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5화
삼 공자의 실력을 보겠다는 미명하에 진행된 작은 시험.
총회를 진행하기 전 여흥으로 시작되어 가볍게 끝났어야 할 시험에 당지천이 불을 지펴 버리자, 만독연주가 상황이 난장판이 되기 전에 나서서 정리하고 곧바로 독물학 총회를 진행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남궁공자는…….
‘허허허,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더니 이젠 완전히 미쳤구나.’
다시금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팔불출은 치료도 안 되는데 어쩔꼬…….’
지천이를 편애한다고 한들, 벌써 소가주 자리를 내정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암, 미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남궁공자도 사실 당기룡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주가 되어, 수많은 것을 떠안은 당기룡.
언제나 책임질 것이 있기에 냉정하기 짝이 없게 행동했다.
하지만 무표정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썼을 뿐.
정이 많은 성격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왜 그렇게 쳐다보지?”
“별거 아니다. 자슥아.”
어쨌든 다소 소란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다시금 진행된 총회.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만 모인 만큼 질 높은 발표가 계속되었다.
“다음은 당지독 공자님이 발표하시겠습니다.”
그렇게 총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자, 우레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당지독이 강단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가 발표할 주제는 ‘녹주석의 독성 활용법과 추출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발표 주제를 말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감탄들.
문제를 풀었다고 생각해서 나오는 것도, 그렇다고 당지독의 세력이라서 내뱉는 감탄사도 아니었다.
그저 여기 있는 대다수 원로가 광물독을 연구하고 있을 만큼.
그런데도 새로운 광물독을 찾아내지 못한 만큼 어려운.
일종의 난제와도 같은 문제였기에 도전자에게 보내는 작은 찬사라고 보면 됐다.
아마 당지독도 이런 반응을 노리고서 녹주석을 연구 주제로 정했을 거다.
다만 당지독이 예상치 못한 점이 있다면…….
‘이걸 스쿱해? 말아?’
여기에 녹주석의 독성 추출 방법.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 * *
스쿱(scoop).
자기가 하던 연구가 노출되어 정보를 습득한 다른 이들에게 연구를 빼앗기는 행위.
지금에 이르러선 같은 주제에 대해서 남이 먼저 발표하면 스쿱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상상해 봐라.
대체로 몇 년이나 걸리는 연구.
온갖 고생을 다 해가며 유종의 미를 거둬 연구를 끝마치고 논문을 쓰는 중인데, 떡하니 같은 주제의 연구 결과가 올라온다?
심지어 거의 다른 점도 없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 되고, 연구실은 초상집이 되는 거다.
짧으면 반년에서 길면 몇 년 단위로 해왔던 연구가 모두 헛수고가 되기에 스쿱을 한 번 맛보면 웬만하면 정신 못 차리고 심마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런 일을 당지독에게 하려니 조금 양심에 찔렸다.
“드넓은 중원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은 대부분 동물이나 식물에서 채취가 됩니다. 그리고 그중 극독이라고 부를 만한 독도 참 많습니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든 말든 서론을 읊기 시작하는 당지독.
“그런데 광물독 중 극독이라고 부를 만한 게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고, 무엇보다 당가에서 원활히 확보 가능한 극독은…….”
당지독은 이어서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
“금강석과 비석. 단 두 개니까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깝다며 계속해서 서론을 늘어놓는 당지독.
그사이 한참 동안 스쿱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자, 어느샌가 본론으로 넘어갔었다.
“광물독이 가지는 이점은 무궁무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당가에 매력적인 점은 단번에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번 독을 개발해 쓸 때마다 연구를 통해 파훼되는 게 현재 당가의 상황.
파훼되지 않고 쓰려면 단기간에 많은 양의 독을 얻을 필요가 있었는데, 동물과 식물 독은 양산에 한계가 있어서 불가능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광물독.
굳이 독으로 사용치 않고, 내공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해도 당가인의 전반적인 무력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에 양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가장 흔한 녹주석을 연구했습니다. 충격에 약하고 이렇게 부서지면 분진이 휘날리게 되며 인체에 굉장히 해롭습니다만, 무림인에게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당지독이 녹주석을 꺼내 부수는 동안 나는 녹주석이 발하는 영롱한 자태에 침을 꼴깍 삼켰다.
녹주석(Beryl).
내가 야명주와 함께 갈망했던 물질.
그리고 끝내 광산까지 얻은 물질.
영어로 Beryl이라 부르는 이 광석은 흔히 녹색으로 가공된 건 에메랄드, 하늘색인 건 아쿠아마린으로 분류되는 보석의 원형으로 불리는 이 물질을 애타게 원한 이유는…….
‘광물독, 그것도 극독.’
현대의 독극물 중 하나인 베릴륨을 포함하는, 내가 바라 마지않았던 전형적인 현대의 독극물이었기에.
원소 번호 4번 베릴륨(Beryllium).
주기율표 제2족에 속하는 알칼리 토금속 원소며 원자로의 감속재, 반사재, X선관 등에 다양하게 쓰이는 단맛이 나는 독극물.
녹주석을 잘 가공하면 플루오린화 베릴륨이 되고, 또 한 번 가공해 수산화베릴륨을 만든 뒤 가열하면 폐에 치명적인 산화베릴륨이라는 괴랄한 독이 된다.
무려, 물과 알카리성 액체에 녹지 않고, 섭씨 2,000도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괴랄한 독이.
사실 맨날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하면 뭔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이 설명을 곁들여야만 했다.
고수에 반열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 당가원의 독공은 비가 오는 날이면 독이 씻겨 나가고 변질되기에 전투력이 떨어졌다.
거기다, 자신보다 고수를 만나기라도 하면 내기로 독을 태워 버리기에 반항 한번 제대로 못 해보는 경우가 꽤 됐다.
그런데 만약, 산화베릴륨을 가지고 있다면?
물에 녹지 않으니 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아무리 고수라고 한들 애매한 수준이라면 섭씨 2,000도를 내기엔 내공이 부족하기에 그저 피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
만약, 태운다고 해도 삼매진화의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하니 당연히 이쪽이 이득이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릴륨을 만드는 재료는 녹주석.
채굴하는 순간부터 가공하는 과정마다 독성이 계속 쏟아진다.
무인에게 치명적이지 않다고 한들, 그것이 몇 날, 몇 주 중첩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시 치명적인 베릴륨증에 걸릴 게 분명했다.
따라서 다른 문파에서는 가공조차 제대로 못 해 사용하지도 못할 그야말로 완벽한 독이란 말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녹주석을 무림인에게 통할 만큼 가공해 보려 했으나 아직도 진전이 없는 상황.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가야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광물 또한 독극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예상대로 당지독의 결론은 녹주석을 독극물로 쓰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가공할 방법을 찾겠다는 내용이었다.
“질문하실 분 계십니까?”
벌써 발표가 막바지에 이르자, 다급해지는 마음.
소가주 경쟁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당연한 일인데, 한 명의 과학자로 생각하자니 되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 질문하실 분 안 계십니까?”
이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 잘 대해줬어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여기선 어쩔 수 없다.’
다소 양심에 찔리더라도 양보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는 법.
이건 도저히 못 내주겠다.
형제라고 한들, 엄연히 경쟁하는 사이인 만큼, 지금 당지독에게 쏠린 이 관심.
전부 다 내가 가질 거다.
“지천이? 그래, 무엇이 궁금하더냐?”
“딱히 궁금한 건 없습니다. 그저…….”
죄송하지만 형님.
형님의 연구…….
“녹주석의 연구. 제가 보완하겠습니다.”
제가 가져야겠습니다.
* * *
“보완이라…….”
세계 7대 난제인 리만 가설을 설명하는데, 초등학생이 보완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초등학생이 그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부분 지금과 같이 반응할 거다.
“에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한숨.
아까의 전적도 있는 만큼 다들 당지천이 또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껄인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원로들은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
“지금 그 말은 녹주석을 극독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말이냐?”
“예, 저 또한 형님처럼 개인적으로 녹주석에 대해 연구했고, 실제로 독으로 가공하는 것도 성공했습니다.”
“호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느냐?”
“제게 시간을 주신다면 시연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만, 시연하려면 제가 만들어놓은 시약이 필요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원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지천은 곧바로 일염이에게 말했다.
“일염아, 내가 맨날 들어가는 연구실 알지? 창고 말고 연구실. 거기 들어가서 오른쪽 2번째 진열장 맨 위에 보면 하늘색 병이 있을 거야. 그것 좀 챙겨 와줘.”
“오른쪽 2번째 진열장 맨 위. 하늘색 병 맞습니까?”
“맞아.”
“알겠습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시약을 가지러 가는 천일염.
그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당기룡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 가냐?”
남궁공자의 물음에도 천일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당기룡이 전음을 보내며 은밀하게 공동을 빠져나갔다.
-잠시 나갔다 오마. 지천이가 오기 전까진 돌아올 테니 찾지 말아라.
* * *
남들 눈을 피해서 공동을 빠져나온 당기룡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당지천의 전각.
발걸음을 안으로 옮기니 천일염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따라온 거지?”
“부모가 자식 사는 곳에도 못 오나?”
“쓸데없는 농을 하겠다면 난 이만 돌아가 보겠다.”
당기룡이 대화를 트려고 하자, 칼같이 잘라 버리는 천일염.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당기룡이 나지막이 말했다.
“지천이는 소가주가 될 거다. 그러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러 왔는데…… 이미 시작된 듯하군.”
“대뜸 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미 시작됐다니 소리라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모르긴.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지천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먼저 가보겠다.”
천일염이 당기룡을 무시하고 지나치려 하자, 당기룡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그거 아나? 자네가 들고 있는 병. 지천이가 말한 하늘색이 아닌 청색 병이라네.”
당기룡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멈춰 서는 천일염.
“그런가.”
당기룡의 말에 조용히 수긍하고는 품속에서 하늘색 병을 꺼내 들었다.
“역시 예상했잖나.”
“할 말은 그것뿐인가?”
질문에 당기룡이 반응이 없자,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당기룡이 운을 뗐다.
“아직도…….”
망설이듯 말끝을 흐리다 다시금 묻는 당기룡.
“아직도 날 원망하느냐?”
그런 질문에 천일염은 삿갓을 슬쩍 들어 올려 당기룡을 노려봤다.
“너 또한 날 원망하지 않느냐.”
잠시간 서로를 노려보는 둘.
그 눈싸움은 얼마 가지 않아 당기룡이 먼저 눈을 피하면서 끝이 났다.
“뭐, 얼마 뒤면 그러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만.”
천일염은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기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렇게 홀로 당지천에게로 돌아가는 길.
점점 옅어져 가는 풍경에 얼마 남지 않은 색의 이름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읊조렸다.
“설화야…….”
* * *
한편 그런 천일염을 기다리고 있던 당지천은…….
“아니, 이놈은 뭔 시약 가지러 가서 시약을 만들어 오나? 왜 이렇게 안 와!”
단상 위에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