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환생-170화 (170/171)

# 170

학사환생 170화

꽈아아아앙!

엄청난 격돌에도 무림맹주 진무극과 천마는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장서각 내부도 무사했다.

책 한 권 찢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 여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장서각 외부는 그야말로 초토화된 후였다.

충격이 외부로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것은 진무극이었다.

“솔직히 이런 순간이 오면 기쁠 거라 여겼건만.”

평생을 강자로 살아온 진무극이다.

무림맹주에 오른 이후엔 이렇다 할 적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에 필적하는 적수를 만난다면 기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마를 눈앞에 마주한 지금.

진무극이 느끼는 감정은 희열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두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이 순간, 진무극을 지배하는 감정은 부담감이었다.

천마를 상대해내지 못하면 무림맹이 무너진다는 데서 오는 압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반면 천마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확실히 폐관에 들어간 보람이 있군.”

아직까진 여유가 있는 천마였다.

진무극이 깨달음을 얻어 마지막 계단에 도달한 상황.

하지만 진무극과 천마 사이엔 여전히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똑같은 계단이더라도 발만 걸친 것과 완전히 오른 것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차이를 증명하듯 천마가 진무극을 향해 쇄도했다.

파앗!

진무극도 반응했지만 한발 늦었다.

천마의 손이 진무극의 어깨를 한 움큼 뜯어냈다.

생살을 뜯어내는 고통이 진무극을 집어삼켰다.

정말이지 체면 따윈 집어치우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를 악물며 진무극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천마도 뒤따라 신형을 날렸다.

아래를 내려다본 진무극이 흠칫 놀랐다.

“……!”

천마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천마의 신법이 진무극보다 한 수 위란 증거였다.

그럼에도 당황하는 대신 진무극은 몸을 뒤집으며 허공을 격했다.

쾅쾅!

천마가 어디에 있든 그대로 휩쓸려 버릴 정도의 위력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천마는 이미 사각지대로 파고든 후였다.

진무극의 뒤로 돌아간 천마가 진무극의 목덜미를 휘어잡았다.

그대로 고속강하한 천마가 진무극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기 직전.

진무극이 다리로 천마의 몸을 휘어 감았다.

우두둑!

회심의 노림수였다.

어지간한 고수라면 온몸의 뼈가 잘근잘근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진무극을 떨쳐내며 속박에서 벗어났다.

진무극이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천마가 따라붙었다.

진무극의 주먹이 천마의 가슴을 타격했다.

퍼억!

천마는 몸을 비틀며 위력을 최소화시키는 동시에 반대편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천마의 주먹에 가격당한 진무극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기세를 잡은 천마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쾅쾅쾅!

주먹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그에 반해 진무극은 산들바람처럼 천마의 주먹을 흘려보냈다.

천마의 단단함에 진무극이 부드러움으로 맞서는 모양새였다.

그 순간.

권법으로 진무극의 시선을 빼앗은 천마가 순간적으로 가슴을 차고 뛰어올랐다.

휘청거리는 진무극을 향해 천마가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쾅!

천마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쳤다.

동심원 형태의 파장이 일제히 퍼져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일대의 공기가 떨어 울릴 정도!

그러나 진무극은 이미 그곳을 벗어난 후였다.

천마가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다.

후욱!

천마의 공격을 흘려낸 진무극이 가슴에 일장을 퍼부었다.

파앙!

천마는 진무극의 공력에 맞서지 않았다.

뒤로 날아가던 천마가 균형을 잡고 바닥에 내려섰다.

퉤하고 핏물을 뱉은 천마가 진무극을 노려보았다.

“과연 무림맹을 이끄는 수장답군.”

진무극은 대답 대신 검붉은 핏물을 토해냈다.

울컥!

천마 이상의 피해를 입은 그였다.

사실 아직 승패가 갈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무극은 상황을 훨씬 비관적으로 보았다.

지금까지의 노림수가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만한 실력을 갖췄으니 무림정복을 꿈꿀 만도 하네그려.”

진무극의 기도가 다시 바뀌었다.

어느새 소리 없이 칼집을 빠져나온 검이 진무극의 손에 들렸다.

무림맹주들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청명검이었다.

“그게 바로 청명검이군. 그렇잖아도 검으로도 붙어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천마 역시 마교 교주들에게 대대로 전해져온 복마검을 뽑았다.

경쾌하게 뽑혀져 나오는 칼날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진무극은 발검조차 천마가 위임을 깨달았다.

사실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그러나 절대강자끼리의 싸움에선 아주 사소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법이다.

“다시 가자고.”

천마가 빠르게 검을 찔러왔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빠르고 예리한 검법이 천마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따다다다당!

천마의 검을 쳐내는 진무극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도무지 반격할 틈을 찾지 못한 그였다.

이래선 곤란했다.

계속 방어만 하다간 언젠가 뚫리기 마련이기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진무극이 기습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차앙!

날아드는 천마의 검을 맞아줄 각오로 날린 공격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빠르게 검을 회수하며 진무극의 공격을 받아냈다.

따당!

하마터면 검을 놓칠 번한 진무극이었다.

회심의 노림수마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천마의 천부적인 전투감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 상대가 나빴을 뿐.”

그렇게 말하던 천마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슝!

무언가 천마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관통당한 어깨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마저도 본능적으로 기운을 감지하고 피해냈기에 어깨에 구멍이 뚫리는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만일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미간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천마가 아닌 다른 상대는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피하지 못했을 테고.

그만큼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숨겨둔 수가 제법 날카롭군.”

천마의 사나운 시선이 진무극의 손끝을 향했다.

천마를 가리키고 있는 진무극의 손엔 손가락이 넷뿐이었다.

방금의 공격을 위해 손가락 하나를 희생한 것이다.

진무극이 남은 손가락으로 천마를 겨눴다.

“이런 썅!”

상스러운 욕을 내뱉으며 천마가 바닥을 굴렀다.

슈슈슈슝!

빛살처럼 쏘아진 진무극의 지풍이 바닥에 빗발쳤다.

천마 주위로 파편이 튀어 올랐다.

“큭!”

몸을 일으키는 천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자존심까지 내팽개치며 바닥을 굴렀는데도 진무극의 지풍을 전부 피해내진 못했던 것이다.

어깨에 이어 무릎에까지 관통상을 입은 천마였다.

혈도를 짚어 지혈했다지만 분명 가볍게 넘길 상처가 아니었다.

물론 모든 힘을 쏟아낸 진무극의 상태는 그보다 훨씬 나빴다.

순식간에 10년은 늙어버린 모습.

방금의 지풍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걸었던 진무극이었다.

그가 다른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천마가 벼락처럼 검강을 날렸다.

쏴아앙!

진무극의 남은 손가락이 모조리 잘려나갔다.

그럼에도 진무극은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그런 진무극을 보며 천마가 피식 웃었다.

“정신력 하나는 인정해 주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번이나 똑같은 공격에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진무극의 얼굴에 씁쓸함이 번졌다.

“아쉽군.”

진무극의 입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일 조금만 천마의 반응이 늦었더라면.

조금만 방심하고 있었더라면.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천마에게 한동안은 회복하지 못할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 정도.

지금이라면 누군가는 천마를 꺾어줄지도 몰랐다.

“그전에 자네가 먼저 죽을 거네.”

진무극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천마가 검을 들어올렸다.

진무극과의 거리는 스무 걸음이 넘었다.

물론 천마에겐 그만한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당장 진무극의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었고.

제자리에서 검강을 날려 진무극의 목을 날려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천마는 그러지 못했다.

머릿속에 불현듯이 하나의 광경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천마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광경이었다.

마치 공간이 밀려나는 착각이 드는 순간.

새로운 기척을 느낀 천마가 벼락처럼 진무극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기척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상대와 진무극이 힘을 합친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위험하다는 것.

판단은 틀리지 않았지만 결과마저 천마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

솨악!

천마의 검은 진무극의 잔상을 베어내는데 그쳤을 뿐이다.

이미 힘이 빠진 진무극이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천마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시야에 진무극을 바닥에 내려놓는 천신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진무극 역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자네는……!”

천신우를 알아본 진무극은 깜짝 놀랐다.

설마 천신우가 이곳에 나타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그였다.

심지어 천마만큼이나 기민한 몸놀림을 보여주다니.

천신우를 얼마 전에 만나봤던 진무극으로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천신우는 그런 진무극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진무극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도 진무극은 천마를 당해내지 못했다.

천마가 얼마나 강한지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지금부터는 그런 천마를 자신이 상대해야 했다.

그럼에도 천신우는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천신우가 진무극을 등지고 돌아섰다.

다른 사람이 봤더라면 무모한 행동이라 지탄했을지도 모른다.

무림맹주를 압도한 천마를 상대로 맞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하지만 진무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천신우이기에 그랬다.

‘내가 착각했었군.’

천신우가 다음 시대를 이끌어나갈 거라 생각했던 진무극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천신우는 이미 이 시대의 중심에 당당히 서있었다.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힘들겠군.’

의식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만일 천신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무극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여기서 지켜보겠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광경을.

천신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천마인가.”

천신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사실 이곳으로 달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척 흥분했던 천신우다.

전생에서조차 만나보지 못했던 천마를 상대로 일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천마를 눈앞에 마주한 지금.

천신우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천마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인상도.

그에게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강대한 기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놀랍군.”

천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조금 전의 움직임만으로 천신우의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움직임만이 아니었다.

천신우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 역시 심상치 않았다.

진무극보다 위임은 물론.

천마 자신에게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로.

자연히 천신우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네놈의 이름은?”

마교를 이끄는 천마였다.

방금 전까지 무림맹주를 압도하던 그였다.

사실상 무림 최강자라 자처해도 손색이 없는 그가, 천신우의 이름을 묻고 있었다.

천신우와 천마의 시선이 허공에서 팽팽히 맞섰다.

천마의 시선에서, 목소리에서, 숨소리에서, 천신우는 그가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천신우.”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무인은 검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법.

천신우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자운검과 하나가 되어 날아드는 천신우에 맞서 천마도 신형을 날렸다.

차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교차한 천신우와 천마가 벼락처럼 돌아섰다.

휘날리는 서책들 사이로 두 사람의 공방전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촤라라락!

천마의 복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칼날에 닿기도 전에 서책은 검은 연기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천신우의 자운검이 검은 연기를 뚫고 천마의 목을 노렸다.

번쩍!

사라졌던 천마의 신형이 책장 뒤에서 나타났다.

천신우가 곧장 천마를 따라붙었다.

서가를 사이에 두고 천신우와 천마의 속도전이 펼쳐졌다.

수십 개의 서가가 시야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동안 천신우의 자운검과 천마의 복마검은 수도 없이 맞부딪쳤다.

차차차차차창!

천신우의 자운검이 기묘한 변화를 보이며 천마의 급소를 노렸다.

천마가 옆으로 피하며 복마검을 휘둘렀다.

촤라락!

수천 장의 책장이 동시에 허공에 휘날렸다.

그러나 천신우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책장의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올 만큼 그는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거추장스럽군. 이것부터 치우지.”

천마가 한 손을 휘둘러 불길을 일으켰다.

책장 따위는 순식간에 불태우고도 남을 강렬한 불꽃이었다.

그러나 불꽃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천신우가 바람을 일으켜 불꽃을 날려 버린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윽.

수천 권의 서책들까지 손짓 하나로 제자리로 돌려놓은 천신우였다.

천마의 입가가 비틀렸다.

“감히!”

분노한 천마의 복마검이 천신우를 향해 섬전처럼 내질러졌다.

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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