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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9화 (9/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9화

“세상에 고작 한 번 보고 저걸 맞힌다고?”

“말도 안 돼…….”

“보게나! 역시 삼 공자님은 다르지 않은가!”

“허허허…….”

당연한 결과임에도 삽시간에 도떼기시장으로 변해 버리는 시험장.

뭐, 저들에겐 당연한 결과가 아닐지 모르지만.

독을 판별하는 것이야, 이전에 공부를 끝냈기에 단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독성을 가늠하는 것.

이곳에선 고수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의 서열을 정리했다.

독공의 고수들은 독성을 정확히 가늠하는 게 됐기에 그 서열에 오류는 없었으나, 이제 막 독공을 익히는 생도들이 보기엔 굉장히 난잡했다.

왜냐면 대부분 책에서 ‘화골산은 협죽도보다 강하며, 학정홍보다 약하고, 군자산과는 어울리지 않으니……’같이 꼬리를 무는 형태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서열은 있되, 애매한 독끼리는 헷갈리는 게 당연했다.

그렇기에 대부분 생도가 헷갈려 했는데, 그에 반해 나는 전혀 헷갈리지 않았다.

전생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기에.

반수 치사량(LD50).

어떤 물질의 독성을 실험할 때 실험군의 50%가 사망하는 투여량.

쉽게 ‘둘이 먹다가 하나 죽는 양’이 되시겠다.

어떤 물질이든 이 반수 치사량만 안다면 줄을 세우는 데 전혀 헷갈릴 일이 없었고, 이미 나는 내가 아는 독들의 반수 치사량을 다 알았다.

즉, 내가 합격을 받는 건 아주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지금 난 뛸 듯이 기뻤다.

‘설마하니 백각기린을 보게 될 줄이야.’

백각기린(白角麒麟).

북아메리카에 자생하는 식용 선인장.

식용 선인장인 주제에 극독을 품고 있다.

다만, 중원과는 대륙이 달랐기에 아쉽게도 볼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시험 문제에서 보게 됐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저것만 있으면 레시니페라톡신을 얻을 수 있어.’

레시니페라톡신.

백각기린에 든 극독 성분.

내가 이걸 원하는 이유는 바로…….

‘매운맛의 결정체.’

레시니페라톡신은 극미량만 먹어도 대부분 매운 걸 느끼기 전에 쇼크사할 만큼 매운 물질이었기에.

중원에서 제일 맵게 먹는다는 사천인 만큼 요리들이 대체로 매콤하긴 하다.

허나, 전생에 불닭 라면에 캡사이신 소스를 부어 먹던 순혈 한국인인 내 입맛에는 조금 순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레시니페라톡신은 매운맛을 따지는 스코빌 척도로 보면 무려 160억.

전생에 흔히 즐겨 먹던 불닭 라면이 4000스코빌 정도 되었으니, 비교하자면 대략 400만 배 정도 매운 물질이었다.

자고로 독공은 식사 중에도 익힐 수 있는 법.

맵게 먹는 것만으로도 독공을 수련할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100만 배 정도 희석해서 끼니마다 식사에 넣어 먹으면 오랜만에 고향의 맛도 느끼고, 독공도 익힐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상상만 해도 벅차오르는 행복감에 혹여나 추태를 보일까 봐 조심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로써 남은 건 당지혁과의 비무뿐.

그것만 이기면 조기 졸업 확정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당지혁을 혼내줄 생각에.

졸업하고 편히 뒹굴거릴 생각에.

또, 일염이의 얼빠진 표정을 볼 생각에 다시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빨리 비무했으면 좋겠다!”

* * *

시험이 시작된 지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합격하고 가버린 삼 공자.

삼 공자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시험을 끝내자, 시험장 전체가 소란스러워졌음에도 교관들은 그런 상황을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몇몇은 서로 잡담하기도 해서 생도들은 시험을 보는 데 곤욕을 치렀다.

“교관님. 시험 중엔 조용히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저히 집중을 못 하겠는지 어떤 생도 하나가 조용히 해주길 부탁하자.

“우리는 무인을 만들지, 단순히 학자를 만드는 게 아니다.”

교관은 태연하게 답하고는 다시금 잡담을 나누었다.

그렇게 도떼기시장처럼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 한 시진이 지나자 종료된 용독술 시험.

짧은 시간에 생도들의 희비가 교차한 끝에 오직 합격한 인원들만이 연무장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생도들. 용독술 시험을 통과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까와는 바뀐,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교관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 시험은 비무다. 기권은 불가능하며 비무 종료는 큰 부상을 입거나, 혹은 본 교관의 재량으로 중지시킬 것이다.”

기권이 불가능하단 소리에 생도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왜 기권이 불가능한 겁니까? 그 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잖습니까.”

몸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소리에 실소를 흘리는 교관.

“생도. 본디 싸움이란 내 준비가 끝나고, 상대는 준비가 덜 됐을 때 하는 것이 으뜸이다. 허나,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진 않는 법. 중원에 나섰을 땐 그 반대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과거를 회상하듯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교관이 말을 이었다.

“특히나, 다른 무인들과 달리 준비가 안 됐다는 건 우리 당가의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일이다.”

독을 다루는 이들이 독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제일 강력한 수단 하나가 봉인된 채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또한, 생사결에서의 기권은 그야말로 목을 내놓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비무 중의 기권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비무 중에도 기권할 수 없다는 교관의 말에 안색을 굳히는 생도들.

재수생들이야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번이 첫 시험인 생도들은 까딱 잘못하다간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주고 비무를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절로 움츠러들었다.

“사전에 공표했듯이, 올해부터 비무는 흑룡단 단원들과 실시한다.”

그런 생도들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교관이 손짓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오는 인원들.

내원의 백호단 다음으로 꼽히는.

외원에서는 가장 강한, 흑룡단의 단원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안광을 뿌리며 시험장에 들어서는 당지혁.

오늘 당지천에게 복수하려고 벼르고 벼른 눈빛이었다.

생도들은 자신보다 어린 당지혁이 오금이 저릴 정도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막상 그 기세를 받는 당지천은…….

“으하함.”

쥐뿔도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저 기세를 태연히 받아넘기다니 삼 공자님도 꽤 강단이 있으시군. 허나, 비무만큼은 힘들 텐데 어찌 저리 도발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

“이미 엎질러진 물. 지금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적어도 오기 정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 걸 수도 있다네.”

실상은 어차피 비무가 시작되면 금방 드러눕힐 예정이라 살갑게 당지혁의 화를 돋우는 중이었지만, 대충 비슷한 이야기였다.

“비무는 호명하는 생도가 나오면, 흑룡단에서 상대할 단원이 나올 거다. 당연히 지더라도 불합격은 아니며 순전히 실력으로만 평가할 것이니 생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교관이 말을 마치고 첫 번째 생도를 호명하려는 찰나, 손을 드는 한 생도가 있었으니…….

“만약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다름 아닌 삼 공자였다.

* * *

“만약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푸하하하!!

삼 공자의 말에 잠시 벙쪘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리는 흑룡 단원들.

비록, 정예는 아니더라도 외원 최고의 무력 부대다.

천하제일의 기재도 아닌 한낱 생도한테 질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 상대는 당지혁이라는 게 기정사실.

내가 절대 당지혁과의 비무에서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에 저리 웃는 거겠지.

“만약 비무에서 이기는 생도가 있다면 그 즉시 합격 처리해 주겠다.”

박장대소를 하는 흑룡 단원들과 달리 무덤덤한 얼굴로 답변한 교관은 곧바로 첫 생도를 호명했다.

“당호연 앞으로.”

“예!”

한껏 긴장한 채 연무장 중앙으로 향하는 첫 생도.

계속 웃고 있던 흑룡단 측에서도 눈치껏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당호연입니다. 제가 사용할 무공은 비서장법과 추뢰신보입니다.”

“당호성이다. 사용할 무공은 비서장과 현무권법, 추뢰신보다.”

서로 포권하며 사용할 무공을 말하자 손을 들어 올리는 교관.

“준비…… 시작.”

시작과 동시에 화살처럼 쏘아지는 흑룡단원.

생도는 약간 당황하면서도 방어했고, 그래도 오른쪽 옆구리에 장을 얻어맞았다.

그 이후로는 흑룡단원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생도가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그림이 나왔다.

‘흠, 저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어.’

지금 흑룡단원이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을 고려해도 일염이와 비교하면 한없이 느린 속도.

당지혁과 저 흑룡단원의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3분 정도는 능히 버틸 거다.

‘뭐, 사실 3분도 필요 없긴 하지…….’

품속의 작은 병을 조심히 매만지며 혹시 깨진 곳이 없는지 점검했다.

졸피뎀(Zolpidem).

과거 프랑스의 어느 회사에서 개발했던 이미다조피리딘계 수면제로 15분 안에 빠르게 약효가 도는 수면제다.

수면제인 만큼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는데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건 부작용 없이 약효만 강화한 물건이다.

무려 나라는 사람이.

무려 2달을 넘게 개량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이름만 같고, 완전히 다른 물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니 당지혁은 맞기만 하면 픽 하고 쓰러질 게 확실했다.

3분을 능히 버틸 수 있단 판단이 서서일까.

아까보다 더 당지혁과의 비무가 기대됐다.

“크헉.”

“거기까지.”

흑룡단원의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했던 생도가 끝내 쓰러지자, 교관이 종료를 선언했다.

“다음. 당호철.”

이후 치러지는 비무는 거의 다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대부분 일방적으로 생도를 가지고 놀며, 생도의 대처에 따라 방침을 바꿨다.

흑룡단원들이 일부러 약 올리듯 생도들을 가지고 놀았는데, 참지 못하고 분개하는 생도도 있었고, 끝까지 참아내는 생도도 있었다.

이번에는 용독술 시험과 같이 바로 채점해 주진 않았지만, 어느 쪽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을지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비무가 치러졌을까.

“다음. 당지천.”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제 동생이 누구에게 맞는 모습을 보긴 싫으니 제가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내 이름이 호명되자, 곧장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뛰쳐나오는 당지혁.

“당지혁. 사용할 무공은 비서장과 현무권, 그리고 추뢰신보.”

누가 말릴세라 먼저 연무장 중앙에 섰다.

“형님. 누가 보면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인 줄 알겠습니다. 체통을 지키시지요.”

-푸하하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당지혁이 안달 나 보였는지 박장대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잠시 열이 뻗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당지혁.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동생아,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다가 맞게 되면 많이 아프지 않을까?”

“형님은 눈이 없으신가 봅니다. 그걸 그냥 맞고 있겠다는 걸 보니.”

“글쎄, 내가 보기엔 넌 봐도 못 피할 거 같은데?”

잘 받아치는 입과 달리, 이미 꼬리를 내린 입꼬리.

고작 이런 도발 하나에 흔들리는 걸 보면 아직 애라는 게 절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이 비무를 하기에 적기임을 느꼈다.

“왜 그래? 그 잘난…….”

“당지천입니다.”

말을 끊고 냅다 포권을 취하자, 점차 일그러지는 당지혁의 얼굴.

나는 그에 화답해 주듯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사용할 무공은 비서장과 추뢰신보. 그리고…….”

아마 지금부터 뒤이을 말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상상 못 했을 거다.

“……독과 암기입니다.”

나를 제외한 어떤 그 누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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