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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22화 (22/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2화

“아니, 당지천 공자님 아니십니까?”

문 앞에서 코를 찡그리고 서 있자, 곧바로 나를 알아보는 문지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할 사람을 불러 오겠습니다.”

당황하면서도 절제된 움직임으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옆의 줄을 당기면 되지 않나?”

다른 곳도 그렇지만, 특히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상단의 입구.

문지기가 일일이 사람을 불러 오다간,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기에 항상 사람을 부를 줄이 있었다.

물론, 내가 백호현의 일은 둘째 치더라도 귀한 신분이라 특별 대우를 하려는 걸 수도 있다만, 어디 귀한 손님이 나뿐이겠는가.

흰색 줄 바로 옆에 준비된 금색 줄이 귀한 손님이 오셨음을 알리는 줄이었다.

그런데 왜 그걸 당기지 않고 직접 사람을 부르러 갔을까?

‘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내가 백화상단에 돈 받으러 왔지,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온 건 아니니 단순히 ‘그때 일로 잡았던 세작이 좀 위험한 놈이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껐다.

그렇게 잠시간 기다리고 있자, 다급하게 달려오는 중년의 남성.

“당지천 공자님. 저희 백화상단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님을 안내하게 된 황충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무인으로 보이진 않으나, 절제된 기도를 가진 게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뒤쪽 분들은?”

“이번에 하인으로 들일 아이들입니다. 아, 값은 지불할 터이니 옷가지를 내어주실 수 있으신지…….”

생각해 보니까 일이 잘 풀리든 잘 안 풀리든 오늘 쏘다닐 곳이 많았다.

그런데 얘네 둘을 데리고 다니자니, 나도 불편하고 얘네도 불편할 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가에 먼저 데려다주십시오.”

“저희가 어찌 공자님께 돈을 받겠습니까. 직원을 붙여 당가로 먼저 보내겠습니다.”

황충은 손사래를 치며 지나가던 직원에게 장하와 영하를 맡기고 가려 하자, 일염이가 둘을 멈춰 세웠다.

“잠깐, 혹시 모르니 이것을 가지고 가거라.”

장하의 손에 당가의 호위무사임을 증명하는 자신의 패를 올려주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고, 우리가 전각에 도착하면 그때 건네주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일염이가 살벌한 눈빛으로 강조하자, 영하는 굳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 * *

‘윽, 냄새…….’

안내하는 황충을 따라 장원을 안으로 들어가니 점점 강해지는 화약 냄새.

당가의 무인들은 매일같이 독의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대체로 코가 좋은 편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참기 힘든 수준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코를 찡그리고 있자, 황충이 그 얼굴을 봤는지 다급하게 길을 왼쪽으로 틀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화약이 대량으로 들어와서 다들 코를 아릴 정도인데, 당가 분이시니…… 최대한 냄새가 덜 나는 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뭐?

화약이 대량으로 들어왔다고?

“상단에서 화약을 취급합니까?”

화약과 활.

이 둘은 관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물건으로 무인들조차도 대량 보유할 경우 돈을 최대한 풀어서라도 회수하려 들었다.

사실 위험하기로 따지자면 무인들이 더 위험하긴 했으나, 저 둘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양민들을 무장시켜 반란을 이끌 수 있기에 엄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개 상단이 화약을 취급해?

솔직히 화약 냄새를 맡은 시점에서 밀수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공자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원래는 불법이긴 하나, 저희 백화상단은 유일하게 화약을 운반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운반에 제한되지만 말입니다.”

“표국이 아니라 상단이 말입니까?”

“듣기로는 상단주님의 머나먼 친척분이 황가에 계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줄을 엄청 댔답니다.”

“그렇군요.”

독점이란 말인가.

언뜻 보면 참으로 좋아 보이는데 지금 내가 보기엔 화약은 장점보다 단점이 커 보였다.

제대로 관리가 안 됐을 때의 후폭풍은 일개 상단이 감당할 수준이 아닐뿐더러, 규모가 커질수록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는데, 단 한 명만 실수해도 문제가 생기는 게 화약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백호현이 은수저를 들고 들어온 게 세작의 짓이었지 않은가.

“아, 이 이야기는 웬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대외적으론 비밀이니 어디 가서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드시지요.”

황충의 안내에 따라 접객실로 들어가자, 앉아서 업무를 보던 사람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당지천 공자님. 형님께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혹시 부상단주님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형님의 도움 덕에 분에 넘치는 자리를 꿰찬 백금현이라고 합니다.”

재차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백금현.

그 자태가 손윗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나 예의 바르고 공손했기에 다시금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상단 측에서 결례를 범한 것도 있고, 백화상단과 당가가 상부상조하기는 한다.

허나, 당가주도 아닌, 그렇다고 대공자인 당지독도 아닌 고작 삼 공자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보일 이유는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다면 말이다.

“분에 넘치시다니요. 가문 내에서 부상단주님의 위명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에게 이리 존대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예의상 한 말이었지만, 허언은 아니었다.

당가주가 상재가 뛰어나 여러 상단과 교류하는 만큼, 다른 상단의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특히나, 주로 거래하는 백화상단의 부상단주가 인물이 좋은데도 미혼이었기에 이야기가 많이 돌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렇게 남한테 막 퍼주는 그런 자애로운 인물이 아니라, 계산이 확실한 상인인 면이 부각되었었다.

“제가 불편하게 해드렸군요. 알겠습니다. 다만 별거 아닌 업적이 부풀려졌을 뿐인데 위명이라 해주시니 부끄럽군요.”

“저…… 그 문제는 잘 해결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상인의 미덕은 신뢰이거늘, 하마터면 당가와의 신뢰를 저버릴 뻔했습니다.”

차를 한 잔 들이켠 백금현은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또한, 저희 상단에 계속 이상한 수작을 부리려고 했더군요. 만약 그 모든 게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이게 다 공자님 덕분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노골적인 어화둥둥.

낯간지러울 정도로 치켜세우는 게 머쓱할 정도였지만, 이게 내가 어른이어서 그런 것이다.

만약 그냥 12살짜리한테 그랬다면 분명 자아도취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을 거다.

“그리하여 당지천 공자님께 약소하지만, 작은 부탁을 들어드림과 함께 섭섭지 않게끔 선물을 드리라는 형님의 언질이 있었습니다.”

“선물 말입니까?”

“예, 사실 선물이라고 했지만, 공자님께서 무얼 좋아하시는지 몰라 돈으로 준비하긴 했습니다.”

보란 듯이 전표도 아닌 금이 가득 든 상자를 내미는 백금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면서 제일 좋아하는 걸 가져왔다.

뭐, 솔직히 당지천이 돈을 밝히는 폐품인 건 사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퍼주는 부상단주의 모습에 확신이 들었다.

백금현이 상단주 몰래.

그것도 금지 물품인 화약을 대규모로 이용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확신이.

‘이거 써먹을 수 있겠는데?’

안 그래도 백화상단에서 한탕 하려 했던 나다.

얼마나 어떻게 뜯어내야 할지, 어떤 협박을 해야 잘 먹힐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협조해 준다?

그렇다면 내 계획이 아깝더라도 협조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물론, 화약을 이용해서 하려는 일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안내받으면서 본 상단의 직원들을 보면 무인은 아니면서도 무인인 듯한 날카로운 기세를 풍겼다.

단적으로 말해서 군인 같은 느낌이었다.

양민들을 건드린다면 모를까.

백금현이 준비하고 있는 게 단순히 반란이라면 굳이 내가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약.

현대에 사용되는 화약은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주원료로 하는 무연화약이다.

내가 만든 화약 암기도 무연화약이 쓰였는데, 지금 여기 있는 화약들은 전부 흑색화약.

화승총에나 쓰일 법한 구시대의 유물로 문제가 많으며 취급과 보관이 어렵다.

그렇기에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저 작은 부탁이라고 하시니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화약을 사용할 권리도 받으셨습니까?”

그렇지만 확신이 들었다고 해서 확인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법.

확증이 필요했기에 곧바로 운을 뗐다.

“화약 말이십니까?”

사람을 속이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 바로 상인.

다소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지만, 당연하게도 백금현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제가 요즘 연구하는 데 화약이 필요합니다만, 다들 위험하다고 내주지를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좀 얻을 수 있다면…….”

“아쉽지만 공자님, 엄연히 화약은 국가의 것. 저희가 다룰 수는 없습니다. 작은 부탁을 들어드린다고 하였지만, 화약은 내드릴 수 없습니다.”

순수한 어린아이를 연기하며 말끝을 흐림에도 백금현은 켕기는 것 없이 그저 아쉽다는 얼굴로 답했다.

허나, 백금현이 망각하고 있는 사실 하나.

접객실에 있는 건 나와 백금현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상인으로 보이지 않던 황충.

그리고 눈치로 생사를 오가고, 사람의 얼굴을 읽는 데 도가 튼 천일염.

내가 미끼를 던지자, 일염이가 순식간에 낚아 올렸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눈치입니다.

“그렇습니까…….”

최대한 실망한 기색을 내보이며 인상을 찌푸림에도 아무 반응 없는 백금현.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 보탤 뿐이었다.

“화약을 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안 된다는 부탁을 들어달라고 할 만큼 저도 철없진 않습니다. 아무리 도움을 주었다고 한들 적당한 선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도움이라는 말에 힘을 주고 어른인 척하는 어린아이를 연기하며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저…… 염치 불고하고 묻겠습니다만, 돈은 얼마나 됩니까? 제가 저번에 가지고 싶은 게 있었는데 돈이 부족해서 못 샀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사실 수 있도록 후한 금액을 드리겠습니다.”

“후한 금액이라니 진짜입니까?!”

후한 금액?

이거 완전 일단 질러보라는 공수표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뭘, 얼마나 달라고 해야지 잘 질렀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기존의 조사해 온 거론 부족할 거 같은데…….’

짧은 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수많은 목록에 고민하고 있자, 일염이가 곧바로 전음을 보내왔다.

-백화상단에 처치 곤란인 녹주석 광산이 있습니다. 그걸로 가시죠.

녹주석 광산?

극독을 물 쓰듯이 펑펑 쓸 수 있게 해줄.

가문에 녹주석을 공급해 이윤을 얻게 해줄.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먼저 녹주석이 귀물임을 알아본 내 입지를 넓히게 해줄 그 녹주석 광산을 부르라고?

아무리 광산 중에서 제일 싸더라도 최소 몇만 냥은 하는데?

그래서 위치만 알아 가려고 했던 건데…… 켕기는 게 있어도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지만, 못 먹어도 고.

이미 내 입은 척수반사로 녹주석 광산을 외쳐 버렸다.

“노, 녹주석 광산을 사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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