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4화 (14/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화

“거, 문 좀 빨리빨리 열어줍시다.”

서고의 문이 열리자, 투덜대며 걸어 나오는 당지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왜냐면 삼 공자가 들고 온 게 다름 아닌…….

‘허 참, 거지가 잔칫집은 그냥 못 지나간다더니…….’

대낮에도 환하게 빛나는.

서고 정중앙에 박혀 있던 가장 밝은 야명주였기에.

‘삼 공자님이 돈에 그렇게 환장하신다더니 기어이 사고를 치시는구나.’

‘딱 보아도 부르는 게 값일 녀석이니 보자마자 환장하셨겠지.’

‘애초에 비급은 쳐다보기라도 하셨으려나…….’

‘그야말로 광인(光人)이 따로 없군.’

다들 내색하진 않았지만, 저마다 속으로 삼 공자에 대한 감상을 내뱉기 바빴다.

그리고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은 백호단주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삼 공자님. 그건 야명주잖습니까.”

“예, 야명주입니다만?”

“서고에 들어가셨으면 비급을 가지고 나오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상하군요. 백호단주님께선 분명 제게 서고에서 단 한 가지, 원하는 걸 가지고 나오라 하셨습니다.”

“아니, 그건 맞습니다만…….”

“그것보다 검사 먼저 해주십시오.”

도저히 자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실소만 흘리는 백호단주.

그래도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삼 공자가 비급을 숨겨 나오진 않았는지 소지품 검사를 했다.

‘그래, 적어도 무인이고, 생각이 있다면 비급 하나쯤은 챙겨 왔을 거야.’

하지만 그런 백호단주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삼 공자의 품에서 비급이 나오는 일 따윈 없었다.

‘……내가 삼 공자에게 기대를 하다니 잠시 미쳤었나 보군.’

시련을 극복하고 서고에 간 것까지는 대견하나, 하필 가지고 나온 게 야명주가 뭔가. 야명주가.

아무리 돈을 밝힌다고 해도 때와 장소 정도는 가려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왜 야명주를 가지고 나오신 겁니까?”

“수련에 도움이 돼서요.”

“야명주가 말입니까?”

얼척이 없어서 되묻자, 뻔뻔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당지천.

“예, 도움이 됩니다.”

백호단주는 개소리에도 경지가 있었다면 당지천은 필시 심음(心音)의 경지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단주님.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먼저 좀 가보겠습니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한시바삐 돌아가려는 삼 공자를 잡으려 하던 백호단주.

“아니, 삼 공자님…….”

우연히 그의 손이 야명주에 닿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당기룡이 백호단주에게 명령했다.

“하하하하! 보내주거라.”

그것도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말이다.

’큰일 났다.’

가주가 웃음을 터뜨리자, 한순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이때까지 당가주가 공적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그랬던 가주가 지금.

야명주를 가져온 삼 공자를 보고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기뻐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세 살짜리 꼬마애라도 유추할 수 있었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삼 공자.

“감사합니다. 아버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잔망스럽게 뛰쳐나가는 게 불난 집에 벽력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

이미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분위기는 더욱이 싸늘해졌고,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가주의 눈치를 보느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허허허…….”

연이어서 웃음을 흘리는 당기룡.

사람들은 저것이 삼 공자에 실망한 당기룡이 탄식하는 거로 여겼지만, 실상은 달랐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사실 당기룡의 웃음은 당지천에 대한 감탄이었다.

’어찌 그걸 알아차렸을까.’

당지천이 가지고 나온 야명주.

다른 이들은 멀어서 느낄 수 없었겠지만, 당기룡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야명주가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독기를 뿜는다는 걸.

’정말 의외야.’

자신이야 당가제일인이기에 당연하다는 듯 느끼지, 다른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백호단주 또한 야명주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기감을 집중한다면 멀리서도 느끼겠지만, 그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비급이 즐비한 그곳에서 이걸 느꼈다?

’어쩌면 지천이는 천재가 아닐지 모른다. 하늘이 내린 기재 따위가 아닌 그야말로 천(天). 그야말로 하늘 그 자체다.’

백호단주는 물론, 그 누구라도 듣자마자 기겁할 헛소리를 당연하다시피 한 당기룡은 문득 오기 전 당지천을 헐뜯던 흑룡단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백호단주.

-예. 하명하십시오.

-이번 달 흑룡단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만큼 만독연 예산으로 편성해.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흑룡단주가 지천이가 비무에서 꼼수를 썼다고 하더군. 거기다. 지천이가 문을 두드렸을 때, 당연하다는 듯이 포기 선언이라고 생각했지.

-저런.

-심지어 야명주를 들고 나왔을 땐 지천이 보고 광인이라고 생각하더군.

위의 두 개는 그렇다 쳐도 광인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생각했다는 별다른 증거 없는 모함.

-흑룡단주가 요즘 일에 치여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봅니다. 근신 처분하시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말 잘했다. 일주일 정도만 쉬고 오라고 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지천에게 큰 충격을 받은 백호단주에게 흑룡단주는 반쯤 미친 죄인이었다.

* * *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달리고 있음에도 멀기만 한 전각.

한시라도 빨리 전각에 도착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후욱, 후욱.”

숨이 턱 끝까지 올라왔음에도 내겐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 쇠 맛 너무 좋다. 진짜.”

왜냐면 내가 혼잣말을 내뱉는 지금도 방사능에 피폭당하고 있기에.

지금 입안을 가득 메운 쇠 맛.

이는 피폭당할 때 느낄 수 있는 거다.

솔직히 피폭량 자체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겨우 느낄 만큼 많지 않았다.

허나, 가슴이 자꾸 두근거리는 걸 어떡하는가.

독공을 익히는 사람들에게는 곧 독이 영약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독을 만들어서 먹으려고 하는 건데, 보통 독들은 몇 번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더는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물론, ‘모든 것은 독이되, 독이 아니다. 독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양이다’라는 필리푸스 파라켈수스의 말처럼 양을 늘리면 가능 자체는 했지만,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별 의미는 없었다.

즉,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극독이 아닌 이상에야, 모든 독에 내성을 가진다는 소리.

그런데 만약, 아무리 중독당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독이 있다면?

심지어 음독할 필요도 없이 숨만 쉬어도 중독당할 수 있는 독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세월이 축적되면 될수록 범접하기 힘든 괴물이 되어갈 거다.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게 이 야명주.

현대 과학을 통해 밝혀진 야명주 빛의 정체는 바로 돌 내부의 극소량의 방사성 원소로 인한 형광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방사성 원소는 라듐, 우라늄같이 지속적으로 방사능을 뿜어내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즉, 하루 24시간 피폭으로 독공을 수련하는 이른바…….

‘자동 수련 시스템’

자고로, 무공 수련의 끝판왕은 24시간 수련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 야명주야말로 내가 서고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연이자, 전생에서 그토록 염원했던 물건이었다.

진짜 그야말로 숨만 쉬어도 강해지게 되는 거다.

거기다, 자연 상태의 방사능은 피부를 뚫지 못할 정도로 약한 편이지만, 직접 섭취하거나 눈이나 입안같이 점막에 접촉하면 피폭의 강도가 최소한 배는 강해진다.

이는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야명주의 효율이 좋아진다는 뜻.

또한, 사람이 방사선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종장에 이르러선 인체 또한 방사성물질로 변한다.

즉, 내 몸도 방사선을 뿜게 된다는 이야기.

그야말로 독인(毒人)의 경지에 이른다는 거다.

그런 24시간 수련에 단계 조절도 가능한 완벽한 물건을 구했는데, 어떻게 시험해 보지 않고 넘어가겠는가.

“헥, 헥.”

전각에 도착하자마자, 개인 연무장으로 직행해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

어느 정도 숨이 진정되자, 곧바로 시작한 운기.

손으로만 접촉해서 그런지, 아니면 접촉 시간이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미약하기 그지없는 양.

그러나 운기하는 동안 난 밑도 끝도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마치 심법의 효율이 3배는 뛴 거 같아.’

전체적으로 보면 남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였기에.

“후우.”

“공자님. 축하드립니다.”

운기를 끝내자, 어느샌가 옆에 와 있는 일염이.

아무래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운기를 해서 그런지 호법을 서준 듯했다.

“역시 제 조언 덕에 좋은 물건을 얻어 오셨나 보군요.”

보자마자 생색은.

“그래, 이번에는 네 조언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걸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궁금해?”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아이, 내가 이거 쉽게 보여주는 거 아닌데, 너니까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안쪽에 꽁꽁 싸매고 있던 야명주를 조심히 꺼내서 보여줬다.

“어때? 부럽지?”

야명주는 돈으로 쳐도 만만치 않은 가격의 물건.

분명 돈 귀신이 붙은 일염이라면 부러움에 오늘 밤, 잠 못 이룰 게 분명했다.

“……공자님.”

저 봐라.

배 아파서 울분을 참는 듯한 모습을.

“딱 봐도 부르는 게 값일 거 같지 않아?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하하하.”

평소처럼 일염이의 속을 살살 긁고 있자, 숨을 크게 들이마신 일염이가 갑작스럽게 사자후를 터뜨렸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서고까지 들어가서 야명주를 떼 오는 사람이 어! 딨! 습! 니! 까!”

“아니, 그게…….”

근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일염이의 모습.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짜 무인의 흉흉한 기세가 이런 것인지, 나도 모르게 일단 사과부터 했다.

“미, 미안.”

그 이후로 일염이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세 시진이 넘게 설교를 듣고, 야명주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 *

만독연(萬毒淵).

만 가지 독이 모이는 곳.

그리고 만독연(萬毒硏).

만 가지 독을 연구하는 곳.

비슷한 2개의 이름을 쓰는 만독연은 당가의 모든 독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기에 소속원들의 자존심 또한 한없이 높았다.

-쾅!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수면 독은 연구를 안 해서 그렇지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거 아시잖습니까!”

“옳소! 옳소!”

회의실이 떠나가라 반대를 부르짖는 1급 연구원들.

하나의 안건에 대해서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바로 ‘며칠 뒤 만독연에 들어올 삼 공자가 3급 연구원이 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안건에 말이다.

“혹시 이견이 있는 분 있으십니까?”

의장의 말에도 조용한 회의실.

애초에 이견이 없는 인원들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물어볼 필요도 없긴 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 1급 연구원 일동은 ‘삼 공자 당지천의 3급 연구원 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결론짓겠습니다.”

-땅, 땅, 땅.

의장이 선언하자, 불안하다는 듯 손을 드는 한 연구원.

“저, 그런데 만약,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면 어떡합니까?”

의견에는 반대했지만, 후폭풍을 두려워했다.

“정신 차리게. 우리는 만독연의 1급 연구원이야. 당가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그럴 일은 없지만, 우리가 당가를 등진다면 가장 손해를 보는 건 나도 아니고, 자네도 아니고 바로 가주님일세.”

“거기다. 며칠 전의 일로 인해 가주님이 삼 공자한테 큰 실망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그렇다면…….”

“예, 별문제 없을 겁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절대 찬성해선 안 되네.”

의장이 비장한 눈으로 좌중을 쳐다봤다.

“삼 공자가 절대 치고 올라오게 해선 안 돼.”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실력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1급 연구원 자리를 유지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게 가능했던 일은 오직 든든한 후원자 덕분.

그런데 그분은 결코 삼 공자가 만독연에서 입지를 넓히길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나서서 삼 공자를 직접 압박하려 했건만, 후원자님이 내리신 임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 일은 웬만하면 내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정이 생겨 그럴 수 없게 되었네. 그러니 군명. 자네가 잘 해결해 주길 바라네.”

“걱정하지 말게나.”

호기롭게 대답하는 당군명을 보고 있자니, 의장은 착잡해졌다.

‘부디 얕보지 말아야 할 텐데…….’

당군명이 자기 대리를 맡길 만큼 능력이 괜찮긴 했으나,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상대가 자신보다 아래라는 확신이 들면 한없이 깔보며 무시한다는 점이다.

소문으로 삼 공자의 활약이나 재능을 우연으로, 과소평가하게 수작을 부렸는데, 실제로 본 삼 공자의 재능은 진짜였다.

그런데 괜히 무시하다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준다면…….

‘단순한 기우겠지.’

의장은 차오르는 불안을 애써 외면한 채 당군명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자네만 믿겠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