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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6화 (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6화

절정 고수.

무림에 나가서 무시받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경지.

전생에서 무협지를 볼 때면, 독공을 익히면 독이 곧 영약이고, 내 주변에 널린 게 독이었기에 순식간에 절정 고수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독공을 익히기 시작하자,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잘 생각해 보면 귀한 영약들을 먹을 때, 수준이 낮을수록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그 기운들이 빠져나가거나 몸 안에 갇히지 않았는가.

그런 점은 독공 또한 같았다.

반 갑자도 안 되는 내공으로도 극독을 먹어서 내공의 상승을 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을 대부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

심지어, 영약은 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최악이었지만, 극독은 기운이 몸 안에 잔류하는 게 최악이었다.

손쓸 새도 없이 불구가 되어버리거나 한 줌의 독수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기에 독공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해서 내공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일은 없었다.

‘뭐, 그걸 처음 알았을 땐 참 실망했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강한 독이 안 되면 약한 독을 수십 개 때려 박으면 되는 것 아닌가.

고작 며칠이지만, 전생의 지식으로 내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니 좁쌀만 한 단전이 꽤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표인 절정 고수에는 한없이 멀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그냥 부지런히 수련하다 보니 어느새 독학관에 입관하는 당일이 되었다.

“공자님. 진짜로 이번 기수에 졸업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까?”

입관 첫날이라고 전각 앞까지 배웅하러 나온 천일염이 반신반의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럼, 된다니까. 사람 말을 못 믿네.”

“…….”

첫날부터 영 믿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계속해서 물어보는 게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기할래?”

“내기 말입니까?”

내기라는 소리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천일염.

“하하하, 사천의 노름판을 휘어잡는 제게 내기를 거시는 겁니까?”

“왜? 쫄려?”

“공자님. 한낱 노름일지언정 그 안에도 철학이 있고, 그 안에 경지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뭐?”

“저는 하수와는 노름하지 않으며, 아이와도 노름하지 않습니다. 공자님의 경우는 두 개 다 해당되는 군요.”

지금 내가 하수라는 소린가?

이거 은근슬쩍 도발을 해오네?

그럼 나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뭐, 쫄리면 어쩔 수 없고. 아이고, 중원을 주름잡던 천일염이 고작 12살짜리가 무서워 내기를 못 한다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 그치?”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도발.

“공자님. 시도는 좋았으나, 노름판에서 수십 년을 갈고닦은 낭인들의 솜씨에 비하면 공자님의 도발은 참으로 귀여운 수준입니다.”

최소한 노름꾼으로는 천하제일을 꿈꿀 수 있는 천일염이었으니 이런 어설픈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공자님의 성의를 봐서 이번만은 내기에 어울려 드리지요. 그런데…….”

갑자기 전낭을 꺼내 드는 천일염.

“공자님이 거실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눈에 봐도 두둑해 보이는 전낭을 좌우로 흔들며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짜식.

실상은 금이라곤 코빼기도 안 비치고 은자만 가득할 텐데 생색내기는.

“없긴 왜 없어. 이게 있잖아.”

품속에 손을 넣어 전표를 꺼내자, 난색을 보이는 천일염.

“그건 가주님께서 축하금 명목으로 주신 금 100냥이잖습니까.”

그러면서 입꼬리가 살살 말려 들어가는 걸 보면 돈 좋아하는 성격은 어디 안 가는 듯했다.

“뭐, 좋습니다. 그럼 공자님께선 제가 무엇을 거시길 원하시는 겁니까?”

“뭐긴 뭐겠어. 똑같이 금 100냥이지.”

“전 그런 큰돈은 없습니다.”

금 100냥.

상재가 없는 대부분 사람이 평생 모으기 힘들 만큼 큰돈이었지만, 적어도 천일염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이기면 100냥 빌려줄 테니까 200냥으로 갚아.”

노름에 한정한다면 일염이의 솜씨는 가히 천하십대고수에 필적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종잣돈을 넉넉히 챙겨 가, 한 일주일 정도 노름판에서 놀다 보면 충분히 벌어 올 것이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죠.”

봐라, 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그럼 전표는 미리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용돈이라도 벌려면 지금부터 다녀오는 게 나을 터이니.”

내기를 받아들이자, 대놓고 이긴 것처럼 구는 천일염.

내가 조기 졸업을 못 할 것이라고 아예 단정 지은 듯했다.

속은 줄도 모르고 좋아하다니 불쌍한 녀석.

측은한 마음이 들어 곧바로 전표를 건네주고는 학관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한마디 남기는 건 잊지 않고 말이다.

“벌써 질 줄 알고 용돈이라도 챙기려 하다니, 판단이 참 빠르구나. 일염아. 가서 열심히 벌어보려무나.”

* * *

독학관.

당가의 무인이라면 무조건 한 번쯤은 거쳐야 하는 곳.

그곳에 처음 발을 들인 당지천이 느낀 감상은…….

“와, 벌써 돌아가고 싶네.”

귀찮음이었다.

“아니, 뭔 전각에서 한참을 걸어와야 하냐.”

아무리 위상이 나날이 떨어진다고 해도 사천을 주름잡는 당가의 장원.

당연하게도 그 넓이가 상상을 초월했기에 오래 걸어야 할 것을 당지천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거기다, 입구 너머에서 몰려드는 시선들.

“저게 그 소문의 삼 공자?”

“당지혁 공자님처럼 강해 보이진 않는데?”

“…….”

대놓고 쳐다보거나, 보는 듯 마는 듯 힐끗힐끗 곁눈질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거의 모든 생도가 당지천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문과 달리, 딱 보아하니 조기 졸업은커녕 유급만 거듭하겠는데?”

“맞아, 겨우 음독한 거 가지고 띄워주는 놈들이 많아서 그렇지. 애초에 음독 못 한 녀석은 독학관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그 사이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다소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들도 다수 껴있었다.

“도대체 왜 시험은 석 달 뒤에나 볼 수 있는 거지? 그냥 개별로 보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당지천은 쥐뿔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 빨리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혼자 작게 중얼거린 당지천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자, 그 작은 혼잣말을 들은 생도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자, 잔다고?”

당가의 사람이라면 열다섯이 되는 해에 누구나 입관할 수 있는 독학관.

하지만, 입관과 달리 졸업하기엔 어려운 곳.

조기교육 받고 온 열다섯의 생도들도 그러한데, 이제 고작 열두 살에 불과한 당지천이 잔다고?

그간 독공을 익히지 않아서 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을 거라 예상되는 상황에서?

“잘못 들었겠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럴까.”

아무리 폐품 소리를 들으며 지냈다 하여도 당지천 또한 당가의 직계다.

독학관을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더 빨리 졸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독학관을 입관 당해 졸업하셨다던 대공자님도 첫날부터 눈을 부릅뜨고 공부하셨다 했는데 설마 그러겠어.”

생각이 있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겠지.

다들 그런 생각으로 당지천의 뒤를 졸졸 쫓아가자.

“아, 빨리 전각으로 돌아가고 싶다.”

곧바로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잠을 청하는 당지천을 볼 수 있었다.

“하…….”

설마설마했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자 황당함에 탄식을 흘리는 생도들.

“깨진 동경을 깨끗이 닦는다고 붙는 건 아니지. 달라졌다고 하더니, 폐품은 여전히 폐품이었네.”

몇몇 생도는 당지천의 행동이 독학관을, 더 나아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당장 다음 주에 중간 평가 있는 거 모르는 거 아니야?”

“그걸 알면 저러겠냐고. 보아하니, 중간 평가에서 과락하면 쫓겨나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이제 개과천선했다고 온갖 관심은 다 받더니, 다음 주면 다시 폐품 소리 듣겠네.”

더 볼 것 없다는 듯 하나둘 자리를 떠나는 생도들.

“야, 근데 삼 공자가 사실 대공자님을 압도하는 재능을 가졌을 수도 있지 않냐? 그러니까 저렇게 자신 있게 잠을 자는 거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랬으면 독을 무서워했겠냐?”

하지만 떠나는 생도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당지천은 다음 주에 중간 평가가 있고, 과락할 시 쫓겨나는 것도 전혀 몰랐지만…….

“하긴, 그렇겠지?”

맘 편히 잠을 청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 덕분이었음을.

* * *

독학관에 입관한 지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적어도 나에 대한 관심이 식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곧바로 잠을 청하려 했는데…….

“오늘은 중간 평가를 시행하겠다.”

“중간 평가?”

난데없이 시험을 보게 생겼다.

아놔.

갑작스러운 시험 소식에 주변을 돌려보자, 키득키득 웃고 있는 녀석들.

알고 있었으면 미리미리 좀 알려주지, 일언반구도 없다가 자기들끼리 실실 웃고 앉아 있었다.

‘이거이거, 살살 하려 했는데 안 되겠네?’

중간 평가가 얼마만큼의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생도들은 독학관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길 바랐다.

독학관에서의 평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이 가고 싶은, 지위가 높은 단체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성적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졸업 시험이 아니고서야 다른 시험들은 최대한 양보를 하는 선에서 봐주려고 했다.

대략 5초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지를 배부하마.”

무미건조한 눈으로 생도들에게 시험지를 배부하는 교관들.

시험지를 배부받자마자 문제를 한 번 슥 훑어본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네.’

남들이 아무리 어려워한다고 한들, 어차피 기초 과정.

제출된 문제의 난이도를 보니 하나같이 쉬운 것들뿐이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휘갈기듯 답안을 작성했고, 바로 잠을 청했다.

그러자, 또다시 들려오는 미약한 웃음소리.

아까는 화가 났지만, 이번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지를 받자마자 일필휘지로 써 내리고 고개를 떨구는데, 누가 봐도 정답을 찍고 자는 모습 아니겠는가?

물론, 문제에 객관식 따윈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들은 내가 찍고 자는 거로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내가 한붓그리기마냥 쭉 써 내려간 답안지에는 오직 정답만 적혀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 * *

중간 평가를 치르고 일주일 뒤.

“오늘이지? 결과가 나오는 날이.”

“제발 과락만 면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시험의 결과가 나오는 탓일까, 생도들이 한껏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했다만.

“그런데 삼 공자는 오늘도 자네? 과락할까 봐 무섭지도 않나 봐.”

“줄 하나 긋고 냈는데, 뭐가 무섭겠냐? 자기도 과락인 거 알걸?”

“좀 이따 쫓겨날 거 아니까, 미리 더 자두는 거겠지.”

몇몇 인원이 한심하다는 듯 삼 공자를 헐뜯고 있자, 생도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결과가 나왔음을 알렸다.

“결과 나왔대!”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우르르 뛰쳐나가는 생도들.

“우리도 가자!”

삼 공자를 헐뜯던 생도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생도들이 학관 중앙에 도착하자, 먼저 온 생도들이 모여서 결과가 게시된 벽보를 멍하니 쳐다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강시라도 된 듯 우두커니 선 채로 벽보만 보고 있는 게 다소 섬뜩할 정도였다.

“뭐야? 다들 무섭게 왜…….”

다들 이상하고 섬뜩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성적 확인이 더 중요했기에 재빨리 벽보를 쳐다봤지만.

“야, 너희들 왜 그…….”

모두가 사이한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성적표를 쳐다볼 때마다 한 명씩, 한 명씩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고 있던 삼 공자를 헐뜯던 생도들이 도착했을 때.

“뭐야? 벽보에 무슨 주술이라도 걸려 있어? 왜 단체로 멈춰 있…….”

그들은 온몸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면 지금 보고 있는 성적표 제일 꼭대기에는…….

[1등 당지천]

“마, 말도 안 돼…….”

상상도 할 수 없던.

공부라곤 일절 하지 않은 삼 공자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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