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0화
“푸하하하하!!! 뭐, 뭐? 도, 독과…… 암기? 푸흡…….”
비무 전, 상대가 쓰는 무공을 얕잡아보고 비웃는 것은 엄연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 결례를 범하는 당지혁을 누구 하나 나서서 만류할 법도 했다만,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당지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삼 공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똑같았기에.
“아무리 강의 시간에 주무셨다고 한들, 비무에 대해 전혀 모를 줄이야…….”
“아니, 애초에 비무를 떠나서 당가의 사람에게 독이 안 통한다는 건 상식이잖아.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
한술 더 떠서 약관이 채 지나지 않은, 혈기 왕성한 무인들은 그의 아둔함을 헐뜯기 바빴다.
마치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극명한 분노를 보여주는 이들.
“거기까지.”
그런 그들을 만류하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만독연주였다.
“스승님?”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삼 공자를 헐뜯던 당지무는 스승인 만독연주가 나타나자 아연실색했지만, 만독연주는 제자를 그저 한심하다는 듯 한 번 쳐다보고는 말았다.
“삼 공자님은 기권이 불가한 비무이니 일부러 몰수패를 당해 싸움을 피하려 하시는 거다.”
“스승님 말씀은 삼 공자님이 일부러 극독을 들고 오셨다는 겁니까?”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반문하는 당지무.
충분히 알 법도 한데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당지무의 얼굴에 만독연주는 한숨을 쉬었다.
“맞다. 승산이 없는 싸움. 거기다, 다른 인원도 아니고, 이 공자님이시니 아예 싸우지 않는 것이지.”
다소 수치스럽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싸움을 피하는 일.
말로는 참 쉽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 무림초출인 무인들에게 중원은 넓으니 은원에 조심하라고 가르치겠는가.
실력에 대한 자만심.
혹은 의와 협을 위해.
혹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싸움이 고파서.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떤 일에 휘말렸을 때 각양각색의 이유로 싸움을 피하지 않아서 꽃다운 나이에 장렬하게 산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 공자는 자신과 이 공자의 차이를 알고, 또, 이 공자가 비무를 기회 삼아 자신을 불구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스스로 물러섰다.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사실 이긴다고 해도 문제지.’
12살의 나이로 무재가 뛰어난 이 공자를 꺾고, 조기 졸업에 성공한다.
이는 소강상태에 이른 소가주 경쟁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할 만한 사건으로 삼 공자의 변모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거다.
허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여태껏 자잘한 견제는커녕, 그저 배려만 받던 삼 공자는 본격적으로 견제받게 될 거다.
당연하게도 세력이라곤 고작 호위 한 명인 삼 공자는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할 거고, 대응하더라도 수습하기 힘들 거다.
거기다. 삼 공자가 독학관을 졸업하고 나면 만독연에 들어올 것이 뻔한 상황.
그런데 만독연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쫓아내기에 그만큼 바빠질 것이고, 한창 세력을 불리기 바빠야 할 때를 놓쳐 자멸할 거다.
하물며 만독연에도 다른 공자의 세력이 없는 게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고단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분명 삼 공자도 그걸 알기에 극독을 가져왔을 테지.
‘정말 사람이 뒤바뀐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변하셨군.’
한때 폐품이라고 불렸던 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졸업 시험은 왜 치르시는 겁니까? 몰수패를 당하실 거면 아예 시험장에 안 나오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간 삼 공자님을 따라다니는 소문들을 이번 용독술 시험 한 번으로 모두 털어낼 수 있었다. 또 용독술에 재능이 있음을 알렸지. 그것만으로도 삼 공자님은 이번 졸업 시험에서 얻으실 건 모두 얻으셨다.”
남들에게 과시할 만큼 재능이 없진 않지만, 딱 거기까지.
아무리 독을 중히 여긴다는 당가지만, 가주가 되기 위해선 본신의 무력 또한 강할 필요가 있는 법.
소가주가 되는 조건 또한 그건 마찬가지였기에 용독술은 뛰어나나, 무재가 없음을 보여주어 다른 공자들의 경계를 사지 않았다.
그러니 일부러 비무를 보러 온 이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삼 공자가 최고의 선택을 했음에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정말 삼 공자님이 아무것도 모르셔서 독을 가져오셨을 수도 있잖습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독을 가져왔다.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용독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임에도 기초 상식이 결여된 그런 이들이 종종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눈앞의 제자 놈이라든가.
허나, 제자 같은 놈이 세상에 두 명이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니다. 분명 몰수패를 당하려 극독을 가져오신 걸게야.”
만약, 그렇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으니 말이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교관이 당지천에게 말했다.
“당지천. 비무에서 극독은 사용할 수 없다.”
“예, 알고 있습니다.”
삼 공자가 품속에서 독병을 하나 꺼내 건넸다.
“확인해 보시지요.”
여기서 교관이 극독임을 확인하고 몰수패를 선언한다면 끝.
삼 공자에게는 최상의 결과다.
그런데…….
“이상 없군.”
교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독병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스승님. 아직도 잘 모르겠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저건 도대체 뭡니까?”
뭐긴 뭐겠냐.
“나도 모른다. 이놈아.”
너 같은 얼간이가 한 명이 더 있는 거지.
* * *
극독이 아닌 걸 확인한 교관이 독병을 돌려주자, 당지혁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푸흡흡…… 지천아, 네가 나를 웃겨 죽이려 한 거였다면 네 노림수가 먹혀들었구나. 크흐흡…….”
배를 부여잡고 거의 쓰러질 듯이 웃는 게 어지간히도 웃긴가 보다.
하긴,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저게 일반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상식에서 벗어난 기행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잡담은 거기까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당지혁이 웃는 게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들어 올리는 교관.
“준비.”
당지혁이 바보 취급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졸피뎀에 중독시키기만 한다면 단 1분 만에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시작.”
시작과 동시에 전력으로 거리를 벌리는 나.
그리고 그에 반해 산책이라도 하는 듯 천천히 걸어오는 당지혁.
사냥감을 구석으로 모는 사냥꾼의 모습이랄까.
어차피 기권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뭐, 방심해 준다면 나야 좋다.
솔직히 재수 없기는 해도 무재 하나만큼은 특출한 당지혁이다.
당지혁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왔으면 이기긴 해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 거다.
거기다, 1분만 버티면 된다지만, 그 어떤 누가 암기를 순순히 맞아준단 말인가.
암기를 맞추는 과정이 꽤 험난할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 짧은 시간에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주저 없이 졸피뎀을 바른 비수를 꺼내 들었다.
“후우.”
이것만.
이것만 맞추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겠지만, 중독만 시키면 이긴다.
그 일념 하나로 비수를 던지며 다음 수를 준비했는데…….
‘그걸 맞아준다고?’
당지혁은 가소롭다는 듯, 왼팔을 내밀어 맞으면서 오는 게 아닌가?
어차피 극독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인지,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지천아, 네가 준비해 온 독이 참으로 강하구나. 중독되어 왼팔에 힘이 빠지는 거 같다.”
가소롭다는 듯 팔에 박힌 비수를 빼는 당지혁.
극독이 아니기에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곧이곧대로 맞아준 듯했다.
독이 안 통하는 것에 놀란 내가 멍청하고 아둔한 놈으로 보이게끔 말이다.
“그런데 지천아, 기껏 학관까지 갔는데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냐?”
힘이 빠진다고 했던 왼팔을 보란 듯이 흔들며 훈계하는 당지혁.
나는 그런 당지혁을 무시한 채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 6, 7…….’
“하긴, 알았다면 이런 우매한 짓도 벌이지 않았겠지.”
‘12, 13, 14…….’
“아무래도 남들이 받들어주니 교관들이 우습게 보였나 본데, 그렇다면 이 하늘과도 같은 형님이 친히 가르침을 내려주마.”
‘25, 26, 27…….’
“왜 가문 내 비무에서 독을 사용하지 못하는 줄 아느냐? 그 이유는 바로…….”
말하다가 말고, 몸의 변화를 깨달았는지 안색을 굳히는 당지혁.
뒤늦게 혈도를 짚긴 했으나, 이미 30초가 지난 시점.
당지혁은 확실히 중독되었다.
만약 당지혁이 경지가 높은 고수라면 독기를 한곳에 몰아서 태워 버리거나, 혹은 독기 자체를 몸에서 배출해 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당지혁이 기의 수발이 자유로운 고수도 아니고, 내가 그걸 두 눈 뜨고 보고만 있겠는가.
어림도 없지.
당지혁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는지 보법을 밟으며 급히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만, 순순히 당해줄 내가 아니다.
당지혁보다 속도는 느려도 이미 거리가 벌려진 상황이기에 충분히 뒤로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늘어만 가는 숫자.
‘45, 46, 47…….’
그를 증명하듯 당지혁이 다가오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형님. 당가의 사람이 발이 그렇게 느려서야 되겠습니까.”
이제는 안 잡히겠다는 확신이 서서 도발하자, 당지혁이 이를 악물고 노려봤지만 어쩌겠는가.
수면 마취제 부류는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 물건이다.
제아무리 정신을 단련한 무인이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58, 59, 60.’
그렇게 마음속으로 세던 숫자가 끝을 고하자, 서서히 눈을 감는 당지혁.
계산한 대로 약효가 돌고 잠들기까지 1분이면 충분했다.
“형님. 부디 좋은 꿈 꾸십시오.”
비릿한 미소로 당지혁이 꿈나라로 떠나는 걸 반겨줬으나 이미 당지혁의 의식은 저 멀리 떠났는지 반응이 없었다.
이로써, 완성된 나의 승리.
시비란 시비는 다 걸어놓고, 방심이란 방심은 다 하는 당지혁에게 선사해 주는 값진 교육으로 그야말로 느슨해진 소가주 경쟁에 긴장감을 선사해 주는 깔끔한 승리였다.
이 정도면 오늘 저녁엔 내 휘하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으로 줄을 설 게 분명했다.
‘아, 근데 이럴 거면 조금 더 다가오게 해서 극적으로 장을 꽂고 끝낼 걸 그랬나?’
다만, 깔끔하긴 깔끔했지만, 아예 때를 맞춰서 장을 꽂으며 쓰러뜨리는 건 어땠을까.
좀 더 멋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뭐, 그래도 이겼으니 다행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안 쓰러지지?’
한참을 기다려도 쓰러지지 않는 당지혁.
갑자기 기세가 뒤바뀌더니 번뜩 눈을 떴다.
“그래, 내가 방심했다. 설마하니 이런 수를 준비했을 줄이야.”
“뭐, 뭐야?”
계산과 달리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며 노려보는 당지혁.
도대체 어디서 계산이 잘못됐길래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잘도 날 농락했겠다…….”
젠장.
계산이고 자시고 간에 아무래도 성난 사자의 코털을 뽑아버린 듯했다.
“죽여 버린다! 당지천!”
그것도 한 움큼 듬뿍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