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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환생-167화 (167/171)

# 167

학사환생 167화

천신우가 도착하기 전부터 검성은 천마 직속의 고수들과 대치 중이었다.

사실 검성은 적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고강한 고수들임을 직감했을 뿐이다.

물론 검성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스르륵.

검성 손끝에서 나뭇가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제압해!”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마교 고수들이 검성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은 천마 직속의 무력조직들 중에 수라파천대 소속 고수들이었다.

앞서 검신이 가까스로 쓰러뜨린 천마혈검대와 동등한 무력을 지닌 고수들.

당연히 검성에겐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수라파천대와 마주 선 검성의 눈빛은 오히려 열기로 가득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놈들을 만났군.’

검성에겐 무림맹을 수호하겠다는 숭고한 목적이 없었다.

그저 강한 적들을 찾아 무림을 떠돌 뿐이었다.

그런 검성에게 수라파천대와의 충돌은 즐거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설령 수라파천대에게 목숨을 잃더라도 그 순간을 즐기며 죽어갈 것이다.

촤아아악!

검성의 나뭇가지가 허공을 갈랐다.

따다다다당!

검성의 일격을 받아낸 수라파천대 고수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결코 쉽게 제압할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진열을 가다듬어 총공세로 임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이었다.

“엄청나군.”

그들의 진심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에 자부심이 강한 수라파천대 고수들이다.

그러니만큼 남을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곳까지 진격하는 동안 수많은 무림맹 고수들을 맞닥뜨렸지만 상대를 인정한 것은 검성이 처음.

자연히 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들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것들은 다시 합을 이루며 주위를 압도해갔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천신우 그 녀석만큼은 아니지만.”

검성은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이었다.

다음 순간.

수라파천대 고수들과 검성의 신형이 교차했다.

따다다다다당!

경쾌한 울림 끝에 이어진 것은.

뚝!

검성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물론 수라파천대 고수들도 무사하진 못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가 검성에게 목숨을 잃었다.

“…….”

검성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전신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었던들 결과는 같았을 터.”

검성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들고 적들에 맞섰다.

나뭇가지에 짙푸른 기운이 서렸다.

다음 순간.

꽈아아앙!

엄청난 충격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 * *

꽈아아앙!

검성이 서 있는 방향에서 들려온 충격음에도 천신우는 눈앞의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는…….”

어찌 잊겠는가.

전생에서 자신을 죽인 원수를.

그날과 같았다.

무심한 표정도.

온통 검은 옷차림도.

마치 전생의 마지막 그날로 돌아간 착각마저 들었다.

“분명 팔마존의 일인이겠군.”

천신우의 물음.

상대는 전생에서처럼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역시 대답해 줄 생각이 없군.”

천신우가 경쾌하게 자운검을 뽑았다.

스르릉!

동시에 천신우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전생과는 달랐다.

검은 무복의 사내를 상대로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다.

후웁.

심호흡한 천신우가 자운검을 내리쳤다.

솨아악!

전생에서 학사 진현의 몸으로 휘둘렀던 검이 아니었다.

훨씬 빠르면서도 정교한 일격이 흑마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스륵.

흑마존은 이번에도 피해냈다.

하지만 천신우는 흑마존이 그렇게 움직일 거라 예상했다는 듯이 대응했다.

다음 순간 반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검을 가볍게 쳐낸 것이다.

흑마존의 일격을 받아낸 천신우는 아직까지도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해냈다.’

전생에서 자신을 죽였던 바로 그 공격이었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치명적이었지만 전생에서처럼 천신우의 목을 잘라내진 못했다.

물론 아직 기뻐하긴 일렀다.

이제 시작임을 알리듯 흑마존의 검이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쉭쉭쉭!

천신우가 몸을 비틀며 자운검을 내질렀다.

따다다당!

천신우는 흑마존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모조리 받아치며 반격을 노렸다.

쉬잉!

흑마존의 머리 위로 천신우의 검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흑마존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다른 상대였다면 놀라 간담이 서늘해졌을 텐데.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흑마존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날아드는 공격마저 어설프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훨씬 치명적으로 느껴졌다.

천신우가 아슬아슬하게 흑마존의 검을 쳐냈다.

따앙!

동시에 흑마존을 향해 날아들며 자운검을 내리쳤다.

흑마존이 옆으로 비켜섰고 그로 인해 천신우의 일격은 땅을 파헤쳤다.

콰콰쾅!

땅이 뒤집히며 흙기둥이 솟구쳤다.

거대한 흙기둥을 사이에 두고 천신우와 흑마존이 동시에 검을 찔러 넣었다.

쉭쉭쉭쉭!

숨 한 번 쉬기도 힘든 시간 동안에 셀 수조차 없는 횟수의 공방이 오갔다.

지켜보는 것조차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의 치열한 사투!

그 찰나의 공방 속에 천신우는 생각했다.

‘내가 그때 봤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구나.’

흑마존의 무공은 무궁무진했다.

일검에 천 개의 변화를 담아내는 경지는 누구도 쉽게 오르기 힘든 것이었다.

천신우가 앞서 상대한 광마존이나 진마존보다 훨씬 강한 흑마존이었다.

‘강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만일 무신을 죽인 자가 있다면 바로 눈앞의 흑마존일 것이다.

따당!

흑마존의 검을 쳐낸 천신우가 빠르게 쇄도했다.

솨앙!

재차 날아드는 흑마존의 공격은 얼굴을 틀어 흘려냈다.

검이 눈앞을 스치는 순간.

천신우는 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검에 비친 것은 전생에서 마지막 순간 그가 지었던 절망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천신우의 표정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해.’

흑마존의 검이 지나감과 동시에 천신우가 목을 찔러 갔다.

흑마존이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허공을 가르던 천신우의 자운검이 다시 옆으로 눕혀졌다.

자운검이 흑마존의 목을 잘라내려던 순간.

차앙!

흑마존의 검이 찰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차차차창!

천신우와 흑마존의 검이 서로 맞물리며 미끄러졌다.

어느새 칼날이 천신우의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나무를 내려가는 뱀처럼 교묘하고 은밀한 움직임!

따앙!

흑마존의 검을 쳐낸 천신우가 뒤로 한발 물러났다.

물론 숨을 돌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곧장 앞으로 뛰어든 천신우가 전력을 퍼부었다.

채채채채챙!

쏟아지는 맹공에 흑마존의 몸이 휘청거렸다.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위력마저 전부 상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스팟!

흑마존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흑마존이 내지른 검은 천신우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상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천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검을 찔렀다.

쉭쉭쉭쉭!

처음 네 번은 허공을 갈랐지만 마지막 공격은 주효했다.

푸욱!

가슴을 찔린 흑마존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제 흑마존의 눈빛에서 아까의 무심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는…….”

흑마존이 입을 열어 천신우의 이름을 묻는 순간.

천신우는 희열을 느꼈다.

난공불락의 성문을 열어젖힌 기분이었다.

물론 대답해 줄 생각은 없었다.

대신 흑마존을 향해 신형을 쏘았다.

천신우와 흑마존의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날아드는 천신우를 보며 흑마존이 눈매를 좁혔다.

천신우의 움직임은 정말이지 빠르고 가벼웠다.

어디로 날아들지 알면서도 선뜻 막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흑마존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그런 흑마존의 노력을 비웃듯.

푸욱!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흑마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천신우의 자운검은 이미 그의 가슴을 관통했던 것이다.

흑마존의 가슴을 꿰뚫은 자운검은 두꺼운 벽까지 파고들어갔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 몸을 틀었기에 목숨을 건진 흑마존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천신우의 자운검은 정확히 흑마존의 심장을 파괴했을 터였다.

흑마존이 온 힘을 다해 기합을 내질렀다.

“흐아아압!”

흑마존은 가슴이 찢기는 통증을 감수하며 벽에서 몸을 튕겨냈다.

동시에 검을 왼손으로 고쳐 쥐며 최후의 일격을 천신우에게 날렸다.

그러나 그조차 천신우가 예상한 바였다.

“너라면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지.”

날아드는 검을 피해낸 천신우가 그대로 흑마존을 지나쳤다.

스윽.

흑마존의 눈동자엔 천신우의 잔상만이 남았다.

서걱!

흑마존의 가슴을 베어낸 자운검은 눈앞의 벽마저 무너뜨렸다.

허물어지는 벽을 시작으로 전각이 허물어졌다.

폐허로 변한 전각을 배경으로 천신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흑마존이 입을 열었다.

서로 등지고 있어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천신우는 흑마존이 씁쓸하게 웃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군. 무신보다도.”

그게 끝이었다.

흑마존의 목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천신우는 흑마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흑마존 같은 실력자의 숨통을 곧장 끊지 않는다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모르기에.

뒤돌아서며 천신우가 흑마존의 목을 베었다.

서걱!

뚝…… 뚝…….

자운검에서 핏방울이 떨어짐과 동시에.

털썩!

흑마존의 몸이 바닥 위로 쓰러졌다.

촤아악!

피분수를 뿜어내며 흑마존이 바닥에 처박혔다.

흑마존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끝났나.’

천신우가 뒤돌아서며 흑마존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베어낸 것은 단지 전생의 원수만이 아니었다.

전생의 나약한 학사 진현조차 베어버린 천신우였다.

새로운 삶이 주어진 이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전생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천신우다.

그런데 오늘 흑마존을 제압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전에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천신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무신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무신의 환한 얼굴이 보일 듯했다.

무림맹 수미관에 가면 국밥을 맛있게 말아먹는 무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보내야 할 때였다.

“무신 어르신.”

천신우의 입에 수많은 말들이 맴돌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진심 어린 애도를 마친 천신우가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검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까 들려온 충격음이 착각이 아니었던지 서 있는 채로 의식을 잃은 검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밑엔 새카맣게 타버린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그런 검성을 향해 수라파천대의 고수들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신중했다.

검성의 가공할 무위를 직접 상대했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로를 돌아본 수라파천대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이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들이 양쪽에서 검성의 숨통을 끊으려던 그때였다.

스륵.

귀신처럼 나타난 천신우가 그들의 검을 쳐냈다.

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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