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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27화 (27/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7화

“정답은 바로…….”

일산화 이수소(Dihydrogen Monoxide).

줄여서 DHMO라고도 불리는 물질.

수많은 유사 과학자가 위험한 물질이라며 사람들을 현혹했기에 부르는 것조차 금지된 이 물질은 바로…….

“물입니다.”

H2O.

물이다.

“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까닥이는 사람들.

“하하하하.”

오직 원로들을 비롯한 정답자들만이 그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아니,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예상했던 대로 답을 말하는 순간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몇몇은 화를 내고, 몇몇은 생각에 잠겨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었다.

물론, 원로들 앞에서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오직 당군명 하나뿐이었지만 말이다.

“제가 감히 가문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장난을 하겠습니까?”

현대에서는 엄연히 속임수라고 부르긴 해도 틀린 답은 아니다.

이게 속임수라고 불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삼 공자님이 단상 위에 올라서 하시는 일이 애들 장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군명, 말이 심하지 않은가.”

“저 또한 거기에 동의하긴 합니다만…… 하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사는 데 꼭 먹어야 하는 점이나 금속을 녹인다는 것은 알겠으나 나머지 이유는 말이 안 되잖습니까.”

이번에도 후환이 두렵지 않은지 시비를 터는 당군명과 일원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원로들 앞에서도 개기는 건지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말이 안 된다…… 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말이 안 되긴 한다.

그걸 생각하는 게 당가인이기에 더더욱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는 엄연히 검증된 사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들, 당가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장시간 노출되면 영구적인 피부 손상이 일어나는 이유.

이건 누구나 알다시피 습진을 의미하는 거다.

단순히 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습진이 반복되다 보면 영구적인 피부 손상이 생긴다.

다음으로 허용량 이상으로 섭취하면 두통을 비롯한 경련, 환각 등을 보고, 종장에는 사망하는 이유.

이전에 말했듯 현대의 모든 물질은 반수 치사량을 갖는다.

거기서 물 또한 예외는 없으며, 물의 반수 치사량은 90g/㎏이다.

즉, 체중 70㎏ 성인 기준 6.3ℓ라는 소리.

실상 마시기도 전에 배가 터지겠지만, 만약 마실 수만 있다면 물만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굳이 6.3ℓ를 마시지 않아도 단번에 많은 양을 마시면 인체의 나트륨 농도가 떨어져 물 중독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쯧쯧, 말이 안 되긴 왜 안 되느냐.”

“그렇지만 원로님. 대체 누가 물을 먹고 죽는단 말입니까?”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위험을 느낄 만큼은 아니고, 허용량 이상을 섭취하면 두통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곤 하나, 인간은 치사량에 달할 만큼 물을 마실 수 없다.

그런데도 물인지 모르고 들으면 독성이 강한 물질 같기에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산화 이수소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금지한 거다.

“무인들이야 대다수가 모르겠지만, 양민들은 허기를 달래려다 수독(水毒)에 걸리는 게 꽤 흔한 일이다.”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가지 않아도 옛날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몇 년이나 독을 먹여 독살시키는 일이 있지 않더냐. 지금 저 꼬맹이가 말한 것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물 또한 그러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편을 들어주는 원로들.

굳이 내가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다른 이들을 이해시켜 주는 게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물은 순수한 수기(水氣)잖습니까. 그렇다면 수기가 독기란 말입니까?”

아니, 왜 또 거기서 기가 나와?

기(氣).

과거 무협을 보다 보면 자주 나오던 내용들이라 친숙하다면 친숙한 내용들.

허나,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감초 역할로 자주 나왔을 뿐, 그 원리나 자세한 내용들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자세히 모른다.

‘사실 나오면 읽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 버렸지. 그래도 이번엔 공부를 좀 해왔으니…….’

잘 생각해서 답변하려는 찰나, 먼저 끼어드는 장로.

“맞다. 수기 또한 독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고민이 무색하게 원로가 나서서 답변을 해줬다.

“아니, 수기 또한 독기라니. 그렇다면 오행의 기 중 독기가 아닌 것이 어딨겠습니까?”

“그 역시 맞다. 그러니 저 녀석이 말하지 않았느냐. 모든 것은 독이되, 독이 아니라고. 그것을 결정하는 건 오직 양뿐이라고.”

원로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는지 나지막이 한숨을 쉬는 이들.

“아아…… 그랬군!”

당군명과 그의 패거리는 당장에라도 반박하려 했으나, 갑자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제자리에 주저앉는 장로 한 명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어어?”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장로를 필두로 파도가 굽이치듯 퍼져 나갔다.

“뭐, 뭐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벌어 간다고 했던가.

‘아니, 치사하게 자기들만 깨달음을 얻어가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린지 나도 좀 알려줘.’

분명 재주는 내가 부렸는데, 이득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현 사태에 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니지.’

오늘 독물학 총회.

그간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어했던 수많은 것들을 단번에 풀어냈다.

그래서 원로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잖는가.

내 덕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도 나의 업적을 떠벌리고 다닐 테니 그 파급력은 가히 대가에 걸맞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당지독의 연구를 스쿱한 일의 연장선이었으니 말이다.

“크흠.”

생각해 보니 폐품이라고 불리던 내가 8살 차이의.

그것도 중원에 명성을 떨칠 후기지수인 당지독을 찍어 눌렀으니 지금이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거기다, 나는 녹주석 광산도 가진 몸.

내가 알기로 내 광산이 당가에서 제일 가까운 광산이고, 그와 동시에 사천에 있는 녹주석 광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물론, 철광산 같은 거와 비교하면 많이 작은 편이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은가.

중요한 건 앞으로 내 광산에서 나온 녹주석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거지.

‘흐흐흐.’

인생이 편해지는 걸 느끼자, 절로 나오는 미소.

그렇게 단상 위에서 홀로 실실 웃고 있자, 당기룡이 폐회를 선언했다.

“오늘 총회는 이만 마무리해야 할 것 같으니 호법을 설 인원들을 제외하곤 모두 돌아가거라.”

“이이익…….”

더 딴지를 걸고 싶어도 걸 수 없게 된 상황.

혼자서 이를 갈고 있는 당군명에게 중지 손가락을 한 번 들어준 뒤, 기분 좋게 전각으로 돌아갔다.

* * *

독물학 총회가 끝난 그 날 밤.

원로들의 무수한 칭찬과 관심에 일일이 감사를 표한 당기룡은 달이 중천에 뜨고서야 가주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 왔냐?”

남궁공자가 주인 없는 방에서 편히 누워 음주하고 있었다.

뭐라도 할 법한 상황에서도 당기룡은 나지막이 남궁공자를 부를 뿐이었다.

“공자야.”

“웬일이냐. 네가 그렇게 부르고?”

평상시라면 그냥 짐짝 치우듯 밀었을 당기룡.

그런 당기룡이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남궁공자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시작됐다.”

“시작? 이번에도 지천이 이야기야?”

“아니다.”

고개를 저은 당기룡은 남궁공자의 술병을 뺏어, 단숨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그 녀석. 색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뭐?!”

화들짝 놀란 남궁공자가 취기를 몰아내며 당기룡에게 물었다.

“그게 진짜야?”

남궁공자의 물음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당기룡.

그 고갯짓에 남궁공자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지천이가 사람을 들인다고 했을 때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얼마나 남은 것 같나?”

“글쎄, 그 녀석의 말대로였다면 5년 정도는 남았을 터였는데, 이미 시작됐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길어봤자 3년일 거다.”

“3년이라…….”

너무나도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미간을 찌푸리는 당기룡.

“치료 방법은? 알아봤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지만 남궁공자는 옅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단순한 병이나 심마가 아니잖느냐. 스승님께 여쭤봤는데도 무공의 부작용과 얽혀 있으면 손대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하시더군.”

단순한 심마도 다른 의원들은 고치기 힘들지만 신의에겐 가능했다.

허나, 그것이 무공의 부작용이라면 기가 뒤틀려 단전이 깨져 나갈 수 있기에 신의조차도 손대지 않으려 했다.

“그저 천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 말씀하셨다.”

“하, 천운에 설화를 잃었는데, 그 녀석도 천운에 맡겨야 한다고?”

자조적인 헛웃음을 흘리던 당기룡은 울분이 가시지 않는지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지천이는…… 우리 지천이는 괜찮은 거냐.”

“지천이는 상태가 급속도로 호전되고 있다. 마치 그 날 일을 씻은 듯이 잊은 것처럼 말이야. 단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하나.”

남궁공자는 마음에 안 드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녀석에게도 그러했듯이, 지천이에게도 그 녀석이 유일한 가족에 가까워. 어쩌면 너보다도 더 말이야. 그런데 그 녀석이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지천이도 힘들 게다.”

“가족이라…….”

여태껏 해준 것이라곤 고작 돈 몇 푼에 불과한 자신을 과연 부모라고,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군.”

아내를 잃었다는 복수심에.

그다음은 상실감에.

그다음은 체면 때문에 지천이에게 눈을 돌렸다.

그런 자신이 이제 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아.”

당기룡이 깊은 한숨을 내쉬자, 힘차게 등을 두드려 주는 남궁공자.

“어디서부터 풀긴, 네가 말했잖냐. 소가주는 지천이라고.”

당기룡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남궁공자를 보자, 남궁공자가 술병을 뺏어 들고는 말했다.

“네가 과거엔 뭐 때문에 지천이를 멀리했는지 대충 감이 오는데, 지금은 그딴 게 다 소용없다는 걸 느꼈을 거다.”

남궁공자가 술병을 아예 비워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밀어줄 거면 확실하게 밀어줘. 딴 놈들이 뭐라고 하던 팽가 놈들마냥 그냥 밀어버리란 말이야.”

“하지만 그러면 가문 내의 반발이…….”

“팽가 놈들처럼 하라니까? 생각을 자체를 하지 말고, 남들 눈치도 보지 말라고. 어차피 지독이도, 지혁이도 아니면 지천이뿐이잖냐.”

남궁공자의 설득에 잠시 고민하던 당기룡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망설였나 보구나.”

결심이 서자, 곧장 전서구를 써 내려가는 당기룡.

“뭘 쓰는 거야?”

“차후 가주가 될 자라면 정보는 필수인 법. 어려서부터 정보를 다룰 줄 알면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될 거다.”

“지천이를 신화문에 보내려고?”

“맞다.”

“짜식…… 잘 생각했다.”

예전에 보내라고 할 때는 무조건 싫다고 하더니 이제는 제 스스로 전서구를 쓰는 모습에 남궁공자는 크게 감동했다.

“이후엔 지천이가 익힐 만한 무공을 하나 내어주고…….”

전서구를 쓰면서도 당지천에게 줄 만한 것들을 고민하는 당기룡.

혼자 생각에 잠긴 채 고민하기 시작하자, 남궁공자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넌 너대로 고민하도록 하고…….”

남궁공자는 나가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나대로 지천이를 도와주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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