다.

“당지천의 전각을 한번 털어봐. 뭐든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당군성이 예를 취하고 방을 빠져나가자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는 검은 인영.

“불쌍한 녀석. 평생 폐품으로 살았다면 목숨만은 부지했을 것을…….”

당지천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 *

독물학 총회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

그간 매일같이 전각에 몰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냈기에 피곤한 나날이었다.

‘이래서 인기쟁이는 피곤하다니까.’

이 시들지 않는 관심이란.

도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8년 만인가…….”

어느 학회에 참석하기만 해도 수많은 관심을 받던 과거의 나.

그때는 그게 당연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당지천으로 산 세월뿐만 아니라, 화학자 권준일으로 살던 시절에도 근 5년간 사회와 격리되어 연구해봤더니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빌어먹을 정부 놈들. 나 같은 고귀한 사람을 5년이나 짱박아두고 그런 연구를 시키고는 말이야…….’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 징한 녀석들.

거기다. 연구 내용을 떠올리자, 절로 얼굴이 굳었다.

“으어어어. 이제는 다시 볼 일 없는 놈들이니 상관없지.”

애써 밝은 생각을 하며 털어내고 있자, 장하가 방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공자님.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장하에겐 전각에 왔을 때부터 창고지기라는 역할을 맡겼는데, 아침, 점심,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내 창고를 살펴보고 보고하게끔 시켰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공부하러 가봐.”

“예.”

보고가 끝나자 곧장 안대를 쓰고는 공부하러 가는 게 참으로 부지런했다.

“그나저나 벌써 일주일째인데 한 놈도 안 오네?”

연구실에서 무언가를 꺼내 썼으면 당연히 그 연구실을 까보고 싶은 사람도 생길 터.

누구 하나는 창고의 존재를 캐내려고 했어야 마땅한데 아무도 안 오니까 오히려 불안해졌다.

“혹시 제자리에서 계속 허공답보를 한다든가…… 아닌데, 그러면 문은 열어야 하니 문짝에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아니지. 문도 허공섭물로 연다면? 그건 가능성 있는데…….”

혹시 절대 고수가 흔적 없이 창고를 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자, 어느샌가 나타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일염이.

“공자님. 오늘도 이상하십니다.”

“어허! 불경하다. 감히 하늘 같은 이 몸께 이상하다니!”

“그렇지만 하늘 같은 분께 어디 한 군데 모자라 보인다고 할 순 없잖습니까.”

약 올리려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나는 분노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저번에 외유를 다녀왔을 때부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울적한 얼굴을 했던 일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농을 건네는 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농을 건네는 걸 보면 괜찮아진 듯하다.

“뭐, 대충 절대 고수가 와서 창고를 털어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겠죠. 그럴 일 없다는 걸 공자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

“크흠, 그런 생각 안 했거든?”

거, 남사스럽게 남의 생각을 읽고 그러나.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가주전에서 호출이 있었습니다.”

“호출? 무슨 용건으로?”

“가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에휴, 귀찮아.”

갑작스러운 가주전의 호출.

다소 귀찮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닐 거란 생각에 몸을 일으켜 가주전으로 향했다.

* * *

당기룡의 집무실.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간 당기룡은 나에게 대뜸 신화문에 가라고 명령했다.

“예? 신화문 말입니까? 거기가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들어본 적도 없는 문파의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백호단주가 답했다.

“무림 3대 정보 단체 중 한 곳입니다.”

“3대 정보 단체 말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무림에는 크게 2개의 정보 단체가 있다.

바로 정파의 개방과 사파의 하오문.

어느 무협지를 보든 간에 대형 정보단체는 이 2개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자잘자잘한 정보 단체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마교의 정보부대가 껴 있는 경우도 많긴 했는데, 대부분 정체를 숨겼거니와 지금의 중원에는 마교가 없다.

즉, 개방과 하오문뿐이라는 소리.

그런데 무림 3대 정보 단체라고?

그런 게 있었어?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 단체라 공자님이 못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이 적지 않으나, 자격이 되지 않는 자에게 발설한다면 신화문주가 친히 나서서 둘 다 제거하기에 다들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자격이 어떻게 됩니까?”

“저희도 모릅니다.”

“예?”

아니, 무자격자한테 발설하면 다 제거한다며?

근데 그걸 함부로 말해도 괜찮아?

“혹시 신화문주라는 자가 약합니까?”

“가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최소한 자신보다 강하다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농이 지나치십니다.”

안색을 굳힌 채 당기룡을 쳐다보자, 무심한 얼굴로 침묵하는 당기룡.

침묵이 곧 긍정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엿 됐다.’

아직 절정의 경지에도 한없이 멀기만 한데, 화경의 고수가 내 목을 따러 온다고?

이거 그냥 묫자리나 만들고 있으란 소리 아닌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부모와 자식인데 날 죽이려 하진 않겠지.

분명 자격이 되니 이야기를 꺼낸 것일 거다.

“농이 아닙니다. 오히려 500년을 넘게 중립으로 버텨온 문파인 만큼 그 정도 무력은 당연한 겁니다.”

내 생각이 당연히 틀렸다는 듯 설명을 덧붙이는 백호단주.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일개 문파가 500년이나 버텼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문주가 강해도, 문주가 계속 바뀔 텐데 그게 가능한 겁니까?”

“공자님은 혹시 천하십대고수에 대해 아십니까?”

“예, 압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정보를 모을 때 그거부터 모았는데 말이다.

자고로 무협의 꽃은 천하제일미가 아닌 천하십대고수인 법.

무림에 널리고 널린, 흔하디흔한 무인이 아닌, 별호 하나만으로도 그 위엄을 뽐낼 수 있는 세계관 최강자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무림의 꽃이다.

“그렇다면 그중 무정검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무정검(無情劍) 십칠호.

천하십대고수 중에서 가장 볼품없어 보이는 별호와 이름을 가진 고수.

그럼에도 중원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예, 천하십대고수 중 유일하게 세습되는 별호잖습니까? ……아, 설마 무정검이?”

왜냐면 무정검은 무영신투와 신의같이 세습되는 별호였기에.

“맞습니다. 무정검들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립(而立)(30세)에 화경이 된 자가 가장 늦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재와 무공을 가졌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뛰어난 무인에게 고작 무정검이란 별호가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만, 호사가들은 한 번이라도 그를 봤다면 이 별호보다 더 어울리는 별호는 없을 거라 말하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고 했다.

“신화문은 그 무정검의 문파입니다. 거기다, 문파원 개개인의 실력도 높은 편이라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신화문.

오늘 처음 들었지만, 생각 외로 아주 대단한 문파인 듯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신화문에 가서 전 뭘 하면 되겠습니까?”

“사천 주변의 녹주석 광산주들의 연명부를 달라 해라.”

“…….”

녹주석 광산을 내가 매입한 사실을 모르는 건가?

‘가주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다른 광산이라면 몰라도 녹주석 광산은 광산주가 바뀌면 관아에도 신고해야 했다.

즉, 정보를 사러 갈 필요 없이 관아에만 연락을 넣으면 된다는…….

‘아니지, 생각해 보니까 바지 사장들도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신화문에서 연명부를 받아 오라고 하는 거구나.’

관아에서 받은 연명부를 본다면 실질적인 주인과 명부상의 주인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당기룡은 신화문에서 연명부를 받아 녹주석 광산의 확실한 주인이 누군지를 알려고 하는 거다.

‘이거 써먹을 수 있겠어.’

처음에는 녹주석 광산을 공개하고 가문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를 취하려 했다.

당기룡이 조금만 조사해도 내가 광산을 가진 걸 알게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신화문에서 연명부를 받아와서 내 광산만 이름을 조작하고 바지 사장을 세워 당가와 거래를 튼다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을 거다.

“내 말이 이해하기 어렵더냐?”

“아닙니다. 갔다 오겠습니다.”

단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런 임무에 나를 배정한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럼 이제 가시면 됩니다.”

말을 마치자 백호단주가 잘 가라는 듯 손수 문을 열어줬다.

“신화문이 어딘지는 안 알려주십니까?”

“공자님의 호위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아, 그런가.

당지천의 어머니도 신화문을 이용한 적이 있다면 일염이도 알겠구나.

백호단주에게 인사하고 떠나려는 찰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

괜히 몸만 갔다가 어떻게 알았냐며 슥삭 당하는 건 아닐까?

“따로 뭐 주실 건 없으십니까? 예를 들면, 패라든가…… 아니면 소개장이라든가.”

“네가 간다고 언질을 넣어뒀다. 신화문에서 네 얼굴을 못 알아볼 리는 없으니 그냥 몸만 가면 된다.”

언질을 넣어뒀다고?

하긴,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고급 정보만 취급하는 곳이니, 올 만한 사람들의 정보도 알고 있겠지…… 소문이 안 좋다고 한들, 나 또한 당가의 직계이니까.

“알았다면 이만 가보거라.”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손을 휘휘 젓는 당기룡에게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오니 일염이가 다가왔다.

“안에서 뭐라 합니까?”

“나보고 신화문에 가서 녹주석 광산주들의 연명부를 가져오래.”

“신화문에 가서 말입니까?”

“너무 뜬금없지 않냐? 광산주 연명부야 그렇다 쳐도 갑자기 정보 단체라니.”

뜬금없다는 내 말에 일염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의도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그래? 무슨 의도인데?”

“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붙여놓는 겁니다. 이미 떨어질 예정인 끈과 다른, 새로운 끈을.”

“뭐?”

끈이 떨어진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뭐라도 챙기려면 지금이라도 하나 얹어줘야 하는 법이니 말이죠.”

“뭐?”

도통 영문을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갑자기 한숨을 푹 쉬는 일염이.

“아이고, 소가주가 되겠다던 사람이 눈치가 이렇게 없나…… 아, 그래서 소가주가 못 될 것 같으니 인맥이라도 쌓게 하는 거구나!”

“이 자식이…… 감히 날 능멸해!”

“어이쿠, 눈치가 참 빠르시군요! 전 먼저 갑니다!”

순식간에 저 멀리 가는 일염이.

저번에 침울해졌던 이후로 점점 더 장난이 심해지고 쾌활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와 동시에 뭔가 위화감이 같이 들었다.

“쓰읍…….”

왠지 억지로 활기차게 대한다는 위화감이 말이다.

‘뭐, 아직 조금 침울한데 애써 쾌활해 보이려 하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

그러나 이 모든 게 돈을 잃었던 충격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야! 거기 안 서냐!”

불안한 속내를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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