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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5화 (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5화

고요한 장내.

-꿀꺽, 꿀꺽.

누구 하나 쉬이 숨을 내뱉기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직 당지천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식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 누구도.

어느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

그 광경을 보게 된 모두가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어 버렸고, 오직 당지천만이 시간을 거스르며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탁!

마치 낮술이라도 걸친 듯 호쾌하게 내려놓는 잔의 소리를 기점으로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듯 하나둘 얼굴에 경악스러움이 떠올랐다.

“크으……. 겁나 쓰네.”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소매로 입가를 훔치는 당지천의 모습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엇갈린, 가히 충격적인 광경.

-텅.

“삼 공자님이 협죽도를 드셔?”

시종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린 채, 멍하니 당지천의 얼굴만을 바라봤고.

“어, 어떻게……?”

당지혁은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눈앞의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건지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당지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손님 몇을 제외한다면 손님들의 표정도 위의 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삼 공자가?!”

폐품 당지천.

당가의 삼 공자임에도 독을 먹지 못하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벌벌 떤다던 사람.

실제로 그 모습을 확인한 사람도 대다수였는데…….

“당과, 당과…….”

적어도 이젠 아니었다.

마치 술자리에서 안주를 찾는 듯한 모습으로 당과를 입에 밀어 넣는 당지천.

저 모습이 어딜 봐서 독 근처에만 가도 오들오들 떨던 폐품의 모습이고, 목숨이 위태로워질 극독을 먹은 사람의 모습이던가?

그것도 인생 처음으로?

“정말 하늘도 놀랄 만한 일이군요.”

백호단주가 나지막한 소감을 내뱉자, 당기룡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참 많은 단어가 있고, 많은 표현이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표현하는 데는 고작 한 단어면 충분했다.

경천(驚天).

‘아니, 어쩌면 모자랄지도 모르겠군.’

자신조차도 은수저를 가져왔단 소리에 자그마한 기대도 접어야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아마, 도박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당지천이 음독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허허허.’

뜻밖의 일에 당기룡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어찌 보면 겨우 음독.

남들은 당지천보다 한참 어린 7살에도 하는 일이 음독이다.

허나, 본디 삶에 대한 갈망이란 본능 그 자체.

어렸을 때 느끼는 막연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달리, 가슴에 뿌리 깊이 박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일류의 무인들조차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12살에 불과한 당지천이 그걸 해냈다.

심지어 아예 자포자기한 상태이거나, 그저 멍한 채 의식하지 않고 협죽도를 마신 게 아니었다.

처음 협죽도를 따라줄 때, 당지천의 눈동자에 비친 건 두려움.

자신의 잔을 채우는 것이 명백히 독임을 인지했고, 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고도 당지천은 협죽도를 들이켰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겠는가.

“잠깐!”

당기룡이 남들이 알아차리기 힘든 은은한 미소를 흘리며 당지천에게 무슨 상을 줄까 생각하고 있자, 초를 치는 당지혁의 목소리.

“뭔가, 뭔가 속임수가 있었을 겁니다……!”

당지혁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이의 제기했다.

대다수 손님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당지천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당지천은 화를 낼 법도 하건만, 그저 실실 미소를 흘렸다.

“무슨 속임수를 말이냐?”

“분명 해독제를 먼저 복용했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멀쩡할 리가…….”

“으윽.”

당지혁이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당지천.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당지천을 들것에 옮겨서 실어 날랐다.

“…….”

당지혁은 뭔가 꺼림직함을 느꼈지만,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그 광경을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해독제라…… 만독연주. 지천이에게 해독제를 내준 적이 있나?”

만독연(萬毒淵).

만 가지 독이 모이는 곳.

그리고 만독연(萬毒硏).

만 가지 독을 연구하는 곳.

비슷한 2개의 이름을 쓰는 만독연은 당가의 모든 독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즉, 당지천이 해독제를 구했다면 만독연에서 내줬을 거라는 이야기.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주인인 만독연주가 고개를 젓자, 당지혁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떨렸다.

“부, 분명 가문의 눈을 피해서…….”

거기까지 말한 당지혁은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당지천에게는 금독령이 내려진 상태.

가문 내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실력 있는 무인들이 항상 당지천의 전각에 들어가고 나가는 물건들을 상시 검사했다.

그런데 해독제를 구비하는 걸 모른다?

말이 안 됐다.

“해독제를 직접 만들었을 겁…….”

재료를 모아서 만들었다는 의견을 내다가 다시금 입을 다무는 당지혁.

삼 공자의 전각에 있는 인원이라곤 12살의 당지천과 독에 대해선 무지한 천일염 둘뿐이었다.

즉, 재료를 반입해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단 이야기.

“당지혁.”

아까의 은은한 미소는 어디 갔는지, 다시금 얼굴에 무표정이 떠오른 당기룡이 나지막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일이 뭔가 잘못됨을 느낀 당지혁.

뒤이어진 당기룡의 말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게 굴지 말라 했다.”

“……죄송합니다.”

“지독아. 뒷정리는 부탁하마. 그리고 당지혁.”

“예, 아버지.”

“두 달간 근신에 명한다.”

기분 잡쳤다는 듯 근신을 명령한 당기룡이 발걸음을 옮기자, 점점 일그러지는 당지혁의 얼굴.

아버지가 주는 모멸감에.

근신하게 된 자신의 팔자에.

많은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수치심에.

단전에서부터 당지천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으득, 당지천 개자식…….”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뻔히 불문율을 알면서 떡하니 은수저를 들고 서 있었던 일이나.

부인하지 않고 당당히 내 것이라 이야기했던 일.

그리고 해독제를 먹었다고 하니 아차 싶었다는 듯 쓰러졌던 모습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일부러 자신을 엿 먹이려고 한 행동이 아닌가?’

“죽여 버린다…….”

당기룡이 떠나자, 곧바로 이를 갈며 나가 버리는 당지혁.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지독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도대체 언제 철이 들려고…….”

그러나 한탄도 잠시.

개별적인 인사는 나눴으나, 직계들이 모두 떠난 상황.

당지독은 아버지의 명대로 자신이라도 손님들의 상대를 하려 했다.

그런데…….

“오오옷! 삼 공자님! 믿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뛰어나와 절을 하는 사람.

그것도 가주가 사라진 방향이 아닌, 당지천이 사라진 방향으로 절을 하며 애타게 당지천에 대한 감사를 올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한 당지독이 손님을 일으켜 세우려 하다, 문득, 소문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오늘 당지천이 음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내기가 있었고, 거기서 유일하게 ‘삼 공자가 음독한다’에 돈을 걸었던 멍청이가 있었음을.

“삼 공자님 만세!!!”

* * *

“우씨, 뭐야?”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침소에 누워 있던 내가 급히 몸을 일으키자, 천일염이 황급히 다가왔다.

“아니, 방금 누군가가 ‘삼 공자님 만세’라고 한 것 같지 않아?”

“예?”

“분명 들린 것 같은데?”

그러자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천일염.

“개미 한 마리 짖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만?”

“개미는 원래 안 짖어.”

“아무튼! 아무 소리 안 났습니다.”

거, 사람이 잘못 들을 수도 있지 흘겨보기는…….

내 몸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는 일염이를 무시한 채 뒹굴뒹굴하던 나는 아까의 상황이 떠올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위험할 뻔했지.”

처음으로 음독했다는 고양감에 심취해 있던 와중, 당지혁의 지적 덕분에 때맞춰 쓰러질 수 있었다.

당지혁이 알고 그랬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 그렇게 속속들이 아는지 당시에는 조금 섬뜩할 정도였다.

“뭐, 진맥하던 장로가 잘 넘어가 준 덕도 있겠지만.”

솔직히 장로 정도 되는 사람이 진맥했는데 해독제를 먹었는지 모르겠는가.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상함을 알 수 있었겠지만, 그쪽도 내가 해독제를 만들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아무리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용독술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니 별말 않고서 물러간 것이겠지.

“그나저나 공자님. 아침에 들고 계셨던 그 병. 진짜로 해독제였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구해 오신 겁니까?”

물음보다는 감탄에 더 가까운 질문.

금독령이 내려진 수많은 감시 속에서 대체 어떻게 해독제를 확보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내가 만들었어.”

“공자님이 말입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는 천일염.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내가 만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그, 그렇군요…….”

머리론 이해하나 납득하긴 어려운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천일염.

맘 같아선 아예 창고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창고의 존재는 오롯이 나만이 알아야 했기에 보여줄 수 없었다.

“공자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아까 장로님이 떠나시기 전에 그러시더군요. 이제 음독했으니 독학관에 입관하시게 될 거라고.”

“독학관에?”

독학관.

당가의 교육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보통 15살 정도의 인원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 같은 곳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기초 교양 몇 개를 제외하곤 배우는 게 용독술과 무공이라는 점일까?

“공자님이 독에 대해 무지하셨기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력으로 해독제를 만들 정도이시니 분명 쉽게 졸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직계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12살 생일이 되면 시기에 상관없이 특별 입관을 해야만 했다.

“하, 독학관이라…….”

알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내가 누구던가.

불세출의 위인.

한때, 독성학의 신이라고 불렸던 사나이다.

그런데 끽 해봐야 중·고등학생 수준의 아이들하고 경쟁해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어지럽네.”

너무나도 귀찮았다.

“힘드시겠지만 만약, 조기 졸업이라도 해내신다면 앞으로 좀 더 자유롭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힘들긴 하겠다.”

내가 알기로 이번 기수 졸업 시험이 석 달 뒤다.

도대체 그 세월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거기다, 석 달을 버텨도 문제다.

독학관을 졸업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시험은 2가지.

용독술을 평가하는 필기시험과 무공 실력을 가늠하는 비무가 있었다.

뭐, 용독술이야 가뿐히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비무.

우습게도 독과 암기를 주로 다루는 당가임에도 비무에선 독과 암기를 못 쓴다.

아니, 정확히는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게 맞다.

살생이 금지된 비무이기에 극독은 지참만 해도 몰수패.

수준이 낮은 독을 쓰자니 전부 내성이 있기에 쓰나 마나 했고, 독을 사용할 수 없으니 암기의 위력이 반감되었고 자연히 못 쓰게 되었다.

거기다. 비무의 목적이 무를 겨뤄 순위를 나누는 것이 아닌, 생도의 실력을 평가하는 형태였기에 자연히 독과 암기는 안 쓰게 되었다.

그래서 순전히 무공으로만 비무를 치러야 했기에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전생이 화학자였지, 절대 고수는 아니었으니까.

뭐, 독을 쓸 방법이 아예 없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살상력이 없으면서도 당가의 사람을 중독시킬 수 있는, 아주 생소하면서도 효과가 강한 그런 독을 준비해 온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잠깐.”

생각해 보니까 있잖아?

심지어, 멀리도 아닌 바로 옆 창고에 말이다.

“흐흐흐, 일염아.”

“예, 공자님.”

“석 달이면 오래 다니는 거겠지?”

내 말을 들은 일염이가 한참을 벙찐 표정으로 있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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