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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71화 (171/171)

# 171

학사환생 171화

무림맹주 진무극은 보았다.

천마의 복마검이 천신우의 미간을 꿰뚫는 광경을.

“……!”

진무극은 다리가 풀리는 심정이었다.

천신우의 패배는 무림맹의 패배를 의미하기에.

다행히 진무극이 천신우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놓친 것이었다.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던 천신우가 천마 뒤에 나타난 것.

천마의 반응속도는 가히 천부적이었다.

벼락처럼 돌아서며 천마가 복마검을 내질렀다.

차앙!

천신우의 자운검과 천마의 복마검이 부딪혔다.

채채채채챙!

뱀처럼 엉키며 서로의 급소를 노리는 검의 움직임은 생동감이 넘쳤다.

“허어.”

진무극은 천신우와 천마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명 모임에서 여러 차례 수준 높은 비무를 관전했던 진무극이다.

특히 풍뢰권과 독야행의 비무는 단언컨대 일품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두 사람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지금까지 진무극이 봐온 어떤 비무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진무극의 마음은 복잡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두 무인의 싸움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무림의 명운을 건 싸움을 두고 구경꾼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물론 배부른 소리였다.

현재 무림에서 천신우와 천마의 움직임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진무극이 유일했으니까.

속도를 겨루던 천신우와 천마의 대결은 어느새 내공 대결로 치닫고 있었다.

천신우의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은 칼날이 되어 천마를 덮쳤다.

그러나 끝내 천마를 뚫진 못했다.

수천 년이 넘도록 풍파를 견뎌낸 바위처럼 천마는 천신우의 기운을 막아냈다.

천마를 뚫지 못한 기운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분노를 발산했다.

쾅쾅!

곳곳에서 폭음이 터지며 장서각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뚫린 천장을 통해 밤하늘이 보였다.

유난히 큰 별 둘이 꼬리를 잡듯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작은 별은 마치 다른 별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듯 고고히 빛나고 있었다.

진무극은 별들의 모습이 마치 지금 상황과 흡사하다고 여겼다.

천신우의 자운검이 찬란한 백광을 머금었다.

주위가 온통 대낮처럼 환해졌다.

천마의 복마검엔 어둠이 서렸다.

천신우와 천마를 중심으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들은 빛과 어둠인 동시에 낮과 밤이기도 했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음!”

진무극이 나직한 탄성을 토해내는 순간.

천신우와 천마가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정확히 중간지점에서 자운검과 복마검이 충돌했다.

복마검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졌고.

자운검은 좌에서 우로 그어졌다.

스가가가가각!

복마검은 자운검을 뚫어내지 못했다.

자운검도 복마검을 떨쳐내지 못했다.

따당!

천신우와 천마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검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났다.

천마는 아직까지 떨리고 있는 복마검을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군.”

천마는 솔직했다.

감정을 숨기지도 표정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렇게 순수했기에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던 그였다.

“나 말고도 마지막 계단에 오른 자가 있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천마에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미 진무극에게 부상을 당했기에.

하지만 천마는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맹주.”

느닷없이 천마의 시선이 진무극을 향했다.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여기까지 왔을 거라 생각하나?”

진무극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무림맹주에게 전해지는 통천록의 예언에 따르면 재앙은 무림을 휩쓸 것이라 했다.

예언대로라면 천마가 이곳에서 쓰러질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마 주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복마검을 휘감았던 것보다 훨씬 불길한 안개였다.

진무극조차 숨이 턱턱 막혀왔다.

“마기…….”

어떤 내공심법을 익혔는지에 따라 내공의 성격은 달라진다.

천신우의 내공이 빛이라면 천마의 내공은 어둠이었다.

어느새 어둠이 장서각을 넘어 무림맹 전체를 뒤덮었다.

밤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천신우만큼은 어둠에 잠식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천마가 보기에는 그랬다.

“끝까지 저항하다니. 제법이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천마가 더욱 기운을 끌어올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옷깃이 펄럭였다.

발밑에서 시작된 어둠은 땅속까지 파고들며 모든 것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광기에 사로잡힌 천마의 눈빛이 천신우를 향했다.

그가 마지막 계단에 오른 것은 초대 천마가 남긴 천마신공을 대성했기 때문.

그리고 지금 그 천마신공이 완전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었다.

울컥!

진무극이 피를 토해냈다.

지금의 그로선 천마의 기운을 감당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가 천마에게 입힌 부상조차 어둠에 뒤덮여 보이지도 않았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진무극의 무릎이 꺾이려는 찰나.

부드러운 기운이 진무극의 몸을 감쌌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의 기운인지 알 수 있었다.

천신우였다.

어느새 천신우의 기운이 천마의 기운을 밀어내고 있었다.

진무극은 물론이고 천마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순간, 천신우의 기운은 빛인 동시에 어둠이었다.

“어떻게!”

천신우가 담담히 대꾸했다.

“만상서고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지. 당신이 익힌 천마신공조차도.”

“만상서고라고? 진정 그게 실재했단 말이냐!”

“역시 당신은 알지 못하는군. 그렇다면 이것도 모르겠지. 천마신공조차 하나의 무공에서 비롯됐음을.”

천마의 무공뿐만이 아니다.

무림맹주의 무공.

그리고 천씨세가 시조의 무공까지도.

모든 것은 결국 절대자였던 상산노군의 무공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천신우는 지금 그 상산노군의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천신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암흑이 천마의 어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천신우의 발밑에서 시작된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광경에 천마가 눈을 부릅떴다.

“이놈!”

천마가 어둠과 함께 천신우를 향해 쇄도했다.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천신우가 무리해서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판단했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천신우의 전신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만상서고의 설계자가 남긴 안배로 강해진 천신우의 몸.

그럼에도 상산노군의 무공을 받아들이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온몸이 산산조각 부서져 버릴 터.

그러나 천신우는 굴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온 천신우였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천신우가 천마를 마중 나가듯 신형을 날렸다.

진무극의 눈앞이 번쩍이는 순간.

이미 천신우와 천마는 충돌한 후였다.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천신우와 천마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차차차차차창!

자운검과 복마검이 부딪치며 만들어낸 불꽃은 마치 별처럼 밤하늘을 수놓았다.

천신우와 천마를 따라 마치 별자리가 움직이는 듯했다.

쉬지 않고 맞부딪치던 자운검과 복마검에 균열이 생겨났다.

쩌저저저적!

급기야 자운검과 복마검이 깨져나가며 파편이 허공에 비산했다.

천마가 손잡이만 남은 복마검을 내던지며 천신우에게 달려들려던 순간.

부서진 자운검에서 찬란한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

천신우는 알 수 있었다.

자운검이 뿜어내는 기운은 바로 지금까지 흡수해 온 보검들이란 사실을.

쐐애애액!

무림삼대비도 가운데 하나인 폭풍비가 바람을 갈랐다.

무신에게 받은 보검도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천마를 향해 날아갔다.

“으아아압!”

천마가 기합을 내지르며 날아드는 검들을 떨쳐냈다.

그 순간.

서걱!

정적이 찾아왔다.

천마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잘려 나간 가슴에서 피분수가 치솟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보다 비현실적인 것은 천신우의 손에 들린 검이었다.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이 아니었다.

“심검!”

절대지경에 오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경지.

심검이 천신우의 손에 들려있었다.

천마가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오른 계단이 마지막이 아니었단 말인가.”

“마지막은 맞다. 다만 계단은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불과할 뿐.”

“그런가. 나는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거만을 떨었던 것이었나.”

허탈하게 웃던 천마의 미소가 점점 흐릿해졌다.

초대 천마의 염원이, 무림정복의 꿈이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한낱 꿈이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천마의 몸통이 반으로 쪼개지며 폭발했다.

투두둑!

사방에 흩뿌려지는 혈우와 함께 무림맹을 뒤덮었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신우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더는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 역시도.

모든 힘을 소진한 천신우의 신형이 아래로 추락했다.

* * *

천마의 죽음에도 마교는 후퇴하지 않았다.

끝까지 무림정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무림맹의 영역에 발을 디뎠던 마교 고수들 모두가 죽었다.

물론 무림맹의 피해도 결코 적지 않았다.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기 위해선 오랜 세월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기에 전쟁을 끝낸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남악련의 참전을 이끌어낸 제갈휘도.

최전선에서 힘껏 싸운 모용비도.

무림맹 정보조직 화향루에서 종전을 보고받은 장윤호도.

천씨세가를 끝까지 지켜낸 가주 천무흔과 천신우의 동생 천신혁도.

그리고…… 천씨세가의 고수들도.

살아남았음에 안도하기보다 죽어간 사람들을 기렸다.

그들의 희생으로 마교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기에.

물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교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천신우라는 사실을.

* * *

무림 제16영역 하북팽가.

대부분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변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묵묵히 마교와의 전쟁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낸 팽우경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천신우에게 주야장천 시비를 걸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과오를 씻고 당당한 무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팽우경이었다.

“벌써 겨울인가…….”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검성 역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겨울이군. 다음 겨울에는 반드시…….”

아직도 천신우를 향한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검성이었다.

* * *

눈이 소복하게 쌓인 마당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싸움을 하며 놀았을 아이들이지만 지금은 다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독야행의 표정도 착잡했다.

옆에서 말없이 검신이 술병을 내밀었다.

그 뒤를 검귀가 따르고 있었다.

품에 검을 꼭 안은 채로.

“에잉! 초상집 분위기가 왜 이러느냐!”

애꿎은 권왕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노인은 바로 풍뢰권이었다.

천신우가 건넨 소생단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회복한 그는 이제 거동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평소라면 거칠게 반항했을 권왕도 아무 말 없이 숙연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다들 넋이 나가서는. 쯧쯧.”

투덜거리는 풍뢰권의 표정에도 서글픔이 떠올라 있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남은 사람에게 아픔을 안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가장 큰 상실을 느끼는 사람은 채은수였다.

상복을 입은 그녀의 표정은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무신의 심복이었던 무영이 나직이 보고했다.

“북해빙궁에서도 궁주가 직접 사람을 보내 서신을 전달해 왔습니다.”

다 읽은 서신을 품에 간직한 채은수가 피어오르는 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눈앞에 나타나 미소 지어줄 것만 같은데.

영정 초상 속의 얼굴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저벅.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채은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벅.

발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에 잃어버렸던 미소가 되돌아왔다.

그런 채은수를 바라보며 천신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겠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채은수에게 걸어가는 천신우의 걸음이 빨라졌다.

<종장>

무림맹 장서각.

오늘도 채은수는 이곳을 찾았다.

책을 읽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그녀는 책장 사이로 누군가를 계속 힐끔거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알아차릴까 긴장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젊은 학사는 완전히 책에 몰입한 후였으니까.

마치 책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채은수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물론 그 설렘의 정체가 뭔지 그녀는 아직 몰랐다.

‘내가 어째서 저 공자를 보러 온 거지? 그렇게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

그 순간, 학사가 채은수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황급히 책장 뒤로 숨었다.

그로 인해 채은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순간, 학사의 표정이 그녀의 표정과 같다는 사실을.

그것도 잠시.

학사는 고개를 흔들며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학사를 힐긋힐긋 훔쳐보던 채은수가 문득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잖아?’

사룡의 일인이자 무신의 손녀로 어디서나 당당한 채은수였지만, 차마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장서각의 관리인에게 책을 반납하는 척하며 물었다.

“항상 저기 앉아 책을 읽는 학사 이름이 뭔가요?”

관리인은 학사를 스윽 돌아보았다.

“아, 저 친구요?”

그가 말했다.

“학사 진현입니다.”

<학사환생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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