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4화
사천당가의 가주전.
“백호단주, 그게 정녕 사실이더냐?”
“예, 인원들 여럿을 보내 확인한 결과 삼 공자님께서 은수저를 들고 계셨습니다.”
“하아…….”
보고받던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독왕(毒王) 당기룡.
당가에서 유일하게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고, 뛰어난 상재로 나날이 줄어가던 당가의 입지를 회복시킨 가히 하늘이 내려준 당가의 보배.
매일같이 수많은 일을 홀로 처리함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철인이었지만, 이어지는 백호단주의 보고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 공자님께서 그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막기는 이미 늦었겠지?”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라면 몰라도 이미 대다수 손님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끄응.”
알고 있었음에도 백호단주에게 직접 듣자 더욱이 뼈아픈 이야기.
“어찌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느냐…….”
당기룡은 당지천에게 큰 연민을 느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중 유독 아픈 손가락도 있는 법.
당기룡에게 있어서 당지천은 그런 존재였다.
“지금이라도 막습니까?”
“아니.”
하지만, 안타까운 것과 가주로서의 판단은 별개의 이야기.
“그냥 두거라.”
무릇 무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가문의 불문율이라 하면 그 어떤 이유로도 감싸줄 순 없었다.
비록, 지금은 고작 12살일지라도 말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내색하진 않지만 당지천을 유독 아낀다는 걸 아는 백호단주가 당기룡에게 물어오자, 당기룡은 차를 홀짝 들이켤 뿐이었다.
조금 아프겠지만 어쩌겠는가.
안타깝다는 이유로 도와준다면 앞으로 노력은 안 하고 그저 도움만 바라는 한심한 인간으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당기룡은 씁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오늘 지천이가 음독하면 모두 사소한 소란으로 끝날 일이다.”
어렸을 때 뇌리에 새겨진 공포는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고작 12살인 당지천이 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을 거란 생각은 너무나도 낙관적이었다.
심지어, 방금 나눴던 대화 주제가 ‘당지천이 은수저를 들고 있다’라는 소문 아니었는가.
“……분명, 해내실 겁니다.”
다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당기룡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알기에 백호단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해낼 거다.”
자신을 속이듯,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달래듯 내뱉는 당기룡의 한마디.
그 한마디가 사실이 될 줄은 여기 있는 두 사람 모두 예측하지 못했었다.
* * *
과학.
자연 현상과 인간사회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하여 결과를 바탕으로 법칙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위.
전생에서는 볼 수도 없었던 기와 무공이 존재하고, 상상 속의 물건으로만 여겼던 영약 등이 실존하는 이곳에도 과학은 분명 존재했었다.
물론, 중원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지만.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는 오늘 과학적 방법에 의거하여 새로운 법칙을 찾아냈다.
그 법칙은 바로…….
“아니! 그 녀석이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데 어떻게 자중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직접 소문을 퍼뜨릴 필요까진 없었다. 형이 되어서 동생을 훈계하고, 보듬어주지 못할지언정 깎아내리는 게 말이나 되느냐.”
‘불길한 예감은 절대 틀리지를 않는다.’
백호현의 일을 해결하고 발걸음을 바삐 놀려 도착하자, 내 눈앞에 보인 건 한창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거, 소문이라니. 저는 그런 옹졸한 짓 안 합니다! 단지, 본 사실만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당지혁.
도저히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을 만큼 큰 소리에 손님들의 이목은 이미 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사실이면 험담이 아니고, 거짓이어야만 험담이더냐. 거기다, 어디까지나 너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증인도 없잖느냐.”
그리고 그에 맞서듯 노기가 깃든 목소리로 다그치는 한 남자.
독룡(毒龍) 당지독.
올해로 약관(20살)에 이른 당지천의 큰 형이자, 무림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용의 칭호를 받은 후기지수.
그 특출남이 무공 실력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머리도 좋아서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가문 내부의 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유능했다.
“지금 네 행동이 지천이는 물론이고, 우리 당가의 위상도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겠느냐?”
와, 그나저나 어지간히도 화가 났나 보다.
당지혁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당지독.
하지만, 영특한 당지독이 손님들 앞에서 언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열 받았다는 걸 의미했다.
“거, 되도 않는 위선 좀 그만 떠시죠. 형님이 늘 지천이를 편애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 일은 정도를 넘겼습니다!”
당지혁은 자신이 매일같이 일을 벌이는 것은 생각도 안 한 채 섭섭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자고로 고름은 짜내야 하는 법! 우리 당가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있는 건 바로 저기 들어오는 저놈이란 말입니다!”
당지혁이 나를 향해 삿대질하자,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선.
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려 있던 탓인지 내가 들어오는 건 아무도 못 보고 있었나 보다.
“지천아, 네가 은수저를 가져왔다는 게 사실이더냐?”
나를 발견한 당지독은 한걸음에 달려오더니 곧장 소문의 진위를 물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소문이 돌지언정 사실만 감추면 되기에 그저 은수저만 잘 숨기면 됐다.
그걸 고려하면서 생각해 보면 간단히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아까 당지혁이 내가 은수저를 들고 있음을 봤지만, 이곳은 CCTV나 스마트폰이 없는 곳.
별다른 증거가 없는 이상에야 그냥 잡아떼도 됐다.
당지혁과 조금 싸우긴 하겠지만, 당지독이 있는 이상에야 무력을 사용하진 못할 터이니.
아니면, 당지독에게 붙어서 그저 겁먹은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괜찮았다.
당지혁이 나를 멸시하며 험한 말들을 쏟아내겠지만, 음독식이 시작되면 곧바로 입을 다물 것이니 조금 인내를 발휘해 참으면 됐다.
뭐, 그럼 답은 나온 거 아닌가.
전자를 선택하면 귀찮은 언쟁을 벌이며 당지혁을 상대해야 할 터이니 당연히 후자를 고르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당지독을 다가가려는 순간.
“지천아, 이 형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문득, 올려다본 당지독의 얼굴이 전생의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준일아, 형 말이 안 들려?
형제라곤 하나 없던 내게 누구보다 친형처럼 대해주던.
평생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주던.
그리고 실상은 온갖 감언이설로 날 구슬리며, 뒤에서 내 고혈을 빨아먹었던 그 형의 모습이 당지독과 겹쳐 보였다.
“하…….”
그 기억들이 떠오르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평생 남들의 의도대로 살았던 나다.
그런 내가 도대체 왜 이곳에 오길 바랐던가.
온전히 내 마음 가는 대로 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또 참으라고?
상황에 맞춰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라고?
‘웃기지 마.’
나는 중원 유일의 화학자다.
이 드넓은 중원에서 독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오직 나뿐이란 말이다.
그러니 독이 지배하는 이곳 당가에서만큼은 내가 곧 법이고, 내가 곧 정의다.
이제는 설령 귀찮더라도 걸어오는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겠다.
“저는 은수저를 가져온 적이 없습니다.”
“봐라, 지천이는 가져온 적 없다고 하잖느냐.”
“아니, 당연히 그렇게 대답하겠죠. 야, 근데 내가 본 건 어쩔 건데?”
“증거 있어?”
“뭐?”
“증거 있냐고.”
“아니, 그럼 내가 두 눈 뜨고 본 건 뭔데? 내가 날조라도 했다는 거야?”
“어. 형 눈이 옹이구멍인 거 같은데? 없는 소리 지어내는 거 보면 환각이라도 보나 봐?”
태연하게 받아치자, 순간 벙찐 표정을 짓는 당지혁.
고작 12살짜리 동생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 이, 이 개자식이!”
당지혁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새빨개진 얼굴로 주먹을 쥐고 달려오려던 그때, 인파를 가르고 나타나는 한 사람.
“무슨 소란이냐.”
사천당가의 가주.
이 몸, 당지천의 아버지인 당기룡이었다.
“아, 아버지.”
당지혁이 아무리 다혈질이라고 하지만, 당기룡은 무서웠는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무슨 소란이냐고 물었다.”
“그게…….”
“작은형이 제가 은수저를 가져왔다고 모함했습니다.”
“모함이 아닙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당지혁의 밑도 끝도 없는 주장에 인상을 찌푸리는 당기룡.
단순한 주장에 불과했지만,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보아하니 가주는 소문의 진위를 아는 듯했다.
하긴, 가주라는 자가 가문 내부의 일을 모를 리는 없으니 당연한 일인가.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느냐?”
“하지만 아버지. 저 녀석이 독을 두려워하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은수저를 가져왔다고 해서…….”
“당지혁.”
당지혁의 말을 끊은 당기룡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 나이가 올해로 열다섯이다. 어리석게 굴지 말아라.”
“……예.”
당지혁이 의기소침하게 물러나자, 곧바로 백호단주에게 손을 내미는 당기룡.
“지금부터 음독식을 거행하겠다.”
독이 든 병을 건네받고는 내게 다가와 병을 내밀었다.
“협죽도다. 받아라.”
미리 준비되어 있던 술잔을 들어 올리자, 군말 없이 잔을 채우는 당기룡.
“마셔라.”
할 일을 마치자,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그저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섰다.
“…….”
음독할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기에 하는 행동.
그간 보여준 모습에 더해, 은수저를 가지고 있단 사실도 알고 있으니 내가 독을 마실 것이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하는 눈치였다.
시선을 조금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했던 대로 다들 전혀 기대치 않는다는 눈치였다.
다들 들은 이야기가 있고, 또 본 것도 있기에 지금 여기서 당기룡이 등을 돌린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당지혁 또한 ‘어디 한번 해봐’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난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예.”
당기룡과 똑같이 내뱉은 나지막한 한마디.
하지만 그 파급력은 천지 차이였다.
“뭐……?”
우뚝 멈춘 당기룡의 걸음과 함께 쏠리는 시선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오롯이 받으며 눈앞의 술잔과 마주했다.
“후우…….”
내가 화학자라고 한들 실제로 음독을 해본 적은 없다.
아무리 독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들, 마시면 골로 가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 손안에 있는 협죽도.
강심배당체인 올레안드린(Oleandr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심장이 빠르게 수축하다가 결국 멎게 되어 죽게 되는 독성이 강한 독이다.
전생에선 과거부터 사약(死藥)으로 사용될 만큼 그 독성이 뛰어났다.
즉, 독공을 익히지 못한 일반인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순식간에 심장이 멈춰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전생에 독살로 생을 마감한 나로선 매우 섬뜩한 이야기.
그렇기에 두렵지 않다면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잔을 들어 올렸다.
“저, 당지천은 당가의 사람입니다.”
당가 사람이 독공을 익히는 건 당연한 일.
애초에 음독식에서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독을 내미는 이유가 무엇인가.
독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일.
바로 그것이 독공을 익히는 첫걸음이었으니까.
“당가의 사람답게 독공을 익힐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3년을 쉼 없이 노력했겠는가.
바로 이런 상황에 대처하려고 미리미리 여러 가지를 만들어둔 것 아니겠는가?
오늘 가져온 작은 병.
그 안에 들어 있던 건 협죽도의 성분을 중화시킬 약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협죽도 때문에 죽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더는 피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독으로 인한 죽음이라면 이미 겪어봤다.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무력하게 죽어갔던.
고작 9살에 불과한 당지천이 되었던 그 날에.
그 경험 탓에 이 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잔을 더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왜냐면 이 잔은…….
“모두 잘 보십시오.”
이제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원주인, 당지천의 령(靈)과…….
“이 잔은 어제까지의 저에게 올리는 잔입니다.”
초심을 잃었던 화학자 권준일에게 올리는 위령주(慰靈酒)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