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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24화 (24/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4화

오늘로 광산주가 된 지 나흘째.

처음에는 위축된 채로 숨죽인 채 지내던 영하와 장하였지만, 각자 일을 맡긴 채 편하게 대해주니 전각 생활에 잘 적응했다.

“공자님.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바로 영하의 요리 솜씨.

간단한 요리밖에 하지 못했던 일염이와 달리, 꽤 다채로운 요리를 할 줄 아는 영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영하와 장하는 3년 전만 해도 고아원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연장자였던 영하가 아이들의 밥을 준비했었기에 일염이에 비하면 요리 솜씨가 훨씬 좋았다.

“그럼 먹자……. 일염아, 왜 멍하니 있어?”

불러도 묵묵히 앉아만 있는 일염이.

백화상단을 방문했던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노름하러 다녀온다고 갔다 오고서부터 뭔 일이 있었는지 부쩍 말수가 줄고, 무표정해졌다.

“일염아?”

“예, 공자님. 말씀하시죠.”

“…….”

대답하더라도 무슨 AI비서마냥 말하는 게 요즘 상태였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며칠 전부터 계속 무표정하게 있네. 어디 아프…… 진 않겠구나.”

삼류만 돼도 웬만한 잔병치레는 안 하게 된다.

그런데 일염이가 어디 아플 리가 있겠는가.

어디 가서 내상이라도 입고 온 게 아니면 아프진 않을 거다.

“별거 아닙니다.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겁니다.”

매일같이 노름만 하러 다니는 녀석이 뭘 생각할 게 있다고.

혹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회의감이라도 들었나?

“뭐, 노름하러 가서 잃기라도 했냐?”

아니란 걸 알지만, 기운 차리라고 건넨 농.

“…….”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일염이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뭐, 뭐야? 진짜 잃었어?”

“…….”

침묵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답 없이 고개를 돌리는 일염이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자님. 오늘 고기가 참 좋습니다. 한번 잡숴보시지요.”

그런 우리를 보고선 고기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주는 영하.

거, 밥상머리 앞에서 눈치 없게 굴지 말고, 밥이나 먹으라는 예의 바른 압박에 조용히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옮겼다.

확실히 맛있긴 하네.

“그나저나 공자님. 오늘따라 굉장히 신나 보이십니다.”

“오늘 독물학 총회 가는 날이잖아.”

독물학 총회.

매년 열리는 당가인들만의 학회.

현대의 학회와 비슷하게 진행되는 학회는 외부에 나갔던 인원이 새로 발견한 독, 내부의 인원들이 연구로 찾아낸 독 등을 발표하고.

기존의 독들은 어떻게 해야 더 강력하게 쓰는지, 조합은 어떻게 해야 해독하기 까다로운지 등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원래라면 1급 연구원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라 한참 나중에나 참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참관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과학자라면 누구나 신나 할 거다.

단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참관자는 발표할 기회가 없다는 점.

광산도 얻었겠다.

지금 총회에 가서 녹주석 가공법을 발표하면 딱인데 말이야.

“에휴,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지. 빨리 밥 먹고 가자고.”

* * *

독물학 총회가 열리는 거대한 공동.

자격이 되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원로들까지 한자리에 모였기에 조용할 법도 하건만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원로들부터가 시끌벅적했다.

“아무리 직계라고 한들, 3급 연구원이 총회에 참석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가주가 좋게 봤나 보지. 저번 연구가 기발하긴 기발했잖아.”

“물론, 그 연구가 기발했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하나, 규칙이란 게 있지 않나. 이렇게 하나둘 허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총회의 일도 새어 나갈지 모르네.”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나? 기룡이가 공명정대하고 영특한 놈인데 설마 그러겠어. 분명 가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지천이를 참관시킨 걸 거다.”

“흐음…….”

나는 참관에 그쳐 아쉽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원로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참관조차 가주가 무리하게 추진한 걸로 보여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저번 연구가 그렇게 인상이 깊었나?

하긴, 기를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긴 했지.

나는 아직도 이해 못 할 정도니 말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 공동에 들어서는 당기룡.

“제1,072회 독물학 총회를 시작하겠다.”

이전과 같이 긴말 없이 개회 선언을 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찰나.

“저…… 가주님?”

여태껏 본 적 없던 장로 한 명이 손을 든 채 당기룡을 불렀다.

“뭐지?”

“시작하기에 앞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간단하게 삼 공자님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습니다.”

아니, 실력 평가라니.

잘 가다가 왜 갑자기 귀찮은 일을 만든단 말인가.

“외지에 주로 있다 보니 지천이의 실력이 궁금하긴 하겠구나.”

거기다, 당기룡은 한술 더 떠서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

“좋다.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그럼…….”

가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앞으로 나와 상자를 늘어놓는 장로.

둘 다 내 의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고는 제멋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공자님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주로 외지에서 새로운 독을 찾는 일을 합니다.”

품속에서 꺼내는 상자의 개수가 스물이 되자, 곧바로 나를 상자 앞으로 인도했다.

“스무 개의 상자 중에 독은 총 다섯 개뿐입니다. 하나같이 구분하기 어려운 독들로 이 중에 하나라도 찾으시면 제가 약소하지만 작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작은 선물?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번에 백화상단에 가서 녹주석 광산을 받아 온 광산주가 바로 나다.

그런데 고작 작은 선물 하나에 이렇게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물론, 그런 속내를 내색할 순 없어서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찬찬히 상자들을 살폈다.

가문에 붙어 있기보단 외지에서 독을 찾으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게 허언은 아니었는지 가문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과 가문에 없는 독이 섞여 있었다.

또한, 그 독들과 똑같은 색깔.

똑같은 형태를 가진 이름 모를 것들도 같이 섞여 있었다.

“혹시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독재가 있다고 한들, 보지 못한 독을 구분하는 것은 경험이 더 중시되는 일이니까요.”

장로가 헛소리하는 동안 순식간에 걸러진 5개의 상자.

하나, 하나 옮겨서 장로 앞에 놓을 때마다 안색이 굳는 게 꽤 볼만했다.

“크, 크흠…… 이 중에 하나 독이 있는 것 같으십니까?”

대충 감이 왔을 텐데도 애써 무시하며 묻는 장로.

뭐, 솔직히 내가 현대의 지식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찾진 못했었을 거다.

왜냐면 이곳의 독은 대다수가 비슷하기보단 명확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독물을 가공하더라도 단순히 몇 번의 공정을 거칠 뿐이었기에 형태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현대의 경우는 막말로 분자 단위로 쪼개서 가공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무색인 액체 하나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물질이 나왔고, 백색의 가루만 해도 수십 가지가 나왔지만, 지금 이렇게 단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거다.

“적어도 하나는 있습니다.”

지금 가장 왼쪽에 있는 독이 바로 시안화칼륨(사이안화 포타슘).

반수 치사량이 1㎎/㎏으로 10원짜리 동전보다도 적은 양이면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 극독으로, 흔히들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독이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독이었다.

특히, 독살의 90%가 청산가리로 이루어지는 만큼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쉬운 물건이었으나, 이곳에서는 희귀한 독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여기서 청산가리의 특징을 줄줄이 읊어준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겠지만…….

‘그걸론 약해.’

작은 선물이 뭐가 됐든 간에 지금 나는 분에 넘치는 곳에 와 있는 거다.

당연히 아니꼽게 보는 눈빛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인 법.

지금이야말로 원로들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니 화두가 될 만한 대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면 여기 있는 20개, 전부 다 독이니 말입니다.”

-하하하하!!!

누군가 내 발언에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박장대소를 했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다.

독을 구분하라는 시험에서 ‘이 모든 게 독입니다’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단순히 지금 상황을 말로 모면하려고 든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지금껏 쌓아온 내 명성을 깎아먹을 수도 있는 대답.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 사이에서 흑녹색의 의복에 자색의 태양이 그려진 옷을 입은.

원로들만큼은 웃음도 의아함도 아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기에.

그리고 가주 또한 그저 무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독.

생물에게 해를 주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물질.

적은 양으로도 절명에 이르게 하는 물질을 독이라고 하곤 했으나,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현대 독물학의 아버지인 필리푸스 파라켈수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용량만이 독이 없는 것을 정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은 독이다.

* * *

모든 것은 독이되, 독이 아니다.

오직 용량만이 독임을 결정한다.

그 말을 들은 남궁공자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 대충 넘어가면 괜히 객기를 부려서 끙…….”

독을 약으로 쓰는 남궁공자가 보기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 신의의 밑에서 수학할 때 신의가 항상 강조했던 말이 있다.

-모든 약은 독이다. 독성이 없는 약은 없다.

단순히 보면 과유불급임을 주의하라는 말.

하지만, 그 안에 든 심오한 뜻을 이해했기에 당지천의 저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허나, 당가 놈들도 그리 생각할지는 미지수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참관이라는 명목하에 참여해 선입견을 가지고 당지천을 보고 있는 시점.

장로들만 있었다면 자신이 깽판 쳐서라도 보호해 줄 수 있었지만, 원로들도 있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기에 괜히 사고를 쳐서 좋을 게 없었다.

“이 모든 게 독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게도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는 장로.

공동의 모인 대다수가 그 장로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던 그때.

“기룡아? 왜 갑자기 일어나냐?”

당기룡은 귀신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단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에헤이. 얘가 실수할 수도 있지. 아직 12살이잖아. 앉어.”

그게 지천이를 혼내려는 것이라 오해한 남궁공자가 당기룡를 끌어 잡고 앉히려 하자, 당기룡은 그 손을 뿌리치며 나지막이 말했다.

“지천이다.”

“뭐가?”

“지천이란 말이다.”

당기룡의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남궁공자.

사실 당기룡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건, 음독식.

그날에 느꼈던 그 감정을 재차 느꼈기 때문이었다.

바로 경천(驚天)이라 부를 만한 감정을.

“아니, 지천이가 아니면 안 된다.”

왜냐면 당지천이 지금 내뱉은 이 구절.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는 것을 정한다.

이 구절은 오직 가주인 당기룡만 익히고 있으며.

앞으로는 소가주만이 익히게 될 가전무공…….

-이제부터 소가주는 지천이다.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의 첫 구절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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