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3화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드디어 그렇게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던 녹주석 광산을 얻으셨군요.”
일단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 바로 질렀지만, 곧바로 맞장구치는 일염이를 보자 조금 불안감이 들었다.
녹주석 광산.
사실 어느 시기라도 광산은 돈이 되기에 작은 광산이라도 금 몇만 냥에는 살 수 없었다.
단순히 땅의 가치만 해도 그 정도가 되기에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녹주석 광산만큼은 달랐다.
조금 예쁜 보석이 나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이득도 없는 광산.
그러면서도 채굴할 때는 강한 독성이 나와서 일반 양민들을 광부로 쓸 수 없는 광산.
거기다. 살 만한 곳이 당가뿐인데, 녹주석의 독성이 당가에서 쓸 정도는 아니어서 살 생각도 없었다.
과거 풍족했던 시절이라면 몇만 냥 안 하는 만큼 혹시 몰라서 사둘 수도 있겠지만, 몰락하고선 돈에 항상 쪼들렸고, 지금이야 당가주가 쓸데없는 데 돈 쓰는 걸 제일 싫어했으니…….
‘적어도 당기룡이 죽을 때까진 안 팔린다고 봐야지.’
말 그대로 애물단지다.
허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번 대의 일.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가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몇만 냥이나 되는 걸 쉬이 넘겨줄 리는 없을 거라 본다.
“이야, 나도 이제 방 안을 녹주석으로 도배하고 녹주석 연구할 수 있겠다.”
“흐음…….”
그런 속내와 다르게 태연하게 좋아하고 있자, 의외로 생각에 잠기는 백금현.
곧장 난색을 표할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머릿속으로 한참을 주판을 굴린 백금현이 계산이 끝났는지 미소를 띤 채로 입을 열었다.
“마침 저희 상단에 녹주석 광산이 있긴 합니다만…….”
서, 설마?
“드리겠습니다. 녹주석 광산.”
“지, 진짜입니까!”
세상에나.
이걸 그냥 준다고?
미친 건가?
“예, 솔직히 조금 과하긴 합니다만, 공자님의 부탁이시라면 작은 손해 정도는 감수할 만합니다.”
일염이가 아무 생각 없이 녹주석 광산을 달라 한 건 아니겠지만, 진짜로 주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무서워졌다.
도대체 숨기고 있는 게 얼마나 귀중한 거길래 이걸 턱 하니 내놓는단 말인가.
“황충,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심지어 질질 끌 생각도 없는지 그 자리에서 서류를 가져와 내게 직접 내밀었다.
“이 인수증에 서명하시면 앞으로 광산은 공자님의 것입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덜덜거리는 손으로 붓을 잡고 인수증에 서명하자, 곧바로 광산 증서를 건네주는 백금현.
“아아…….”
그 증서를 들어보는 순간, 두려움이고 뭐고 간에 너무 기쁜 나머지 실신할 뻔했다.
“녹주석 광산이 그렇게 좋으십니까?”
“예, 너무! 너무 좋습니다!”
자그마치 몇만 냥이나 하는 귀물.
거기다, 녹주석 가공법을 알리고 나면 얼마가 될지 가늠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하하하, 좋아해 주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백금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한순간 경계심이 살아났지만 그것도 잠시.
“광산주라니 꿈만 같습니다.”
증서가 다시금 눈에 들어오자, 눈 녹듯 경계심이 사라졌다.
녹주석과 화약은 관련이 없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불똥이 튀면 위험한 화약 공장에서 녹주석 안의 금속산화물을 이용하니 관련은 있다만, 이 사실은 모를 거니 관련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백금현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도 별로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녹주석 광산은 양민들에게 위험한지라 광산주가 바뀌었다고 관아에 신고해야 합니다. 대신 해드리고 싶긴 하나, 이건 광산주 본인이 신고해야 하는 일인지라…….”
“그렇습니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만 가줬으면 하는 눈치.
행여나 백금현의 맘이 변할세라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나였다.
“가자! 관아로!”
* * *
한시바삐 광산으로 가겠다며 발걸음을 놀리는 당지천.
그가 떠나가는 걸 확인한 황충은 창문을 닫았다.
“녹주석 광산은 조금 과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몇천 냥 수준에서 끝날 문제였잖습니까.”
황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백금현에게 묻자, 백금현은 무표정하게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아니, 오히려 녹주석 광산을 주는 게 나았어.”
천하오대상단으로 불리는 백화상단.
상단주의 특출난 상재로 인해 언제나 현금이 마를 날이 없었으나, 요 근래 들어서는 가진 것은 전부 어음이고, 현금은 마르는 상황이었다.
“언젠가 팔 수 있다고 해도 결국은 애물단지. 조금 작은 액수라도 현금을 내주지 않았으니 형님께서도 무어라 하지 않을 거다. 칭찬이라면 또 모를까.”
거기다, 상단주가 들어주라고 했던 작은 부탁.
그것까지 한 번에 퉁 쳤으니 번거로운 일도 치운 셈이다.
“그렇습니까?”
황충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차피 잘 모르는 분야였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지천의 호위로 온 자는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뭔가 냄새를 맡은 눈치였습니다.”
황총의 물음에도 백금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럴 필요 없어. 황충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그 천일염이라는 자거든.”
“천일염?”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에 잠시 고민하던 황충은 곧바로 천일염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하오문 전 지부에 출입 금지를 당했다던 그 전설의 노름꾼 말입니까?”
“그래.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놈이지.”
돈에 미친 놈들이 제 주인에게 빌붙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먹으려고 노력하는 건, 멀리 갈 것도 없이 상단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린 주인을 대신해 이것저것 많이 알아왔겠지만…….
“허나, 형님도 모르게 조작해 놓은 장부를 일개 노름꾼이 알기엔 힘들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상단 입장에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루기가 쉽다.
천일염이 호위인 만큼 제 주인을 배신하지는 않겠다만, 제 주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선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알아챈다고 해도 제 주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협박과 돈 몇 푼이면 알아서 입을 다물 거다.
“도련님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거슬리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자, 곧장 접객실에서 나가려는 황충.
“힘들겠지만, 대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줘.”
등 뒤로 날아오는 백금현의 격려에 단어 하나로 답했다.
“존명.”
* * *
당지천이 한창 관아에서 광산주로 등록되던 시각.
당기룡은 집무실에서 만독연주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해서 올해 독물학 총회의 연구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독이의 연구. 얼마나 진행됐지?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녹주석의 독성 활용법과 추출 방법’ 말입니까?”
잠시 반문했던 만독연주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광물독을 찾으려 시도한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합니다.”
잔인하지만 냉혹한 평가.
그 평가에 반문할 법도 하건만 당기룡은 그저 담담히 수긍할 뿐이었다.
“그렇군.”
광물독.
광물독, 식물독, 동물독으로 나뉘는 당가의 독 분류법이 무색하게 극독이라고 부를 수 있고, 원활하게 수급 가능한 건 단 2가지뿐이었다.
바로 금강석(金剛石)과 비석.
심지어 그중 금강석은 주로 분말 형태로 갈아서 중독시키면 물리적으로 위궤양과 위출혈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일반적인 형태와 전혀 다른 독이었다.
즉, 보편적으로 독이라 불리는 건 어디까지나 비석 하나라는 점.
“애초에 연구 주제부터 대공자님이 연구하시기엔 무리가 있던 연구였습니다.”
“연주가 진행하는 광물독 연구는 어떻지?”
그런데도 만독연주 또한 광물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저 역시 아직 갈피조차 못 잡고 있습니다.”
왜냐면 식물독이나 동물독과 다르게, 광물독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묻혀 있는 거라 한순간에 당가의 전체의 수준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밖에 없는 독.
그리고 아직 찾지 못했기에 더더욱이 갈망하는 독.
그것이 광물독이었다.
“연주.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연주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많고, 사비로 하기에 별말 안 했다만, 원로님들도 갈피를 못 잡는 중이네.”
“아무리 가주님이라 하셔도 전 이 연구 못 놓습니다. 차라리 제 발로 가문을 나가라고 하십시오.”
매번 다른 연구를 하길 종용했지만, 단칼에 거절하는 만독연주.
차라리 다른 걸 요구했다면 모를까, 제 발로 가문을 떠난다고 협박했기에 당기룡도 별수 없었다.
“……잘 알겠네.”
그렇게 당기룡이 안타까움에 속으로 입맛을 다시던 찰나.
-기룡아! 어디 있냐! 기룡아!
당기룡을 애타게 찾는 남궁공자의 목소리가 가주전에 울려 퍼졌다.
“대낮인데 뇌의님이 또 한잔 걸치셨나 봅니다. 제가 가면서 집무실에 계시다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탁하겠네.”
만독연주가 집무실에서 나가고 나서 잠시.
“여기 있었냐! 후우…… 후우…….”
얼마나 급한 건지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들어온 남궁공자는 다급히 문단속부터 하고는 숨을 골랐다.
“왜 이리 잔망스럽게 구는 게냐?”
“지천이가…… 켁.”
“지, 지천이한테 무슨 일이 있더냐?!”
잔망스럽게 군다던 사람에게 삽시간에 멱살을 잡힌 남궁 공자는 무안한 표정으로 손을 쳐내고는 말을 이었다.
“……지천이가 사람을 들였다.”
“사람을 들였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문지기의 말로는 백화상단에서 지천이가 들일 하인이라고 두 명을 인도하고 갔다더군.”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당기룡의 얼굴엔 경악스러움이 떠올랐다가, 이내 노기가 깃들었다.
“하인이라…… 지천이를 암살할 계획인가?”
“처음엔 나도 그리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니 진정해라.”
“그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더냐?”
“그 아이들, 그 녀석의 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 녀석의 패? 그렇다면…….”
다시금 경악스러움이 떠오르는 당기룡의 얼굴.
“지천이는 하나둘씩 이겨내고 있다.”
당지천이 진실로 사람을 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고작 12살짜리도 그러고 있는데, 어른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빌빌대고 말이야. 너도 분발해 자식아.”
남궁공자가 웃으며 농을 건넸지만, 당기룡의 얼굴에는 많은 감정이 서렸다.
“지천이가 사람을 들인다니 참으로 기특하지만,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지 않더냐.”
“아픈 건 의원이 신경 쓸 부분이니 너는 지천이에게 줄 상이나 잘 생각해라.”
걸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남궁공자의 실력을 믿었기에 근심은 한구석에 밀어놓고, 지천이에게 줄 상을 생각했다.
‘무엇을 줘야 지천이가 좋아할까? 이전과 같이 돈으로? 아니면 연구를 좋아하니 극독을 내줘? 그것도 아니면 금지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줘?’
한참 고민해도 마땅한 상을 고르지 못하고 있던 그때, 눈에 들어오는 한 서류.
[독물학 총회 참석자 목록]
독물학 총회.
원래라면 최소 1급 연구원 이상.
그에 준하는 사람들만 발을 들일 수 있는 당가 최중요 행사.
아무리 가문의 직계라고 한들, 걸맞은 자격이 없으면 주변에 발도 못 붙이는 행사였다.
허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당기룡은 조용히 붓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망설임을 지우고 글자를 써 내려갔다.
“아니, 상을 주라고 하긴 했다만 너 설마…….”
“그래.”
[참관 : 당지천]
“지천이를 다음 주에 열리는 독물학 총회(毒物學總會)에 참석시켜 주자꾸나.”
역사상 전례 없던 독물학 총회의 첫 참관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