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21화 (21/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21화

“눈 말씀입니까?”

“그래,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못 보는 걸 대신 봐줘야겠어.”

배수 짓을 당한 당사자에게 영입 제안을 받을지는 몰랐는지 당황해하는 장하.

그런데 그 장하보다 더 놀라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진심입니까 공자님?”

바로 일염이였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착 가라앉은 무뚝뚝한 음성.

스산한 정도로 차가운 말투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어. 왜?”

-진심이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님.

다시금 전음까지 써서 묻는 일염이.

이 녀석이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을 할까 싶어 잠깐 고민해 봤지만,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서 그냥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에헤이, 그렇게 압박해도 데려갈 거야. 네가 맨날 밥도 안 해주고 노름하러 나가는데 시종 한두 명 정도는 더 필요하지 않겠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인지 지긋이 쳐다보는 일염이.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얼굴을 풀고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공자님. 시종이 몇 명이 된다고 한들, 호위는 한 명뿐인 거 아시죠?”

조금은 무뚝뚝한, 인위적인 말투로 말이다.

“그래, 열 살짜리 배수 하나 못 막는 호위도 호위라면 말이다.”

일염이가 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으나, 알 길이 없었기에 대충 넘기고 장하에게 말했다.

“안내해. 너희 형 찾으러 가야지.”

* * *

아미파와 청성파.

그리고 당가.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대문파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이곳.

사천에 자리를 잡은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독사파였다.

“거기! 동작이 굼뜨다!”

“죄, 죄송합니다!”

연무장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던 독사파의 인원이 경고하자,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청년의 몸.

빈민가에서 데려온 첫날.

오늘부터 독사파의 일원으로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에 대다수가 반항심을 보였었지만, 며칠 동안 반복된 매타작에 금방 수그러들었다.

“거기, 장상이라고 했나? 설마 아직도 관에서 너희를 구해줄 거라 생각해서 대충하는 거냐?”

“아닙니다!”

이미 관아에는 빈민가를 제외한 어디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조하며 성의를 표한 상황.

거기다, 괜히 일을 키우지 않으려 살인도 하지 않았으니 이들을 위해서 나설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걸 몰랐던 이들은 처음에는 관아에서 도와줄 거라 생각해 이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틀을 훌쩍 넘긴 지금은 희망을 잃은 채 죽은 눈으로 훈련을 받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연무장의 용태를 살피던 독사파의 문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되어가고 있군.”

처음 부두목이 성도에서 사람을 구해오자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럴듯한 소리지 않던가?

다른 지역과 달리 사천은 정파만 2개의 대문파가 있었고, 거기다 독으로 유명한 당가가 있는 곳이었다.

서로가 박 터지게 이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상황.

어느 곳에나 있다는 사파 무리가 들어오기에는 너무나도 강성한 곳이라 가히 빈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고, 그 자리를 자신들이 차지했단 말씀.

은밀하게 기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대놓고 들어왔음에도 아미파나 청성파에서 제재가 안 들어오는 건 미리 관아를 통해 인원만 보충해서 뜰 것이라고 언질을 넣어놨기 때문이다.

그게 통하는 이유는…….

“이로써 산채를 하나 더 늘릴 수 있겠구나.”

독사파가 실상은 녹림의 산채인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사천의 이권을 쥐고 박 터지게 싸우는 청성파와 아미파.

그들이 가진 사업체 중에 수입이 제일 좋은 건 다름 아닌 표국이었다.

“의와 협을 알긴 개뿔, 돈만 밝히는 것들이 말이야.”

산적이 있어야 표국이 있을 수 있고.

표국이 있어야 산적이 있을 수 있는 법.

서로 상부상조를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걸 보면 정파 놈들도 참 위선적이다.

“뭐, 그래서 좋긴 하지.”

그러니 자신들이 이렇게 밥벌이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당가는 원래 다른 놈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말 다 했고.

어쨌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에 미소를 짓던 두목은, 이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두, 두목님! 큰일 났습니다!”

“새끼야! 두목님 말고 문주님! 문주님이라 부르라고 몇 번을 말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당가! 그것도 직계가 찾아왔습니다!”

“뭐?!”

정파인 아미파도, 청성파도 아닌.

자신들의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을 당가에서 도대체 왜 찾아온단 말인가?

‘이럴 때가 아니다.’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어떤 일로 찾아왔는지 알아보는 게 급선무.

버선발로 뛰쳐나가 전속력으로 대문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세 명의 인영.

그중에 당가의 직계를 의미하는 자색의 무복을 입은 당지천이 같이 있었기에 보자마자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독사파의 문주, 장호성이라 합니다.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쩌신 일로 오셨습니까.”

장호성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위아래로 훑어보는 직계.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한 번 차고는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의 당지천이다. 여기에 날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들었거든.”

음해하는 세력?

당가를?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나가려는 우리가?

“예? 음해하는 세력이라니요. 저희는 결코 아닙니다. 분명 누군가가 누명을 씌운 것일 겁니다.”

녹림의 규칙 중 하나가 대문파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 별도로 한 번 더 강조되는 것이 사천당가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공이 고결한 이보다 숫자로 압도하는 인해전술을 펼치는 녹림.

고수가 나서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그 수가 많은 편이기에 웬만한 중소문파쯤은 한두 개씩 건드리기도 했다.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이 고작 산적이나 잡으러 오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당가.

고작 일류 수준의 무인이라도 당가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본디 독이란 무기의 제일 큰 장점은 대량 살상이 가능하다는 점.

별호도 없는 일류 수준인 무인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산채 하나쯤 뒤집어 버리는 건 문제없었기에 절대 건드리지 말라 하는 거다.

거기다, 만약 산채에서 이긴다고 해도 은원을 중히 여기는 당가 특성상 가문에서 나설 것이 분명했고, 그 결말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뻔했다.

그런데 뭐?

우리가 당가를 음해해?

말도 안 되는 억지다.

분명 누군가가 누명을 씌우지 않고서야 그런 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제기랄, 정파 놈들. 아무리 위선 떤다지만 우리를 내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래?”

“예, 저희는 결백합니다.”

장호성이 굳은 얼굴로 답변하자, 칼같이 인상을 찌푸리는 당지천.

“근데 왜 내 사람 잡아가냐?”

“예?”

“얘가 내 하인으로 들어오기로 한 아이인데, 얘네 형 잡아갔다던데?”

당지천이 앞으로 내미는 아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꾀죄죄한 상태를 보니 빈민가의 아이인 듯했다.

“아…….”

순간 상황을 이해한 장호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치기였나.’

일방적으로 사람 하나를 내줘야 할 판이었지만, 본디 무림이란 약육강식의 세계.

사람 하나로 땡 칠 수 있다면 한없이 남는 장사였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름을 묻자 아이를 내려다보는 당지천.

“저희 형 이름은 영하예요.”

곧바로 부두목을 시켜 영하란 이를 데려오자, 영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형!”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 했거늘…….”

감동적인 가족의 재회 순간.

장호성은 당지천의 장단을 맞추기 위해 새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마디 했다.

“다행히 잘 해결되었군요.”

사실 반쯤은 진심이었다.

마른하늘에 날아든 날벼락처럼 당가에서 찾아왔는데, 별문제 없이 넘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장호성의 마음을 배신하듯 당지천이 말했다.

“뭐가 잘 해결돼?”

“예?”

반문하기가 무섭게 품속에 손을 넣어 암기를 던지는 당지천.

-펑!

“무, 무슨…….”

별로 힘준 것 같지도 않은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새에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암기.

“여기에 날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들었다니까?”

연이어 암기를.

그것도 이번엔 독이 발린 암기를 꺼내 드는 당지천.

“내가 너희를 살려둬야 할 이유를 말해봐.”

* * *

나는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어느 무협지 주인공처럼 의협심이 넘치는 협객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상황을 무시하고 갈 만큼 무관심한 사람도 아니다.

원래라면 남들 일에 끼어들지 않는 곳이 당가.

은혜는 갑절로.

원한은 곱절로.

당가를 대표하는 말이 은원을 중히 여긴다는 말인 만큼 은원을 함부로 만들지 않는 것이 당가의 무인들이다.

독공을 쓴다는 것 이외에도 그런 실리를 추구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당가를 좋아했던 나다.

허나…….

‘무(武)만 있다고 무협이 아니고, 협(俠)만 있다고 무협이 아니지.’

무협이란 본디 무와 협이 같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

당가의 방식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건 무협이 아니야!’

결코 무협이라 부를 수 없었기에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실리를 추구하는 당가에 의협심을 추구하는 별종 하나 정돈 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거기다, 목숨이 위태롭다면 모를까.

별 위험 없이도 해치울 수 있는 게 독사파 이들이었다.

이 정도론 결코 나의 의협심을 막지 못한다.

“무, 무슨?”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다만, 그냥 물러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장호성과 일염이.

나는 그들에게 명확한 의지 표명을 전했다.

“악인을 잡는 취미는 없지만, 날 음해한 놈들을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다.”

“하…….”

“그렇습니까.”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 장호성.

그리고 다시금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일염이.

“역시 닮으셨네요. 공자님은.”

“닮았다니?”

“공자님의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래……?”

자식이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하는 게 뭐가 그리 놀랄 일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여태껏 당지천의 어머니에 대해 물을 때마다 말을 돌렸던 일염이다.

그런 일염이가 대놓고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자님. 두 명 데리고 잠시 나가 계시죠.”

잠시 충격에 놀랐던 상황.

일염이가 쌀쌀맞게 등을 떠밀길래 곧바로 저항했다.

“내가 벌인 일이야. 내가 처리해야 이치에 맞지 않겠어?”

“마음은 고상하나, 의와 협을 실천하기엔 공자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그러니…….”

-스릉.

“살려둘 이는 살려두고.”

-죽일 이는 죽이겠습니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검을 치켜세우는 일염이.

“아, 알았어.”

당지천에 빙의하고서 처음으로 보는 섬뜩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장원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독사파에는…….

-어차피 한 놈이다 썰어버려!

-모두 달려들어 포위해!

-으아악!!!

-괴, 괴물이야!!!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 * *

일염이가 독사파를 정리하고 나오자, 우리는 곧바로 백화상단으로 향했다.

갑자기 종잡을 수 없는 일염이의 모습에 당황해 입을 다물었고, 일염이도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걷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우와와…….”

당가의 장원보다 작지만, 더 화려한 백화상단의 입구에 도착하자,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지 감탄사를 내뱉는 장하.

나 또한 화려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곧장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일염아.”

지금 코끝을 스치고 가는 이 향.

이 향이 바로 아까 전까지 내가 맡았던……

“꽤 상당한 양인 듯하군요.”

화약 냄새였기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