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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화 (1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화

광물독, 합성독, 생물독, 화학독 등.

전생에서나 여기에서나 개별적인 독의 분류 방법이 존재했으나, 나는 나만의 기준으로 두 가지로 분류했다.

바로 전생에 존재했던 화학독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상상독.

상상독은 하나같이 극독이나 귀물이라 구할 수 없었기에 알 길이 없었지만, 화학독을 분석한 결과.

중원의 과학 법칙은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전생에 썼던 물질들을 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자, 이제 철침을 박아 넣고 전류…… 아니, 뇌기를 흘려주시면 됩니다.”

“흐음, 이렇게 말이냐.”

“예, 좋습니다.”

과거 내게 내려졌던 금독령.

독공을 익히는 당가의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처벌임에도 그 금독령을 피해서 독을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 현대 화학의 힘이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독이 없는 곳에서 독을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갈 거다.

하지만 화학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떠올려 보라.

서양의 연금술.

동양의 연단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여러 물질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발달한 게 화학이다.

물질을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그 구조와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었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소금이나 물같이 아주 흔한 물질조차도 정제 과정을 거쳐 독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우리가 사는 데 필수인 공기에서조차 독을 추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이뤄지는 과정처럼 말이다.

“이러면 독이 나온다는 게 사실이더냐?”

“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작은 용기 속에 묽은 과산화수소를 넣고, 쇠 전극으로 방전시킨다.

이렇게 하면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가 결합해 이산화질소가 되고, 과산화수소 용액에 녹아 독극물인 질산이 완성된다.

“흐음…….”

중간에 많은 과정이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워 대충 독이 나온다고 둘러대었더니 영 미덥지 않게 보는 남궁공자.

“아무리 천기와 지기가 그 궤를 같게 한다지만, 뇌기로 독기를 정제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뭔가 의구심이 드는지, 혼자서 무어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 정신 사나운데 적당히 좀 하지.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이라 차마 입으로는 뱉지는 못하고 조용히 기다리기를 잠시.

“이건?”

시간이 지나자 예상대로 물방울들이 용기에 맺히기 시작했다.

“이게 제가 말한 독입니다.”

용기에 넣어둔 과산화수소가 전부 사라진 걸 확인하고, 질산을 잘 모아 남궁공자에게 건네줬다.

“위험…… 할 리가 없겠네요.”

질산.

염산과 황산과 함께 3대 강산으로 불리는 산성 물질.

독성 자체는 낮은 편으로 3대 강산 중 최약체였으나 폭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되기에 아주 위험한 물건이었다.

다만, 어중이떠중이라면 모를까.

딱 보아도 강해 보이는 남궁공자에게는 물과 다를 바 없는 물건일 거다.

“허어, 이건 독이지 않으냐.”

질산을 건네받자 곧바로 손바닥에 비벼보는 남궁공자.

일반인이었으면 손바닥이 전부 노랗게 변하며 화상을 입을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변하긴커녕 따땃한지 몇 번이나 굴려보고 있었다.

“허어…….”

감탄을 연발하는 남궁공자.

몇 번이나 독이 나온다고 말했음에도 저리 감탄하는 걸 보면 신기하긴 신기한가 보다.

‘그건 참 다행이긴 한데…….’

독을 모르는 일반인들과 다르게 어느 정도 독을 아는, 그것도 의선문의 대장로라는 사람도 감탄했다.

그렇다면 3급 연구원의 연구 성과로는 문제는 없었다.

실험에 쓰인 과산화수소 또한 위험하지만 간단한 전기 분해로 만들 수 있는 물질이었고, 질산의 독성 자체는 약해도 공기 중에서 정제해 낸다는 새로운 공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단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

내가 연구원들 앞에서 2NO2+H2O2->HNO3 같은 화학식을 적으면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끙, 이걸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냐.’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해답을 찾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주 유능하신 뇌의 님께서 그 답을 찾아주셨으니 말이다.

“아무리 세상의 기가 모두 같다고 한들, 뇌기로 독기를 정제하는 것이 가능했다니…….”

뇌기로 독기를 정제한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의선문 대장로의 말이다.

의미 없는 개소리를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는 않았을 거다.

“아시겠습니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구나. 다만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만…….”

과학이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사색에 빠진 남궁공자.

“그렇군. 그런 거였어. 네가 이런 생각을 해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구나.”

곧바로 이해를 마쳤는지 감탄 서린 얼굴로 나를 봤다.

“강호에 위상이 자자한 뇌의 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나는 중원의 방식으론 쥐뿔도 모르겠는데, 완벽히 이해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전생에 내가 아무리 무협지를 많이 읽었다고 한들, 기에 대해 난해하게 설명한 서적은 안 읽어봤다.

그리고 여기서 공부한 서적도 전부 독과 관련된 것이지 기에 관해서 늘어놓은 책도 없었다.

애초에 지식의 전수가 아닌 스스로의 깨달음을 더 중히 여기기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대다수였으니 알 턱이 있나.

“아니다. 나도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이다. 정말이지 좋은 걸 배웠구나.”

좋은 걸 배웠다라…….

“뇌의 님.”

“왜 그러느냐?”

“혹시 사흘 뒤에 시간 좀 되십니까?”

좋은 거 알았으면 갚아야지.

안 그래?

* * *

삼 공자의 연구 증명이 예정된 만독연의 강당.

당지천에 대한 관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는지 수많은 연구원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을 대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아무리 흉흉한 소문이 횡행한다지만, 입연(入硏)과 동시에 연구 증명을 시키는 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소? 그것도 연구 자료 하나도 못 쓰게 만들고, 말이네.”

“연구 자료를 못 쓰게 만든 건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직계라고 한들 부정한 방법으로 입연했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아직 어린 삼 공자가 도의에 맞지 않는 연구 증명을 하게 됐다고 생각해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과 어린 나이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3급 연구원이 됐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들.

그리고 중립을 표방하는 이들.

“자네들, 고작 한 시진 뒤면 알 만한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다투지들 말게나.”

삼 공자가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고, 단상 위에서 실험 기구를 설치하는 중인데도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생각해서 삼 공자가 연구 증명을 해낸다면 소문이 틀린 것이고, 아니면 소문이 맞는 걸로 생각하면 되잖나.”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은가.”

물론, 단순한 구경거리 취급하며 별 관심 없는 이들도 있었다.

“아닐세, 단순한 문제라네. 삼 공자가 오늘 그럴듯한 연구를 가져온다면 우리가 삼 공자의 손을 들어줄 터이니 해결될 문제잖은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였지만 연구원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것만 믿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소문이 나돈다고 해도, 오늘 삼 공자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낸다면 정치에 끼지 않은 대다수 연구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허나, 그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군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연구에는 독이 꼭 필요한 법.

독왕이라 불리는 당가주조차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는 없다.

그런데 단 하나의 독조차 확보하지 못한 삼 공자에게 가능성이 있겠는가.

‘뭐,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며칠 전.

가주의 친우인 뇌의가 삼 공자와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정이 많은 뇌의인데 친우의 자식.

거기다, 5년 전에 그런 사건을 겪고 치료하지 못한 환자라면 분명 정을 붙였을 거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당지천을 도우려 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큰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거슬리는 존재.

맘 같아선 뇌의를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지.’

그럴 순 없기에 방향을 바꿔 약재로 쓰이는 독으로 할 만한 연구는 죄다 했다.

만약 오늘 삼 공자가 그 독들을 이용한 연구를 했다면, 아주 철저하게 부숴 버릴 만큼 말이다.

그런 당군성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단상 위의 당지천은 태연하게 말했다.

“자, 실험 준비됐으니 모두 착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삼 공자의 말에 따라 각자 자리에 앉는 연구원들.

그들의 시선이 닿은 단상 위에는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실험 기구들이 있었지만,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기에 대부분 금방 옆으로 눈을 돌렸다.

그것들보다 더 시선을 끄는 존재가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 실험을 도와주실 뇌의 님이십니다.”

“뇌의 님이라…….”

당지천이 뇌의를 소개하자, 곧바로 싸늘해지는 강당의 분위기.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협업이 불가피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둘의 격차가 크게 나지 않을 때의 이야기.

의선문의 대장로인 뇌의와 이제 고작 12살인 당지천의 협업.

어느 쪽이 연구에 더 많은 영향을 줬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물론, 뇌의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미리 선수를 쳤다.

“다들 오해하는 것 같으니 미리 말하마. 나는 지천이의 연구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꼬우면 비무로 해결하든가.”

“…….”

같은 장로 배분임에도 자연스럽게 하대하는 남궁공자.

심지어 꼬우면 덤비라는 모욕적인 언사에도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당지천은 어리둥절했지만, 제 코가 석 자였기에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 생각하고 말았다.

“뭐, 대충 보면 알게 될 거다. 시작해.”

“아, 예. 오늘 제가 발표할 연구 주제는 ‘뇌기를 활용한 독기의 정제가 가능한가’에 대해섭니다.”

“뇌기?”

본디 연구란 다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한들, 뇌기를 사용한다는 건 전례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이상한 눈으로 삼 공자를 쳐다보고 있자, 당지천은 뇌의를 실험 기구 옆으로 유도했다.

“눈앞에 보이는 이 두 개의 입구가 보이십니까?”

하나의 큰 유리관에 연결된 두 개의 입구.

한쪽에는 물이 들어 있었으며 다른 한쪽은 그저 텅 빈 곳이었다.

“처음은 물과 공기를 이용해 아주 약한 독을 정제할 겁니다. 이후 더 강한 독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당지천이 양쪽 입구에 철침을 꽂아 넣고 남궁공자를 보자, 물이 있는 쪽에서 뇌기를 흘리는 남궁공자.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기가 뇌기로 인해 형태가 변하고 있다는 걸 몇몇 분은 느끼실 겁니다.”

“호오…… 확실히 기가 변하고 있군요.”

“자 그럼 이 상황에서 반대편에도 뇌기를 흘리면…….”

당지천의 신호에 맞춰 뇌의가 텅 빈 곳에도 뇌기를 흘리자…….

-펑!

유리관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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